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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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5장 1절 ~ 8절 [개역개정]
1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2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3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런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4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5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6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8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설교문 보기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서 분쟁을 비롯한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제3차 선교 여행 중 에베소에 머물 때였습니다(고전 16:8). 그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편지를 보내는 한편 디모데를 파송했습니다(고전 4:17 상). 고린도 교회의 문제는 복잡해서 편지로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편지만 전달하는 것보다 신뢰할 만한 사람을 함께 보내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디모데는 제2차 선교 여행 때 고린도에서 바울과 함께 사역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고린도 교회 성도들도 그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행 18:5, 고전 16:10). 바울은 그로 하여금 고린도 교회의 형편을 살피고, 성도들에게 자신의 가르침을 일깨워 주도록 했습니다(고전 4:17 하).
바울도 에베소에서의 사역을 마친 뒤 고린도를 방문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바울이 그곳에 오지 못할 것이라 여기고 교만해졌습니다(고전 4:18). 그들이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나, 아마 바울을 깎아내리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바울의 편지가 무게 있고 힘이 있으나, 직접 대하면 약하고 그 말도 시원치 않다고 한 자들(고후 10:10)과 같은 부류였을 것입니다. 그들은 마치 자신들이 바울보다 더 낫다고 여기는 듯 스스로 교만했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다”라고 했습니다(고전 4:19).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오직 능력에 있기 때문입니다(고전 4:20). 여기서 ‘능력’은 성도의 삶 속에서 나타나는 성령의 실제적인 역사를 말합니다. 열매를 보면 그 나무를 알 수 있듯(마 7:20), 말보다 더 분명한 것은 그들의 삶입니다. 그렇다고 바울이 그들의 실체를 몰라서 확인해 보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의 거짓된 주장을 드러내고 필요하다면 그들을 징계하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밝힌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진정으로 원한 것은 그들이 회개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세우고,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가 온전하게 서는 것이었습니다(고전 4:21).
이어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또 다른 문제를 언급합니다. 그것은 교인 중 한 사람이 자기 아버지의 아내를 데리고 사는 음행에 관한 일입니다(고전 5:1). 그러한 음행은 이방인들 사이에서도 혐오스럽게 여기는 행위였습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이에 대해 교회가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구약의 율법에 의하면 그런 죄를 범하는 자는 사형에 처해지거나(레 20:11) 백성 중에서 끊어지게 된다고 했습니다(레 18:8, 29). ‘끊어진다’는 말은 이스라엘 공동체로부터 추방됨을 의미합니다. 신약에서도 그 원리는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즉, 신앙공동체인 교회는 그런 일을 행한 자를 쫓아내야 합니다. 바울은 이런 일을 행한 자를 자신이 이미 판단하였다고 말합니다.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런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고전 5:3). 4장에서 바울은 주님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라고 했는데(고전 4:5), 여기서는 그런 일을 행한 자를 판단했다고 말합니다. 이는 4장과 5장이 서로 다른 대상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4장에서는 사역자들에 대해 말한 것이고, 5장에서는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는 자에 대해 언급한 것입니다. 물론 사역자들이라도 명백한 죄에 대해서는 교회가 판단하고 필요하면 징계해야 합니다.
바울은 지금 에베소에 있지만 영으로는 그들과 함께 있다고 했습니다. 비록 몸은 떨어져 있으나 영은 그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은 음행을 행한 자에 대해 판단을 내렸습니다. 이는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사도로서 내린 결정입니다. 그러니 교회도 예수의 이름으로 모여 그 음행한 자를 징계해야 한다고 촉구합니다. 이는 주 예수의 능력을 힘입어(고전 5:4) 그분께서 교회에 주신 권위를 따라 마땅히 행해야 할 일입니다(마 18:18). 이를 통상 ‘교회의 치리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어 주라고 말합니다.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전 5:5). ‘내어주었다’로 번역된 헬라어는 부정과거형으로, 문맥에 따라 ‘이미 내어주었다’는 의미로 쓰일 수도 있고, ‘내어주라’는 명령의 의미로도 사용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내어주라’는 뜻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즉, 바울은 이미 그를 사탄에게 내어주어야 한다고 판결했으며, 교회 역시 그 판결에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탄에게 내어 준다’는 말은 그를 교회 밖, 곧 사탄의 영역으로 내보내는 것을 가리키며, 이는 출교를 말합니다. 출교는 교회에서 행해지는 가장 큰 징계입니다.
