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성경본문 보기
시편 51편 1절 ~ 10절 [개역개정]
1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2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3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4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5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6 보소서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오니 내게 지혜를 은밀히 가르치시리이다
7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8 내게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들려 주시사 주께서 꺾으신 뼈들도 즐거워하게 하소서
9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설교문 보기
시편 51편은 사무엘하 12장의 사건을 배경으로 한 시입니다. 다윗은 요압과 군대를 보내어 암몬 자손을 치게 하고, 자신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낮잠을 자고 일어나 왕궁 옥상을 거닐었습니다. 그러다가 한 여인이 목욕하는 것을 보고 데려다가 동침했는데, 그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였습니다. 왕이 반드시 전쟁에 나가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전쟁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함께하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삼하 11:11) 왕이 출전해야 할 이유는 충분했습니다. 그럼에도 왜 다윗이 직접 출전하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설사 부득이한 사정으로 출전하지 못했더라도 영적 긴장감을 늦추지는 말았어야 했습니다. 하나님보다 자식들을 더 중히 여긴다고 책망받았던 엘리 제사장도(삼상 2:29) 하나님의 언약궤를 전장에 내보내고는 걱정이 되어 노심초사했습니다(삼상 4:13). 비록 그는 허물이 많은 사람이었으나 하나님의 궤를 맡은 제사장으로서 최소한의 책임감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왕이요 그토록 하나님의 궤를 소중히 여겼던 다윗은 그 궤가 전장에 나가 있는데도 걱정은커녕 한가로이 낮잠을 잘 정도로 나태함에 빠져 있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무더운 낮 시간에 잠을 자는 일이 흔했기에, 평상시라면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습니다(삼하 4:5). 하지만 지금은 전시 상황입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궤가 전장에 있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저녁때가 되어서야 침상에서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잠시 눈을 붙일 수는 있어도, 전쟁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저녁때까지 침상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은 다윗이 얼마나 영적으로 나태해져 있었는지를 보여 줍니다. 이러한 나태함이 결국 그를 죄의 유혹으로 이끌었습니다.
얼마 후 밧세바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들은 다윗은 자신의 죄를 은폐하기에 급급했습니다. 급기야는 우리아를 모살하기까지에 이르렀습니다(삼하 12:9). 더욱이 우리아는 다윗의 충직한 부하였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을 위해서 그리고 다윗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데, 다윗은 그런 부하의 아내를 범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죄를 은폐하기 위해 우리아까지 죽이려 했습니다. 이는 인간의 죄성이 얼마나 깊고 악한지, 심지어 하나님의 사람도 예외가 될 수 없음을 보여 줍니다. 누차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해서 완전한 것은 아닙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지 않으면 언제든 죄의 유혹에 넘어질 수 있습니다. 오죽하면 바울 같은 사람도 자신이 원하는 선한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원치 않는 악한 일을 행한다고 탄식했겠습니까?(롬 7:19) 그러므로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순간의 방심이 다윗처럼 돌이킬 수 없는 큰 죄로 이어질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단 선지자를 보내 다윗을 책망하심으로써 그의 죄를 깨닫게 하셨습니다(삼하 12:1). 그동안 1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밧세바가 아이를 낳기까지 하나님께서는 침묵하셨습니다. 어쩌면 죄의 결과가 분명히 드러날 때까지 기다리신 것인지도 모릅니다. 지난 시간에 살펴본 것처럼, 비록 하나님께서 침묵하실지라도 그것은 죄에 대해 무관심하신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정하신 때에 반드시 그 죄를 드러내시고 공의롭게 심판하십니다(시 50:21). 나단을 통하여 자신의 죄를 깨달은 다윗은 변명하지 않고 즉시 죄를 자복하며 참회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것이 바로 시편 51편입니다.
먼저 그는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을 의지하여 자신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죄악을 지워 달라고 기도했습니다(시 51:1). 우리가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를 "자비롭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자와 진실이 많으신 하나님"이라고 하셨습니다(출 34:6). 그 하나님께 다윗은 자신의 죄악을 말끔히 씻어 주시고 그의 죄를 깨끗하게 해 달라고 거듭 간구했습니다(시 51:2). 만일 누구든지 자신의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요일 1:9). 그런데 다윗은 주께만 범죄하였다고 말합니다(시 51:4상). 밧세바를 범한 것이 주께만 범죄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밧세바에게 죄를 지었고, 그의 남편인 우리아에게 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왜 다윗은 하나님께만 죄를 지었다고 한 것일까요? 이는 모든 죄가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 지은 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주의 목전, 곧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했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생각과 행동을 보고 계신다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앞에는 감추거나 숨길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어떤 피조물도 하나님 앞에서는 숨길 수 없으며, 모든 것이 벌거벗은 채 드러나 있다고 했습니다(히 4:13).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 앞에 서 있으며 그분께서 우리의 모든 삶을 지켜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합니다.
