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제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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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10편 1절 ~ 7절 [개역개정]
1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2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주의 권능의 규를 내보내시리니 주는 원수들 중에서 다스리소서
3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4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5 주의 오른쪽에 계신 주께서 그의 노하시는 날에 왕들을 쳐서 깨뜨리실 것이라
6 뭇 나라를 심판하여 시체로 가득하게 하시고 여러 나라의 머리를 쳐서 깨뜨리시며
7 길 가의 시냇물을 마시므로 그의 머리를 드시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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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두 번째 주일인 오늘은 ‘영원한 제사ㄹ장’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본 시편은 그리스도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세 가지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1. 주님이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그리스도가 누구의 자손인지 물으시자, 그들은 다윗의 자손이라고 대답했습니다(마 22:42). 유대인들은 구약의 예언(삼하 7:12; 사 11:1)에 따라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으로 믿고 있었습니다(사 11:1 ; 요 7:42). 이에 예수님께서는 본문 1절의 말씀을 인용하시며 그들에게 다시 물으셨습니다.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시 110:1) 하였느냐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마 22:43-45)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없다고 여겨 ‘여호와’라는 이름 대신 ‘아도나이’라는 칭호를 사용했습니다. ‘아도나이’는 ‘주님’을 뜻하는 말로, 헬라어 ‘퀴리오스’와 같은 의미입니다. 또한 바리새인들은 다윗이 말한 ‘주’가 그리스도, 곧 메시아를 가리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정작 그리스도가 어떻게 다윗의 자손이면서 동시에 다윗의 주가 되시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고민하지 않았거나 이해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분명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 곧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습니다(마 1:1). 하지만 그분의 근본은 다윗의 주, 곧 하나님이십니다(빌 2:6).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한 번도 주님이라 부르지 않았습니다. 이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사실 그들이 예수님을 주라 부르지 않은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 ‘주’라는 호칭은 주인이나 남편 혹은 신분이 높은 사람에게 일상적으로 쓰이는 존칭이었지만, 동시에 하나님을 가리키는 이름이기도 했습니다. 이방인들 역시 자신들이 섬기는 신들을 '주'라 불렀고, 로마 황제에게도 이 호칭을 사용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주’라 부르는 것은 단순한 존칭을 넘어, 그리스도로 인정하는 고백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의도적으로 예수님을 ‘주’라 부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예수님을 선지자로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요 7:52). 이는 그들의 편견과 성경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윗의 자손으로 유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습니다(마 2:1). 하지만 유대인들은 대부분 이 사실을 알지 못했으며, 단지 갈릴리 나사렛 출신으로만 여겼습니다(마 21:11).
당시 갈릴리는 유대인들이 이방의 갈릴리(사 9:1)라 부르며 멸시했던 지역입니다. 더욱이 나사렛은 같은 갈릴리 사람들조차 업신여기던 작은 마을이었습니다(요 1:46). 이러한 지역에 대한 편견이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의심하게 만들었습니다. 성경에 그리스도는 다윗의 후손으로 다윗이 살던 베들레헴에서 나신다고 했는데 어떻게 그리스도가 갈릴리에서 나올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요 7:42). 그러니 갈릴리 출신의 예수는 그리스도가 될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습니다. 심지어 갈릴리에서는 선지자도 나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바리새인들도 있었습니다(요 7:52). 물론 사실이 아닙니다. 요나처럼 갈릴리 출신의 선지자들이 있었고(왕하 14:25) 갈릴리에서 메시아 혹은 선지자의 출현을 암시하는 예언도 있습니다(사 9:1). 성경을 연구하는 그들이 이를 모르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갈릴리에 대한 편견이 사실을 왜곡시키거나 무관심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들처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올 수 없다고 여기며 예수님이 선지자이심을 극구 부인했던 바리새인들과 같이, 잘못된 편견과 선입관 때문에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을 주로 믿든 믿지 않든, 또 그리스도로 인정하든 안 하든, 그분은 세상의 주이시며 그리스도이십니다(행 2:36).
