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를 바라는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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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5편 1절 ~ 10절 [개역개정]
1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나이다
2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를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들이 나를 이겨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3 주를 바라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 까닭 없이 속이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리이다
4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5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기다리나이다
6 여호와여 주의 긍휼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부터 있었사오니 주여 이것들을 기억하옵소서
7 여호와여 내 젊은 시절의 죄와 허물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주께서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으로 하옵소서
8 여호와는 선하시고 정직하시니 그러므로 그의 도로 죄인들을 교훈하시리로다
9 온유한 자를 정의로 지도하심이여 온유한 자에게 그의 도를 가르치시리로다
10 여호와의 모든 길은 그의 언약과 증거를 지키는 자에게 인자와 진리로다
설교문 보기
시편 25편은 다윗의 시로,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바라며 그분만을 의지한다는 신앙의 고백을 담고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주를 바라는 자들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하는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다윗이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던 이유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결코 수치, 곧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시 25:2-3). 여기서 말하는 ‘부끄러움’은 원수들에게 굴복당하거나 조롱받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한 개인으로서의 부끄러움이 아니라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수치를 의미합니다. 다윗은 원수들에게 굴복당하거나 조롱받는 것을 단순히 개인의 수치가 아니라 자신이 믿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이 조롱당하는 것과 같은 신앙적 모욕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따라서 2절의 “나로 부끄럽지 않게 하소서”라는 기도는 곧, ‘하나님을 믿는 자의 믿음이 헛되지 않게 하소서’라고 기도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이런 경향은 믿음의 사람들에게서 잘 나타납니다. 가데스 바네아 사건 이후 하나님께서는 “내가 전염병으로 그들을 쳐서 멸하고 네게 그들보다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민 14:12). 이에 모세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여호와가 이 백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에 인도할 능력이 없었으므로 광야에서 죽였다 하리이다”(민 14:16) 사실 모세는 이스라엘을 인도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끊임없는 불순종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가리켜 “목이 곧은 백성”이라고 하셨습니다(출 33:3). ‘목이 곧다’는 표현은 본래 농부의 말을 따르지 않는 소나 말에게 사용되던 말로, 이스라엘 백성은 마치 농부의 말을 잘 듣지 않는 소나 말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자기 고집대로 행했습니다. 또 그들은 불평과 원망이 일상화된 자들이었습니다. 조금만 어려움이 와도 원망과 불평을 쏟아냈으며, 심지어 모세를 죽이려고 했습니다(민 14:10).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않았다”(민 14:22)라고 하실 정도로 목이 곧은 백성을 이끌어야 했으니 얼마나 힘이 들었겠습니까. 그래서 모세는 자신이 이 모든 백성을 혼자 감당할 수 없으니 차라리 자신을 죽여 이 고난을 더 이상 겪지 않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기까지 했습니다(민 11:14–15). 그럼에도 그는, 하나님께서 불순종한 이스라엘을 멸하려 하실 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들의 죄악을 사하여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민 14:19). 모세의 관심은 자신이나 백성보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이 세상에서 모욕당하지 않고 높임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다윗 역시 모세와 같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존귀하게 되기를 바라는 그런 자세야 말로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마땅히 지녀야 할 태도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사셨기 때문에(고전 6:20),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자(벧전 2:9) 그분의 종입니다(롬 6:22; 고전 7:23).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삶의 최우선으로 삼아야 합니다(고전 10:31). 또한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다윗은 고난을 당했을 때,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고, 그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시 25:2). 이는 환경이나 사람, 그 어떤 것도 신뢰하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께 소망을 두는 사람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반면에 까닭 없이 속이는 자는 수치를 당할 것입니다(시 25:3). ‘까닭 없이 속이는 자’란 ‘이유 없이 죄를 짓는 자’란 뜻으로, 정당한 사유 없이 하나님과 사람에게 죄를 범하며, 고의적으로 불신앙의 길을 걷는 자를 가리킵니다. 그런 자들은 수치를 당할 것이며, 이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을 믿고 주를 바라는 자는 구원을 얻지만, 하나님을 외면하며 죄악의 길을 걷는 자는 결국 심판을 받아 멸망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2. 주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시 25:4) 여기서 ‘주의 도’와 ‘주의 길’은 같은 표현으로, 하나님의 성품과 그분의 뜻에 따라 행하는 삶의 방식을 가리킵니다. 이어지는 5절의 ‘주의 진리’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에 따라 살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성품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본문에서는 이를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신실하심’입니다. 5절에 ‘진리’로 번역된 히브리어 ‘에메트’는 단순히 ‘참’이나 ‘진실’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 단어의 어근인 ‘아만’은 ‘견고하다’, ‘믿을 수 있다’, ‘확고하다’라는 뜻을 지닙니다. 따라서 ‘에메트’는 단순히 ‘진실’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믿을 수 있는 하나님, 곧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을 '신실하신 하나님'(신 7:5), 또는 '신실하신 여호와'(사 49:7)라고 합니다. 야고보서 기자도 하나님에 대하여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다"고 증언했습니다(약 1:17). 하나님은 움직이는 그림자처럼 변하는 일이 없으신 영원토록 불변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고백처럼 주의 말씀은 참되며(삼하 7:28), 여호와의 모든 길, 곧 그분의 모든 행위와 섭리, 인도하심은 모두 진리입니다(시 25:10).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바로 그런 분이시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그분을 온전히 의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 ‘인자하심과 선하심’입니다. 6절과 7절에서 다윗은 ‘주의 인자하심과 선하심’을 언급하며, 이를 근거로 자신의 죄를 사하시고, 자신을 기억해 주실 것을 간구합니다. “여호와여 주의 긍휼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부터 있었사오니 주여 이것들을 기억하옵소서 여호와여 내 젊은 시절의 죄와 허물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주께서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으로 하옵소서” 여기서 인자하심은 히브리어로 ‘헤세드’이며 이는 언약적 사랑, 곧 하나님과 그 백성 사이의 언약 관계 안에서 나타나는 변함없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자비를 베푸시는 분이 아니라, 약속하신 말씀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이 주의 인자하심과 선하심을 근거로 죄 사함을 간구한 것은, 자신의 그 어떤 선행이나 공로로도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를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죄성을 지닌 인간의 행위는 하나님 앞에서 결코 의로울 수 없으며(롬 3:10, 23), 어떠한 공로로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없습니다. 구원과 용서는 오직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선하심, 곧 그분의 전적인 은혜로만 주어집니다(엡 2:8-9).
