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말씀대로 되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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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23장 15절 - 20절 [개역개정]
15 또한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벧엘에 세운 제단과 산당을 왕이 헐고 또 그 산당을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며 또 아세라 목상을 불살랐더라
16 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산에 있는 무덤들을 보고 보내어 그 무덤에서 해골을 가져다가 제단 위에서 불살라 그 제단을 더럽게 하니라 이 일을 하나님의 사람이 전하였더니 그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되었더라
17 요시야가 이르되 내게 보이는 저것은 무슨 비석이냐 하니 성읍 사람들이 그에게 말하되 왕께서 벧엘의 제단에 대하여 행하신 이 일을 전하러 유다에서 왔던 하나님의 사람의 묘실이니이다 하니라
18 이르되 그대로 두고 그의 뼈를 옮기지 말라 하매 무리가 그의 뼈와 사마리아에서 온 선지자의 뼈는 그대로 두었더라
19 전에 이스라엘 여러 왕이 사마리아 각 성읍에 지어서 여호와를 격노하게 한 산당을 요시야가 다 제거하되 벧엘에서 행한 모든 일대로 행하고
20 또 거기 있는 산당의 제사장들을 다 제단 위에서 죽이고 사람의 해골을 제단 위에서 불사르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더라
설교문 보기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이었던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었습니다(삼상 13:14 ; 행 13:22). 그에 버금가는 왕이 있었는데 남 왕국 유다의 16대 왕인 요시야입니다. 특이한 것은 그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그의 이름과 그가 할 일 등이 미리 예언된 바 있다는 것입니다(왕상 13:2). 요시야는 여덟 삶의 매우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의 아버지 아몬이 스물두 살에 왕이 되어 나라를 다스린 지 2년 만에 신하들의 반역으로 죽임을 당했기 때문입니다(왕하 21:23, 24). 신하들이 왜 아몬을 반역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몬은 그의 아버지 므낫세의 행함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각종 우상을 섬겼고, 므낫세가 나중에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스스로 겸손함 같이 자신을 낮추지 아니하고 더욱 죄를 범했습니다(대하 33:22-23). 그로 인해 유다는 종교적으로 매우 타락했고 예루살렘 성전은 또다시 우상으로 더럽혀졌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요시야는 어린 나이에 갑작스럽게 왕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는 왕이 된 지 8년에 비로소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여전히 16세의 어린 나이였지만 그럼에도 자신은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공식적으로 선포한 것입니다. 하지만 선뜻 종교개혁에 나서지는 못했습니다. 나이도 어렸고 그를 반대하는 세력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4년 뒤인 재위 12년에 종교개혁을 단행합니다(대하 34:3). 그때 요시야는 스무 살이었고, 스바냐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기였습니다(습 1:1). 어쩌면 스바냐 선지자의 예언이 요시야가 종교개혁을 하는데 큰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요시야의 종교개혁을 통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요시야의 종교개혁은 히스기야가 그랬듯이 산당과 우상들을 제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니다(대하 34:3). 당시 성전 안에는 각종 우상들과 그것들을 섬기기 위해 쓰이던 기구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왕하 23:5-6). 요시야의 명령에 따라 그것들은 제거되었고 불살라졌습니다. 이어서 유다와 예루살렘 처처에 세워져 있는 각종 우상들을 제거하고 산당들을 헐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유다 각 성읍에 있는 제사장들을 예루살렘으로 소환했는데(왕하 23:8), 더 이상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그러니까 산당 제사가 각 성읍에 거주하는 제사장들의 주도로 이루지고 있었던 것입니다(왕하 23:5).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은 어떤 왕이 통치하느냐에 따라 크게 요동쳤습니다. 그렇게 된 데에는 제사장을 비롯해 레위지파사람들 즉 종교지도자들의 영향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는 왕들에게 여호와의 이름조차 꺼내지 못했습니다. 그랬다가는 죽임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는 요아스 왕의 악행과 백성들의 불신앙을 지적했다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대하 24:20-22). 그래서 그런지 대부분의 종교지도자들은 우상을 숭배한 왕들의 횡포에 침묵하거나 동조했고(왕하 16:11, 16) 산당의 제사장들처럼 우상숭배에 앞장서기도 했습니다. 백성들을 올바른 신앙의 길로 인도해야 할 종교지도자들이 오히려 불신앙의 앞잡이가 되고 만 것입니다. 이러한 행태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예수님 당시에도 있었고(마 23:15) 오늘날에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
