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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음TV/주일예배설교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2025.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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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7편 1절 ~ 14절 [개역개정]

1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2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3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4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5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
6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둘러싼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7 여호와여 내가 소리 내어 부르짖을 때에 들으시고 또한 나를 긍휼히 여기사 응답하소서
8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가 마음으로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9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시고 주의 종을 노하여 버리지 마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나이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나를 버리지 마시고 떠나지 마소서
10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11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가르치시고 내 원수를 생각하셔서 평탄한 길로 나를 인도하소서
12 내 생명을 내 대적에게 맡기지 마소서 위증자와 악을 토하는 자가 일어나 나를 치려 함이니이다
13 내가 산 자들의 땅에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보게 될 줄 확실히 믿었도다
14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설교문 보기

시편 27편은 다윗이 환난 가운데서도 어떻게 구원의 희망을 노래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시입니다. 이 시편을 통해 우리가 고난의 상황에 처할 때,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다윗은 대적의 위협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를 1절에 이렇게 밝힙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여기서 '빛'은 대적의 위협을 물리치시고 승리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상징합니다(시 18:28).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하시기 때문에 세상의 어떤 존재도 자신을 두렵게 할 수 없다고 확신했습니다. 비록 대적들의 수가 군대처럼 많고 그들이 자신을 향해 진을 칠지라도, 또 누군가 자신을 치려고 전쟁을 일으킨다 할지라도 그는 여전히 태연할 것이라고 했습니다(시 27:3). 여기서 ‘태연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바타흐)의 기본 의미는 ‘신뢰하다’, ‘의지하다’입니다. 다윗은 생명의 능력이시며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했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태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자는 두려워할 수밖에 없습니다(사 12:2).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진을 치고 있을 때, 바로가 군대를 이끌고 그들에게 가까이 오고 있었습니다. 이를 본 백성들은 심히 두려워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출 14:10). 그러나 이는 하나님을 신뢰함에서 나오는 간구가 아니라, 단지 두려움에서 흘러나온 탄식에 불과했습니다. 그들은 “왜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며 모세를 원망했습니다(출 14:11). 이에 모세는 백성들에게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고 했습니다(출 14:13). 이는 눈앞의 위협이 아니라, 위로부터 임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기대하라는 뜻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신뢰했기에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백성들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에 두려워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종종 제자들의 믿음 없음에 대해서 책망하신 바 있습니다. 하루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시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얼마쯤 가다가 갑자기 큰 폭풍이 일어나 파도가 배를 뒤덮었고 물이 배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막 4:37). 배가 곧 가라앉을 위기에 처하자, 제자들은 물에 빠져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몹시 두려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배의 뒤편에서 태연히 주무시고 계셨습니다(막 4:38). 이에 제자들은 예수님을 깨우며 자신들을 구원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바람이 그치고 바다가 아주 잔잔하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어찌 너희가 믿음이 없느냐’(막 4:40)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함께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이 두려워했던 이유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확실히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막 4:41).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분을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다윗이 ‘주의 이름을 아는 사람들은 주를 신뢰할 것’(시 9:10)이라고 한 것처럼, 하나님을 알 때, 비로소 그분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단순히 안다고 해서 그것이 곧 신뢰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분명히 알게 되었고, 그로 인해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종 모세를 믿었다고 했습니다(출 14:31). 그러나 며칠이 지나지 않아 그들은 다시 모세를 원망했습니다(출 15:24). 어느 민족도 경험하지 못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음에도,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이스라엘 백성처럼 불신앙의 길을 걷지 않으려면, 하나님을 단순히 아는 데 그치지 말고, 그분을 신뢰하는 단계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늘 마음에 새기며(신 6:6), 항상 기도하고(단 6:10), 그분께서 행하신 일과 베풀어주신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신 8:11; 시 103:2). 그럴 때 우리는 다윗처럼 두려운 상황 속에서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담대함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고후 4:18).

2. 하나님을 사모해야 합니다.

다윗에게는 늘 바라던 한 가지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그분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시 27:4) 여기서 '한 가지 일'이란 실제로 구한 것이 하나였다기보다 다윗이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일을 말합니다. 만일 그가 하나님께 오직 한 가지 일만을 구해야 한다면 그는 틀림없이 이를 구했을 것입니다. ‘여호와의 집’이란 성전을 가리키며, ‘그곳에 살면서 그분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며, 그분과 끊임없이 깊은 교제를 나누고자 하는 열망을 표현한 것입니다.

