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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026. 4. 6.
성경본문 보기

요한복음 5장 19절 ~ 29절 [개역개정]

19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20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
21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2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23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27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28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설교문 보기

오늘은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사흘 만에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초대교회에서는 부활절을 ‘파스카(πάσχα)’로 불렀는데, 이 단어는 구약의 유월절을 뜻하는 히브리어 ‘페사흐(פֶּסַח)’를 헬라어로 번역한 말입니다(출 12:13).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유월절 양이시라고 함으로써(고전 5:7), 유월절이 그리스도의 대속을 예표하는 사건임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고통받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그중 마지막은 애굽의 모든 장자와 가축의 처음 난 것들이 죽는 재앙이었습니다. 그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이 거주하고 있던 고센 땅에 머물기만 하면 아홉 가지 재앙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땅을 구별하여 그들을 보호하셨기 때문입니다(출 8:22). 그러나 마지막 재앙은 애굽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는 그들 역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존재임을 보여줍니다. 인간은 모두 죄인이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재앙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셨습니다. 어린양의 피를 집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는 것입니다(출 12:7).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피를 보시고 그 안에 있는 자들을 죽음의 재앙에서 보호해 주십니다(출 12:13). 여기서 어린양의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를 예표합니다. 즉 문설주와 인방에 뿌려진 어린양의 피가 죽음의 재앙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는 수단이 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죄인을 영원한 죽음의 형벌에서 구원하는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히 9:14).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메시아, 그리스도이십니다. 대속이란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하여 형벌을 받거나 몸값을 지불하여 속죄하는 것을 말합니다. 죄는 내가 지었는데 그 죗값을 다른 사람이 대신 치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속죄를 위해서는 반드시 피가 필요했습니다(히 9:22). 생명이 피에 있기 때문에 피로써 생명을 대속할 수 있는 것입니다(레 17:11). 이는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오히려 이를 문제 삼았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자가 어떻게 그리스도가 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는 그들이 생각하는 그리스도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로마의 압제로부터 자신들을 해방시켜 줄 메시아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은 메시아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사칭한 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공생애 내내 논쟁을 벌였습니다. 오늘 본문도 안식일에 병자를 치유하신 사건을 배경으로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양문 곁에 있는 베데스다라는 못에서 삼십 팔 년 된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그는 중병에 걸려 거의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랬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일어나 걷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가 어떻게 고침을 받았는가에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지금 같으면 큰 기사거리가 될 법한 사건이었는데 말입니다. 오히려 안식일에 자리를 들고 갔다는 이유로 책망을 받았습니다(요 5:10). 사람의 생명이 위태로운 경우를 제외하고는 안식일에 치료를 금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이런 일을 행한다는 이유로 예수님을 박해했습니다(요 5:16). 이에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신다고 하셨습니다(요 5:19). 병을 고치는 일은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안식일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며,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도 그 일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이 곧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보다 더 큰 일, 곧 삼십팔 년 된 병자를 고치신 일보다 더 큰 일을 아들에게 보여 주셔서 그들을 놀라게 하실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요 5:20). 그것은 바로 죽은 자들을 살리시는 일입니다.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요 5:21) 하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신 사건은 구약에 여러 차례 기록되어 있습니다. 엘리야를 통해 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살리셨고(왕상 17:21-22), 엘리사를 통해 수넴 여인의 아들을 살리셨습니다(왕하 4:34-35). 또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았을 때 그 사람이 살아난 일도 있었는데(왕하 13:21), 이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일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해 있으며(신 32:39; 삼상 2:6), 사람뿐 아니라 만물의 생사도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권세를 아들이신 예수님께 주셨습니다(요 5:26).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자기의 뜻대로 사람들을 살리십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죽은 자를 여럿 살리셨는데, 나사로의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그는 죽어 굴로 된 무덤에 장사되었고, 예수님께서 도착하셨을 때는 이미 나흘이 지난 뒤였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유대인들은 사람이 죽은 후 그 영혼이 바로 떠나는 것이 아니라 사흘 동안 시신 주위를 맴돌며 다시 몸 안으로 들어갈 기회를 찾다가, 부패가 시작되면 비로소 떠난다고 여겼습니다(Leviticus Rabbah 18:1). 이제 나흘이 되었으므로 그 기회마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더욱이 시신은 냄새가 날 정도로 부패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돌을 옮겨 놓으라고 하신 후 하늘을 우러러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1:41-42).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살리는 권세를 받으셨기에 즉시 나사로를 살리실 수 있었습니다. 또한 나사로를 살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이든 스스로 하지 않으시고 오직 자신을 보내신 이의 뜻대로 행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요 5:30). 그럼에도 하나님께 기도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친히 밝히신 대로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임을 믿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만일 나사로가 살아난다면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게 될 것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거짓 선지자로 몰릴 수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후 죽은 자를 마치 산 사람처럼 불러내셨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라”(요 11:43) 그러자 죽었던 사람이 무덤 밖으로 나왔습니다. 죽음으로 인해 분리되었던 나사로의 몸과 영혼(약 2:26)이 다시 결합한 것입니다. 이는 장차 있을 부활을 미리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나사로뿐만 아니라 장차 무덤 속에 있는 모든 사람이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옵니다(요 5:28). 그때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게 될 것입니다(요 5:29). 즉 선을 행한 사람들은 부활하여 생명을 얻을 것이고, 악을 행한 사람들은 부활하여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선한 일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선하시므로(눅 18:19) 그분이 행하시는 일은 모두 선하기 때문입니다(시 119:68). 그중에서 가장 근본이 되는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다음 날 많은 사람이 그를 찾았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알았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떡을 먹고 배가 불렀기 때문이었습니다(요 6:26). 이에 예수님께서는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6:27). '썩을 양식’은 먹을 것을 비롯해 결국 썩어 없어질 것을 의미하며,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은 영원한 생명을 주는 양식으로, 이는 예수님 자신(요 6:35, 48)과 그의 말씀(요 6:63)을 가리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얻기 위해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묻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요 6:28). 여기서 일은 복수로 '일들'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영생하는 양식을 얻기 위해서 여러 가지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한 가지만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요 6:29). 영생을 얻기 위해 요구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뿐입니다. 예수님만이 그 양식을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요 6:27).

