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고 지켜 행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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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16장 9절 ~ 12절 [개역개정]
9 일곱 주를 셀지니 곡식에 낫을 대는 첫 날부터 일곱 주를 세어
10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11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12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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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성인 남자라면 매년 지켜야 할 세 가지 절기가 있습니다(출 23:14-17 ; 신 16:16 ; 대하 8:13). 그것은 유월절부터 시작되는 무교절(겔 45:21 ; 마 26:17 ; 막 14:12 ; 눅 22:1)과 맥추절 그리고 수장절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절기에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 모여야만 했습니다(출 23:17 ; 신 16:16). 이 중에서 맥추절은 오늘 우리가 지키는 맥추감사절의 원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절기는 세 가지 키워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 기억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 이후 40년간 광야생활을 했습니다. 광야는 사막과 비슷한 곳으로 사람들이 생활하기에 부적합한 곳입니다. 먹을 것을 비롯해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구할 수가 없는 곳이 광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 생활 동안 조금 불편하기는 했어도 먹고사는데 전혀 지장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셨고(출 16:35), 해진 옷이나 떨어진 신발을 신지 않도록 해주셨기 때문입니다(신 29:5).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주식으로 삼았던 만나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하늘에서 내리게 하신 양식으로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사랑의 증표라는 단순한 음식 이상의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만나 한 오멜 약 2리터를 항아리에 담아 대대로 보관하라고 하셨는데(출 16:32), 이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항상 기억도록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 땅의 곡식을 먹은 다음날부터 더 이상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그 후로 만나를 두 번 다시 볼 수 없었고 그 해부터 가나안 땅에서 나는 양식을 먹었습니다(수 5:12). 광야에서는 먹을 것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만나를 주셨지만 이제 가나안에서는 그 땅의 곡식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만나가 필요 없게 된 것입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그곳에서 땀 흘려 농사를 지으며, 가축을 길러야 했습니다. 그리고 매년 밭에 씨를 뿌려 수확한 곡식의 첫 열매 중 가장 좋은 것을 하나님께 드려야 했는데 이것이 바로 맥추절입니다(출 23:16).
하나님께서는 이집트에서 고통받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광야에서의 40년 동안을 먹이셨고, 그들이 경작할 땅을 주시어 곡식을 얻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맥추절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과거와 현재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집트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맥추절을 지켜 행할 것을 특별히 당부하였습니다(신 16:12).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잊지 말고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모든 것을 다 기억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을 망각의 동물이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망각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만일 사람이 모든 것을 잊지 않고 기억한다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잊어야 할 것들이 있고 기억해야만 할 일들이 있습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잊어버리고 잊어야 할 일을 기억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무엇보다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의 종이 되었던 것처럼 우리는 죄의 종이었습니다(롬 6:17).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것이나 이집트에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다른 민족보다 의로워서도 아니고 정직해서도 아닙니다(신 9:5). 다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시고 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그들을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구출해 내신 것입니다(신 7:8). 우리가 죄에서 구원을 받은 것도 우리 자신의 공로나 의로움 때문이 아닙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크신 사랑(엡 2:4)과 은혜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롬 4:6 ; 엡 2:8).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롬 3:24 ; 계 22:17). 우리는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이 구원의 은혜를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야 교만하지 않고 겸손히 하나님을 섬길 수 있으며(신 8:14) 또 감사할 수 있습니다.
2. 감사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맥추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라'고 했습니다(신 16:10). 이는 하나님께 받은 바 은혜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하기 위함입니다. 예물이 많고 적은 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자신의 형편에 맞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내가 너의 제물에 대해서는 너를 책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실 정도로 열심히 제물을 드렸습니다(시 50:8). 그들은 제물을 통해 자신들의 모든 죄악이 깨끗해질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제물 때문이 아닙니다. 사실 하나님은 그들의 제물이 필요치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백성은 제물만 드리면 자신의 의무를 다한 것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이에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사가 무엇인지를 밝혔습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 50:23). 이는 제사의 본질이 제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시 50:8) 제사를 드리는 사람의 마음에 있음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예물을 드림보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것을 더 기뻐하십니다(시 69:30, 31). 감사가 없는 예배는 마치 믿음이 없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 곧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히 11:6). 감사가 없는 예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또 감사는 하나님의 뜻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범사에 감사하라'고 권면했습니다. '어떤 처지에서든지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당시 데살로니가 교회는 여느 교회들처럼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살전 3:4).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감사할 것을 권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비롯해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살전 5:16). 우리가 범사에 감사해야 하고 또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인생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선하게 이루어 주실 것이라 확신하기 때문입니다(롬 8:2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이유들은 많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여 당신의 자녀로 삼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비록 우리는 값없이 죄에서 구원을 받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속량하시기 위해 가장 값비싼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즉 당신의 독생자를 우리의 죄를 속하기 위한 제물로 내주신 것입니다(롬 3:25 ; 요일 4:9, 10). 이 은혜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범사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록 우리가 지금은 어렵고 힘들지라도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합력하고 선을 이루게 하실 줄 믿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것이 곧 믿음이기도 합니다(히 11:1).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를 잊지 않고 늘 기억하며 감사할 수 있는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3. 나눔
과거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서 노예로 생활을 했습니다. 즐거움이 전혀 없는 고달픈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노예에서 해방되어 자유인이 되었고,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소유의 기업에서 수확을 거둘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농산물을, 어떤 사람은 축산물의 수확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본문 11절에 언급된 노비와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그들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이해가 되는데 왜 레위인이 포함되었을까요? 레위인 역시 분깃이나 기업이 없었기 때문입니다(민 18:20 : 신 14:29). 물론 레위인은 자기 소유의 거주지가 있었고 백성들의 십일조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민 18:21) 노비나 나그네, 고아나 과부보다는 형편이 낫긴 했지만 풍요롭지는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기쁨과 감사의 절기 맥추절을 맞이하여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때를 기억하며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 수확의 기쁨과 즐거움을 나누어야 했습니다(신 16:12). 이러한 나눔은 맥추절이나 초막절(신 16:13) 등 절기에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매년 곡식이나 과일을 추수할 때 그것을 다 거두지 않고 일부를 남겨두었는데 이는 가난한 자들을 위한 배려이자 나눔이었습니다(레 23:22 ; 신 24:19-21). 그리고 매 7년 안식년을 기준으로 해서 제3년과 6년에 드리는 십일조는 구제에 사용되었습니다(신 14:28, 29 ; 26:12, 13).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나눔을 잘 실천했습니다. 특히 예루살렘 교회에서는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의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었습니다(행 2:44, 45). 거기에는 물질의 도움이라는 차원을 넘어서 그리스도인들의 연합과 하나 됨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는 이렇게 하는 것이 힘들지만 할 수 있는 대로 서로 나누며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살펴본 감사절의 세 가지 키워드는 절기뿐만 아니라 매일의 삶 속에서 실천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를 구원하여 당신의 자녀로 삼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비록 우리가 지금은 어렵고 힘들지라도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합력하고 선을 이루게 하실 줄 믿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물질이거나 재능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며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이웃과 나누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