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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강해 :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2023.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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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7장 45절 ~ 56절 [개역개정]

45 제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되더니
46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47 거기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이르되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48 그 중의 한 사람이 곧 달려가서 해면을 가져다가 신 포도주에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하거늘
49 그 남은 사람들이 이르되 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원하나 보자 하더라
50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52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53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54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55 예수를 섬기며 갈릴리에서부터 따라온 많은 여자가 거기 있어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니
56 그 중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

 

설교문 보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자 사람들은 그를 조롱하며 욕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들 중에는 종교지도자들(마 27:41)과 로마 군인들(눅 23:36)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있었으며(마 27:44), 한때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거나 예수님께서 십자가 처형을 받으신 것을 보고 생각이 바뀐 사람들입니다. 반면에 예수님께서 십자가 처형을 받으시는 과정을 통해 오히려 신앙을 갖게 되었거나 신앙의 결단을 내린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1. 백부장과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

예수님께서는 제 삼시 즉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막 15:25). 그런데 세 시간 뒤인 정오쯤 되어 온 땅이 캄캄해지더니 오후 3시까지 계속되었습니다(막 15:33). 정오부터 오후 3시까지는 하루 중 가장 밝은 때인데, 이때 어두움이 임했다고 하는 것은 단순히 구름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렇다고 달이 태양을 가리는 일식현상도 아니었습니다. 유월절은 보름달이 뜨는 시기이므로 그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어두움은 일반적인 현상이 아니라 이적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오후 3시 예수님께서 숨을 거두셨는데, 그때 땅이 흔들리며 바위가 갈라졌습니다(마 27:51). 지진이 일어난 것입니다.

또한 성소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습니다(마 27:51). 성소 휘장이란 성소와 지성소 사이를 구분하기 위해 중간에 쳐 놓은 막을 가리킵니다(출 26:33). 당시 성전은 스룹바벨 성전을 증축한 헤롯 성전으로 높이가 20미터 가까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는 곧 휘장의 높이가 20미터라는 얘기입니다. 더욱이 휘장의 두께가 10센티미터 정도 된다고 하니 사람이 인위적으로 찢기에는 불가능합니다. 이러한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졌다는 것은 자연적인 현상이나 우연한 일이 아니며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음을 의미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휘장이 예수님의 육체라고 했습니다(히 10:20). 이 휘장은 일 년에 한 번 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제물의 피를 가지고(레 16:15) 지성소에 들어갈 때만 열렸습니다(히 9:7). 그런데 이 휘장이 찢어졌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흘리신 피를 힘입어 언제든지 속죄소 앞 곧 하나님께서 계신 은혜의 자리(시은좌, 히 4:16)에 나아갈 수 있는 살 길이 열렸음을 의미합니다(히 10:19).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누구든지 죄사함받고 하나님께 나아올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 숨을 거두시기까지 일곱 가지 말씀[架上七言]을 남기셨는데, 그중의 하나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였습니다(마 27:46 ; 막 15:34).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뜻으로 시편 22편 1절 말씀의 인용입니다. 그리고 영혼이 떠나시기 직전 '다시 크게 소리 지르셨다'고 했는데 마태복음에는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습니다. 요한복음에는 '다 이루었다' 하시고 영혼이 떠나신 걸로 되어있고(요 19:30) 누가복음에는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하신 후 숨을 거두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눅 23:46). '크게 소리 지르셨다'는 것으로 보아 후자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사형 집행을 지휘했던 로마 장교인 백부장과 그와 함께 예수를 지키던 사람들은 십자가 상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들을 들었고 가장 밝은 때인 정오부터 3시까지 어둠이 임한 일과 예수님께서 숨을 거두실 때 지진이 일어난 일 등을 보며 심히 두려워했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마가복음에는 백부장이 혼자서 말한 걸로 되어있고(막 15:39), 누가복음에는 백부장이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라고 한 것으로 되어있습니다(눅 23:47). 이렇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 숨을 거두시기까지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백부장과 그의 부하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의인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게 만들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백부장은 그때 신앙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마 16:16) 예수님께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베드로의 고백이었습니다. 이 신앙고백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6:18). 그러므로 베드로의 고백은 신앙의 기초와 같습니다. 이처럼 교회는 '주는 그리스도이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앙고백 위에 세워졌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신앙고백이 없는 교회는 주님의 교회라 할 수 없고 이러한 신앙고백이 없이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2. 구경하러 모인 무리

누가복음에 의하면 예수님의 사형 집행을 구경하러 모인 무리 중에는 그 된 일을 보고 '가슴을 치며 돌아간 사람들'도 있었습니다(눅 23:48). '가슴을 친다'는 것은 뉘우침의 표시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에 직간접적으로 동조했던 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처형 과정에서 일어난 일들을 보고 자신의 죄를 뉘우치며 돌아갔습니다. 후에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십자가의 길을 간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고 한순간의 뉘우침으로 끝난 자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신앙은 순간의 뉘우침 같은 일시적인 감정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러한 감정이 필요하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신앙생활을 지속할 수 없습니다. 신앙은 일시적인 감정이 아니라 진실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믿고 따를 때 가능합니다.

