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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음TV/주일예배설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되

2023.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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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12장 1절 ~ 3절[개역개정]

1 예후의 제칠년에 요아스가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사십 년간 통치하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시비아라 브엘세바 사람이더라
2 요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가 그를 교훈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되
3 다만 산당들을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였더라

 

설교문 보기

아하시야 왕이 예후에 의해 죽임을 당하자 그의 어머니 아달랴는 왕족을 모두 죽이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에게는 여러 아들이 있었지만 유다를 침략한 블레셋 사람들과 아라비아 사람들이 그들을 끌고 갔기 때문에 막내아들 아하시야 외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습니다(대하 21:17). 그 아들마저 죽자 아달랴는 자신이 왕위에 오르기 위해 왕족을 몰살했는데 그중에는 자신의 손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아하시야의 누이인 여호세바가 조카인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빼내어 죽임을 당하지 않게 했다는 것입니다. 후에 요아스가 왕위에 올라 사십 년 간 통치를 하게 되는데 그 일련의 과정은 우리에게 몇 가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1. 사람을 잘 만나야 합니다.

아달랴는 북이스라엘에서 가장 악명이 높은 아합 왕과 이세벨의 딸로 남유다의 여호람과 결혼을 했습니다. 여호람은 아버지 여호사밧과 달리 우상을 숭배하며 악을 행했습니다(대하 21:6). 그의 아들 아하시야 역시 아합의 집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는데(왕화 8:27 ; 대하 22:3) 모두 아댤랴의 영향이 컸습니다(왕하 8:18 ; 대하 21:6 ; 22:3). 아달랴는 제2의 이세벨이라 불릴 만큼 어머니 이세벨을 닮은 악한 여인이었습니다(대하 24:7). 이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징계하셨는데, 여호람은 창자에 중병이 들어 죽었고(대하 21:18, 19), 아하시야는 왕위에 오른 지 1년 만에 예후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왕하 9:27 ; 대하 22:9). 아달랴 역시 왕위에 오른 지 6년 만에 왕궁에서 피살되었습니다(왕하 11:16). 이로써 아합 가문의 사람들은 모두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사람을 잘 만나야 합니다. 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말입니다. 친구를 잘 만나야 하고, 선생을 잘 만나야 하고, 지도자를 잘 만나야 합니다. 특히 배우자를 잘 만나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먼저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당사자는 물론이거니와 부모는 자녀들이 좋은 사람 만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아울러 자녀들을 신앙으로 잘 양육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녀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친구나 선생, 혹은 배우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좋은 사람 만나기를 원하는 것처럼 상대방도 그런 사람 만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무엇보다 믿음의 사람이 되고,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으며, 또 그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2. 우상을 제거해야 합니다.

아달랴가 아하시야의 아들들을 죽일 때 당시 대제사장이었던 여호야다의 아내 여호세바가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구출하여 그의 유모와 함께 성전 골방에 숨겨서 죽임을 당하지 않게 했습니다. 그렇게 6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7년째 되던 해 대제사장 여호야다가 용기를 내어 요아스를 왕으로 세우려고 계획합니다. 그리고 지혜롭고 치밀하게 일을 진행시켜 아달랴를 죽이고 요아스를 즉위시킵니다. 이로써 아달랴로 인해 단절되었던 다윗 왕권이 회복되었습니다.

요아스를 왕으로 세우는 데 성공한 여호야다는 곧바로 종교개혁에 착수합니다. 먼저 왕과 백성으로 하여금 여호와와 언약을 맺어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했습니다. 왕과 백성들로 하여금 여호와만 섬기며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겠다는 언약을 체결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고 왕과 백성들 사이에도 언약을 맺었습니다. 이는 왕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백성을 다스리고 백성들은 왕에게 순종할 것을 서약했다는 의미입니다(삼하 5:3). 이에 온 백성이 바알의 신전으로 가서 그것을 허물고 그 제단들과 우상들을 깨뜨렸으며 그 제단 앞에서 바알의 제사장 맛단을 죽였습니다. 신앙의 회복 곧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은 이렇게 우상을 제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왕상 15:12 ; 왕하 18:4 ; 23:4-15). 신앙을 회복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이 바로 우상이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 밧단아람의 하란으로 도망가던 중 루스라는 곳에서 잠을 자다가 꿈속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야곱은 그곳을 '하나님의 집'이란 뜻의 벧엘이라 부르면서 한 가지 서원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 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창 28:20-22). 그렇게 하란으로 간지 20년 후 그는 부자가 되어 가나안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형과도 화해를 했습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되자 야곱은 20년 전의 서원을 잊어버린 채 세겜이란 곳에 장막을 치고 그곳에 안주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야곱의 딸 디나가 그 땅의 추장인 세겜에게 강간을 당한 것입니다. 이 사건 이후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벧엘로 가기 전에 야곱이 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곧 신앙의 개혁이자 회복이었습니다. 야곱이 신앙의 회복을 위해서 제일 먼저 한 것은 우상을 제거하는 일이었습니다. 야곱의 집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가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방 신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신상은 대부분 가정의 수호신으로 숭배하던 작은 드라빔이거나 귀고리 부적이었습니다. 야곱의 처 라헬은 아버지의 드라빔을 훔치기도 했고(창 31:19) 사사시대를 거쳐 왕정시대에 이르기까지 백성들은 드라빔을 알게 모르게 섬기기도 했습니다(왕하 23:24).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야곱의 안일한 신앙태도 때문이었습니다. 그동안 야곱은 어려움 속에서 살다가 모든 문제가 해결된 이후 몇 년 동안 평안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신앙이 소홀해졌고, 우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디나 사건으로 큰 시련을 만나게 되었고 그때 하나님께서 벧엘 서원을 기억하게 하셨습니다(창 35:1). 이에 야곱은 다시 하나님의 관계를 회복하기 원했습니다. 그 첫 단계로 우상을 없애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에서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이 바로 우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로 언약을 맺은 유다 백성들 역시 개혁의 첫 단계로 바알의 신전으로 가서 그것을 허물고 그 제단들과 우상들을 깨뜨렸습니다.