요시야는 그들이 더 이상 제사장의 직무를 담당하지 못하게 했습니다(왕하 23:9). 그들의 직무를 박탈한 것입니다. 다만 다른 제사장들과 더불어 무교병을 먹을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또 왕이 힌놈의 아들 골짜기의 도벳을 더럽게 하여 어떤 사람도 몰록에게 드리기 위하여 자기의 자녀를 불로 지나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힌놈의 아들 골짜기'는 줄여서 '힌놈의 골짜기'로도 불리며(수 15:8) 이곳에 자기 자녀들을 불태워 몰렉에게 제물로 바치기 위한 도벳이라는 산당이 세워져 있었습니다(렘 7:31). 요시야는 더 이상 인신제사를 하지 못하도록 그곳을 부정한 곳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요시야는 유다 여러 왕들이 태양을 위하여 드린 말들을 제하여 버리고 태양숭배 의식에 사용되는 수레들도 모두 불살랐습니다(왕하 23:11). 태양신은 보통 바알과 함께 숭배되었기 때문에 바알의 제단에는 태양상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왕의 지시로 백성들이 바알의 제단들을 헐 때 그 제단 위에 높이 달린 태양상들도 같이 제거했습니다. 아울러 이스라엘에게 범죄 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벧엘에 세운 제단과 산당을 헐었으며 근처에 있는 무덤에서 해골을 가져다가 제단 위에서 불살라 그제단을 더럽게 했습니다.
요시야가 이런 일들을 행할 것이라고 예언을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무명의 선지자로 여로보암이 벧엘에 세운 제단에서 분향할 때에 그 제단을 향해 예언을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그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서 제물로 바칠 것이요 또 사람의 뼈를 네 위에서 사르리라 하셨느니라"(왕상 13:2) 그리고 그가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되었습니다(왕하 23:16).
모압 왕 발락의 부탁을 받고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했던 발람은 오히려 이스라엘을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저주하지 않으신 자를 어찌 저주할 수 있겠는가'라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민 23:8). 그는 또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민 23:19) 사람은 쉽게 말을 바꾸기도 하고 자신이 말한 것에 대해 종종 후회하기도 합니다. 또 자기가 한 말을 지키려 해도 천재지변과 같은 불가항력적인 상황으로 인해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변함이 없으시기에(약 1:17) 말씀하신 바를 반드시 지키시고 이루십니다(히 6:18). 하나님께 불가항력인 일이란 없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그리고 역사를 통해서 여호와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도움으로 삼고 하나님께 소망을 둘 수 있는 것입니다(시 146:5)
2. 회개만이 살 길입니다.
요시야는 산당들과 우상들을 제거한 후에 하나님의 성전을 수리했습니다. 이 일은 요시야가 왕위에 있은지 열여덟째 되는 해 시행되었습니다(왕하 22:3-6 ; 대하 34:8). 종교개혁이 시작된 지 6년 만에 비로소 유다와 예루살렘을 정결케 한 것입니다. 그만큼 유다는 온갖 우상으로 인해 더럽혀져 있었습니다. 특히 성전은 수십 년 동안 관리 소홀로 인해 여러 부분이 훼손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성전을 수리하던 중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율법 책을 발견하게 됩니다. 요시야는 율법 책에 기록된 말씀을 듣고 그의 옷을 찢었습니다(왕하 22:11 ; 대하 34:19). 옷을 찢는 것은 슬픔이나 고통, 분노 등을 표현하는 행위로(창 37:34 ; 수 7:6 ; 왕하 18:37) 요시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옷을 찢으며 통곡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신하들을 시켜 이 말씀에 대하여 하나님께 여쭈어 보도록 했습니다. 그러자 왕이 보낸 사람들이 여선지자 훌다에게로 가서 왕의 말을 전했고, 훌다는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그들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요약하면 유다 왕이 읽은 책의 모든 말대로 유다에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그들이 만든 우상으로 하나님의 분노를 일으켰기 때문입니다(왕하 22:16-17). 그리고 요시야에 대해서는 그가 예루살렘과 그 주민에게는 내리는 온갖 재앙을 보지 않고 평안히 잠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대하 34:28). 비록 유다가 죄로 인해 비참한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지만 요시야는 그때를 면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요시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이 부드러워져 겸손한 자세로 통회하고 자복했기 때문입니다(대하 34:27).
