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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음TV/수요예배설교

마가복음 강해 : 에바다

2023.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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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보기

마가복음 7장 31절 ~ 37절 [개역개정]

31 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방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 지방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시매
32 사람들이 귀 먹고 말 더듬는 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33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34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35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여졌더라
36 예수께서 그들에게 경고하사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되 경고하실수록 그들이 더욱 널리 전파하니
37 사람들이 심히 놀라 이르되 그가 모든 것을 잘하였도다 못 듣는 사람도 듣게 하고 말 못하는 사람도 말하게 한다 하니라

 

설교문 보기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병 없이 건강하게 오래 사는 '무병장수'일 것입니다. 그래서 이에 대한 연구가 오래전부터 끊임없이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체질의학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무병장수하려면 자신의 체질에 맞는 식생활과 적합한 운동을 해야 하고 체질에 따라 병을 치료하거나 예방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어떤 학자는 '절식(節食)'을 무병장수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기존에 섭취하는 열량의 30%가량을 줄여야 건강할 뿐만 아니라 수명이 더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이나 의술을 개발함으로써 무병장수의 꿈을 이루려고도 합니다. 그렇게 해서 질병 없이 오래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질병은 체질에 맞는 식생활과 운동을 하고, 절식을 하고, 약을 먹는다고 해서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질병의 원인이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질병들을 치유하시기 세 가지 방법을 사용하셨습니다. 첫 번째는 말씀하시는 것이고, 두 번째는 손을 대시는 것이며, 세 번째는 첫 번째와 두 번째 방법을 병행하시는 것입니다. 복음서에 기록된 치유 기사들 가운데 거의 반 정도가 세 번째 방법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 외에 침(막 7:33 ; 8:23)이나 진흙(요 9:6)을 사용하시기도 했습니다. 마가복음 7장에는 두 가지 치유 사건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중의 하나는 마가복음에만 있는 기사로 이 사건들은 우리에게 몇 가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1. 예수님의 사랑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이방 나라에 가서도 사역을 하셨는데, 두로와 시돈 그리고 데가볼리가 그런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셨을 때 한 여인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수로보니게 출신의 헬라인이었습니다(막 7:26). '헬라인'이란 그리스 사람을 말하거나 유대인과 대비하여 유대인이 아닌 모든 이방인을 가리키는 호칭으로 사용되었는데(롬 1:16 ; 10:12) 여기서는 후자의 의미입니다. 그리고 '수로보니게'는 '수리아의 베니게‘라는 뜻으로, 베니게는 지금의 레바논 지역입니다.

이 여인에게 한 어린 딸이 있었는데, 그 아이에게 귀신이 들렸습니다. '귀신이 들렸다'라는 말은 악한 영이 사람 안에 거하면서 그 사람의 마음과 몸을 지배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의지가 아닌 귀신의 뜻대로 행동합니다. 마태는 이 여인의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다'고 표현하고 있는데(마 15:22) 이는 '위험할 만큼 해로운 귀신이 들렸다'는 뜻으로, 귀신 들린 딸의 증세가 어떠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듣고 자기 딸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어 달라는 요청을 하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여인의 계속되는 간청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대신 간청을 했습니다.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마 15:23).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시고 빨리 돌려보내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이런 간청을 한 것은 여인을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 여인이 계속 소리를 지르니 그것이 귀찮았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 여인이 같은 동족이 아닌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그런 반응을 보였는지도 모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다"(마 15:24) 이 말씀은 예수님의 사역이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국한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랬다면 예수님께서 이방인의 땅인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지는 않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 자를 보내실 때도 비슷한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마 10:5, 6). 이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데도 순서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즉 유대인들에게 먼저 복음이 선포되고 그 후에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었고 또 오랫동안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먼저 이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어야 했습니다(롬 1:16 ; 2:9).

예수님께서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다"(막 7:27)고 하신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입니다. 복음을 들음에 있어서 이방인들보다 유대인들에게 우선권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기분이 상할 법도 한데, 오히려 그 말씀을 듣고 희망이 생겼습니다. 자신이 비록 유대인은 아니지만 자녀들이 먼저 배불리 먹고 그 남은 부스러기를 개들이 먹는 것처럼(막 7:28) 예수님께서 그런 은혜라도 주실 것이라는 기대와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믿음에 감탄하신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의 딸을 치료해 주셨습니다(막 7:29).

