성령을 따라 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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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5장 16절 ~ 26절 [개역개정]
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26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설교문 보기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행 1:5). 그로부터 10일째 되는 날인 오순절에 성령께서 강림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지 50일째 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성령 강림은 우연한 일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해 온(사 32:15 ; 겔 37:14 ; 욜 2:28, 29) 하나님의 약속(눅 24:49)이 성취된 사건입니다.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 교회에서는 부활주일로부터 오십 일째 되는 날을 ‘성령강림절’ 또는 ‘성령강림주일’로 지켜오고 있습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행 2:38). 따라서 진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 안에는 성령께서 내주하십니다. 그러한 이유로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몸을 가리켜 ‘성령이 거하시는 전’이라고 했습니다(고전 6:19). 이는 성도의 몸이 단순한 육체가 아니라 성령께서 내주하시는 거룩한 전이기 때문에, 그에 합당한 삶 곧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성령을 따라 행하라고 권면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입니다. 그러면, 성령을 따라 행하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삶인지 본문을 통해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성령을 따라 행하라’는 것은, 육체의 욕심이 아닌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살아가라는 의미입니다. 육체의 욕심과 성령의 뜻은 서로 대립하기 때문에, 무엇을 따르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됩니다(갈 5:17). 육체의 욕심을 따르게 되면 죄악 된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은 그러한 삶이 실제 생활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했습니다.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갈 5:19-21)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은 모두 성적으로 부도덕하고 문란한 행위를 의미합니다. 이는 곧 자기 몸에 죄를 짓는 것이며(고전 6:18), 성령이 거하시는 몸을 더럽히는 심각한 죄악입니다. 우상숭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상숭배는 하나님 이외의 다른 존재를 신적 대상으로 섬기는 행위이며, 성경에서는 이를 영적 음행으로 묘사했습니다(렘 3:8). 주술도 우상숭배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이는 악한 영과 결탁하여 사람을 미혹하기 때문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주술로 번역된 헬라어 ‘파르마케이아(φαρμακεία)’의 어원이 약물을 의미하는 ‘파르마콘’(φάρμακον)이라는 사실입니다. 현대 영어에서 ‘약국’을 뜻하는 단어 ‘파머시(pharmacy)’도 이 단어에서 유래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주술사(파르마큐스, φαρμακεύς)가 약물과 술법을 함께 사용하여 병을 치료하거나 귀신을 쫓는 의식을 행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아무튼 주술은 단순한 치료의 개념을 넘어 악한 영과 결탁하여 사람을 미혹하는 행위로써, 우상숭배와 같이 육체의 욕심에서 비롯된 명백한 죄악입니다.
다음으로 원수 맺는 것은,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갈등입니다. 이는 시기와 다툼의 원인이 되고, 결국 분열로 이어집니다. 이러한 문제를 겪고 있던 대표적인 교회가 바로 고린도 교회였습니다. 당시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 등 자신이 선호하는 지도자를 중심으로 당을 지어 분쟁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고전 1:12). 하지만 바울이나 아볼로, 베드로는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세움을 받은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종에 지나지 않습니다(롬 1:1). 그들 가운데 누구도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만일 누군가 예수님을 대신하려 한다면, 그는 곧 그리스도와 그분의 피 값으로 사신 교회(고전 6:20)를 대적하는 적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어느 특정한 사람에 의해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과 아볼로 그리고 베드로와 같은 다양한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연합할 때 비로소 아름답고 건강한 교회가 세워져 가는 것입니다(고전 1:10). 그럼에도 고린도 교인들은 당을 지어 서로 시기하며 분쟁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교회는 분열되었고, 점차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그들을 ‘육신에 속한 자들’이라고 책망합니다(고전 3:3).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이(고전 1:2), 육체의 욕심을 따라 세상 사람들처럼 행하고 있으니, 바울이 그들을 가리켜 ‘육에 속한 사람’이라고 한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고전 3:4).
술 취함과 방탕함 역시 육신의 욕심을 따라 살아갈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술에 취하면 분별력을 잃고, 흥청거리거나 떠들게 되며, 결국 방탕한 생활에 빠지기 쉽습니다. 이는 성령께서 원하시는 삶과 거리가 먼, 육신에 속한 삶입니다. 바울은 이런 일을 행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라고 엄중히 경고했습니다. 물론 성도라 해도 유혹 앞에 넘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육체의 욕심을 억누르고 이겨내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의지로는 결코 육체의 욕심을 이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롬 7:23).
