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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음TV/주일예배설교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2025. 8. 12.
성경본문 보기

시편 18편 1절 ~ 3절 [개역개정]

1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2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3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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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18편은 표제에 있는 대로 다윗이 모든 원수와 사울의 손에서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시입니다. 이 시는 사무엘하 22장에도 기록되어 있는데, 그 내용이 후에 편집되어 시편에 수록되었습니다.

본 시편은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는 고백으로 시작합니다(시 18:1). 이 내용은 사무엘하 22장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이 고백을 다윗이 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성경은 그 기록 목적에 따라 내용의 구성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필요에 따라 어떤 부분은 추가되기도 하고, 어떤 부분은 생략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 구절은 비록 시의 도입부에 불과하지만, 본 시편 전체의 내용을 함축한 신앙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목할 것은, 여기서 사용된 ‘힘’이라는 단어가 일반적으로 쓰이는 히브리어 ‘오즈(עֹז)’가 아니라 '헤제크(חֵזֶק, 하자크에서 유래)라는 점입니다. 성경에서 ‘오즈’는 주로 전쟁에서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강조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모세는 홍해를 건넌 후 “여호와는 나의 힘”이라고 고백했는데(출 15:2), 이때 사용된 단어가 바로 ‘오즈’입니다. 반면, ‘헤제크’는 위기 상황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견디게 하는 강인함, 곧 내적인 힘을 의미합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복에 앞서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수 1:9). 여기서 ‘강하고’에 해당하는 단어가 ‘헤제크’입니다. 따라서 1절의 ‘나의 힘이신 여호와’라는 표현은, 다윗이 위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견딜 수 있었던 이유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그런 힘을 주셨기 때문이라는 신앙고백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어떤 고난 속에서도 그것을 능히 견딜 수 있도록 내적인 강인함(헤제크)을 주셨고, 마침내 그 상황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외적인 능력(오즈) 또한 허락하셨습니다. 한마디로 다윗은 하나님께서 주신 힘으로 고난을 견뎠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능력으로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그런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합니다. 이는 단순히 좋아한다는 차원을 넘어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진정한 애정과 감사의 표현이 담긴 고백입니다.

이어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어떤 분이신지를 구체적으로 고백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나의 반석, 나의 요새, 나를 건지시는 분, 내가 피할 바위, 나의 방패, 나의 구원의 뿔”이라고 했습니다(시 18:2). 근동 지역에서 뿔을 가진 짐승들은 대개 강한 힘을 지녔기 때문에, 뿔은 곧 힘이나 능력을 상징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구원의 뿔’로 표현한 것은, 하나님께서 구원의 능력을 지니신 분, 곧 구원을 이루실 수 있는 전능하신 분이시라는 의미입니다. 다윗은 이러한 고백을 통해 자신뿐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모든 자들을 능히 고난에서 건지실 수 있는 분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시 18:3). 반석이나 요새, 바위, 방패 등과 같은 표현들도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신약에서도 ‘구원의 뿔’이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메시아를 가리켜 ‘구원의 뿔’이라고 예언한 것입니다(눅 1:69). 이는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 세상 모든 사람(요 4:42),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딤전 4:10)가 되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원수, 곧 마귀와 그의 세력으로부터 능히 구원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사 9:6).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행 2:21; 욜 2:32).