그리고 다시 예수님께서는 두로 지방에서 나와 시돈을 거쳐 데가볼리 지역 가운데를 지나 갈릴리 호수에 이르셨습니다. 이곳은 갈릴리 호수 동쪽 이방인의 지역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곳에 도착하시자 사람들이 한 장애인을 데리고 와서 고쳐주시기를 간구했습니다. 그가 유대인이었는지 이방인이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중요한 문제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는 질병이 무엇이든 자신에게 나아오는 자들을 모두 고쳐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데리고 온 사람은 귀가 먹고 말을 더듬는 자 곧 청각 장애와 언어 장애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막 7:32). 예수님께서는 그를 사람들로부터 떨어진 곳으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리고 손가락을 그의 두 귓속에 넣으셨다가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데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만으로도 병을 치료하실 수 있지만 그럼에도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신 이유는 그런 자들을 향한 관심과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리고서 하늘을 우러러보시고 깊은숨을 내쉬며 '에바다'하고 외치셨는데, '에바다'란 '열리라'는 뜻입니다. 그러자 곧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 제대로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예수님의 사랑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차별하지 않으시고 자신에게 나아오는 모든 자들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질병의 근원인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제물로 드리셨습니다(엡 5:2).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죄로부터 해방되어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2. 육체의 질병보다 영혼의 질병이 더 무섭습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국내 사망자 수는 317,680명으로 인구 100,000명당 618.9명이었습니다. 이 중에서 각종 질병으로 사망한 사람이 80% 이상이었습니다. 이처럼 질병은 사람을 고통스럽게 할 뿐만 아니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합니다. 그런데 육체적인 질병보다 더 무서운 것은 영적인 질병입니다. 육체적인 질병은 일시적인 것이지만 영혼의 질병은 사람을 영원한 고통에 이르게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영혼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방법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나오는 것입니다. 영적인 눈이 먼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예수님이 단지 위대한 성인 가운데 하나로 보이거나 심지어 미혹하는 자로 보기도 합니다(눅 23:14). 그런 자들은 예수를 구주로 믿는 사람들 그리고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얻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어리석은 사람들로 생각할 것입니다. 바울은 이들을 가리켜 '멸망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고전 1:18 ; 살후 2:10). 이런 자들은 가룟 유다처럼 돈 때문에 스승인 예수님을 팔아넘기기도 하고 예수님을 자신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삼기도 합니다. 반면에 신앙의 눈이 열린 사람들은 예수님을 위해 자신을 희생합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전 재산인 삼백 데나리온의 향유를 예수님께 드렸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낭비라고 화를 냈지만(막 14:4) 예수님은 오히려 그런 마리아를 칭찬해 주셨습니다(막 14:5).

또 영적인 귀가 막힌 사람들은 유혹의 소리, 자신을 비판하는 소리는 잘 듣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양심의 소리는 잘 듣지 못합니다(막 4:12). 영적인 입이 어눌한 사람들은 세상 이야기는 잘 하지만 기도나 찬양은 할 줄 모릅니다. 만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믿어지지 않는다면 그리고 예수님의 죽음이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생각된다면 그는 틀림없이 영적인 질병에 걸린 사람입니다. 또 자신의 일에는 아낌없이 재물을 사용하면서도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은 아깝다고 생각하는 사람, 사람과의 대화는 잘하면서도 하나님과의 대화에는 별 관심이 없는 사람 역시 영적인 질병에 걸린 사람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육체의 질병에 걸리면 다른 일을 제쳐놓고라도 치료를 받으려고 하는데 영혼의 질병을 치료하는 데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러 사정으로 육체적인 질병을 치료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육체의 질병을 치료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혼의 질병을 치료받는 것입니다. 육체의 질병은 우리를 이 세상에서만 괴롭히지만 영혼의 질병은 우리를 영원토록 고통스럽게 하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질병을 치료받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병원이나 약국에서 처방을 받아 치료를 하거나 자연을 이용하여 치료하는 자연요법도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병을 고칠 때 무화과 반죽(왕하 20:7)과 기름(사 1:6 ; 막 6:13) 그리고 포도주(눅 10:34 ; 딤전 5:23 ; 약 5:14) 등이 사용되었습니다. 당시 이것들은 식료품이면서 약제로도 사용이 되었습니다. 이는 오늘날의 자연치료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침을 사용하셨고(막 7:33 ; 8:23 ; 요 9:6), 제자들의 경우는 기름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막 6:13). 이런 치료는 당시 일반 백성들 사이의 민간요법으로 많이 활용되었는데, 실제로 침이나 기름을 이용해서 질병을 치료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또 정신적인 질병인 경우 상담을 통해서 치유가 가능한 경우도 있습니다. 믈론 그리스도인들은 약이나 의술을 통해서 혹은 상담을 통해서 치료를 받을 때라도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육체의 질병과 달리 영혼의 치료법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나오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죄와 그로 인한 결과를 해결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여기에는 질병의 문제도 포함이 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질병은 근본적으로 죄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질병의 원인은 여러 가지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죄 때문입니다. 죄가 세상에 들어온 후에 병도 생겨났습니다(롬 5:12). 그러므로 사람이 겪는 고통과 슬픔은 근본적으로 죄로 인한 결과입니다(창 3:17-19).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죄로 인해 사람이 받아야 할 고통을 대신 받으시고, 우리가 겪어야 할 슬픔을 대신 겪으셨습니다. 그래서 마태는 예수님께서 귀신 들린 자들과 병든 자들을 고치시는 것을 보고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마 8:16, 17).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께 나아가는 자는 육체의 질병뿐만 아니라 영혼의 질병을 치료받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담이 죄를 지은 후 모든 사람은 죄의 종이 되어 살아야만 했습니다(롬 6:17, 20 ; 요 8:34). 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으로 인해 께서 우리는 죄에서 해방되었습니다(계 1:5 ; 요 8:36). 그렇다고 죄인이 자동적으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이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만이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요 20:31). 이 시간 우리의 영적으로 어두워진 눈과 귀 그리고 입이 열리는 에바다의 은혜가 임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