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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음TV/수요예배설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2023. 8. 24.

성경본문 보기

누가복음 7장 36절 ~ 50절 [개역개정]

36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37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38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39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그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4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그가 이르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41 이르시되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42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43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이르시되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44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45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46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47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48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49 함께 앉아 있는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
50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설교문 보기

예수님께서 시몬이라고 하는 바리새인으로부터 식사 초대를 받으셨습니다. 그동안 예수님께서는 주로 바리새인들이 경시하는 세리와 그들이 죄인취급 하는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하셨습니다(마 9:11 ; 막 2:16 ; 눅 5:30). 그래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로부터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는 말까지 들었습니다(눅 7:34). 그런 예수님을 왜 바리새파 사람인 시몬이 식사에 초대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들과 귀신 들린 자들을 고치시고 나병환자를 깨끗게 하시며 심지어 죽은 사람까지 살리셨다는 소문(눅 7:17)을 들은 시몬이 예수님에게 호기심이 생겼거나 아니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위대한 선지자'(눅 7:16)라고 하는데, 정말 그런지 시험해 볼 요량으로 예수님을 초청했을 수도 있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가 예수님을 존경하고 있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시몬은 예수님에게 발 씻을 물을 주지 않았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샌들형 신발(막 1:7)을 신었기 때문에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 발을 씻어야 했습니다. 특히 식사를 위해 손님을 초대할 경우에는 주인이 종을 시켜 손님의 발을 씻겨 주거나 발 씻을 물을 주는 것이 관례였습니다(창 18:4). 그런데 시몬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눅 7:44). 또 주인은 입맞춤으로 손님을 맞이하는 것이 관습이었지만 시몬은 그렇게 하지도 않았습니다(눅 7:45). 그리고 손님의 머리에 감람유 즉 올리브기름을 발라주기도 했는데, 시몬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눅 7:46). 손님을 초대해 놓고 그에 맞는 대접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시몬이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시몬의 집에 들어가 자리에 앉으셨을 때 그 동네에 사는 죄인인 한 여자가 향유를 담은 옥합을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이 여자가 어떤 죄를 지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처럼 도덕적으로 행실이 좋지 않은 여자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부도덕한 여인으로 낙인찍혀 죄인 취급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이 여인이 들어오자 시몬을 비롯해 그의 집에 모여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굉장히 불쾌했을 것입니다. 죄인으로 취급받는 여인과 한 자리에 있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반면에 이 여인에게는 굉장한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자신을 죄인취급하며 꺼려하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녀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했다면 예수님께 가까이 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모든 것을 극복하게 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뒤쪽으로 가서 발 곁에 서더니 울기 시작했습니다. 눈물이 흘러 예수님의 발을 적시자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닦은 후 그 발에 입을 맞추고 가져온 향유를 부었습니다. 그녀가 이런 행동을 한 것은 예수님의 은혜에 감격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멸시하고 꺼려하는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시며 그들과 어울리셨고 그로 인해 바리새인들로부터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는 말까지 들으셨지만 전혀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이 여인은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죄인이 아닌 한 사람으로 대해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에 크게 감동했고 또 감격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감사와 존경을 표하기 위해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가 그랬던 것처럼(요 12:3) 어쩌면 전재산일 수도 있는 값비싼 향유를 아낌없이 예수님의 발에 부었습니다. 보통 향유는 머리에 붓는 것이 관례였지만 그럼에도 이 여인은 발에 부었습니다.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도 그랬습니다. 아마도 자신들은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을 자격조차 안된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갔던 한 세리가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한 것처럼(눅 18:13)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나 이 여인은 감히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을 엄두도 내지 못했고 다만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을 뿐이었습니다. 그것 조차도 이들에게는 무한한 영광으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본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예수님을 초청했던 바리새인 시몬이었습니다.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을 때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름 아닌 예수님의 제자들이었습니다. 삼백 데나리온이나 되는 값비싼 향유를 허비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막 14:4, 5). 그들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은 것을 낭비로 생각하고 그런 행동을 한 마리아를 질책했습니다. 그런데 시몬은 향유를 부은 여인이 아니라 예수님의 태도에 실망했습니다. 그는 이 광경을 보고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을 것이라'(눅 7:39)고 속으로 말했습니다. 시몬이 이 여인의 행동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면서도 말리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이 여인을 통해 예수님이 과연 선지자인지 아닌지를 시험해 보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내린 결론은 '예수님은 선지자가 아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선지자라면 자기에게 손을 대는 이 여자가 누구며 또 어떤 여자인 줄 알았을 텐데 그러지 못했으니 선지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한 가지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시몬에게 질문하셨습니다.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눅 7:41, 42) "제 생각에는 더 많이 면제받은 사람입니다"라고 시몬이 대답을 하자 예수님은 "네 판단이 옳다"고 하신 후에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다시 시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너는 내게 입 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 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눅 7:44-47) 그리고 예수님은 그 여자에게 '네 죄가 사함을 받았다'고 선포하셨습니다(눅 7:48).