후에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는 것은 중요한 신앙고백이 되었습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롬 10:9). 유대인들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저주받은 자로 여기고(고전 12:3; 갈 3:13), 이방인들, 특히 로마 사람들은 황제를 세상의 주라 칭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한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심지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네로 황제와 도미티안 황제 때 상당수의 그리스도인이 순교했고,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세상의 주와 그리스도이심을 믿었으며, 부활을 확신했기에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신앙과 바꾸었습니다(히 11:35). 이런 그리스도인들을 보면 다니엘의 세 친구가 생각납니다. 그들은 금 신상에 절하지 않으면 산 채로 풀무불에 집어넣겠다고 협박하는 왕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 3:16-18) 다니엘의 세 친구는 당시 고위 관리였습니다. 만일 그들이 신상 앞에 절했다면 목숨은 물론이고 지위도 지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신앙을 위해 아무 미련 없이 명예와 권력을 포기했습니다. 그들에게 신앙은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선진들처럼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신앙을 더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주님이시며, 그분만이 나를 죄에서 구원하실 유일한 구원자이심을 믿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예수님을 주로 시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신앙을 가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2. 영원한 제사장이신
그리스도 교회에 대한 핍박이 심해지자 유대인 신자들 가운데는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거나 잘못된 교훈에 미혹되어 믿음에서 떠나는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히브리서 기자는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를 여러 대상과 비교하여 밝힘으로써, 신앙에서 흔들리지 말고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아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그 대상 중 하나가 제사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직분을 아론의 후손에게 맡기셨습니다(출 29:9). 예수님도 제사장이시지만 그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르십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히브리서 기자는 본문 4절을 인용합니다.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서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히 5:6). 멜기세덱은 살렘 왕으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습니다(창 14:18). 히브리서 기자는 그의 이름을 ‘의의 왕’이요 ‘평강의 왕’으로 해석했는데(히 7:2), 이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칭호이기도 합니다(렘 23:6; 사 9:6). 이로 볼 때 멜기세덱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그런데 아론의 후손인 제사장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 필요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이 가진 본질적인 한계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죄인이었고 죄의 결과인 죽음으로 인해 제사장 직분을 계속 수행할 수 없었습니다. 제사장들의 수가 많았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히 7:23). 아론 역시 죄인이었기에 백성의 죄뿐만 아니라 자신의 죄를 속하기 위해 제물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야 했습니다(레 16:6). 따라서 그들로서는 온전한 구원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레위 자손들과 달리 하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죄가 없으십니다(히 4:15). 그래서 짐승의 피가 아닌 자기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셔서 단번에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히 9:12). 이로 말미암아 구약의 제사장 직분은 더 이상 필요없게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고 언제든지 영원한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이시기에(딤전 2:5) 그분을 통하지 않고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고, 그분을 믿지 않고서는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요 14:6).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한 제사장이신 그리스도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신앙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위해 항상 간구하시며, 그들을 끝까지 구원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히 7:25).
3. 심판주이신 그리스도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으로 인해 예루살렘에 큰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제자들이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자, 그 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제자들에게 모여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본토 유대인들을 비롯해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약 1:1 ; 벧전 1:1)과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들로 오순절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모여 있었습니다(행 2:5). 그런데 어디선가 자기들이 거주하는 나라의 언어로 하나님의 큰일들을 말하는 소리가 들리자 어리둥절하며 그곳으로 모여든 것입니다(행 2:11). ‘하나님의 큰일’이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행하신 일들, 특히 구속에 관한 사역을 가리킵니다. 베드로는 모인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다"고 성령 강림에 대해 설명했습니다(행 2:33). 이어서 그는 본문 1절을 인용하여,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주와 그리스도이심을 선포했습니다.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행 2:34-36) ‘하나님 우편에 앉았다’라는 표현은 만물을 다스리시는 권세가 그리스도께 있음을 의미합니다(요 17:2; 빌 2:10; 벧전 3:22). 아울러 세상을 심판하실 권세도 그분께 주어졌습니다(요 5:22).
이러한 권세가 본문 5절 이하에 예언되어 있습니다. "주의 오른쪽에 계신 주께서 그의 노하시는 날에 왕들을 쳐서 깨뜨리실 것이라 뭇 나라를 심판하여 시체로 가득하게 하시고 여러 나라의 머리를 쳐서 깨뜨리시며 길 가의 시냇물을 마시므로 그의 머리를 드시리로다"(시 110:5-7) 여기서 ‘주의 오른쪽에 계신 주’는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모두 맡기셨습니다(요 5:27). 그래서 세상 마지막 날, 심판의 주이신 예수님께서는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기 위해 다시 오실 것이며(행 10:42),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원수를 멸하실 것입니다(시 110:6, 고전 15:25). 그날은 악인들에게는 애통의 날이지만(계 1:7), 의인들에게는 기쁨의 날입니다. 끝까지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스스로 주인이 되어 자기 마음대로 살았던 자들은 영원한 형벌을 받는 곳에 들어가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그분의 뜻대로 살았던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에 들어가게 될 것이 때문입니다(마 25:4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딤 1:15). 그분은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기 위해 친히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으며, 승천하셔서 지금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막 16:19; 히 1:3). 그리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면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주님으로 모셔야 합니다.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고후 6:2). 예수님께서 언제 다시 오실지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우리가 언제 이 세상을 떠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문이 한 번 닫히면 다시 열리지 않습니다(마 25:10). 그러므로 늦기 전에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사람들은 그 믿음을 소중히 간직하며, 이 세상이 아닌 다시 오실 주님을 소망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 삶이 되기를 주님이시고 영원한 제사장이시며 심판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