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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음TV/주일예배설교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2025. 11. 17.
성경본문 보기

누가복음 10장 1절 ~ 20절 [개역개정]

1 그 후에 주께서 따로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2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3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4 전대나 배낭이나 신발을 가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며
5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
6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의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7 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
8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놓는 것을 먹고
9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
10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그 거리로 나와서 말하되
11 너희 동네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도 너희에게 떨어버리노라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하라
12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 날에 소돔이 그 동네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13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14 심판 때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15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16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하시니라
17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18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설교문 보기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파송하신 뒤(눅 9:1-6), 다시 칠십 명의 제자를 세우셔서 둘씩 짝지어 자신이 가시려는 각 마을로 먼저 보내셨습니다(눅 10:1). 그들의 사명은 병자를 고치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눅 10:9). 임무를 마친 제자들은 큰 기쁨에 넘쳐 돌아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 주님의 이름을 대면 귀신들까지도 우리에게 복종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눅 10:18-20) 주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귀신을 쫓아내며 기적을 행한다고 해서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얻거나,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일들이 구원받은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자신들이 행한 능력이 구원받았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예언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마 7:22)” 그러나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것이며(행 16:31), 참된 믿음은 입술의 고백이나 외적인 능력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삶을 통해 드러나는 것입니다(마 7:21; 약 2:17; 요일 2:3). 능력을 행하는 것은 은사일 수는 있어도(고전 12:10) 열매는 아닙니다. 이를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그런 사람들을 무조건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단정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을 가리키는 호칭이 여럿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성도와 그리스도인입니다. 그 외에도 하나님의 자녀(요 1:12; 요일 3:1), 빛의 아들(요 12:36; 살전 5:5), 혹은 빛의 자녀(엡 5:8) 등으로 불립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빛의 열매’로 묘사했습니다(엡 5:9). 예수님께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 7:20)고 하신 것은 곧 그들의 삶을 보면 그들의 정체를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입니다(엡 5:9). 이와 반대되는 것이 ‘어둠의 일’인데(엡 5:11), 그것은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입니다(엡 5:3). 음행은 성적인 타락을 말하며, 모든 더러운 것은 하나님 앞에서 부정하게 여겨지는 모든 행위를, 그리고 탐욕은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욕심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그 이름조차도 입에 담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는 세상 사람들처럼 살아서도 안되고, 살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거짓 선지자들이나 거짓 선생들은 어둠의 일, 곧 호색과 탐욕과 세상의 더러움에 사로잡혀 있는 자들입니다(벧후 2장). 그들은 겉으로는 주님의 일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자신들의 유익을 추구하는 자들입니다(롬 16:18). 베드로는 그들과 그들을 따르는 자들을 가리켜 개와 돼지에 비유했습니다. “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벧후 2:22). 개와 돼지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부정하게 여기는 대표적인 짐승입니다. 개는 토한 것을 다시 먹는 습성이 있고, 돼지는 아무리 씻어도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눕는 특성이 있습니다. 이는 유대 전통에서 본성이 변하지 않는 자를 가리키는 속담입니다.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당시 교회들은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선생들로 인해 큰 혼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잘못된 교훈에 미혹되어 방탕한 삶을 사는 교인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이적을 이용해 사람들을 속이는 거짓 선지자들도 있었습니다. 그 한 예가 바울 일행이 구브로 섬의 바보에서 만난 유대인 거짓 선지자 바예수입니다(행 13:6). 그를 거짓 선지자라고 한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선지자 행세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마술사로서(행 13:8) 마술을 마치 선지자의 능력인 것처럼 가장했을 것입니다. 고대의 마술은 속임수도 있었지만, 사도행전 8장에 나오는 마술사 시몬이나 16장의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처럼 악한 영을 힘입어 초자연적인 능력을 행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시몬이 행하는 마술을 보고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행 8:10 하). 마술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오해한 것입니다. 이는 그가 행하는 마술이 단순한 속임수가 아니라 초자연적인 능력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사탄이 자신을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듯, 그의 일꾼들이 스스로를 의의 일꾼으로 꾸미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고후 11:14-15). 이로 인해 많은 사람이 미혹되어 그들을 참된 선지자로 여기고 따릅니다(행 8:10 상). 이는 마치 들포도와 일반 포도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들포도와 일반 포도는 생김새가 거의 비슷해 열매가 맺히기 전까지는 구별하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열매가 맺힌 뒤에도 멀리서 보면 구분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까이에서 보면 차이가 드러나고, 맛과 향을 확인하면 정확히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 요한이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고 권면한 것처럼(요일 4:1) 겉으로 드러난 현상만 보지 말고 그들의 삶을 면밀히 살펴야 합니다. ‘분별하라’는 말은 ‘시험하여 진위를 밝히다’라는 뜻으로, 참과 거짓을 가려내기 위한 신중하고도 철저한 검증을 의미합니다.

