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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강해 : 갈릴리로 가라

2023. 6. 7.
성경본문 보기

마태복음 28장 1절 ~ 10절 [개역개정]

1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
2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3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4 지키던 자들이 그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5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6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7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8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할새
9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10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설교문 보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삼일 째 되는 안식 후 첫 날 이른 새벽에 예수님을 따랐던 일단의 여인들 곧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 등이 예수님의 시체에 바를 향품을 가지고 무덤으로 갔습니다(막 16:1 ; 눅 24:10). 그들은 무덤을 막아 놓은 돌을 어떻게 옮길 것인지에 대해 걱정했지만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하늘로부터 온 천사들이 이미 돌을 옮겨 놓았기 때문입니다(마 28:2). 그리고 가져간 향품도 필요없게 되었습니다. 무덤 안에는 예수님의 시신은 없고 그 시신을 감쌌던 세마포와 머리를 쌌던 수건만이 놓여 있을 뿐이었습니다(요 20:6, 7). 이 광경을 보고 두려워하고 있는 여인들에게 천사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다시 살아나셨음을 알렸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마 17:22, 23)고 하셨는데, 그 말씀대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전하기를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고 했습니다. 여자들이 이 사실을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가는 도중에 예수님을 만났는데, 예수님 역시 천사와 같은 말을 전해주셨습니다.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마 28:10) 이는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기도 합니다(마 26:32). 그러면 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갈릴리로 오라고 하셨을까요?

1. 제자들의 신앙 회복을 위함입니다.

마가복음에 따르면 천사는 제자들 가운데 특별히 베드로의 이름을 언급했습니다(막 16:7). 베드로는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다'고 장담했으나 두려움 앞에서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을 했습니다. 이에 대해 베드로는 회개를 했고(마 26:75) 예수님도 책망하지 않으셨지만 마음 한 켠에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들 역시 베드로처럼 '주와 함께 죽을 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다'고 말했지만(마 26:35) 정작 예수님께서 붙들리시자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달아났습니다(막 14:50).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이후 제자들은 자신들도 처형 당할지 모른다고 생각에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모인 곳의 문들을 모두 걸어 잠그고 있었습니다(요 20:19).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바르러 갔던 여인들을 통해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지만 그들의 말이 허튼 소리 같아서 믿지 않았고(눅 24:11)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예수님을 만났다는 이야기 역시 안 믿었습니다(막 16:13). 베드로와 요한이 직접 무덤에 가서 예수님의 시신이 없는 걸 확인했지만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오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라고 하셨습니다(요 20:19). 예수님의 등장에 제자들은 놀라고 무서워 했습니다.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눅 24:37). 예수님께서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다'고 하시며 두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셨지만 제자들은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길 뿐이었습니다(눅 24:41). 그런 일이 있은 후 8일이 지나서 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요 20:26).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두 번이나 만났지만 여전히 불안을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또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갈릴리로 갔습니다(요 21:2). 유대인들이 두려워서 갈릴리로 피하려 한 것인지 아니면 '갈릴리로 가라'는 말씀이 생각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들은 갈리리로 갔습니다. 그때 함께 한 제자는 베드로를 비롯해 일곱 명이었습니다(요 20:2).

베드로가 물고기를 잡으로 가겠다고 하자 다른 제자들도 따라 갔습니다. 하지만 그 날 밤에 잡은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동이 틀 무렵 예수님께서 바닷가에 서 계시되 제자들은 그분이 예수님이신 줄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하셨고 그 말씀대로 했더니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물고기가 잡혔습니다. 이런 상황은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제자로 부르실 때를 연상케 합니다. 그때도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은 밤새도록 고기를 잡기 위해 애를 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날이 밝아오자 베드로는 뭍으로 나와 그물을 씻고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그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고, 그 결과 두 배에 가득 채울 정도로 많은 물고기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눅 5:4-7). 그로부터 몇 년 후 같은 장소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 일로 베드로와 함께 있었던 요한은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고 하신 분이 예수님이심을 알아챘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저분은 주님이시다'라고 하자 베드로는 스승에 대한 예의를 갖추기 위해 벗어 두었던 겉옷을 걸치고 바다로 뛰어 들었습니다. 헤엄을 쳐서 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는 베드로의 급한 성격 때문이기도 하지만 예수님을 빨리 뵙고 싶은 간절한 마음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예수님께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을 때 베드로는 선뜻 대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난 날 예수님을 부인했던 아픈 기억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사랑한다 자신있게 말하지 못하고 단지 자신이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신다고만 대답을 했습니다. 이런 문답이 세 번 이어졌습니다.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던 베드로에게 예수님을 세 번 사랑한다고 고백케 함으로써 그의 아픈 기억을 치유하셨고 그에게 '내 양을 먹이라'는 사명을 주심으로  신앙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다른 제자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처음 부르셨던 갈릴리에서 그들의 신앙을 다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2.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가룟 유다를 제외한 열한 제자가 갈릴리로 가서 예수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렀습니다(마 28:16). 이 산이 어느 산인지 또 언제 이 산으로 오라고 지시하셨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처음 복음을 선포하셨던 이곳 갈릴리에서(마 4:17 ; 행 10:37) 제자들에게 새로운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지상대명령'이라 일컬어지는 것으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마 28:19, 20).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에게까지 예수님의 증인이 되라는 말씀입니다(행 1:8).