우리가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그분의 인도하심에 순종할 때, 우리의 삶에는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바울은 이를 ‘성령의 열매’로 표현했습니다(갈 5:22). 성령의 열매 중 가장 먼저 언급된 것은 사랑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마지막에 다루기로 하고, 먼저 희락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희락(χαρά)은 단순한 기쁨이나 일시적인 즐거움이 아니라,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영원하고 참된 기쁨입니다. 성도가 비록 이 땅에서 어려움을 겪더라도 기뻐할 수 있는 것은 미래에 주어질 영광과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롬 8:18). 그러므로 성도는 어떤 상황에서도 기뻐할 수 있으며, 또 기뻐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화평(εἰρήνη)입니다. 화평은 다른 사람들과 분쟁이나 다툼이 없이 평화롭게 지내는 것을 의미합니다(히 12:14). 이러한 삶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성령을 따라 행할 때 우리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오래 참음(μακροθυμία)은 다른 사람의 잘못에 대해 쉽게 화를 내거나 보복하지 않고 인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잠 15:18). 그리고 자비(χρηστότης)란 상대방이 누구이든 상관없이 친절하고 부드럽게 대하는 태도입니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려는 태도가 바로 양선(ἀγαθωσύνη)입니다. 충성(πίστις)은 참된 마음을 가지고 정성을 다하는 태도를 의미하며, 이는 다른 사람이 신뢰하고 맡길 수 있는 신실함을 나타냅니다.
온유(πραΰτης)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태도를 말하며, 어떤 어려움이나 부당한 상황을 겪더라도 쉽게 화내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성품이기도 합니다(마 11:29). 예수님께서는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마 5:5). 이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약속(창 15:18)에 따라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차지한 것처럼 신약의 성도들은 새 하늘과 새 땅(사 66:22 ; 계 21: 1)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세상에서는 강한 사람이 땅을 차지하게 되지만 천국은 늘 겸손히 행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집니다. 그들은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께 속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아홉 번째로 언급된 성령의 열매는 절제(ἐγκράτεια)입니다.
절제는 자신을 알맞게 조절하는 것으로 육체의 욕심을 이겨내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라도 남에게 해가 되거나 신앙에 방해가 된다면 기꺼이 자제할 줄 아는 것이 바로 절제입니다. 바울은 믿음의 삶을 경주에 비유하며,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한다”라고 했습니다(고전 9:25 상). 고대 그리스의 운동선수들은 경기에 앞서 수개월 동안 고된 훈련을 받았으며 음식이나 수면 등 모든 일에 절제했습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 우승을 위해서입니다. 우승자에게는 월계관이나 올리브 화환과 같은 면류관이 주어졌는데, 이는 개인뿐만 아니라 그가 속한 도시의 영예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것을 ‘썩을 승리자의 관’이라고 표현했습니다(고전 9:25 하). 승리자가 받는 월계관은 시간이 지나면 시들기 마련이고, 그가 얻은 영예 또한 결국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게 되는 덧없는 것입니다. 반면에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하는 것은 영원히 썩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입니다. 이를 얻기 위해서는 신앙에 방해되는 일들을 절제하려는 삶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성령의 열매 중 제일 먼저 언급된 사랑(ἀγάπη)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사랑을 마지막에 다루는 이유는 그것이 다른 열매들의 기초가 될 뿐 아니라, 모든 것을 아우르는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령의 열매는 본질적으로 하나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랑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모두 성령의 열매들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 13:4-7) 사랑은 기독교 최고의 덕목입니다. 만일 사랑이 없다면, 성령의 다른 열매들은 본질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으며, 결국은 위선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 속담에 비유하자면 ‘빛 좋은 개살구’와도 같습니다. 개살구는 겉보기에 먹음직스럽고 색도 곱지만, 실제로는 맛이 없어 먹기에 적합하지 않은 열매입니다. 사랑이 없는 성령의 열매들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성령의 열매들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귀한 성품들이지만, 사랑이 없으면 그것은 결국 진정성이 결여된 위선에 불과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힘으로는 육체의 욕심을 이길 수가 없기에, 반드시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을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령을 따라 행하라’고 한 것은 단순히 그렇게 살라는 명령이 아니라, 성령을 의지하라는 권면입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육신의 생각과 그 행위를 버리고, 성령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삶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