3. 십자가에 못 박힌 한 강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두 강도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모욕하며 조롱했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분을 비난했습니다(마 27:44). 그런데 한 강도의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하신 일에 대한 소문을 들었지만 그를 메시아로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처형을 받을 때만 해도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을 원망하기보다 오히려 그들을 위해 기도하시고(눅 23:33) 사람들의 조롱과 모욕을 끝까지 참고 견디시는 것을 보며 비로소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는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고 비방하는 다른 죄수를 꾸짖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눅 23:40, 41) 예수님을 모욕했던 강도가 이제는 예수님을 변호하는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고서 예수님께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눅 23:43). 그 강도가 구원받았음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가 구원을 위해 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단지 자신을 기억해 달라는 것뿐이었습니다. 이러한 고백은 그가 예수님을 주요 그리스도로 믿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며 그분을 영접하는 자들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은 구원을 얻습니다. 이 외에 죄인이 구원을 얻을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4.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

아리마대 출신의 요셉은 부자였고(마 27:57) 공회원이기도 했습니다. '공회원'이란 유대인들의 최고의결기관인 산헤드린의 회원을 말합니다. 더욱이 그는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공회원이었습니다(막 15:43). 당시 공회원들 중에는 요셉 외에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출교를 당할까 봐 두려워서 믿는다는 사실을 드러내지는 못했습니다(요 12:42). '출교'란 '회당에서 쫓아내다(쫓겨나다)'란 뜻으로 이스라엘 회중에서 제명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되면 회당의 출입은 물론이고 같은 유대인과의 교제나 매매가 금지되는 등 이방인과 세리처럼 취급을 당했습니다. 더욱이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출교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이를 두려워하여 예수님을 믿더라도 그 사실을 숨기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아리마대 요셉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였습니다(요 19:38). 같은 산헤드린 공회원이었던 니고데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는 사실을 숨겨왔던 요셉은 예수님께서 처형당하신 후에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마가는 이러한 행동을 '당돌한 것'으로 묘사했습니다(막 15:43). '당돌히'로 번역된 헬라어[τολμήσας]는 '담대하게, 용감하게'란 뜻으로, 이로 인해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라는 사실이 드러날 것이고 그로 말미암아 어떤 불이익이나 위험이 생길지 모르지만 요셉은 모든 것을 감수하기로 했습니다. 그는 오래전부터 예수님을 존경해 왔고 그래서 산헤드린 공회가 예수님의 사형을 결정할 때 반대표를 던지기도 했습니다(눅 23:51). 하지만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변호하지 못하고 비겁하게 몸을 사렸습니다. 이제 요셉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신을 달라고 요청하였고, 자신을 위해 마련해 두었던 무덤에 예수님을 장사 지냈습니다(막 15:46).

이때 니고데모도 함께 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사람이었습니다(요 3:2). 또 예수님을 변호하기는 했지만 소극적이었습니다(요 7:51). 하지만 이제 니고데모는 아리마대 요셉처럼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그는 요셉과 함께 예수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 법에 따라 자신이 가져온 몰약과 침향을 섞어 만든 향료 백 리트라를 함께 세마포로 쌌습니다. 당시에 몰약과 침향은 매우 비쌌기 때문에 이를 준비하기 위해 니고데모는 많은 돈을 지불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을 위해 기꺼이 그 일을 감당했습니다. 이로써 니고데모와 아리마대 요셉은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이 때론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로 인해 자신에게 어떤 불이익이 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불이익도 감수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제자의 길입니다(눅 14:2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신앙의 걸림돌이었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신앙을 갖는 계기가 되었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신앙의 결단을 내리게 한 동기가 되었습니다. 바울이 언급한 대로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신앙의 걸림돌이지만 구원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사실을 보여준 것입니다(고전 1:18).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입으로는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는 자들처럼(딛 1:16) 말로만이 아닌 행함과 진실함으로 해야 합니다. 설사 그로 인해 어떤 불이익이 온다 할지라도 기꺼이 감수해야만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랬고 믿음의 선진들이 그 길을 걸었습니다. 우리도 기쁨으로 그 길에 동참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