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예음TV/수요예배설교

마태복음 강해 :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2023. 5. 11.
성경본문 보기

마태복음 26장 31절 ~ 35절 [개역개정]

31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32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33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35 베드로가 이르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

 

설교문 보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마지막 저녁 식사를 하신 후 감람산으로 가셨습니다(마 26:30). 이 산에 감람나무 즉 올리브나무가 많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곳에는 '기름을 짠다'는 뜻의 겟세마네 동산이 있습니다(마 26:36). 예수님은 가끔 제자들과 이곳에서 모이셨습니다(요 18:2). 예수님은 감람산으로 가시면서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모든 사람이 다 주님을 버린다 해도 저는 결코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마 26:33 ; 막 14:27). 다른 사람은 몰라도 베드로 자신은 '내가 주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로 주님을 모른다고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확신은 얼마 가지 못해 배신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베드로는 세 번씩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을 한 것입니다. 이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1.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겟세마네 동산에 이르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고 하신 후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 곧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시면서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조금 떨어진 곳으로 가셔서 땀이 핏방울 같이 될 정도로 힘써 기도하셨습니다(눅 22:44).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시지만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빌 2:7). 그러기에 사람이 겪는 모든 어려움들을 경험하셨습니다. 배고픔(마 21:18)도, 피곤함도(요 4:6), 시험(마 4:1)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고통이 얼마나 큰 지도 알고 계셨습니다. 십자가형은  반란을 일으킨 사람들이나 도망한 노예들 그리고 가장 흉악한 범죄자들에게만 적용되는 형벌로 당시 로마제국의 사형 법 중 가장 극형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고통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에 할 수만 있다면 그러한 죽음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인성 즉 예수님도 우리처럼 연약한 성정을 가진 사람임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십자가의 죽음이 하나님의 뜻이고 자신이 감당해야 할 일임을 잘 알고 계셨던 예수님께서는(요 3:14 ; 12:32, 33)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심으로 자신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셨습니다(마 26:39).

이런 예수님과 달리 제자들은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들은 종일토록 분주하게 다니느라고 피곤에 지쳤을 것입니다. 그래서 '깨어 있으라'는 당부에도 졸음을 이기지 못해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마 26:43). 누가복음에는 제자들이 잠을 잔 이유를 슬픔 때문이라고 했습니다(눅 22:45). 슬픔에 지쳐 잠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잠을 자고 있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느냐"고 책망하셨습니다. 특별히 베드로에게 말씀하신 것은 그의 연약함을 상기시켜 주시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조금 전 그는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을 했습니다. 그런데 잠조차 이기도 못할 정도로 그의 육신은 연약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게 눈꺼풀'이라는 말이 있듯이 쏟아지는 잠을 참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고문 중에서 가장 심한 고문이 잠을 안재우는 것이라 할 정도로 잠은 식욕과 더불어 인간의 기본적이고 본능적인 욕구입니다. 하지만 곧 닥칠 예수님의 죽으심을 직시했더라면 땀이 핏방울 같이 될 정도로 간절히 기도하고 계시는 그 곁에서(돌을 던져서 닿을 만한 거리, 눅 22:41) 잠을 자고 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6:41). 시험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의 믿음이 진실한 것인지 혹은 그 믿음이 얼마나 되는지의 여부를 알기 위해 주시는 시험이 있는데(prove, 요 6:6) 이를 시련(trail)이라고 합니다. 또 하나는 마귀가 하나님의 자녀들을 넘어뜨리기 위해 주는 시험이 있는데 이것을 유혹(temptation : 마 4:1 ; 26:41 ; 고전 7:5)이라 부릅니다. 에수님께서 말씀하신 시험은 바로 이 유혹을 말합니다(눅 22:40). 헬라어로는 같은 단어[πειρασμός]를 사용하고 있지만 둘의 목적은 완전히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험은 신앙의 연단을 위한 것이지만 사탄이 주는 시험은 믿음에서 떠나게 하는 것이 그 목적입니다. 이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기도밖에 없습니다. 갈대처럼 연약한 인간은 스로의 힘으로 마귀의 유혹을 이겨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마 26:41).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심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었지만, 제자들은 깨어 기도하지 못하고 잠에 빠짐으로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하고 말았습니다(마 26:55).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시기 위하여 피 땀 흘려 기도하시던 예수님을 본받아 죄악 된 세상에 살아가면서 시험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기 위하여 항상 기도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2.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의 종교지도자들로부터 파송된 무리에게 잡혀 끌려 가시자 제자들은 모두 도망을 갔습니다. 그들 역시 베드로처럼 '결코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다짐을 한 사람들이었습니다(마 26:35). 하지만 죽음의 두려움 앞에 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모두 도망을 쳤습니다. 그나마 베드로는 멀찍이 예수님을 뒤따라 갔습니다(마 26:58).