우상은 어떤 형상 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보다 어떤 것을 더 사랑하고 섬기며 의지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사람이든 재물이든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섬겨야 할 대상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만물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피조물인 사람이 조물주이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이유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데 자신을 위해 살고 있으니 그것이 바로 우상숭배인 것입니다. 따라서 신앙의 회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신앙의 가장 큰 걸림돌인 우상을 제거해야만 합니다. 만일 우리에게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고 섬기며 의지하는 것이 있다면 모두 떨쳐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섬기며 그분의 말씀을 청종하는 신앙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3. 불신앙의 씨앗을 남겨두지 말아야 합니다.

요아스는 7세에 왕이 되어 40년간 유다를 다스렸습니다. 그는 제사장 여호야다가 살아있는 동안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되 다만 산당들을 제거하지는 않았습니다. 산당은 가나안 사람들이 자신의 신을 숭배하던 장소였는데(왕상 11:7),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이런 산당을 다 헐어 버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민 33:52). 물론 성전이 없던 시기에는 이스라엘 백성도 산당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삼상 9:12 ; 왕상 3:2, 3). 하지만 예루살렘에 성전이 건축된 이후 산당 제사는 더 이상 용납되지 않았습니다(신 12:13, 14). 그러므로 산당은 제거되어야 마땅했지만 대부분의 왕들이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 가운데는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왕하 12:3 ; 14:4 ; 15:35) 이는 우상 숭배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요아스가 그 산당을 그대로 방치해 둔 것은 잘못이었습니다. 불신앙의 씨앗을 남겨두었기 때문입니다.

다윗 이래 이스라엘이 멸망하기까지 산당을 제거한 왕은 둘 밖에 없습니다. 아사나 여호사밧처럼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았던 왕들도 산당은 없애지 않았습니다. 다윗처럼 여호와 신앙에 투철했던 두 왕 곧 히스기야와 요시야 만이 산당을 제거했습니다(왕하 18:4 ; 왕하 23:8, 15). 물론 산당을 없앤다고 우상 숭배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사라지지도 않습니다. 므낫세는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 버린 산당들을 다시 건축하여 우상 숭배에 앞장을 섰습니다(왕하 21:3). 이처럼 산당을 없앤다고 우상 숭배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사라지지도 않지만 단지 우리는 히스기야나 요시야처럼 불신앙의 씨앗을 남겨두지 않도록 신앙에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4. 끝까지 신앙의 정도를 걸어야 합니다.

여호야다 제사장이 죽은 후에 유다의 지도자들이 요아스를 찾아와서 자신들의 말을 듣도록 설득을 했습니다. 그것은 곧 우상숭배를 허락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요아스는 그들의 말을 듣고 우상숭배를 허락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도 우상숭배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또다시 유다는 하나님과 멀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들을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시려고 선지자들을 보내셨지만 그들은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대하 24:19). 이에 하나님께서는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백성들에게 보내셔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 곧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버리셨다는 말을 전하게 했습니다(대하 24:20). 이 말을 듣고 유다 백성들이 회개했으면 좋으련만 그들은 오히려 왕의 명령을 따라 스가랴 선지자를 성전 마당에서 돌로 쳐 죽였습니다. 이에 대해 성경 기자는 '요아스 왕이 이와 같이 스가랴의 아버지 여호야다가 베푼 은혜를 기억하지 아니하고 그의 아들을 죽였(다)'고 기록했습니다(대하 24:22). 한 마디로 배은망덕했다는 것입니다. 요아스는 여호야다 때문에 목숨을 보존할 수 있었고, 왕위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요아스는 그의 아들을 죽임으로 은혜를 원수로 갚아버렸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아람 군대로 하여금 유다와 예루살렘을 치게 하시므로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며 온갖 악행을 저질렀던 사람들을 징벌하셨습니다(대하 24:24). 이때 부상을 당한 요아스는 신하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왕하 12:20 ; 대하 24:25).

대제사장 여호야다와 함께 종교개혁을 일으키며 무너진 성전을 중수한 요아스였지만 끝까지 신앙의 길을 걷지 못하고 우상숭배에 빠지므로 영예롭지 못한 왕이 되고 말았습니다. 요아스처럼 신앙으로 시작했다가 불신앙으로 끝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신앙의 길을 간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길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고는 갈 수 없는 힘들고 좁은 길입니다(마 7:14). 무엇을 얻기보다는 가진 것도 내려놓고 인내해야만 갈 수 있는 길입니다(히 12:1). 이것이 신앙의 바른 길, 정도입니다. 신앙에는 왕도가 없습니다. 정도만 있을 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신앙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고 끝까지 신앙의 정도를 걸어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앙의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상일 수도 있고, 세상의 염려일 수도 있습니다. 또 신앙의 길을 걸어가는데 믿음의 동역자를 만나는 것도 필요합니다. 혼자 걷는 것보다는 같이 걷는 것이 서로에게 큰 힘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전 4:12). 그리고 인내해야 합니다. 그래야 신앙의 결실을 맺습니다(눅 8:15 ; 히 12:1 ; 약 5:11). 한 사람의 낙오자 없이 신앙의 경주를 완주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