복음에는 순서가 있어도 결코 차별은 없습니다. 복음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사마리아 사람이나, 가난한 자나 부유한 자, 선한 자나 악한 자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있습니다(막 16:15). 이 복음을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구원을 얻을 것이지만 거부하는 자들은 정죄를 받을 것입니다(막 16:16).

3. 제자들에게 자신의 출신을 상기시켜 주시기 위함입니다.

초대교회에서 가장 문제가 많은 교회는 고린도교회였습니다. 고린도는 아프로디테(Aphrodite)라는 여신의 신전이 있는 곳으로 도덕적으로 매우 타락한 도시였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영향을 받은 고린도교인들 역시 도덕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고전 5:1). 또 당파(고전 1:10-4:21)나 소송(고전 6:1-11), 결혼(고전 7:1-40), 우상의 제물(고전 8:1-10:33), 은사(고전 12:1-14:40), 부활(고전 15:1-58) 등의 문제로 인해 분쟁과 갈등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고린도교회의 구성원들을 보면 회당장 그리스보(행 18:8)나 고린도성의 재무를 보던 에라스도(롬 16:23)처럼 상류 계층의 사람들이 더러 있었지만 대부분 사회적으로 신분이 낮고 천한 사람들이었습니다(고전 1:26). 그 중에는 노예들도 있었는데(고전 7:21), 당시 노예는 사람이 아닌 물건으로 취급될 정도로 그들의 인격은 무시당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당신의 자녀,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들은 이제 교회에서 만큼은 하나의 인격체로 대우를 받으며 지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모두 하나이며(갈 3:28) 그러기에 교회에서는 신분에 따른 차별이 있어서도 안되고 있을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서로 파당을 짓고, 자신의 주장만을 내세웠으며, 받은 은사들을 자랑하면서 무질서하게 행동하는 등 교회는 갈등과 분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에 바울은 그들의 출신이 어떠했는가를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고전 1:26).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대부분 사회적으로 신분이 낮고 천하며 어리석고 가난해서 세상으로부터 멸시를 받는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자들을 택하신 것은 어리석은 자들로 하여금 세상의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세상의 약한 자들로 하여금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또 잘난 체하는 자들을 없애시려고 세상의 천한 자들과 멸시 받는 자들과 가진 것이 없는 자들을 택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시므로 그 어떤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고전 1:27-29). 그러므로 고린도 교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을 택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각자 받은 은사가 무엇이든 간에 그것을 자랑의 도구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를 섬기는데 사용해야 합니다(벧전 4:10).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의 출신은 고린도교회 교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유대지역 사람들이 천대하는 갈릴리 출신의 어부들이고 제대로 배우지 못한 무식한 사람들로 인식되었습니다(행 4:13). 그런 자들이 예수님을 따르면서 서열에 관한 문제로 다툴 만큼 세상 권력에 대한 욕망에 사로 잡혔습니다(막 9:34 ; 눅 9:46 ; 눅 22:24). 그리고 그 욕망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처형을 당하시면서 사라진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권력에 대한 그들의 욕망은 다시금 되살아날 것입니다. 이를 아신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갈릴리로 오게 하셨습니다. 바울이 고린도교인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제자들에게 그들의 출신이 어떠했는지를 상기시켜 주시기 위해서 입니다.

그들은 자신같이 미천한 자들을 제자로 선택해 주신 은혜에 감사할 뿐 그로 인해 어떤 보상을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눅 17:10). 그들의 상급은 하늘에 속한 것이지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지혜와 권세, 부귀와 영화는 결코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는 날 모두 두고 가야할 것들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이 지나가는 날 다 없어질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것들을 행복의 기준으로 삶거나 자랑하지 말고 또 그것을 얻기 위해 신앙을 거부하거나 등한시 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에서도 학벌이나 재산, 사회적 지위 등을 자랑하는 자들이 종종 있는데, 다 부질없는 일입니다. 오히려 그러한 자들이 교회를 분열시킵니다. 우리가 자랑할 것은 사람도 교회도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고전 1:31 ; 고후 10:17).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에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고 있어서도 안 됩니다(갈 6:1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이 대제사장들에 전해지자 그들은 장로들과 함께 이 문제를 의논한 후 무덤을 지키던 경비병들을 돈으로 매수하여 예수가 부활한 것이 아니라 그의 제자들이 훔쳐갔다는 유언비어를 퍼트리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듯이 그 어떤 것으로도 예수님의 부활이라는 진실을 숨길 수는 없습니다(마 28:12, 13).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를 직접 목격한 증인들입니다(행 1:8 , 22). 증인이란 헬라어로 마르튀스(μάρτυς)라고 하는데, 자신이 목격한 사건에 대해 증명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행 22:15). 그리고 마르튀스는 순교자를 의미하기도 합니다(행 22:20 ; 계 17:6). 그러니까 마르튀스는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는 일에 목숨을 건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말처럼 제자들은 모두 순교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길은 세상의 권력이나 명예, 재물을 얻는 통로가 아닙니다. 오히려 모든 것을 내려 놓아야 갈 수 있는 길입니다(눅 14:33). 하지만 걱정하거나 두려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마 2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