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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음TV/수요예배설교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2025.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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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6장 17절 ~ 20절 [개역개정]

17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18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들의 배만 섬기나니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19 너희의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로 말미암아 기뻐하노니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20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 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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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에서 재판을 받기 위해 압송되었습니다. 그러나 재판을 받기 전 약 2년 동안 가택연금 상태로 있다가(행 20:30) 석방된 후 수년 동안 자유롭게 활동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기간 바울은 마게도냐, 소아시아, 니고볼리(딛 3:12) 등을 방문했으며, 교회 전승에 따르면 그때 서바나 선교를 시도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명확한 기록은 없으며, 당시의 정황으로 보아 바울의 서바나 선교가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따라서 바울이 서바나에 가지 못했다거나 갔다고 단정하기보다는, 양쪽 가능성을 모두 열어두는 것이 타당합니다. 다만, 바울이 아니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누군가를 통해 이루셨을 것입니다.

로마서는 바울이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복음의 내용을 체계적이고 자세하게 기록하여 보낸 편지입니다. 복음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죄 사함과 구원입니다. 사람은 모두 죄인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롬 3:22-24). 아울러 구원받은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언급했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사람들은 더 이상 죄를 짓지 말고 자신의 몸을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롬 6:13). 곧,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롬 12:1-2).

마지막으로 바울은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여러 동역자를 소개하며 그들에게 문안 인사를 전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몇 가지 신앙의 권면으로 편지를 마무리합니다.

첫 번째로 소개한 인물은 ‘뵈뵈’(Phoebe) 자매입니다(롬 16:1). 바울은 그녀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 곧 집사로서, 자신과 여러 사람의 보호자가 되었다고 했습니다(롬 16:2). 여기서 ‘보호자’는 후원자를 의미하며, 이는 그녀가 바울을 비롯한 여러 사역자를 지속적으로 후원해 왔음을 보여줍니다. 바울은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그녀를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 주라”고 권면했습니다. 이를 근거로 주석가들은 그녀가 바울의 편지를 가지고 로마 교회를 방문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소개된 인물은 ‘브리스가(Priscilla)와 아굴라(Aquila)’ 부부입니다(롬 16:3). 그들은 이달리야의 로마에서 생활하다가, 글라우디오 황제의 유대인 추방령으로 인해 고린도로 이주해 왔습니다(행 18:2). 바울은 2차 선교 여행 중 고린도에서 그들을 만났습니다. 그가 고린도에 도착했을 때는 혼자였고, 아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곳에 얼마나 머물게 될지는 알 수 없었지만, 있는 동안은 생계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야 했습니다. 바울은 천막을 만드는 기술이 있었고, 그런 일을 찾다가 같은 직업에 종사하는 아굴라를 만난 것입니다. 그는 고린도에서 1년 6개월 동안 머물며 아굴라 부부와 함께 사역했습니다. 그 후 아굴라 부부는 바울과 함께 에베소로 갔으며(행 18:18), 그곳에서 사역을 이어갔습니다. 바울이 로마서를 쓸 당시에는 그들 부부가 아마 로마에 머물러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나의 동역자들’이라 부르며, 그들의 헌신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롬 16:4) ‘목을 내놓는다’라는 말은 ‘죽음을 각오한다’라는 뜻의 관용적 표현으로, 그만큼 아굴라 부부는 바울과 이방인 교회들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이는 곧 하나님께 대한 헌신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을 돕는 일은 곧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아굴라 부부뿐만 아니라 “저의 집에 있는 교회에도 문안하라”고 권면했습니다(롬 16:5 상). 당시에는 유대인의 회당이나 오늘날과 같은 예배당이 따로 있었던 것이 아니라 성도들의 집이 모임의 장소로 사용되었습니다(고전 16:19; 골 4:15). 각 지역의 교회들은 대부분 이러한 가정교회들이 모여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저의 집에 있는 교회에도 문안하라’고 권면은 아굴라의 집에 모이는 성도들에게 문안하라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다음으로 ‘에배네도(Epaenetus)’를 소개합니다. 그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를 믿은 첫 열매입니다(롬 16:5 하). 아시아는 오늘날의 튀르키예 서쪽 지역을 가리킵니다. 바울이 그를 ‘사랑하는 에배네도’라 부른 것으로 보아, 바울이 아시아에서 선교를 통해 얻은 첫 회심자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무엇이든 첫 열매는 특별한 애정이 가는 법입니다.