하나님께서는 '통회하는 영혼을 구원하신다'고 하셨습니다(시 34:18 ; 사 66:2). 그러므로 죄인이 살 수 있는 길은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진심으로 돌아오는 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구원해 주시며 심판을 면하게 하실 것입니다.
3. 말씀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요시야는 여선지자 훌다의 말을 전해 들은 후 유다와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장로들을 불러 모으고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비롯해 유다의 모든 백성과 함께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성전에서 발견한 언약책의 모든 말씀을 그들에게 읽어 주었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께 순종하고 이 책에 기록된 언약의 말씀을 따르기로 서약을 했습니다(왕하 23:3). 그리고 그 해에 유월절이 행해졌고(왕하 23:23), 성전에서 발견한 책에 기록된 율법의 말씀대로 유다와 예루살렘에 있는 신접한 자와 점쟁이와 드라빔과 우상과 모든 가증한 것을 다 제거하였습니다. 이처럼 요시야가 사는 날 동안에 백성들은 하나님을 따르고 떠나지 않았습니다(대하 34:33).
그동안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고 산당에서 제사를 드린 데에는 왕들의 영향이 가장 컸지만 제사장들을 비롯한 종교지도자들의 영향도 그에 못지않았습니다. 백성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르게 인도해야 할 책임이 있는 제사장들이 오히려 말씀을 무시하고 산당 제사를 주도했으니 일반 백성들이야 오죽했겠습니까. 물론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닐 것이고 그들 나름대로 사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왕의 명령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산당에서 분향하는 일을 했다고 변명할 수 있습니다(왕하 23:5). 또 지난번에도 말씀드렸듯이 예루살렘 주민이나 인근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과 달리 먼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성전에서 제사하는 것이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큰 부담일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의 거주지 근처에 있는 산당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라고 변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사정들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우선할 수는 없습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건 하나님의 말씀이고 그 말씀이 신앙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이 없는 신앙은 맹목적인 신앙이요 혼합주의 신앙으로 흐를 수 있습니다. 아무리 신앙적인 열심히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거나 바르게 알지 못하면 불신앙의 길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가까이할 뿐만 아니라 말씀을 바로 알고 그 말씀대로 살 수 있도록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그래야 잘못된 교훈이나 혼합주의 신앙에 빠지지 않고 어떤 상황에도 신앙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시야는 8세에 왕위에 올라 31년 동안 유다를 다스렸습니다(왕하 22:1). 그러니까 40이 안 되어 죽음을 맞이한 것입니다. 애굽 왕 느고가 유브라데 강가에 있는 갈그미스를 치려고 올라가고 있었을 때 요시야는 그것을 유다에 대한 직접적인 침략으로 간주하여 애굽 군대를 가로막고 나섰습니다. 이에 애굽 왕은 요시야에게 사자를 보내어 전쟁 상대국이 유다가 아니라 바벨론인 것과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임을 알렸습니다(대하 35:22, 23).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시야는 그들과 싸우다가 므깃도에서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어느 주석가(Matthew Henry)의 견해처럼 요시야로 하여금 그의 왕국에 다가오는 재앙을 보지 않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조치였다고 봅니다.
요시야가 죽자 온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이 애도했고 예레미야 선지자는 그를 위해 애가를 지을 정도로 요시야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신임을 받는 선왕이었습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날이 올 것입니다. 그때가 언젠인지 또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게 될지 알지는 못하지만 그때까지 요시야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지표로 삼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겨야 할 것입니다. 그런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