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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음TV/주일예배설교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2023.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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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6장 24절 ~ 7장 2절[개역개정]

24 이 후에 아람 왕 벤하닷이 그의 온 군대를 모아 올라와서 사마리아를 에워싸니
25 아람 사람이 사마리아를 에워싸므로 성중이 크게 주려서 나귀 머리 하나에 은 팔십 세겔이요 비둘기 똥 사분의 일 갑에 은 다섯 세겔이라 하니
26 이스라엘 왕이 성 위로 지나갈 때에 한 여인이 외쳐 이르되 나의 주 왕이여 도우소서
27 왕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를 돕지 아니하시면 내가 무엇으로 너를 도우랴 타작 마당으로 말미암아 하겠느냐 포도주 틀로 말미암아 하겠느냐 하니라
28 또 이르되 무슨 일이냐 하니 여인이 대답하되 이 여인이 내게 이르기를 네 아들을 내놓아라 우리가 오늘 먹고 내일은 내 아들을 먹자 하매
29 우리가 드디어 내 아들을 삶아 먹었더니 이튿날에 내가 그 여인에게 이르되 네 아들을 내놓아라 우리가 먹으리라 하나 그가 그의 아들을 숨겼나이다 하는지라
30 왕이 그 여인의 말을 듣고 자기 옷을 찢으니라 그가 성 위로 지나갈 때에 백성이 본즉 그의 속살에 굵은 베를 입었더라
31 왕이 이르되 사밧의 아들 엘리사의 머리가 오늘 그 몸에 붙어 있으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실지로다 하니라
32 그 때에 엘리사가 그의 집에 앉아 있고 장로들이 그와 함께 앉아 있는데 왕이 자기 처소에서 사람을 보냈더니 그 사자가 이르기 전에 엘리사가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이 살인한 자의 아들이 내 머리를 베려고 사람을 보내는 것을 보느냐 너희는 보다가 사자가 오거든 문을 닫고 문 안에 들이지 말라 그의 주인의 발소리가 그의 뒤에서 나지 아니하느냐 하고
33 무리와 말을 할 때에 그 사자가 그에게 이르니라 왕이 이르되 이 재앙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왔으니 어찌 더 여호와를 기다리리요
1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밀가루 한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고 보리 두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리라 하셨느니라
2 그 때에 왕이 그의 손에 의지하는 자 곧 한 장관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하더라 엘리사가 이르되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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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람이 북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시절 아람 왕 벤하닷이 군대를 이끌고 와서 수도인 사마리아 성을 포위했습니다. 이로 인해 성 안에 식량이 부족하게 되고 물가는 폭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평상시에는 식용으로 사용되지 않던 나귀 머리 하나에 은 팔십 세겔에 팔렸습니다. 은 한 세겔은 일반 노동자의 4일 치 품삯으로 나귀 머리 하나를 구입하려면 1년 치 임금을 지불해야 합니다. 그리고 비둘기 똥 사분의 일 갑이 은 다섯 세겔, 20일 치 품삯에 거래되었습니다. 비둘기 똥을 여물지 않은 콩이나 좋지 못한 곡물로 보기도 하는데, 예루살렘이 포위되었을 때 짐승의 배설물을 먹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말 그대로 비둘기 똥일 수 있습니다. 그마저도 사 먹을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 중에는 자기의 아이를 삶아 먹기까지 하는 그야말로 생지옥이었습니다. 이러한 위기를 이스라엘은 어떻게 극복했는지 그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신앙의 도움으로 삼고자 합니다.

