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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음TV/주일예배설교

예루살렘을 씻어 버릴지라

2023. 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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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21장 10절 ~ 15절 [개역개정]

10 여호와께서 그의 종 모든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여 이르시되
11 유다 왕 므낫세가 이 가증한 일과 악을 행함이 그 전에 있던 아모리 사람들의 행위보다 더욱 심하였고 또 그들의 우상으로 유다를 범죄하게 하였도다
12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이제 예루살렘과 유다에 재앙을 내리리니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13 내가 사마리아를 잰 줄과 아합의 집을 다림 보던 추를 예루살렘에 베풀고 또 사람이 그릇을 씻어 엎음 같이 예루살렘을 씻어 버릴지라
14 내가 나의 기업에서 남은 자들을 버려 그들의 원수의 손에 넘긴즉 그들이 모든 원수에게 노략거리와 겁탈거리가 되리니
15 이는 애굽에서 나온 그의 조상 때부터 오늘까지 내가 보기에 악을 행하여 나의 진노를 일으켰음이니라 하셨더라

 

설교문 보기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 여로보암은 이스라엘을 불신앙으로 이끈 장본인입니다. 그는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 형상을 세워 이스라엘을 우상의 길로 들어서게 했습니다. 이후 이스라엘 왕 중에서 그 죄 곧 벧엘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왕하 10:29)에서 떠난 왕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왕하 17:16). 그런데 이러한 여로보암의 죄가 오히려 가벼워 보일 정도로 악을 행한 왕이 있었습니다(왕상 16:31). 바로 아합입니다. 그가 이스라엘 역대 왕 중에서 가장 악명 높은 왕이 된 것은 선왕인 오므리의 영향도 있겠지만(왕상 16:25) 무엇보다 그의 아내 이세벨의 영향이 가장 컸습니다(왕상 21:25). 아합이 시돈 왕의 딸 이세벨과 결혼을 한 것은 솔로몬이 그랬던 것처럼 정략적 결혼을 통해 나라의 번영을 꾀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여호와 신앙은 더욱 피폐해졌습니다. 이세벨이 아합을 꼬드겨 이스라엘을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우상의 나라로 전락시켰기 때문입니다.

남유다에도 아합 못지않은 왕이 있었습니다. 그는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입니다. 므낫세는 유다의 멸망을 앞당긴 장본인으로 유다판 아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므낫세의 일생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신앙의 교훈들을 살펴보겠습니다.

1. 세상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므낫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들의 가증한 행위를 본받아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했습니다(왕하 21:2). 먼저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 버린 산당들을 다시 세우는 일을 했습니다. 산당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부터 그곳 원주민들이 바알이나 아세라 등 자신들이 섬기던 신을 숭배하던 장소로 우상 숭배의 근간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그 땅의 원주민들이 만든 모든 우상과 산당을 다 파괴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민 33:52). 그리고 아무 곳에서나 제사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곳에서만 제사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신 12:13, 14). 물론 성전이 없던 시기에는 산당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지만(삼상 9:12 ; 왕상 3:2, 3) 예루살렘에 성전이 건축된 이후에는 더 이상 산당제사는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고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했습니다.

