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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음TV/수요예배설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2023. 9. 12.

성경본문 보기

누가복음 11장 14절 ~ 28절 [개역개정]

14 예수께서 한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을 쫓아내시니 귀신이 나가매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는지라 무리들이 놀랍게 여겼으나
15 그 중에 더러는 말하기를 그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고

16 또 더러는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니
17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지며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지느니라
18 너희 말이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만일 사탄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
19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 재판관이 되리라
20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21 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자기 집을 지킬 때에는 그 소유가 안전하되
22 더 강한 자가 와서 그를 굴복시킬 때에는 그가 믿던 무장을 빼앗고 그의 재물을 나누느니라
23 나와 함께 하지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24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25 가서 보니 그 집이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26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
27 이 말씀을 하실 때에 무리 중에서 한 여자가 음성을 높여 이르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 하니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설교문 보기

예수님에게는 육신의 형제들이 있었습니다. 즉 요셉과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자들로 야고보와 요셉, 시몬 그리고 유다와 그 누이들입니다(마 13:55-56 ; 막 6:3). 그런데 천주교에서는 마리아의 평생 처녀설을 옹호하기 위해 예수님의 형제들과 누이들을 친동생들이 아닌 사촌동생들이라고 주장합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마리아가 '첫아들을 낳았다'(눅 2:7)고 함으로써 예수님 외에도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아들들이 있었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마 12:46 ; 13:55-56 ; 눅 8:19, 20 ; 요 2:12 ; 요 7:3, 5, 10 ; 행 1:14).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곧 하나님의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까지 목수의 일을 하셨습니다(막 6:3). 당시의 유대 관습에 의하면 자녀들은 대부분 아버지의 직업을 계승했는데, 예수님께서는 요셉의 맏아들로서 아버지의 직업인 목수 일을 이어받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서른 살쯤 되어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눅 3:23).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마 4:17)는 말씀을 시작으로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고, 많은 병자들과 귀신 들린 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이 소문이 퍼지자 이스라엘 전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마 4:25 ; 요 6:2). 반면에 예수님을 시기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종교지도자들인 바리새파 사람들과 서기관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시기한 이유는 자신들의 기득권이 위협받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제국의 식민지였지만 제사장이나 서기관, 바리새인 등 종교지도자들은 나름대로 기득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로마 제국은 점령지를 쉽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그곳에 자치정부를 허용했는데, 이스라엘에서는 공회라 불리는 산헤드린이 그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는 기원전 3세기 경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로마의 식민지가 되기 훨씬 전부터 있었던 유대인들의 최고 의결 기관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산헤드린은 제사장과 서기관, 바리새인 등 70여 명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의장은 대제사장이 맡았습니다(눅 3:2 ; 요 18:13). 산헤드린 회원을 비롯한 종교지도자들은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따르자 민란이 일어날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로마 사람들이 와서 유대 민족을 짓밟아 버릴 것이고 아울러 자신들이 누리고 있었던 기득권도 잃게 될 것입니다(요 11:48). 그래서 그들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지 못하도록 '귀신 들려 미친 자' 프레임을 씌어 예수님을 비난했으며(막 3:30 ; 요 7:20 ; 8:48, 52 ; 10:20)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것도 귀신의 왕이라 불리는 바알세불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비방했습니다(마 12:24).

이러한 소문은 가버나움에 사는 가족들에게까지 전해졌습니다(막 3:21). 그래서 어머니 마리아와 그의 동생들이 와서 예수님을 집으로 데려가려고 했는데, 이는 가족들조차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요 7:5). 가족들이 찾아왔다는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냐...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마 12:50). 이는 가족을 외면하신 말씀이 아니라 혈연관계보다 신앙관계가 더 중요함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혈육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하나님의 권속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비록 한 혈통이 아니더라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요 영적으로 한 가족입니다(요 1:12, 13).