1.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인육을 먹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해지자 여호람 왕은 모든 책임이 엘리사에게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전에 아람 군대가 쳐들어왔을 때 전멸시킬 기회가 있었지만 엘리사가 그들을 무사히 돌려보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그 후로 얼마 동안 이스라엘을 공격하지 않았던 아람 군대가 다시 쳐들어와 사마리아 성을 포위한 것입니다(왕하 6:14-23). 그래서 여호람은 이 모든 책임이 엘리사에게 있다고 여기고 그를 죽이려고 전령을 보냈습니다(왕하 6:31, 32). 그때 엘리사는 장로들과 함께 자기 집에 앉아 있었고 여호람이 자신을 죽이려고 전령을 보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엘리사는 장로들에게 알리면서 여호람을 ‘살인한 자의 아들’이라 칭했는데, 이는 여호람이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학살한 아합(왕상 18:13)의 아들이라는 의미일 수도 있고, 여호람의 악함을 가리키는 비유적인 표현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를 죽이려던 왕의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위기를 맞은 원인과 책임이 엘리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백성들에게 있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는 비록 아버지 아합처럼 바알이나 아세라를 섬기지는 않았지만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여로보암이 범한 죄들을 따라 행했고(왕하 3:2, 3) 백성들 역시 우상숭배의 죄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지금의 재앙이 그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라고 생각한 여호람은 직접 엘리사를 찾아와서 호소합니다. “이 재앙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왔으니 어찌 더 여호와를 기다리리요”(왕하 6:33). 하나님께서 내리신 재앙인데 어떻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할 수 있겠냐는 의미입니다. 한 마디로 소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전 유다 백성은 두 차례에 걸쳐 바벨론에 포포로 끌려갔습니다. 그들은 바벨론에 끌려간 것이 하나님께서 내리신 재앙이라 여기며 그곳에서 아무 소망 없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 29:11) 지금은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미래에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으며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 기도를 들으시고 만나주실 것이며 포로 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렘 29:12-14). 그러므로 어렵다고 힘들다고 불평하거나 원망하는 대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또 절망 중에 있더라도 포기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시편 기자의 격려처럼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시 42:5) 끝까지 인내해야 합니다. 그런 자들이 신앙의 열매를 맺습니다(눅 8:15).

2.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더 이상 소망이 없다며 절망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에게 엘리사는 다음과 같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밀가루 한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고 보리 두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리라 하셨느니라"(왕하 7:1) 평상시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비둘기 똥 사분의 일 갑 약 0.3리터 가격이 20일 치 품삯에 거래되던 당시 밀가루 한 스아 약 7.5리터와 보리 두 스아 약 15리터를 4일 치 품삯에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평상시 보다 비싸기는 했지만 하루 만에 가격이 백배 이상이 내린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왕을 모시고 있던 한 장관이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계심을 인정하면서도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이에 엘리사는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살펴보고 있는 열왕기하 6장 초반부에는 엘리사가 행한 이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엘리사가 하나님의 선지자로 명성을 얻자 많은 사람들이 그의 제자가 되기 위해 모여들었습니다. 그로 인해 거처가 비좁게 되자 제자들이 엘리사에게 요단으로 가서 그곳에 거처를 마련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습니다. 이에 엘리사가 제자들과 함께 요단으로 갔습니다. 요단 강변에는 나무들이 많아 건축에 사용할 재목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습니다(렘 49:19 ; 50:44). 요단에 도착한 제자들은 각자 나무를 베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한 제자가 나무를 베다가 도끼를 물에 빠뜨리고 말았습니다. 그 도끼는 이웃에게 빌려온 것으로 아마 그 제자는 가난해서 도끼를 살 형편이 안 되었던 것 같습니다. 율법에 따르면 이웃에게 빌려온 것을 잃어버린 경우 그에 상응하는 배상을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출 22:14). 가난했던 그 제자는 도끼를 배상할 생각에 막막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사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이에 엘리사가 나뭇가지를 하나 꺾어서 그곳에 던지니 도끼가 떠올랐습니다. 도끼는 쇠로 만들었기 때문에 물에 빠지면 가라앉습니다. 반면에 나뭇가지는 물에 뜹니다. 그것이 자연의 법칙입니다. 그런데 나뭇가지를 던져 강바닥에 가라앉은 도끼를 떠오르게 했다는 것은 자연을 초월하는 것으로 이를 기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사건을 기적으로 보지 않고 자연적인 현상으로 해석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나뭇가지를 도끼날 구멍에 끼워서 건져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들은 성경의 이적들을 모두 그런 식으로 해석합니다. 그렇게 간단히 혹은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였다면 그런 기사를 굳이 성경에 기록하지 않았을 것이고, 성경에 기적이니 표적이니 이적이니 하는 용어들을 사용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엘 샤다이(אֵל שַׁדַּי),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창 17:1). 