북이스라엘은 말할 것도 없고 남유다에서도 산당 제사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유다 왕들 중에는 아사나 여호사밧처럼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한 왕들도 있었지만(왕상 15:11 ; 22:43) 산당은 제거하지 않았으므로(왕상 15:14) 백성이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왕상 22:43). 이러한 산당 제사는 히스기야 왕 때에 비로소 중단되었습니다. 히스기야가 산당들을 제거했기 때문입니다(왕하 18:4). 그만큼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열심이었습니다(왕하 18:5). 하지만 히스기야가 죽은 후 산당 제사는 다시 재개되었습니다.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된 므낫세가 다시 산상들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예루살렘 성전으로 집중되었던 백성들의 마음도 다시금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므낫세는 이스라엘의 아합 왕을 본받아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고 아세라 우상을 만들었으며 하늘의 일월성신 등 온갖 우상들을 섬겼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성전 마당에 우상의 제단들을 만들었으며 아세라 목상을 성전 안에 세우기까지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성전을 우상의 신전으로 만들어 버린 큰 죄악이었습니다. 므나셋의 악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의 아들을 불살라 제물로 바쳤고(왕하 21:6 ; 신 12:31) 점을 치거나 마술을 행하게 했으며 신접한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신접한 자들이란 죽은 자의 혼령을 통해 미래의 일을 물어보는 영매들을 말합니다(신 18:11). 이들은 귀신의 힘을 빌려 인간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자들로서 그런 자들에게 조언을 구했다는 것은 므낫세가 하나님보다 귀신을 더 신뢰하고 의지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결코 해서는 안 될 가증스러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내가 내 이름을 영원히 두겠다'(왕하 21:4, 7)고 하신 바로 그 장소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이러한 일은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들을 찾아다님으로 자신을 더럽히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레 19:31 ; 신 18:15). 하나님의 백성은 마땅히 하나님께 구해야지(사 8:19) 귀신을 찾아다녀서는 안 됩니다. 그럼에도 기도의 응답이 없다고, 미래의 일이 궁금하다고 사울처럼, 므낫세처럼 귀신의 힘을 빌어서라도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삼상 28:7). 귀신은 장래의 일을 알지 못하며 안다고 해도 해결할 능력이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모든 것을 아시며,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은 하나님께 달린 것이지(신 30:15) 귀신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을 귀신이 아닌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귀신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 된 자로서의 당연한 도리이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로서의 마땅한 삶입니다.


2. 자녀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히스기야는 유다 여러 왕 중에서 그와 같은 자가 없었다(왕하 18:5)고 할 정도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실하게 섬겼습니다. 그런 왕에게서 어떻게 므낫세 같은 악한 왕이 나왔을까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혹자는 그 원인을 신앙교육의 부재에서 찾습니다. 므낫세는 히스기야가 하나님의 은혜로 죽을병에서 회복된 지 3년째 되는 해에 낳은 아들입니다. 히스기야의 나이 마흔둘 혹은 세 살 때였습니다(왕하 18:2). 마흔이 넘어서 낳은 아들이란 금지옥엽으로 아주 귀하게 키웠을 것입니다. 다윗의 아들 중에 아도니야가 있는데, 성경은 그에 대해 '그의 아버지가 네가 어찌하여 그리 하였느냐고 하는 말로 한 번도 그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왕상 1:6). 아도니야가 태어날 때부터 그때까지 한 번도 아버지 다윗으로부터 책망을 들은 일이 없다는 의미로 다윗이 그를 바르게 교육하지 못했음을 보여줍니다(잠 22:6). 어쩌면 히스기야도 므낫세에게 그랬는지 모릅니다.

이와는 정반대로 므낫세가 히스기야의 훈계를 저버리고 악한 길로 갔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15년의 생명을 연장받은 히스기야는(왕하 20:6) 므낫세가 열두 살(왕하 21:1)이 되는 해 자신이 죽을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 왕이 될 아들이 자신처럼 신앙의 사람이 되도록 힘써 양육했지만 므낫세가 이를 저버리고 우상숭배의 길을 걸었다는 것입니다. 그를 그렇게 만든 배후에 히스기야의 종교개혁을 반대했던 사람들이 있었다고 보기도 합니다. 그들이 므낫세에게 우상을 숭배하도록 부추겼다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요아스 때도 있었습니다. 요아스는 일곱 살에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는 어린 나이에 왕좌에 올랐기 때문에 어떻게 나라를 다스려야 할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 요아스를 신앙으로 잘 이끌어 준 사람이 당시 대제사장이었던 여호야다였습니다. 요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의 교훈을 받는 동안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옳은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여호야다가 죽자 요아스는 우상숭배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유다의 지도자들이 우상숭배를 허락해 달라고 요청을 하자 요아스는 그것을 허락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도 우상숭배에 빠지고 말았던 것입니다(대하 24:17, 18). 므낫세도 같은 전철을 밟았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히스기야와 같은 선한 왕에서 어떻게 므낫세 같은 악한 왕이 나왔을까 하는 의문에 대해 정확한 답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히스기야가 신앙 교육을 소홀히 했는지, 아니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가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릅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자녀를 신앙으로 바르게 양육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무엘과 같은 위대한 선지자도 자녀 교육에 있어서 만큼은 실패를 했습니다(삼상 8:3).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아들들 중에는 근친상간에 살인을 저지른 자도 있었고, 우상숭배에 빠진 자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의 자녀들을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되(엡 6:4) 어떤 상황,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하고 해야 합니다. 그리고 결과는 하나님의 선하심에 맡겨야 합니다. '눈물로 기도하는 어머니의 자식은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또 요한 웨슬리의 어머니는 '자녀를 제멋대로 하도록 버려두는 부모와 신앙을 무의미하게 하도록 버려두는 부모는 마귀의 일을 하는 것이며 자녀들의 영혼을 멸망케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자녀들의 신앙과 미래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부모가 자녀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요 최고의 선물입니다.