예수님의 비유에서 빚은 죄를 가리킵니다. 어떤 사람은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다른 사람은 오십 데나리온을 빚진 것처럼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죄를 짓습니다.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새인은 자신이 의인이라고 생각했겠지만 그 역시 죄인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에 의로운 자는 하나도 없고(롬 3:10) 모두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롬 3:23). 비록 시몬이 그 여인보다 죄를 덜 지었는지 몰라도 그 역시 빚진 자 즉 죄인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죄는 사람이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할 수가 없는 문제입니다. '두 사람 다 빚 갚을 돈이 없다'라는 것이 이를 말합니다. 사람이 제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죄는 해결되지 않고 해결할 수도 없습니다. 죄를 해결해 주실 있는 분, 빚을 탕감해 주실 수 있는 분은 '빚 주는 사람'(눅 7:41) 곧 하나님이신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 여인에게 '네 죄가 사함을 받았다'고 선포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사람들은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며 의아해했습니다.

이 같은 반응은 앞서 중풍병자를 고치실 때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본 동네 곧 가버나움(막 2:1)에서 가르치고 계실 때에 사람들이 중풍병에 걸린 사람을 침상에 눕힌 채로 데려왔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서 지붕 위로 올라가 지붕을 뚫고 환자를 침상에 누인 채 예수님 앞으로 달아 내렸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 환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러자 그곳에 있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속으로 '이 사람이 신성모독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신성모독'이란 말이나 행동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거나 욕되게 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죄를 용서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다고 믿었습니다(사 43:25). 그런데 예수님께서 죄 사함을 선언했으니 그것이 곧 신성모독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그들의 생각대로 하나님 외에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분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다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눅 5:23). 일반 사람들은 '죄 사함을 받았다'는 말이 더 쉽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며 그래서 결과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일어나 걸어가라'는 말은 그 결과가 겉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병 고침의 능력이 없는 사람이 '일어나 걸어가라'는 말을 쉽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일어나 걸어가라'는 말 보다 '죄 사함을 받았다'는 말이 더 어려웠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유대인들은 죄 사함을 선포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병 고치는 일도 어렵기는 하지만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선지자나 예수님의 제자들이 병을 고쳤다는 기사가 종종 나옵니다. 예를 들어, 엘리사는 나아만의 나병을 치료했고(왕하 5:14), 베드로는 나면서부터 못 걷게 된 사람을 고쳤습니다(행 3:6, 7). 하지만 그들이 죄를 사해 주지는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죄 사함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예수님께서는 많은 병자들을 고치셨지만(막 1:34) 그들에게 죄 사함을 선포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중풍병자에게는 죄 사함을 선포하셨습니다(마 9:2 ; 막 2:5).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밝히신 대로 인자(예수님)가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음을 알리기 위함이었습니다(눅 5:24).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려주신 것입니다(눅 5:24).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지 못했습니다. 단지 선지자의 중의 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마 16:14). 더욱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선지자로 인정조차 하지 않았습니다(요 7:52). 그러니 예수님께서 죄 사함을 선포하시자 그가 신성을 모독을 했다고 비난한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을 가리켜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사 9:6).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요 1:1, 18) 죄를 사할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계십니다. 비록 예수님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지만 본질적으로는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십니다(빌 2:6). 그러기에 예수님은 무엇이나 다 하실 수 있는 분 즉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이 그것을 잘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요 1:3 ; 7:31 ; 10:38). 그러므로 하나님이신 예수님에게 있어서 '죄 사함을 받았다'는 말이나 '일어나 걸어가라'는 말은 다 쉬운 일입니다.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분이라면 그 어떤 병이라도 치료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롬 3:23). 그리고 죄인이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막 1:15)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요 1:12). 즉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요 14:6)를 믿는 것입니다(요 3:16 ; 행 16:31). 이 외에 죄인이 구원받을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행 4:12). 그럼에도 바리새인 시몬처럼 자신은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결코 죄 용서함을 받지 못하며 구원에 이를 수도 없습니다(눅 5:32). 자신은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회개할리는 만무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시몬이 죄인으로 취급했던 여인은 죄 용서함을 받았습니다. 그가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으며 그의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은 것은 자신 같은 죄인도 아무 조건 없이 받아 주시고 용서해 주신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그분을 사랑하는 마음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여인을 죄인으로 여기며 멸시하는 사람들 앞에서 그 여인의 죄사함을 선포하신 것은 그 여인이 더 이상 죄인이 아님을 알려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죄를 용서함 받고 의롭다 하심을 얻습니다(롬 3:24-26). 죄인에서 의인으로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요 1:13).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로서(고후 5:17) 유혹의 욕심을 따라 살던 옛사람의 생활방식이나 신앙의 장애물들을 제거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롬 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