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예음TV/수요예배설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2025. 6. 12.
성경본문 보기

로마서 5장 12절 ~ 21절[개역개정]

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16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20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설교문 보기

하나님께서 동방에 창조하신 에덴동산에는 온갖 과실수가 있었고 동산 중앙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었습니다(창 2:9). 하나님께서는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을 수 있도록 허락하셨으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금하셨습니다(창 2:17). 하지만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하와가 그 열매를 따 먹었고, 남편인 아담 역시 하와가 준 열매를 먹고 말았습니다(창 3:12). ‘그 열매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아담과 하와는 금단의 열매에 손을 대고 말았습니다. 이로써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하나님의 경고대로 사망 곧 죽음이 찾아왔습니다(롬 5:12 상). 따라서 죽음은 죄의 결과입니다(롬 6:23).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서 죽음으로 생을 마치게 되는데, 이는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롬 5:12 하).

죽음은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즉 율법이 주어지기 전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에게까지 왕 노릇을 했습니다(롬 5:14).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란 하나님의 명령을 직접적으로 어긴 죄를 의미합니다. 비록 모세 이전의 사람들이 아담처럼 하나님의 계명을 직접 받거나 그것을 어긴 것은 아니지만 그들 역시 죄를 지었으므로 죽음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떤 죄를 지었을까요? 이를 이해하려면 먼저 성경이 말하는 죄가 무엇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울러, 그 죄의 결과로 찾아온 죽음이 구체적으로 어떤 상태를 가리키는지도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성경에는 죄를 가리키는 용어가 여럿 있습니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헬라어 ‘하마르티아(ἁμαρτία)’입니다. 이 단어는 ‘과녁을 벗어나는 것’ 또는 ‘과녁에서 빗나간 것’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의 뜻[과녁]에서 벗어나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것[벗어남, 빗나감]이 바로 죄입니다. 본문 12절에서 언급된 죄가 ‘하마르티아’입니다. 또 죄를 가리키는 용어 가운데 헬라어 ‘파랍토마(παράπτωμα)’가 있습니다. 이는 고의가 아닌 실수로 범한 죄를 의미합니다. 15절에 ‘범죄’로 번역된 단어가 바로 ‘파랍토마’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실수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약 3:2). 그러므로 하나님의 기준으로 볼 때, 모든 사람은 죄인입니다(롬 3:23). 모세 이전의 사람들 곧 율법이 주어지기 전의 사람들이든, 율법을 받은 이후의 사람들이든 모두가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죄의 대가는 죽음이기에, 모든 사람은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를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에녹과 엘리야처럼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죽음을 경험하지 않은 이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장차 있을 부활과 영생에 대한 예표로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죽음은 단지 육체의 죽음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상태 곧 영적인 죽음도 포함됩니다(엡 2:1). 이 상태가 계속되면 영원한 죽음에 이르게 되는데, 이를 ‘둘째 사망’(계 20:14 ; 21:8) 또는 ‘영원한 멸망의 형벌’이라고 합니다(살후 1:9). 모든 사람은 죄인이기 때문에, 영원한 죽음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절망적인 상태에 놓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에게 살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 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로 인해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롬 5:1). 이는 곧 영원한 멸망의 형벌에서 벗어나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요 3:16).

바울은 이러한 구원의 진리를 설명하면서, 아담이 오실 자 곧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라고 했습니다(롬 5:14). ‘모형(τύπος)’이란 본래 피규어(figure)처럼 실물을 본떠 만든 형상을 의미합니다. 성경에서는 이 단어가 앞으로 나타날 실체를 미리 보여주는 예표로 쓰였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이 단어가 아담과 그리스도를 대조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보통 ‘모형’이라고 하면 실체와 비슷한 속성을 가진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여기서는 오히려 대조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 모든 사람이 정죄와 죽음에 이르게 되었으나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의롭다 하심과 생명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롬 5:18, 19 ; 고전 15:22). 그 구체적인 내용이 15절 이하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롬 5:15) 은사로 번역된 헬라어 ‘카리스마(χάρισμα)’와 은혜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리스(χάρις)’는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카리스(은혜)는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호의를 뜻하고, 카리스마(은사)는 카리스로 주어지는 선물을 의미합니다. 여기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값없이 주시는 구원의 은혜를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는 아담이 지은 죄와 같지 않습니다. 아담 한 명의 범죄로 많은 사람이 죽었으나,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의 은혜로 주어지는 선물은 더욱 많은 사람에게 넘쳤습니다. 이는 아담의 죄가 인류에게 끼친 피해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훨씬 더 크고 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은 아담의 범죄로 인해 생긴 결과와 같지 않습니다. 아담의 범죄는 심판과 정죄를 가져왔지만,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은혜의 선물은 많은 범죄에도 불구하고 의롭다 하심을 받게 하기 때문입니다(롬 5:16). 그리고 아담의 범죄로 인해 죽음이 왕 노릇을 했다면,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의의 선물을 받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확실합니다(롬 5:17). 따라서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처럼, 한 사람의 의로운 행위로 인해 모든 사람이 의롭다는 인정을 받아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롬 5:18). 즉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된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된 것입니다(롬 5:19).

