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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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0장 17절 ~ 20절 [개역개정]
17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18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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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 중에 열두 명을 따로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 칭하셨습니다(눅 6:13). 사도란 ‘보냄을 받은 자’란 뜻으로(마 10:5) 이들 열두 명을 가리켜 열두 사도(마 10:2) 혹은 열두 제자(마 10:1)라 부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축사(逐邪)와 신유(神癒)의 권능을 주시며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곧 이방인이나 사마리아 사람들이 아닌 이스라엘 백성(마 9:36)에게로 가서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라 하셨습니다(마 10:7).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말은 심판의 시간이 다가왔다는 의미로, 심판을 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회개하고(마 4:17)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요 3:18). 이 외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행 4:12).
또 예수님께서는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하셨습니다(마 10:8). 열 두 제자에게 귀신을 쫓아내며 병자를 고칠 수 있는 권능을 주신 이유는 그들이 전하는 복음의 말씀이 참되다는 것을 뒷받침해 주시기 위함입니다(막 16:20). 제자들이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권능으로 행한 기적들은 복음을 위한 보조적 수단이지 복음의 본질이나 핵심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복음의 본질이요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사흘 만에 살아나셨다'는 십자가의 말씀이 복음의 본질이고 핵심입니다(고전 1:18 ; 2:2). 이 복음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사람들은 구원을 받을 것이고(롬 1:16) 믿지 않는 자들은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살후 1:8, 9).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주신 권능은 그들이 거저 받은 것입니다. '거저 받았다'는 말은 아무 대가 없이 '선물로 받았다'는 뜻으로 제자들은 예수님께 받은 권능을 개인의 사리사욕을 위해 이용하지 말고 복음을 위해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값없이 선물로 주어야 합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는 것이 당연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이유는 복음을 위해 선물로 주신 권능을 자기의 유익을 위해 사용하는 자들이 있을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7장에 보면 예수님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또 주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말 7:22)라고 따지듯이 묻는 자들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알지 못한다고 하시자 보인 반응입니다(눅 13:25). 주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기적을 행했는데 왜 자신들을 모른다고 하시느냐는 겁니다. 그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분명 예수님의 이름으로 능력을 행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복음이 아닌 자신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말로는 주를 위해 일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주의 이름을 이용해서 자기들의 이익만을 추구했던 것입니다(롬 16:18).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마 7:23). '너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능력을 복음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자신의 배만 채우는데 이용한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마 7:23). 이런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과 더불어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살후 1:9).
오늘 살펴볼 본문도 이와 유사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파송하신 후(눅 9:1-6)에 다시 70명의 제자들을 세우시고 둘씩 짝을 지어 자신이 가시려는 마을들로 먼저 보내셨습니다. 어떤 사본들에는 72명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창세기 10장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창세기 10장은 노아의 세 아들인 셈과 함과 야벳의 후손들에 대한 기록으로 모두 70명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로부터 여러 나라와 민족으로 나누어졌습니다(창 10:5, 20, 31, 32). 그런데 히브리어 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70인역(LXX)은 셈과 함과 야벳의 후손들이 72명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10장에 나오는 노아의 아들들의 후손들은 히브리 원문을 택하느냐 아니면 70인역을 택하느냐에 따라 70명 혹은 72명이 됩니다. 중요한 것은 그 수가 아니라 그것이 가리키는 의미입니다. 70명 혹은 72명으로부터 여러 나라와 민족으로 나누어졌다고 했으니 그 수는 세계의 모든 민족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70명 혹은 72명의 제자들을 선택하여 파송하신 것은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될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마 24:14).