다음으로 살펴볼 인물은 루포입니다(럼 16:13). 루포(Rufus)는 복음서에 등장하는 구레네 사람 시몬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형을 선고받고 형장인 골고다 언덕으로 끌려가셨습니다. 십자가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보통 자신이 달릴 십자가의 가로 형틀을 지고 형장까지 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선고가 내려진 총독의 법정에서 골고다까지의 거리는 약 800미터로 경사가 졌기 때문에 무거운 형틀을 메고 간다는 것이 매우 고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형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시고 자꾸 쓰러지자, 로마 군인들은 마침 근처를 지나가던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에게 그것을 대신 지게 했습니다(마 27:32). '구레네'는 아프리카 북부에 위치한 지역으로, 시몬은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와 있었습니다. 공관복음 모두 이 기사를 모두 다루고 있는데, 그중에서 마가복음만이 시몬을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막 15:21). 이는 마가복음의 독자들이 알렉산더와 루포를 알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만큼 그들은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고, 그러한 믿음에는 아버지 시몬의 영향이 컸을 것입니다. 이 루포가 바울이 로마서에서 언급한 루포와 동일 인물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추정에 불과합니다. 루포의 어머니 역시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바울이 그녀를 ‘나의 어머니’라고 한 것은 단순히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영적 관계(마 12:50)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어머니처럼 그를 돌보고 보살펴 주었음을 의미합니다. 바울이 로마 교회 성도들로 하여금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고 한 것은, 그들이 당시 로마에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인물은 디모데입니다(롬 16:21). 디모데는 갈라디아 지방의 루스드라 출신으로, 바울의 1차 선교여행 때 회심한 것으로 보입니다(행 14:6-20). 바울이 두 번째 방문했을 때, 그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칭찬받을 정도로 신실한 제자가 되어 있었습니다(행 16:2). 이후 디모데는 바울과 함께 사역했고, 에베소 교회의 지도자로 섬기기도 했습니다(딤전 1:3). 전승에 따르면, 디모데는 도미티안 황제 시절 에베소에서 이교 축제를 반대하다가 돌에 맞아 순교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바울은 그를 ‘믿음 안에서 참 아들’이라 부르며(딤전 1:2), 자신의 마지막 서신을 그에게 보내 유언과도 같은 권면을 남길 만큼 가장 가까운 동역자로 여겼습니다.

이외에도 바울은 30명이 넘는 인물을 언급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형식적인 문안이 아니라 복음 사역을 함께 감당했던 동역자들에 대한 존경과 애정,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의 연합과 일치를 보여줍니다. 그들 가운데는 유대인도 있었고, 이방인도 있었으며, 유대인과 이방인의 혼혈인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당시 유대인의 입장에서 이방인과 어울린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행 10:28). 혼혈인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을 혼혈인이라는 이유로 이방인 취급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요 복음의 능력입니다. 복음 안에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혼혈인의 구별이 없습니다. 모두 한 사람, 그리스도인만이 있을 뿐입니다(엡 2:15).

특히 주인과 종의 관계도 더 이상 성립되지 않습니다. 비록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주인과 종의 관계가 존재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는 더 이상 그런 구분이 무의미합니다.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요 자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너희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고 권면했습니다(롬 16:16). ‘입맞춤’은 지중해 문화권에서 가족이나 친구 사이의 일반적인 인사 방식이었습니다(창 29:11; 눅 22:48).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유대인과 이방인, 특히 주인과 종 사이에서 그렇게 인사하는 것은 어느 문화권에서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세워진 공동체의 사랑과 일치를 표현하기 위해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고 권면했습니다. 이는 복음이 사회적 장벽을 허물고, 모든 교회, 곧 모든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해야 함을 보여줍니다. 그런 자들에게 분쟁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습니다. 로마 교회 역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기에, 분쟁의 소지가 있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고 권면합니다(롬 16:17). ‘너희가 배운 교훈’이란 바울이 전한 복음의 진리,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죄 사함과 구원, 그리고 그에 따른 거룩한 삶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그렇다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요? 바로 거짓 선생들입니다(벧후 2:1). 그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갈 1:6). 그것은 예수를 믿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할례나 안식일 등 율법을 준수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행 15:1; 갈 5:2-4). 하지만 구원은 율법을 지킴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만 얻을 수 있습니다(롬 1:17). 이 외에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갈 1:7). 그럼에도 거짓 선생들은 잘못된 교훈을 퍼트려 교회 내에 분쟁을 일으키고, 교인들의 신앙생활을 방해했습니다. 이들은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기 배만을 위하는 자들입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이 아닌,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 유익을 위해 진리를 왜곡하고, 그럴듯한 말과 아첨하는 말, 곧 다른 사람의 환심을 사거나 잘 보이기 위한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합니다(롬 16:18). 결국 그들을 진리의 길에서 떠나게 하며, 마침내 멸망에 이르게 합니다(벧후 2:1).