그래서 스스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다 하실 수 있습니다.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시 146:6 ; 사 44:24) 그것을 능력으로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시 66:7 ; 단 4:17) 못하실 일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성경의 기적들을 자연적인 현상으로만 해석하려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선민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늘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과 반대의 길로 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보다 자비를 원하시는데 이스라엘은 자비보다 제사를 더 소중히 여겼습니다(호 6:6). 하나님께서 그것을 더 기뻐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미 6:7). 그러나 하나님께서 좋아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원하시는 것은 제사가 아니라 그들의 삶이었습니다(미 6:8). 예배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입니다(롬 12:1).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한다"고 하셨습니다(호 4:6).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 망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호 6:3). 그래야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지 않고 신뢰할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3. 누구든지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모든 사람이 어려움을 겪지만 그중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이나 사회와 격리되어 살아가는 자들이 큰 고통을 당합니다. 당시에는 나병 환자들이 그러했습니다. 이들은 부정한 사람들로 사마리아 성 밖에서 움막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레 13:46). 이들은 성 안에 있는 친지들의 도움으로 겨우 연명을 하고 있었는데, 전쟁으로 인해 그마저도 기대를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성안으로 피할 수도 없는 신세였습니다. 그들을 위해 성문을 열어주지도 않을뿐더러 성 안에 기근이 심하기 때문에 들어가 봐야 먹을 것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꼼짝없이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을 통해 사마리아가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잠시 그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성문 밖에 있던 나병환자 네 사람이 아람 군대에게 항복하려고 아람 진영으로 갔습니다. 굶어 죽느니 차라리 항복을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들 말대로 아람 군대의 손에 죽을 수도 있었지만 음식을 얻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해질 무렵에 일어나 아람 군대의 진지로 갔는데 그곳에 도착해 보니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람 군대에게 대군이 쳐들어오는 소리가 들리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람 군대는 이스라엘 왕이 자기들을 치려고 이집트 사람들을 고용한 것으로 생각하고 진영을 그대로 내버려 둔 채 도망한 것입니다.

나병환자들은 한 장막에 들어가 먹고 마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있는 은과 금과 의복을 가지고 나와 숨겨 두고 다른 장막에 들어가서도 그렇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들의 소행이 옳지 못한 것을 깨닫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거늘 우리가 침묵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지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알리자"(왕하 7:9) 이 소식은 말 그대로 아름다운 소식 곧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복음이었습니다. 비록 나병환자들은 사회에서 천대받던 사람들이었지만 절망 중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복음의 메신저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연약한 사람들을 통하여 큰 일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열 두 제자도 대부분 유대지역 사람들이 업신여기던 갈릴리 출신으로 제대로 배우지 못한 무식한 자들로 취급받던 사람들이었습니다(행 4:13). 초대교회 특히 고린도교회의 구성원들은 대부분 사회적으로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었고(고전 1:26), 노예들도 있었습니다(고전 7:21). 그들은 인격으로 대우받지도 못하고, 지식이나 교양도 갖추지도 못한 사람들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세상에는 지혜 있는 자들과 권세 있는 자들이 많이 있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용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어리석고 약하며 비천한 자들과 멸시받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일을 감당케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같이 연약한 사람도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엘리사를 통해 말씀하신 대로 나귀 머리 하나에 은 팔십 세겔, 비둘기 똥 사분의 일 갑에 은 다섯 세겔에 거래되던 물가가 하루아침에 고운 밀가루 한 스아가 은 한 세겔에, 보리 두 스아가 은 한 세겔에 매매될 정도로 안정이 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느냐'고 했던 장관은 그 일이 성취된 것을 보았지만 그것을 먹지는 못했습니다. 성문에서 백성들에게 밟혀 죽임을 당했기 때문입니다(왕하 7:20).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고 업신여긴 결과입니다. 그에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었다면 그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지 않고 신뢰할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절망 중에 있더라도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은 재앙이 아니고 평안이며, 우리에게 소망 있는 미래를 주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어떤 고난도 이겨낼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