예수님께서는 열 두 제자를 파송하실 때와 마찬가지로(막 6:7) 70명의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들을 고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열 두 제자를 파송하실 때도 같은 말을 하셨는데, 그때는 해결책을 함께 제시해 주셨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 10:16) '뱀같이 지혜로워야 한다'는 것은 위험한 상황을 만났을 때 지혜롭고 신중하게 대처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어느 동네에서 박해를 받으면 다른 동네로 피하는 것입니다(마 10:23).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위험에 처하면 종종 다른 지역으로 피신을 했습니다(행 9:25 ; 14:6). 이처럼 할 수만 있으면 어려움이나 핍박을 피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세상과 타협하거나 예수님을 부인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는 의미입니다.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이루 말할 수 없는 박해를 받았습니다. 이를 피하여 광야나 산 혹은 굴속으로 피신한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곳에서 굶주림과 병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히 11:35-38). 특히 데키우스(Decius, 재위 249~251) 황제 때는 로마의 신들에게 경배한 사람들에게만 옥새가 찍힌 증명서를 발급해서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은 물건을 사거나 팔 수 없도록 했다고 합니다. 계시록에 나오는 두아디라 도시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두아디라는 상공업도시였고 각 업종별로 상인 조합[길드]이 결성되어 있었습니다. 이 조합에 가입을 해야지만 시민으로서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조합들은 이방[트림나스] 신전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조합원들은 특정한 날을 정하여 신전에 모여 제사를 드리고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었으며 그 후에 음행이 벌어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두아디라 교인들은 먹고살기 위해 그들의 행위에 동참해야 하나, 아니면 신앙을 지키기 위해 그것들을 멀리해야 하나 갈등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꼭 유혹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두아디라 교회에는 자칭 선지자라 하는 이세벨이라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당시 광범위하게 퍼져 있던 영지주의 사상을 전파했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은 크게 둘로 나누어지는데, 하나는 육체가 악하니 육체를 괴롭힘으로써 영혼을 육체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금욕주의자들입니다. 이들은 결혼을 못하게 하고 주로 채소만 먹도록 강요했습니다(딤전 4:3 ; 롬 14:2). 반면에 악한 육체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함으로써 육체로부터 해방되고자 한 쾌락주의자들입니다. 이들은 육체의 정욕을 위해서 무엇이든지 먹고 마셨으며 성적으로 방탕한 삶을 살았습니다(딤후 3:6 ; 벧후 2:18 ; 유 1:4). 이세벨은 아마도 쾌락주의자들처럼 영혼과 육체는 서로 관계가 없기 때문에 몸으로 무슨 죄를 짓든 영혼의 구원에는 상관이 없다고 가르쳤을 것입니다. 이는 에베소 교회의 니골라당이나 버가모 교회의 발람의 가르침과 비슷한 것입니다(계 2:6, 14). 이러한 이세벨의 가르침에 두아디라 교회의 많은 성도가 미혹되어 우상의 제물을 먹으며 간음을 행했습니다.
그러한 일은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 계시록 13장에 보면 바다에서 올라온 둘째 짐승이 사람들에게 오른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그 표를 갖지 않은 사람은 아무것도 사거나 팔지 못하게 한다고 경고했습니다(계 13:17). 이런 일들은 생각조차 하기 싫지만 당시 그리스도를 믿기로 작정한 사람들은 이런 고난을 각오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박해 속에서도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그리스도에 대한 순결을 지켰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일제 강점기 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핍박을 피하기 위해 세상과 타협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일제는 신사 참배를 강요했고, 이를 거부한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했습니다. 그러자 신사 참배를 반대했던 상당수의 교회들이 핍박이 두려워 신사 참배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반면에 죽기까지 신사참배를 거부하면서 신앙을 지킨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지혜롭게 신앙생활을 하되 어떠한 경우라도 세상과 타협하거나 가룟 유다처럼 예수님을 배반하지는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한편, 전도를 마친 칠십 명의 제자들이 기쁨으로 돌아와 예수님께 보고를 했습니다. "주여, 주의 이름으로 명령했더니 귀신들도 우리에게 굴복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눅 10:18-20)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낸다고 해서 그것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주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주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했다고 해서 모두 예수님께 인정받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기뻐해야 할 일은 귀신들이 항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 즉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예언을 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를 고치며 방언을 하고 통역을 한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자들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매우 위험합니다. 그런 일들은 귀신들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지팡이를 뱀으로 만드시자 바로의 마술사들도 그들의 술법으로 자신의 지팡이를 뱀으로 만들었습니다(출 7:11, 12). 그들은 나일 강을 피로 만들기도 하고(출 7:22) 나일 강에서 개구리가 올라오게도 했습니다(출 8:7). 말세에 나타날 적그리스도는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여 사람들을 미혹할 것이라고 했습니다(계 13:13). 그러므로 보이는 현상만을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사도 요한이 말한 대로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에 많은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활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요 4:1).
예언을 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를 고치고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압할 수 있다는 것은 기쁘고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복음을 위한 보조적 수단이지 복음의 본질은 아닙니다. 우리가 정작 기뻐해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자신의 이름이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찬송가 483장의 가사처럼 죄가 하나도 없고 아무 병도 없는 영화롭고도 밝은 천국 올라가서 주와 함께 그곳에 길이 살 날을 소망하며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하루의 삶을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