거짓 선지자들과 달리 예수님의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따릅니다. 칠십 명의 제자들 역시 열 두 제자처럼 예수님께로부터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부여제자들 역시 열 두 제자처럼 예수님께로부터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받아(눅 10:9)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했습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에게 있어서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행위는 거짓 선지자들과 달리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선포하기 위한 도구였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전파되는 것 자체보다, 귀신들이 자신들에게 복종하는 현상에 더 큰 기쁨을 느꼈습니다(눅 10:17). 한 마디로 주객이 전도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권능을 주신 이유는 귀신을 제어하고 병을 고침으로써 하나님의 나라를 효과적으로 전하게 하시려는 것이지(눅 9:2) 그것 자체가 목적은 아닙니다. 물론 마귀의 일들을 멸하시는 것도 예수님께서 오신 이유입니다(요일 3:8). 하지만 근본적인 목적은 대속을 통한 구원에 있습니다(갈 1:4; 딤전 2:6). 대속이란 이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기쁨의 동기를 권능이 아니라 구원에 두도록 하셨습니다.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눅 10:20) ‘하늘에 이름이 기록되었다’는 것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다’는 말과 같은 뜻이며(계 21:27), 이는 그가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는 구원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모든 사람이 죄인이기 때문입니다(롬 3:23). 세상에 의인은 하나도 없습니다(롬 3:10). 자신이 의롭다고 생각하든 안 하든 모두 죄인입니다. 만일 죄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요일 1:8). 죄인에게는 형벌이 따릅니다. 사회에서도 죄를 지으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아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께 죄를 지은 자는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습니다(살후 1:9). 이는 육체와 영혼이 함께 불못, 곧 지옥에 던져져 영원히 고통을 받는 형벌입니다(계 20:15). 이 형벌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죄가 없으시지만(히 4:15)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희생제물이 되셨고(엡 5:2, 그림), 그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살 길이 열렸습니다(히 10:20). 따라서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요 3:16). 이것이 곧 구원입니다.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아야 할 죄인에게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소식식보다 더 기쁘고 좋은 소식은 없습니다(눅 2:10). 누구든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요 1:12). 그런 자들의 이름이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입니다. 이는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그 어떤 기쁨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큰 기쁨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는 세상에서의 성공이나 소유로 기뻐하지 말고 그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구원을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고, 고난 중에도 기뻐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저의 삶을 돌아보면 감사보다 불평이 앞섰던 순간들이 적지 않았음을 고백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감옥에서 오랫동안 수감 생활을 하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불평이 몸에 배어 감사할 줄도 모르고 기쁨도 없었습니다. 오랜 수형 생활을 마치고 출옥한 그는, 수도원을 찾아가 원장에게 자기를 받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수도원장은 한 가지 조건을 붙여 그를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 조건은 항상 침묵을 지켜야 하며, 5년마다 한마디만 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5년이 흘러 드디어 한마디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첫마디는 “잠자리가 나쁘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5년이 흘렀습니다. 두 번째 말은 “음식이 나빠 못 먹겠다”는 것이었고, 5년 후 세 번 째는 “더 못 살겠다”였습니다. 그에게 감사가 없는 것은 받은 은혜를 기억하지 못하거나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는 오갈 데 없는 자신을 받아 주고 생계까지 책임져 준 수도원장의 은혜는 잊어버린 채 불평만 늘어놓았습니다. 이처럼 감사가 없는 사람은 결국 자신이 받은 은혜를 잊어버린 채 매일 불평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잊어버리고 말고, 늘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비록 삶이 고단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나라와 장차 누릴 소망을 바라본다면 감사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던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 제물로 내주셨습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 큰 사랑과 은혜가 어디 있겠습니까? 아울러 우리의 이름이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된 것보다 더 큰 기쁨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고 늘 감사하며,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