예수님께서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는 마리아를 어머니로 모시며 그에게 순종하셨습니다(눅 2:51). 하지만 공생애를 시작하신 후에 마리아는 더 이상 예수님의 어머니가 아닌 다른 사람들처럼 예수님을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요 20:28)이라고 고백해야 할 한 여인에 불과했습니다. 그가 여전히 예수님을 자신의 아들로만 생각한다면 오히려 그는 예수님과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단지 예수님을 낳았다고 해서 그것으로 영적인 관계가 성립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예수님의 참된 가족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막 3:35). 오늘 본문의 말씀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루는 예수님께서 귀신 들려 눈멀고 말 못 하는 사람을 고쳐주셨습니다. 이를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놀랍게 여기면서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 곧 메시아라고 생각을 했습니다(마 12:23). 하지만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라고 비방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설명해 주셨습니다.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지며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지느니라 너희 말이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만일 사탄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눅 11:17-18) 사탄이 자주 쓰는 전략가운데 하나는 서로 싸우게 만들어 나라든 교회든 가정이든 갈라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 전략을 사탄이 자신에게 적용할리 만무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낸 것은 바알세불을 힘입은 것이 아닙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 재판관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눅 11:19). 당시 유대인들 중에는 귀신을 쫓아내는 사람들이 있었고(참조. 행 19:13), 그 가운데는 바리새인의 제자들도 있었습니다(마 12:27). 바리새인들은 자기 제자들이 귀신의 힘을 빌어 그런 일을 했다고 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당연히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은 것이라 주장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신 일을 하나님의 능력이 아닌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을 빌린 것이라 말하는 것은 전혀 사리에 맞지 않습니다. 그리고 "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자기 집을 지킬 때에는 그 소유가 안전하되 더 강한 자가 와서 그를 굴복시킬 때에는 그가 믿던 무장을 빼앗고 그의 재물을 나누느니라"라고 하신 것처럼(눅 11:21-22) 강한 자가 자기 집을 지킬 때에는 그의 재산이 안전하지만 그보다 더 강한 자가 공격해 오면 재산을 다 빼앗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탄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하나님이신 예수님 앞에서는 굴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물며 사탄의 졸개인 귀신들이야 말할 것도 없습니다(마 12:29).

예수님의 논리적인 설명에 바리새인들은 아무 대구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무리 중에서 한 여자가 소리 높여 말했습니다.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눅 11:27) 그녀는 예수님께서 지혜롭고 권위 있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크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예수님을 낳고 기른 여인은 하나님께 얼마나 큰 복을 받은 사람인가 하며 마리아를 칭송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마리아가 복 받은 여인(눅 1:42)이기는 하지만 그보다 더 복 있는 사람은 혹은 정말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라는 것입니다. 단지 예수님을 낳았다고 해서 혹은 예수님과 혈연관계에 있다는 것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라야 하나님의 권속이며 그런 자들이 진정 복 있는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이를 표면적 유대인과 이면적 유대인을 대조시켜 설명을 했습니다.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롬 2:28-29) 할례는 이스라엘 민족과 하나님 사이에 맺은 언약의 징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신 후 그 징표로 모든 남자에게 할례를 명하셨습니다(창 17:10). 할례는 태어난 지 8일째 되는 날 행해졌는데(창 17:12) 예수님께서도 할례를 받으셨습니다(눅 2:21). 이스라엘 사람들은 할례를 통해 자신들이 이방 민족과 구별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할례를 받은 사람이냐 아니냐를 철저히 따졌고 이스라엘 공동체의 일원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그가 이스라엘 자손이 아닐지라도 반드시 할례를 받아야만 했습니다(출 12:48). 심지어 할례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목숨처럼 지키는 안식일에도 행해졌습니다(요 7:23). 이처럼 할례는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한 종교의식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할례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동시에 구원의 필수 조건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할례는 구원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할례는 구별의 표시이지 구원의 표시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약의 세례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는 것이지 세례를 통하여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세례는 나름대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세례는 예수님의 명령으로(마 28:19) 언제나 복음이 먼저 선포되고, 그것이 받아들여진 후에 베풀어졌습니다(막 16:16 ; 행 2:38, 41 ; 8:12 ; 16:14, 15). 이것은 세례가 믿음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즉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자녀 됨을 증거 하는 예식이며, 세례를 받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믿음을 공개적으로 고백하고 선포하는 의식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세례는 구원을 얻기 위해서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는 것을 증거 하는 표가 되는 것입니다(벧전 3:21).

바울은 세례에 대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죽으심과 합하는 것'이라고 했는데(롬 6:3, 4), 이는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골 3:9). 동시에 새로운 생명을 소유하게 됨을 의미하기도 합니다(롬 6:4, 11).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생명을 소유한 사람들은 죄악 된 옛 생활을 벗어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갈 2:20 ; 고전 10:31). 이는 할례도 마찬가지입니다. 할례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죄악 된 생활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는 백성이 되겠다는 상징적 의식입니다. 그러기에 할례를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방 민족과 달리 구별된 삶을 살겠다는 마음의 결단을 해야 합니다. 진정한 할례는 마음에 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렘 4:4).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제일 된 목적이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사람들은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보다도 더 친근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마 12:50). 그러므로 우리 교우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요 자매들처럼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서로 다른 사람들의 일도 돌보아 주는 참된 교제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