다윗은 인생의 수많은 환난 속에서 늘 주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때론 침묵도 하셨지만(시 22:2) 결국은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의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시 18:6) 여기서 ‘성전’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헤칼(הֵיכָל)은 본래 궁전처럼 크고 화려한 집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사 13:22). 이 단어를 하나님의 집, 곧 성전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한 것입니다. 하지만 성전은 단순히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을 뜻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크고 화려한 건물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임재하지 않으시면, 그것은 단지 건물에 불과합니다. 반대로, 겉모습이 비록 초라해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그곳이 바로 성전입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셨던 장소는 성막이었습니다. 성막(히, 미쉬칸)은 장막(히, 오헬)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텐트(tent)처럼 천과 가죽으로 만들어진 이동식 성소였기 때문입니다. 겉모습만 보면 다소 초라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셨기에, 성막을 ‘헤칼’ 곧 성전이라 부르기도 했습니다(삼상 1:9; 3:3). 따라서 성전은 건물의 규모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임재 여부에 따라 그 가치와 의미가 결정됩니다. 하나님께서 계신 곳은 어디든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다윗이 말한 성전은 당시에 존재했던 성막이나 후에 건축될 성전을 지칭한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계신 처소, 곧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을 가리킵니다(시 11:4; 계 11:19). 이는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우리가 어디에서 기도하든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비록 구약 시대에는 성막이나 성전에서 혹은 성전을 향해 기도했지만(왕상 8:38; 단 6:10),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장소에 얽매이지 않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성령께서 믿는 자 안에 거하심으로 모든 성도가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기 때문에(고전 3:16), 우리가 어디서 기도하든 그것이 다윗같이 진실한 기도라면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실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에 어떻게 응답하셨는지를 이렇게 묘사합니다. “그가 높은 곳에서 손을 펴사 나를 붙잡아 주심이여 많은 물에서 나를 건져내셨도다”(시 18:16) ‘많은 물’이란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헤어날 수 없는 위험과 환난을 가리킵니다. 다윗은 종종 자기보다 강한 원수와 자신을 미워하는 자들을 만나 죽음의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그들은 표제에서 밝힌 것처럼 사울을 비롯한 그의 대적자들이었고,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모든 세력을 가리킵니다. 다윗은 그럴 때마다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이 아닌,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그분께 간구했습니다(시 18:18).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원수들의 손에서 그를 건지셨으며(시 18:17), 그를 넓은 곳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시 18:19 상). 이는 다윗을 더 이상 원수의 손이 닿지 않는 안전한 곳으로 옮기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에 응답하신 이유가 자신의 의로움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 갚으시되 그의 목전에서 내 손이 깨끗한 만큼 내게 갚으셨도다”(시 18:24) 이는 다윗이 자기 의를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고자 힘써 왔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할 뿐 아니라, 전심으로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며 경건하게 살고자 애썼습니다(시 18:21-23). 하나님께서는 그런 다윗을 기뻐하시고 그의 기도에 응답하셨으며, 원수들의 손에서 그를 구원하셨습니다.

또한 다윗은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에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벽을 뛰어넘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시 18:29). 여기서 ‘의뢰하고’와 ‘의지하고’는 원문에 없는 표현으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라는 의미를 신앙적인 관점에서 번역한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과 함께라면 어떤 장애물도 극복할 수 있다는 확신에서 비롯된 고백입니다. 우리도 주와 함께라면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능히 그 길을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세상을 이기신 주님께서 영원토록 우리를 붙드시며 인도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요 16:33).

이러한 다윗의 고백은 다음 절에서도 이어집니다.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순수하니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의 방패시로다”(시 18:30)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다’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과 그분의 길이 모두 정의롭고 진실하며 거짓이나 흠이 전혀 없다는 뜻입니다(신 32:4). 또 ‘여호와의 말씀은 순수하다’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오류가 전혀 없는 진리이기에 그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시 12:6).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의 방패가 되셔서 그들을 안전하게 보호하십니다. 그런데 이 구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방패와 연결된다는 것은, 그 보호가 육체적인 차원보다 영적인 차원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경건하게 살아가려고 하는 자들을(시 18:20, 21) 하나님께서 영적 공격으로부터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신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영적 공격을 ‘악한 자의 불화살’에 비유했습니다(엡 6:16). 여기서 ‘악한 자’는 마귀 곧 사탄을 가리키며(마 13:19; 눅 8:12), ‘불화살’은 사탄의 공격이 얼마나 강력하고 파괴적인지를 보여줍니다. 사탄은 거짓의 아비로서(요 8:44) 사람들을 속이고 유혹하며, 두려움과 핍박으로 믿음을 무너뜨려 신앙에서 멀어지게 하려 합니다. 이러한 공격으로부터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는 진리의 말씀 위에 굳게 서 있어야 합니다(골 1:23). 우리가 그 말씀을 굳게 붙들고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그 어떤 영적인 공격에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끝내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둠 속을 밝히는 등불이 되어 우리를 진리의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시 119:105).

마지막으로 다윗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반석이냐”(시 18:31)라고 외치며, 자신을 모든 원수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건져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렸습니다(시 18:49). 신약에서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고전 10:4). 그분은 우리가 의지하고 설 수 있는 귀하고 견고한 모퉁잇돌이시며(벧전 2:6), 우리의 영원한 피난처가 되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말씀 그 자체이십니다(요 1:14).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며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살아갈 때, 우리의 믿음은 흔들림 없이 견고해지고, 어떤 환난 속에서도 능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께서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요 16:3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하므로 모든 원수와 대적들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시 18:48). 나아가 하나님께서는 그를 민족 중에서 높이 세우셨습니다(시 18:43). 우리도 다윗처럼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살아계시며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지키시는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뿐 아니라 자기 백성들을 모든 환란 가운데서 지켜주시고 보호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어려움에 직면할 때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하셨던 것같이 우리의 기도에 귀 기울여 주시고, 모든 환난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견딜 수 있는 힘을 주시며, 끝내 승리할 수도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런 은혜가 우리의 삶 가운데 있기를 바라며,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는 고백이 우리의 신앙고백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