또 바울은 20절에서 율법과 은혜의 관계에 대해 언급합니다. “율법이 들어온 것은 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율법이 있기 전에도 죄는 세상에 존재했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사건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창 4:8). 하지만 율법이 있기는 전에는 그것을 죄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죄를 규정하는 기준이 없었기 때문입니다(롬 5:13). 사람들은 율법이 주어진 이후에 비로소 죄가 무엇인지 인식하게 되었고, 자신들이 얼마나 큰 죄를 지었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율법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롬 3:20).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습니다. 이것은 죄가 죽음을 통해 왕 노릇한 것 같이, 은혜도 의를 통해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는 것입니다(롬 5:21). 이는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정하신 유일한 길입니다(요 14:6).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얻고, 영생을 선물로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롬 6:23). 비록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었다 할지라도, 이 땅에서의 육체적인 죽음은 피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일이기 때문입니다(히 9:27). 그러나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흙에 속한 몸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몸을 입어야 합니다(고전 15:49). 그래서 죽은 자들은 썩지 않을 몸으로 다시 살아나고, 살아 있는 자들도 썩지 않을 몸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고전 15:52 ; 빌 3:21). 이러한 몸을 가리켜 신령한 몸, 곧 영의 몸이라고 합니다(고전 15:44). 만일 우리가 살아있을 때 예수님께서 재림하신다면 우리는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영생에 이르게 될 수도 있습니다(고전 15:51 ; 살전 4:1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만드신 최초의 사람은 아담입니다. ‘아담’은 개인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람’을 가리키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히브리어 원어에서 ‘아담(אָדָם)’은 흙을 뜻하는 ‘아다마(אֲדָמָה)’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는 사람이 흙으로 지음 받았음을 보여줍니다(창 2:7). 그러나 흙으로 지음을 받은 존재가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땅에 사는 들짐승들과 공중의 새들 역시 흙으로 창조되었습니다(창 2:19). 그렇다면, 사람이 다른 피조물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는 데 있습니다(창 1:27). 형상이란 보통 겉모습을 말하지만,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요 4:24) 여기서 말하는 형상은 눈에 보이는 외형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을 따라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생각하고 판단하며 결단할 수 있는 능력이 다른 피조물보다 뛰어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사람을 만물의 영장으로 창조하시고, 그에게 세상을 관리하도록 청지기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그 사명을 저버리고, 금단의 열매를 먹음으로써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했습니다. 그로 인해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하나님께서 경고하신 대로 죽음이 찾아왔습니다. 만일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다면, 그는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영생에 이르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그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찾아왔기 때문입니다(롬 5:12). 아담이 끝까지 순종했다면, 죄도 죽음도 세상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담의 죄로 인해 찾아온 죽음은 사람들 위에 군림하며 마치 왕처럼 권세를 행사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권세는 죽음 자체가 아니라, 죽음을 통해 권세를 잡은 마귀에게 있습니다(히 2:14). 마귀는 이 죽음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며 종처럼 얽매이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혈과 육을 지닌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심으로써, 죽음의 두려움에 사로잡혀 한평생 종노릇 하던 자들을 자유롭게 하시기 위함입니다(히 2:15).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 ‘대속물’로 번역된 헬라어 ‘뤼트론(λύτρον)’은 ‘속전’ 즉 노예를 자유롭게 하거나 포로를 풀어주기 위해 치르는 대가를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의 두려움에 사로잡혀 마귀의 종노릇 하던 인류를 해방하기 위해 자기 몸을 속전으로 내어주셨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하나님께서 값을 치르고 우리를 사셨다고 말하면서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권면했습니다(고전 6:20). 우리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요, 거룩한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죄에 얽매여 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신앙을 방해하는 모든 것들을 벗어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