출교는 본래 '회당에서 쫓아내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회당은 예배뿐만 아니라 재판이나 교육의 장소로서 그 지역공동체의 중심이었습니다. 따라서 출교는 곧 유대 사회에서의 추방을 의미합니다(요 9:22). 출교를 당한 자는 회당의 출입은 물론이고 같은 유대인과의 교제조차 금지되는 등 이방인과 세리처럼 취급을 당했습니다. 교회에서 출교를 당한 자 역시 더 이상 신앙 공동체의 일원이 아니기 때문에 그의 출입은 물론이고 그와의 친밀한 교제도 금해야 합니다(마 18:17). 그러나 출교를 당했다 하더라도 후에 진정으로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면 교회는 다시 그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실 출교는 그를 파멸에 이르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죄를 깨닫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출교에 대해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한 것입니다(고전 5:5). 이처럼 출교는 개인을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교회를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바울은 이를 누룩에 비유하여 설명했습니다. ‘누룩’이란 빵을 만들 때 반죽 속에 넣어 부풀게 하는 발효제(yeast)를 말합니다(출 12:15 ; 마 13:33). 누룩 없이 그냥 반죽을 굽게 되면 빵이 딱딱해져서 먹기가 불편합니다. 그런데 누룩이 비유적으로 사용이 될 때에는 대부분 부정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교훈(막 8:15)이나 외식(눅 12:1)을 누룩에 비유하셨습니다. 바울 역시 누룩을 죄를 가리키는 데 사용했습니다. 누룩이 적은 양으로도 온 덩어리를 부풀게 하듯(고전 5:6), 죄는 비록 작은 것이라도 그것을 방치하면 누룩처럼 퍼져서 교회 전체를 부패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갈 5:9). 따라서 교회는 그런 행위를 한 자에 대해 단호한 조치를 취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죄를 묵인했고, 그 일에 대해 통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함에도 도리어 자신의 영적 상태를 자랑하며 죄를 가볍게 여기는 교만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그러한 행위가 옳지 않다고 책망하며(고전 5:6),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고 권면합니다(고전 5:7 상). 여기서 ‘새 덩어리’는 교회 공동체를 말하고, 여기서 ‘묵은 누룩’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가지고 있던 옛사람과 그의 행위를 가리킵니다(골 3:9). 고린도 교인들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이방인들처럼 음행을 행하며 탐욕을 부리고 우상 숭배를 일삼았습니다(고전 6:11 참조). 그러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옛사람의 행위를 따라 살아서는 안 됩니다. 묵은 누룩인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엡 4:22) 누룩 없는 자(고전 5:7), 곧 새 사람으로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엡 4:24). 왜냐하면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기 때문입니다(고전 5:7 하).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유월절은 출애굽 사건을 기념하는 이스라엘의 절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애굽을 심판하시기 위해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그중에서 마지막은 애굽의 모든 장자와 가축의 처음 태어난 것들이 죽음에 이르는 재앙이었습니다. 그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이 거주하고 있던 고센 땅에 머물기만 하면 아홉 가지 재앙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땅을 구별하여 그들을 보호하셨기 때문입니다(출 8:22). 그러나 마지막 재앙은 애굽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재앙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셨는데, 그것은 어린양의 피를 집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는 것입니다(출 12:7, 그림). 그러면 여호와께서 그 피를 보시고 그 집을 지나가심으로, 그 안에 있는 자들은 죽음의 재앙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출 12:13). 여기서 어린양의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를 예표합니다. 즉 문설주와 인방에 뿌려진 어린양의 피가 죽음의 재앙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했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죄인을 영원한 죽음의 형벌에서 구원하시는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히 9:14).
하나님께서는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로 삼으라고 하셨는데(출 12:14), 이 절기가 바로 유월절입니다. 그리고 유월절과 바로 이어지는 무교절에는 누룩이 없는 빵, 곧 무교병을 먹습니다(출 12:8). 또 집 안에 누룩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안 되기 때문에, 절기가 시작되기 전에 누룩을 찾아서 모두 내다 버려야 합니다(출 12:15, 19). 지금도 유대인들은 유월절 전날이 되면 누룩과 누룩이 들어간 음식은 물론, 그 찌꺼기와 부스러기까지 집 안 구석구석을 샅샅이 살펴 제거한다고 합니다. 이처럼 철저히 누룩을 없애는 것은, 누룩이 부정과 악을 상징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누룩을 내버리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함을 입은 자들은 묵은 누룩, 곧 악의와 악독의 누룩이 아니라, 순결함과 진실함이라는 누룩 없는 빵으로 유월절을 지켜야 합니다(고전 5:8). 곧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으로서 거룩하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헛된 욕망을 따라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가지만,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더 이상 그들과 같이 살아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세상 사람들과는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전혀 사귀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렇게 하려면 이 세상 밖으로 나가야만 할 것입니다(고전 5:10). 다만 성도는 그들의 죄악된 행실을 본받지 말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그럼에도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부도덕한 자들이 더러 있습니다. 바울은 그런 사람과는 함께 먹지도 말라고 했습니다(고전 5:11). 그들과의 교제를 끊어야 한다는 것입니다(고전 5:12). 하지만 결코 그들을 미워해서는 안 되며, 그들이 회개할 때에는 사랑으로 받아 주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함을 입은, 누룩 없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묵은 누룩, 곧 헛된 욕망을 따라 살다가 썩어 없어질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매일의 삶 속에서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 삶을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