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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2025. 12. 18.
성경본문 보기

고린도전서 7장 17절 ~ 24절 [개역개정]

17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18 할례자로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할례자가 되지 말며 무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할례를 받지 말라
19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20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21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네가 자유롭게 될 수 있거든 그것을 이용하라
22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 또 그와 같이 자유인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23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24 형제들아 너희는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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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 교회는 여러 문제로 인해 혼란한 상태였습니다. 이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고 바울에게 개인적으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이 있었는가 하면(고전 1:11), 교회가 정식으로 사람들을 보내 문제 해결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고전 16:17). 7장 1절의 '너희가 쓴 것'이란 그들이 바울에게 전달한 편지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서신의 내용 중 하나가 결혼에 관한 것입니다.

결혼은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창조 질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남자와 여자를 만드시고(창 1:27) 둘이 합하여 한 몸이 되게 하셨습니다(창 2:24). 그런데 바울 당시 고린도 교회에는 결혼을 멀리하고 독신을 주장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결혼에 대한 전반적인 입장을 다음과 같이 밝힙니다. 먼저 바울은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각 사람이 자기 아내와 자기 남편을 두라"고 말합니다(고전 7:2). 한마디로 결혼하라는 것입니다. 고린도는 성적으로 매우 문란한 도시였고, 고린도 교인들 가운데는 여전히 그런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들이 있었습니다(고전 6:18). 그들은 음식을 먹는 것이 육체적 본능이듯, 성도 육체의 자연스러운 욕구라며 정당화하려 했습니다. 이러한 태도에 바울은 먹는 것과 육체는 상호적 관계에 있다 하더라도, 몸과 음행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께 받은 것으로 그리스도의 지체이며 성령이 거하시는 전이기에(고전 6:19) 결코 음행으로 더럽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몸은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고전 6:20).

반면 성적인 욕구 자체를 부정하다고 여겨 결혼조차 꺼리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이 누구로부터 이런 영향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느 시대에나 방종을 일삼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금욕을 추구하는 자들도 있기 마련입니다. 유대교의 한 분파로 알려진 에세네파는 금욕에 가까운 생활을 했습니다. 그들은 부정한 음식을 철저히 금하고 육식은 절제했으며, 그중에는 결혼을 멀리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는 결혼과 가족 부양이 육체적 욕구와 재산 소유에 대한 유혹으로 이어지고, 결국 정결한 삶을 방해한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혼인을 아예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딤전 4:3), 바울은 그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라 거짓말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딤전 4:1-2). 경건을 위해 음식을 절제하거나 독신으로 사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고전 7:1), 이를 잘못된 것으로 규정하여 금하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결혼은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제도입니다. 또한 음식에 관한 규정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음식물을 깨끗하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막 7:19). 이는 베드로의 환상을 통해서도 확인됩니다(행 10:12-15). 사실 무엇이든지 그 자체로 부정한 것은 없습니다(롬 14:14, 20).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은 모두 선하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딤전 4:4). 그럼에도 여전히 음식물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거나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이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그런 자들에게 자신과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다고 말합니다(고전 7:8). 이로 보건대 그는 독신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그가 처음부터 결혼을 안 했는지 아니면 사별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는 결혼이 일반적이었고, 특히 바리새인들은 결혼을 의무로 여기는 경향이 있었기에 바울 역시 결혼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아무튼 바울이 이러한 권면을 한 것은 결혼을 반대했기 때문이 아니라 경건을 위한 것이며, 나아가 그들이 염려 없이 주께 헌신하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고전 7:32-35). 아마 바울은 세상의 종말이 임박했다고 여긴 것 같습니다(고전 7:26, 29). 그래서 가능하다면 모든 사람이 자신처럼 독신으로 지내며 하나님께 헌신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각자 하나님께 받은 은사가 다르기 때문에 그것은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고전 7:7).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사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마 19:11). 바울의 결혼관을 정리하면, 경건을 위해서 혼자 사는 것이 좋으나 이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오히려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결혼을 권장하기도 합니다.