이어서 다윗은 자신이 범한 죄의 원인이 죄성에 있음을 고백합니다(시 51:5). '죄성(罪性)'이란 죄를 지으려는 성향을 말하는데,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부패한 성품, 즉 본성적으로 죄를 지으려는 마음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욥기를 강해할 때 말드린 적이 있는데, 어린아이들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면 그들은 알아서 거짓말을 하고 이기적으로 행동할 것입니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말하지 않아도 죄의 성향이 그렇게 만듭니다.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신 하나님께서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않겠다고 하신 이유는 사람의 생각이 어려서부터 악하기 때문이었습니다(창 8:21). 만일 하나님께서 죄에 대한 심판을 반복하신다면 인류는 모두 멸망하고 말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은 본성적으로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전 7:20; 롬 3:23). 물론 그렇다고 죄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반드시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므로 그 대가를 죽음으로 치러야 합니다(롬 6:23).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자에게 긍휼을 베푸사 죄를 용서하시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주십니다(삼하 12:13, 14:14; 요 5:24). 다만 그 죄에 대한 징계까지 면제하지는 않으십니다(삼하 12:13-14). 징계마저 없다면, 성도는 죄의 심각성을 가볍게 여기고 반복해서 죄를 지을지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성도로서의 거룩함은 상실되고 신앙은 퇴보할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그로 인해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비방과 모독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롬 2:24). 실제로 다윗의 범죄는 여호와의 원수들,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에게 비방과 모독의 빌미를 제공했습니다(삼하 12:14).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의 잘못된 행실은 결국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합니다(롬 2:23). 그러므로 성도는 죄를 회개하면 용서받는다는 사실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죄를 엄히 다루시는 하나님의 공의도 함께 기억하며 모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살전 5:22).
다윗은 죄를 지은 후 그 죄가 드러나기까지 약 1년 동안 내적인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시 32:3). 그것은 '뼈가 쇠하였다'고 할 정도로 극심했습니다. 다윗은 이를 하나님의 징계로 받아들였음에도(시 32:4; 51:8)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자신이 저지른 죄가 너무 크고 부끄러웠기에 숨기려 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죄는 결국 드러났고, 그제서야 자신의 죄를 자복하며(삼하 12:13) 용서와 회복을 구했습니다(시 51:9). 그러나 징계는 여전히 남아 있었고(삼하 12:10), 그로 인해 다윗은 뼈아픈 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밧세바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첫 아이가 죽었고, 자식 간의 불화로 인해 장자 암논을 잃었습니다. 또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해 도망치는 신세가 되었으며, 그 아들 역시 죽임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다윗을 고통스럽게 한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떠나실지 모른다는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고 주의 성령을 거두지 마시기를 기도했습니다(시 51:11).
그리고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정한 마음과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해 주시기를 간구했습니다(시 51:10). 이는 죄로 인해 더럽혀진 마음과 영혼을 하나님께서 완전히 새롭게 해 주시라는 기도입니다. 사실 인간은 자신의 힘만으로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갈 수 없습니다. 성도 역시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죄를 이기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기 위해 날마다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바울은 성령을 따라 행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갈 5:16). 그러나 성령의 도우심을 구했다고 해서 저절로 성령을 따라 살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바울처럼 날마다 자신을 쳐서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켜야 합니다(고전 9:27).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9:23).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자신에 대한 모든 권리를 내려놓고 그리스도께 자신을 내어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그러기가 쉽지는 않기 때문에 날마다 자신을 부인하고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연약하기에 죄를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죄사함을 위한 제도를 마련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제사입니다. 이 제사는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히 10:1). 다윗이 하나님께서 제사를 기뻐하지 않으신다고 말한 것은(시 51:16) 회개가 없는 제사를 가리킨 것이지, 제사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닙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사가 제물보다 상한 심령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통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시 51:17). '상한 심령'과 '통회하는 마음'은 스스로는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심령이 완전히 무너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은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상한 심령과 통회하는 마음으로 나아오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멸시하지 않으시고 그를 버리지 아니하실 것입니다(시 9:10). 그러나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자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뿐입니다(시 7:12).
마지막으로 다윗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길 간구합니다(시 51:18). 아마도 다윗은 자신의 죄악으로 인해 예루살렘과 그 백성에게 하나님의 징계가 임할 것을 염려했던 것 같습니다. 훗날의 일이긴 하지만, 다윗의 인구조사로 인해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징계가 임했고 수많은 백성이 목숨을 잃은 적이 있었습니다(대상 21:14, 17). 이에 다윗은 하나님께서 시온에 선을 베푸시고 예루살렘을 견고하게 세워 주시면 그때에 의로운 제사와 번제를 기뻐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시 51:19).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시온에 은혜가 임할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의로운 제사와 번제를 기쁘게 받으실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예배는 형식이 아니라 삶의 연속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선을 행하고 서로 나누어 주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라고 했습니다(히 13:16). 이는 바울이 말한 영적 예배, 곧 삶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롬 12:1). 이렇듯 예배와 삶은 분리될 수 없고 분리되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예배를 원하시며 기뻐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일평생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순간의 방심과 나태함으로 인해 죄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도 은밀한 곳에서 숨어 먹이를 노리는 사자같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죄의 유혹에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벧전 5:8). 하지만 그럼에도 죄의 유혹에 넘어갔을 때, 우리는 처음에 다윗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죄를 숨기려 해서는 안 됩니다. 죄는 숨길수록 더 커지게 마련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숨기려 하다가 더 큰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깨달았을 때 즉시 그것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그렇게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애통하는 마음으로 참회할 때,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죄를 용서해 주셨던 것처럼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마음을 새롭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같은 죄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힘써야 합니다. 진정한 회개는 단지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 안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셔서 일평생 하나님 뜻을 따라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