본문에서는 이를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것”으로 표현합니다(요 5:24). 비록 표현은 다르지만 의미는 같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가 보내신 이, 곧 예수님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공경하지 않는 자는 그를 보내신 하나님도 공경하지 않습니다(요 5:23). 하나님을 믿는 것이 곧 예수님을 믿는 것이고,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 곧 예수님을 공경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습니다. 바로 그런 사람이 29절에서 말하는 선한 일을 행한 자입니다. 반면에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가 곧 악을 행하는 자이며 그들은 심판을 받아 영원한 멸망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어떻게 악을 행하는 것이냐며 반발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악’을 단순히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로만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창조주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을 가장 근본적인 악이자 죄로 봅니다(요 16:9). 이 세상에 죄가 들어온 것도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주권을 거부하고 하나님처럼 되려 한 데서 비롯되었습니다(창 3:5). 이처럼 아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그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온 것과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게 되었습니다(롬 5:12). 그러나 사망, 곧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히 9:27). 죽은 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옵니다(요 5:28). 다만 그 음성은 어떤 이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되고, 어떤 이들에게는 영원한 심판이 될 것입니다.

이 음성은 육체적으로 죽은 자들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죽은 자들도 듣습니다.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상태에 있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25절에서 말하는 죽은 자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요 5:25) 이들은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불신자로서, 성경은 그들을 종종 죽은 자로 묘사합니다(마 8:22; 계 3:1). 하지만 그들이 아들의 음성, 곧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으면 영적으로 살아나게 됩니다. 이것이 곧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것이며(요 5:24), 이러한 자들이 마지막 날 생명의 부활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무덤에 있는 자들에게는 더 이상의 기회가 없습니다. 그들의 운명은 이미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심판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요 3:1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게 하셨습니다(고전 15:20).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생명의 권세와 심판의 권한을 주셨고, 예수님께서는 그 권세로 선을 행한 자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은 생명의 부활로, 악을 행한 자들은 심판의 부활로 나오게 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는 죽은 자의 부활을 믿지 않는 자들이 많습니다. 심지어 교인들 중에도 부활이 없다고 말하는 자들이 있습니다(고전 15:12). 최근 통계에 따르면 그 비율은 약 30%에 이릅니다(www.christiantoday.co.kr/news/373719). 그러나 속지 마십시오.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 그 안에서 죽은 자들과 살아 있는 자들은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여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히 4:3). 그 날은 홀연히 임할 것이니 항상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고전 15:34). 또한 믿음 위에 굳게 서서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써야 합니다. 우리의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고전 15:58).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날마다 승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