다윗은 26편에서도 ‘주께서 계신 집과 주의 영광이 머무는 곳을 사랑한다’고 고백한 바 있습니다(시 26:8). 어쩌면 다윗은 실제로 제사장이나 레위인처럼 성소에 머물기를 원했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다윗이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며 그곳에 거하기를 원했던 이유는 바로 그곳이 하나님의 임재와 보호의 장소였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시 27:5) 이는 다윗이 그의 초막과 장막, 곧 성전에 숨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임재하시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켜주실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특히, ‘높은 바위 위에 두신다’는 표현은 ‘반석 위에 세우신다’는 의미로, 하나님은 어떤 폭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반석처럼, 그분께 피하는 자를 안전하게 지켜주신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또한 다윗은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둘러싼 내 원수 위에 들릴 것이라”며, 구원과 승리를 확신하고 있습니다(시 27:6 상). 그날에 다윗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겠다”고 선언합니다(시 27:6 하). ‘즐거운 제사’란 ‘환호와 찬양이 동반된 제사’를 뜻합니다. 이는 하나님께 받은 은혜에 감사하여 드리는 ‘감사의 제사’(시 107:22)보다 한층 더 벅찬 기쁨으로 드리는 찬양의 제사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법궤를 시온성으로 옮겨올 때, 다윗이 소와 살진 송아지로 제사를 드리고 춤을 추며, 그와 온 이스라엘 백성이 즐거이 환호하며 나팔을 불던 장면을 연상케 합니다(삼하 6:13, 15).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승리를 주시는 그날에, 하나님의 성전에서 기쁨의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을 찬양하겠다 다짐했습니다. 이처럼 다윗이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며 그분을 피난처로 삼고 구원과 승리를 확신한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사모하며 그분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환난 가운데서 지켜주시고 승리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3.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다윗은 확신에 찬 고백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환난 가운데서 지켜주시고 반드시 다시 일으켜 세워주실 것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날에 다윗은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그 확신의 고백이 갑자기 탄식의 기도로 바뀝니다. “여호와여 내가 소리 내어 부르짖을 때에 들으시고 또한 나를 긍휼히 여기사 응답하소서”(시 27:7) 다윗의 확신이 탄식으로 변한 이유는 아마도 대적의 위협이 더 거세졌기 때문일 것입니다(시 27:12). 그로 인해 그의 믿음이 흔들린 것은 아니었으나, 인간적인 연약함 때문에 탄식의 기도가 흘러나온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도 때로는 현실의 위협 앞에서 두려움이 밀려올 때가 있습니다. 바알 선지자들과의 대결에서 승리한 후 위풍당당했던 엘리야조차도, 이세벨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두려워하여 광야로 도망쳤습니다(왕상 19:3–4). 다윗 역시 사울 왕을 두려워하여 적국인 블레셋으로 망명하기도 했습니다(삼상 27:1-2).

다윗은 두려움이 밀려오자 하나님께 기도하며, 자신을 긍휼히 여기사 응답해 주시기를 간청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너는 내 얼굴을 찾으라”(시 27:8)고 하신 말씀을 기도의 근거로 삼았습니다. ‘내 얼굴을 찾으라’는 것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분의 은혜를 입기 위해 간절히 기도하라는 의미입니다. 이 말씀을 다윗의 마음에 주신 하나님의 음성으로 이해하기도 하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그를 찾으면 만나리라”는 신명기의 말씀(4:29)으로 보기도 합니다. 어찌 됐든 다윗은 이 말씀을 근거로 하나님께 기도했고, 그 기도는 더욱 간절한 호소로 이어졌습니다.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시고 주의 종을 노하여 버리지 마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나이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나를 버리지 마시고 떠나지 마소서”(시 27:9) 이 기도는 다윗이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그는 하나님께 ‘내 마음에 맞는 사람’(행 13:22)이라고 인정받을 정도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이 연약한 죄인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혹시 하나님께 진노를 살만한 일을 하지는 않았는지 자신을 돌아보며, 그럴지라도 자신을 노하여 버리지 마시기를 간구한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결코 자신을 버리지 않으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이는 그가 과거에 경험했던 하나님의 도우심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합니다.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나이다” 다윗은 이를 강조하기 위해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라고 말합니다(시 27:10). 물론 다윗이 실제로 부모에게 버림받은 것은 아닙니다. 다만, 세상에서 가장 믿을 만한 부모조차 자신을 버린다 할지라도, 하나님만은 절대로 자신을 버리지 않으실 것이라는 확신을 표현한 것입니다. 즉, 부모의 사랑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에 비하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는 이러한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의 도를 가르쳐 주시고, 평탄한 길로 인도해 주시기를 원했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가르치시고 내 원수를 생각하셔서 평탄한 길로 나를 인도하소서” (시 27:11) 이는 단순히 환난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원수의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고, 마치 목자가 양을 인도하듯 하나님의 뜻을 따라 바른길을 걸을 수 있도록 인도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평소에는 신앙생활을 잘하는 사람도 어려운 상황을 만나면 시험에 들기도 하고, 신앙에서 멀어지기도 합니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다윗처럼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며,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시 146:5).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주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기를 간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4. 하나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다윗의 마지막 고백은, 탄식에서 다시 확신으로 끝납니다. “내가 산 자들의 땅에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보게 될 줄 확실히 믿었도다”(시 27:13) 다윗은 대적들로 인해 비록 죽음의 위기 가운데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을 그 위험에서 지키시고 구원해 주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시 27:14) 이는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며, 소망 가운데서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는 의미입니다. 결국 기도에 있어서 필요한 것은 신뢰와 소망 그리고 인내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할 때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고, 소망을 가질 때 낙심하지 않으며, 인내할 때 지치지 않고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를 통해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눅 18:1). 우리가 기도하면서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면 때가 이르러 반드시 기도의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갈 6:9; 눅 8:1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에서 나와 가장 가깝고 가장 친하기 때문에 당연히 도움을 기대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존재이기에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돕고 싶어도 돕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고, 갑자기 마음이 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돕고 싶어 하실 뿐 아니라, 능히 도우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구원이시며 생명의 능력이 되시고, 결코 변함이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만일 다윗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다면 그는 원수들의 위협 앞에서 용기를 잃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모하며, 구하고, 기다렸기에 결국 구원의 노래를 부를 수 있었습니다. 우리 또한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며, 소망 가운데서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