3.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므낫세는 우상을 숭배하고 미신을 신뢰했습니다. 또 백성들로 하여금 우상을 섬기는 죄를 짓도록 했으며, 죄 없는 사람을 많이 죽였습니다(왕하 21:16). 전승에 의하면 이사야 선지자가 므낫세에 의해 톱으로 잘려 죽임을 당했다고도 합니다(히 11:37). 이러한 므낫세와 백성들의 악행은 그 옛날 가나안 사람들의 행위보다 더 심했습니다(왕하 21:11). 그들은 우상숭배와 더불어 온갖 가증한 일들로 행함으로 그 땅에서 쫓겨났습니다(레 18:24, 25). 북이스라엘도 그런 악을 행하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했습니다(왕하 17:7-18). 유다도 예외는 아닙니다(왕하 17:19, 20). 하나님께서는 북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랬던 것처럼 유다 백성에게도 선지자들을 보내 유다의 멸망을 경고하셨습니다(왕하 17:13 ; 21:10). "내가 사마리아를 잰 줄과 아합의 집을 다림 보던 추를 예루살렘에 베풀고 또 사람이 그릇을 씻어 엎음 같이 예루살렘을 씻어 버릴지라" (왕하 21:13) 줄과 추는 건축에 사용되는 도구지만(슥 1:16) 여기서는 심판의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사 28:17). 하나님의 심판은 사람이 그릇을 깨끗이 씻어 엎음 같이 예루살렘과 그곳에 거하는 백성들을 완전히 멸해 버릴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경고는 회개의 기회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기를 원하십니다(벧후 3:9). 하지만 므낫세와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앗수르 왕으로 하여금 유다를 치게 하셨고 이때 므낫세는 포로로 끌려갔습니다(대하 33:11). 므낫세는 고통을 당하게 되자 비로소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는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를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여 다시 나라를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그제야 므낫세는 여호와만이 참하나님이 신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회개하모든 사람이 회개하여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며(딤전 2:4)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는 그가 어떤 죄를 지었든지 용서해 주십니다. 그러나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 용서는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므낫세는 예루살렘에 돌아온 후 성전에 세웠던 우상을 제거했으며, 하나님의 제단을 보수하고 그 제단 위에 화목제와 감사제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섬길 것을 명했습니다(대하 33:16). 이처럼 므낫세가 회개하고 하나님을 섬겼지만 유다를 멸망시키고자 하는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킬 수는 없었습니다(왕하 23:26 ; 렘 15:4). 물론 므낫세 한 사람 때문에 유다가 멸망한 것은 아닙니다. 므낫세의 명에 따라 백성들은 하나님께만 제사를 드렸습니다(대하 33:17). 하지만 성전이 아닌 산당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이 정하신 장소에서,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법과 절차에 따라 드릴 때 의미와 가치가 있는 것이고 그런 예배를 하나님께서 열납 하시는 것이지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은 비록 그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라 할지라도 아무 의미도 가치도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것은 악한 일이며 하나님께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유다는 끊임없이 이러한 죄를 지었으며(왕하 21:15), 그로 인해 결국 멸망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므낫세와 유다를 거울로 삼아 세상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본받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자녀가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되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위해서 기도하고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한 사람도 신앙의 낙오자가 없도록 그리고 우리의 가정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그날까지 신앙 위에 굳게 선 믿음의 가정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