이런 거짓 선생들에게 미혹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야 합니다.

‘살핀다’는 것은 ‘어떤 대상을 주의 깊게 관찰한다’라는 뜻으로,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 곧 거짓 선생들이 어떤 자들인지 분별하고 경계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누구인지 알았다면, 즉시 돌아서야 합니다. 세상에는 가까이함으로 유익을 얻는 것이 있는가 하면, 가까이해서는 결코 안 되는 것들도 있습니다. 잘못된 교훈을 가르치는 자는 그가 누구든 절대로 가까이해서는 안 됩니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것을 방해하는 세력과의 관계를 과감히 그리고 단호하게 끊어야 합니다.

둘째, 선한 데는 지혜롭고 악한 데는 미련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지혜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뜻에 따라 행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이 지혜가 거짓 선생들을 분별하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즉, ‘거짓 교사들에게 속지 않을 만큼 지혜로워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아울러 ‘악한 데는 미련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속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속이는 자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 거짓 선생들을 비롯하여 세상 사람들은 악한 데 지혜롭고 선한 데 미련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들과 정반대로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해야 합니다. 이와 비슷한 의미로 고전 14장에는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라'고 했습니다(고전 14:20). 여기서 ‘아이’는 대체로 유치원생 정도의 나이를 말하고, ‘어린아이’는 그보다 더 어린 ‘젖먹이’ 곧 ‘유아’를 가리킵니다. 유치(幼稚)란 ‘나이가 어리다’는 뜻이지만, 때론 수준이 낮거나 미숙하다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어린아이들은 말 그대로 유치합니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행동하고, 유혹에도 쉽게 넘어갑니다. 반면에 악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특히 유아는 거짓말을 할 줄 모르고, 있는 그대로를 표현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아이처럼 경솔하거나 조심성 없이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일에 신중하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그러나 악에 대해서만은 어린아이 같이 순수해야 합니다. 그것이 곧 참된 지혜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승리를 믿고 소망 가운데 굳게 서야 합니다.

거짓 선생들처럼 악을 행하는 자들의 배후에는 언제나 사탄이 있습니다. 사탄은 무력을 사용하여 교회를 박해하거나 거짓 교훈으로 성도들을 미혹합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사탄은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을 끊임없이 대적해 왔습니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그로 인해 믿음에서 떠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살후 2:3). 그러나 사탄의 세력이 아무리 강할지라도 결국에는 평강의 하나님께서 그를 우리의 발아래에서 상하게 하실 것입니다(롬 16:20). 이는 사탄의 완전한 패배를 의미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그분의 자녀들로 하여금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신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요일 3:8; 계 20:10). 그러므로 우리는 이 약속을 붙잡고 소망 가운데 굳게 서야 합니다. 세상의 어떤 유혹에도 미혹되지 말고, 끝까지 신앙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로마 교회가 그랬던 것처럼, 오늘날의 교회도 거짓 선생들의 잘못된 가르침으로 인해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바울이 이미 경고한 바대로, 많은 사람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습니다(딤전 4:1). 그들은 미혹을 받아 교회를 떠나기도 하지만, 여전히 교회 안에 남아 있으면서 잘못된 가르침을 따르기도 합니다. 우리가 거짓 선생들에게 미혹되지 않기 위해서는 바울이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한 권면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경의 권면은 그 당시의 교회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교회에도 주어진 말씀입니다. 평강의 하나님께서 사탄을 우리의 발아래에서 상하게 하실 그날을 소망하며 복음의 진리 안에 굳게 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롬 16:26). 아울러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