이어서 바울은 결혼한 자들에 대해 언급합니다. "결혼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라서지 말고 (만일 갈라섰으면 그대로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고전 7:10-11). 이는 곧 이혼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고 한 것은 그것이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부부는 둘이 아니라 한 몸이며 이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입니다(마 19:6). 그러므로 이혼은 원칙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그런데 율법에 따르면, 남편이 아내에게서 수치스러운 일을 발견하여 더 이상 함께 살 마음이 없을 때는 이혼증서를 써 주고 그 여자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수 있었습니다(신 24:1).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백성의 마음이 완악하기 때문에 그 일을 허락하신 것이지, 본래는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9:8). 만일 이혼증서를 써 주지 않고 아내를 내치면 아내는 재혼할 수 없고, 생계의 어려움을 겪을 수 있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한 부득이한 조치로 이혼증서를 주고 아내와 헤어지라고 한 것이지 ‘이혼을 해도 좋다’는 취지가 아니었습니다. 이처럼 이혼은 원칙적으로 금한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예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라고 말씀하심으로 음행의 경우에 한해서 이혼을 허락하셨습니다(마 19:9). 결혼은 단순히 남녀의 결합을 넘어, 하나님 앞에서 맺은 신성한 언약입니다. 음행은 그 언약을 파기하는 행위이기에 이혼이 허락된 것입니다. 바울은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하는데, 부부 가운데 한 사람이 불신자인 경우입니다. 이러한 가정은 신앙 문제로 인한 갈등이 생기기 쉽고, 심한 경우 이혼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그건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울은 주의 명령이 아님을 전제하면서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를 버리지 말며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고 권면합니다(고전 7:12-13). 믿지 않는 배우자가 결혼 관계를 유지하려고 한다면 믿는 배우자는 먼저 이혼을 요구해서는 안 됩니다. 다만 믿지 않는 배우자가 먼저 헤어지기를 원한다면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고전 7:15 상). 그러나 바울은 가급적 결혼 관계를 유지하길 원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 가운데 하나가 화평을 이루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를 통해 믿지 않는 배우자를 구원할 수도 있는 일입니다(고전 7:14, 16).

다음으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하나님께서 부르신 그대로 행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고전 7:17) 이는 고린도 교회뿐 아니라 바울이 언급한 대로 모든 교회에 해당하는 것이며, 결혼만이 아니라 생활 전반에 걸쳐 적용되어야 할 일입니다. 예를 들면, 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았으면 무할례자가 되지 말고, 무할례자로서 부르심을 받았으면 할례를 받지 말아야 합니다(고전 7:18-19). 할례자란 유대인을 말하고, 무할례자는 이방인을 가리킵니다. 할례는 안식일과 더불어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맺은 언약의 표시입니다(창 17:11).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할례를 받아야 했는데(창 17:12) 이를 거부하는 자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없었습니다(창 17:14). 하지만 단지 육체에 할례를 받았다고 해서 진정한 의미의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할례를 요구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거룩한 삶이었습니다(신 10:12-16 ; 렘 4:4). 그런 삶이 없다면 그는 이방인과 다름이 없습니다(롬 2:25).

반대로 무할례자인 이방인이 율법의 규례를 지키면 그는 할례자와 같이 여김을 받을 것입니다(롬 2:26). 중요한 것은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고전 7:19). 종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린도 교인 중에는 종의 신분을 가진 자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기죽을 필요는 없습니다. 세상에서는 자유인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는 종이며, 세상에서는 종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는 자유인이기 때문입니다(고전 7:22). 그리스도 안에서는 신분으로 인한 구분이나 차별이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됩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모두 하나입니다(갈 3:28). 만일 신분을 문제 삼아 차별을 한다면 그 공동체는 더 이상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은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지내되 사람의 종이 되지 말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고전 7:24). 하나님께서 우리를 값 주고 사셨으니(고전 7:23) 더 이상 세상 사람들처럼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살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고전 10:31).

끝으로 바울은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자세에 대해 언급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고전 7:29-31)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바울은 주님의 때가 임박한 것으로 여긴 것 같습니다(고전 7:26). 사실 바울이라고 해서 주님의 때를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도 모르시는 일을 바울이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마 24:36) 그러니 바울이 살던 시대나 오늘이나 사람들은 늘 임박한 때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주님의 때는 언제인지 알 수 없기에, 항상 그 날을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형편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각자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힘들다고 어렵다고 불평하거나 신앙을 멀리하지 말고 그럴수록 더욱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종말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그런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