셋째, ‘공의로우심’입니다. 9절에서 다윗은 하나님이 “온유한 자를 정의로 지도하시며 온유한 자에게 그의 도를 가르치신다”고 고백했습니다. 여기서 ‘정의’로 번역된 히브리어 ‘미쉬파트’는 공정하고 바른 판단을 뜻하며,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이 실제 삶 속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온유한 자’란 자기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는 `겸손한 자'를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행위에 대해 공의로 판단하시되,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겸손히 회개하는 자를 바른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만일 우리가 진실한 마음으로 지은 죄를 회개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뿐만 아니라 그 죄를 다시는 기억하지 않으실 것입니다(시 25:7;렘 31:34). 이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으로, 우리가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가를 알려주는 가장 확실한 근거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기도에 대한 응답이기도 합니다(고후 1:20).
다윗은 ‘주의 인자하심과 선하심’을 근거로 죄 사함을 구했고(시 25:6–7; 51:1), 모세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을 근거로 이스라엘 백성의 용서를 위해 기도했습니다(출 34:6, 9). 요엘 선지자 역시 ‘하나님의 은혜로우심과 자비로우심’을 근거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진정한 회개를 촉구했습니다(욜 2:13)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지기에, 우리의 기도 또한 그 약속 안에서 응답될 것을 믿어야 합니다(약 1:6). 다만, 그 응답이 언제 어떻게 이루어질지는 알 수 없기 때문에 인내가 필요합니다. 다윗이 “내가 종일 주를 기다리나이다”라고 한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시 25:6). 우리는 조급함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도하심을 신뢰하며 그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반드시 그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갈 6:9).
하나님의 뜻은 바로 이러한 그분의 성품에서 비롯된 삶의 원리와 기준입니다. 곧, 그분의 신실하심과 선하심 그리고 인자하심과 공의로우심이 드러나는 삶을 의미합니다. 이를 미가 선지자는 ‘공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라 했고(미 6:8), 예수님께서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이라고 하셨습니다(마 23:23).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과 뜻을 바로 알아야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12절에서 하나님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가 택할 길, 곧 그가 걸어야 할 길을 가르쳐 주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경외’란 하나님의 권위와 거룩하심에 대한 공경과 두려움을 의미합니다. 이는 단순한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을 깊이 존중하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려는 마음의 자세입니다. 그런 자에게 하나님께서 그가 걸어야 할 길을 가르쳐 주신다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그분의 길을 걷게 됩니다. 또한 그의 영혼은 평안히 살고 그의 자손은 땅을 상속하게 될 것입니다(시 25:13). 여기서 ‘땅’은 하나님의 약속된 복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호 아래에서 내적인 평안과 복된 삶을 누리게 되며, 그의 자손 역시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그 복을 이어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여호와의 친밀하심이 있다고 했습니다(시 25:14). ‘친밀함’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소드’는 본래 ‘비밀’이나 ‘은밀한 일’을 의미하지만, 여기서는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눌 정도의 친밀함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그런 친밀한 교제를 통해 하나님의 언약을 더 깊이 체험하고 알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시편 25편을 통해 주를 바라는 자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살펴봤습니다. 주를 바라는 자들이란 한마디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며 그분의 길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인자하시고 진실하시며, 공의로우시고 선하신 분으로, 그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자신의 뜻을 가르치시고 바른 길로 인도하십니다. 또한 주를 바라는 자들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통해 그분의 언약을 더 깊이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삶의 어떤 순간에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겸손히 그분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주를 바라는 자의 삶, 그것이 바로 참된 평안과 복된 삶으로 나아가는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