예수님께서 끌려간 곳은 당시 대제사장이었던 가야바의 집이었습니다(마 26:57). 그곳에서 예수님을 심판하기 위한 공의회가 열렸습니다(마 26:59). 베드로는 대제사장과 잘 아는 다른 제자의 도움으로 그 집에 들어가 하인들과 함께 앉아 있었습니다(요 18:16). 그때 한 여종이 베드로를 유심히 보더니 '당신도 이 사람의 제자가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아니라고 부인했습니다(마 26:70). 조금 후에 다른 사람이 보고 같은 질문을 하자 베드로는 아니라고 잡아떼었습니다(마 26:72). 한 시간쯤 흐른 뒤(눅 22:59) 대제사장의 종 가운데 하나가 '당신이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고 하자 베드로는 저주하고 맹세하며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한다'고 부인했습니다(마 26:74). 그때 닭이 울었고 베드로는 예수님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순간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눅 22:61). 베드로는 더 이상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도 예수님을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다고 장담했던 베드로였건만 자신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스승인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부인했으니 그 죄책감에 견딜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 통곡하며 회개했습니다(마 26:75). 전설에 의하면 베드로는 닭 울음소리를 들을 때마다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만일 베드로가 회개하지 않았다면 그는 예수님을 팔았던 가룟 유다와 같은 운명에 처했을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베드로의 부인과 회개는 자신이 선 줄로 생각하고 교만에 빠지는 자들에게 엄한 경고를 해주는 동시에 아무리 큰 실수를 범했을지라도 회개하는 자에게 그리스도의 용서와 화해의 길이 열려 있음을 보여줍니다.

3.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따르려는 자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마 16:24). '자기를 부인하라'는 말은 욕망이나 생각 그리고 주장 따위를 버리라는 의미합니다. 사람은 천성적으로 욕망 곧 무엇을 하거나 가지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오욕(五欲)이라 하고, 성경은 이를 세 가지로 설명을 했습니다(요일 2:16).

첫째, 육체의 정욕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육체(σάρξ)는 단순히 '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을 의미합니다. 사람의 본성은 악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자신의 만족만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롬 1:21 ; 엡 2:3). 마귀는 이를 이용해 예수님을 유혹하기도 했습니다(마 4:3). 40일 동안 금식을 하신 예수님께서는 배가 고프셨는데(마 4:2), 그때 마귀가 와서 '돌로 떡을 만들어 보라'고 유혹했습니다. 하나님의 일도 중요하지만 먼저 배고픔부터 해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맞는 말 같지만 여기에 마귀가 노리는 함정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3)고 하시지만 마귀는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를 먼저 걱정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지도 않고 알지도 못하는 세상 사람들이야 먹고사는 문제가 무엇보다도 먼저일 테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영적인 일이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의 염려 특히 먹고사는 문제로 우리를 시험하는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둘째, 안목의 정욕입니다. 이것은 눈에 보이는 것을 가지려는 욕망입니다. 아간과 다윗은 이 정욕으로 인해 범죄했고(수 7:21 ; 삼하 11:2) 많은 사람들이 그 뒤를 따라 죄를 짓고 있습니다. 눈은 몸의 등불과 같기 때문에 눈이 건강하면 온몸이 밝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온몸이 어두울 것입니다. 즉 마음의 눈이 건강하면 올바른 판단을 하게 되지만 그렇지 못하면 판단이 흐려져 잘못된 행동을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처럼 눈이 걸려 넘어지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내버려야 합니다. 온몸이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차라리 신체의 한 부분을 잃는 것이 낫기 때문입니다(마 5:29). 그만큼 단호하게 우리를 실족하게 하는 것들을 제거해 버리라는 의미입니다. 히브리서의 말씀처럼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맞서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히 12:4).

셋째, 이생의 자랑입니다. 이것은 세상적인 것에 대한 자랑으로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지식이나 물질 혹은 명성을 과대평가하여 허세를 부리려는 욕망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역시 이런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왕위에 오르면 누가 더 높은 자리에 앉게 될지를 놓고 다투기도 했습니다(막 9:34). 심지어 예수님께서 자신의 고난과 죽음에 관해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의 이러한 욕망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마 20:20). 그러다 결국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았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했습니다(마 26:69-74). 후에 베드로는 회개하고(마 26:75) 제자의 길을 걸었지만 가룟 유다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마 27:5). 이렇듯 이기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자들은 결코 예수님을 따를 수가 없습니다. 자기를 부인할 때 즉 자신을 포기할 때 우리는 주님을 부인하지 않고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사는 진정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고, 많은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더욱 가슴 아프게 한 것은 제자들의 배신이었습니다. 3년 여 동안 함께 다니며 슬픔과 기쁨을 나누었던 제자들이었지만 가룟 유다는 스승인 예수님을 팔아넘겼고, 예수님을 위하여 목숨까지 버리겠다던 베드로는 저주하기까지 하며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나머지 제자들도 모두 도망하고 말았습니다. 이를 이미 알고 계셨던 예수님은 그 누구도 원망하거나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요 17:15). 예수님의 그러한 기도와 사랑으로 인해 가룟 유다를 제외한 11명의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가 있었습니다. 특히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순교했다고 전해집니다. 그가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힌 것은 ‘자신은 주님과 똑같이 십자가에 달릴 자격이 없으니, 십자가를 돌려서 내 머리가 아래로 오도록 매달아 달라’는 그의 요청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우리도 베드로처럼 우리를 향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가슴 깊이 새기고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아울러 우리는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로(갈 5:24) 자신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