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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음TV/수요예배설교

탐심을 물리치라

2023. 9. 13.

성경본문 보기

누가복음 12장 13절 ~ 21절 [개역개정]

13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14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15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16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설교문 보기

예수님께서 무리에게 말씀을 전하고 계실 때 어떤 사람이 한 가지 청을 했습니다. "선생님, 내 형더러 유산을 나와 나누어 가지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율법에 의하면 장남은 아버지의 재산에서 두 사람 몫을 받게 되어있습니다(신 21:17). 그리고 만일 재산 분배가 정당하게 이뤄지지 않았다고 여겨지면 보통 랍비에게 가서 중재를 요청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 사람의 형은 아버지의 유산을 독차지하려고 했거나 율법에 명시된 것보다 더 많은 재산을 가지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중재를 요청한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그를 나무라듯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예수님께서는 세속적인 일에는 별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특히 재물에 관해서는 소유가 아닌 나눔을 강조하셨습니다(마 19:21). 심지어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매우 어렵다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마 19:23 ; 눅 18:24). 재물은 그것을 소유하면 할수록 하나님과 가깝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하나님과 멀어지게 합니다. 재물이 많은 사람은 그것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재물만 있으면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고, 어떤 어려움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실제로 재물이 많은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부자는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의지하게 되며 하나님 없이도 스스로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결국 부자에게 있어서 재물은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는 우상과 다를 바 없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향해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고 하셨습니다. '탐심(πλεονεξία)'이란 '더 크게 혹은 더 많이 가지려고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탐심을 물리치라'고 하신 이유는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재물이 아무리 많더라도 그것이 생명을 보장해 주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재물은 행복과 비례하지 않습니다. 재물이 많다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재물을 많이 가지고 있음에도 불행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적은 재물을 가지고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잠 15:17). 유엔(UN)의 한 자문기구(SDSN)에서 매년 '국제 행복의 날'인 3월 20일에 국가별 행복지수를 조사한 '세계행복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를 발표합니다. 2023년 보고서에 의하면 1위는 핀란드이고, 미국은 15위, 일본은 47위, 우리나라는 57위였습니다. 2022년 기준 1인당 국민소득(GNI)이 1위인 나라는 스위스입니다. 하지만 행복지수는 8위였습니다. 핀란드는 1인당 국민소득이 12위였지만 행복지수는 1위입니다.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23위이고, 행복지수는 57위입니다. 우리나라보다 국민소득이 낮은 나라이면서 행복지수가 높은 국가도 많습니다. 중앙아메리카에 있는 니카라과의 경우 1인당 국민소득은 91위이지만 행복지수는 40위였습니다. 이는 행복이 재물(소득)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재산이 많다고 해서 오래 사는 것도 재산이 없다고 해서 일찍 죽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의 생명은 재산이 많고 적음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명(人命)은 재천(在天 )'이라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한 비유를 들어 설명하셨습니다. 어떤 부자가 밭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걱정이 생겼습니다. 현재 있는 곳간으로는 그 많은 곡식을 쌓아 둘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부자는 '어떻게 할까' 궁리하다가 있는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영혼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사람은 한 치 앞도 모르는 존재입니다. 생명에 관해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지금이라도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그 즉시 이 세상을 떠나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의 시간들이 마치 자기 손안에 있는 줄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야고보서에 보면 '오늘이나 내일 아무 도시에 가서 한 해 동안 장사하여 돈을 벌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나옵니다(약 4:13). 장사하는 사람이 사업을 계획하고 그를 통해 수익을 얻고자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문제는 자신의 힘으로 그것을 해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라고 했습니다(시 127:1). 하나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시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인생입니다.

더욱이 인생은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은 존재입니다. 사람의 생명이라고 하는 것은 덧없고 짧은 것입니다. 보통 인생은 7-80이고(시 90:10) 강건해야 100살 미만입니다. 물론 그보다 더 많이 사시는 분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습니다. 그리고 보통이라고 하는 것은 아무 사고 없이 정상적으로 살 때를 말하는 것이지 누구나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결코 먼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우리 곁에 있습니다. 언제든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도로 찾으시면 우리는 세상의 모든 것을 남겨둔 채 떠나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이나 내일 아무 도시에 가서 한 해 동안 장사하여 돈을 벌겠다’가 아니라 '주의 뜻이라면 우리가 살 것이고, 또 이런 일이나 저런 일을 할 것'이라고 말해야 합니다(약 4:15). 즉 모든 일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내가 비록 그것을 누리지 못하더라도 내 자녀가 그것을 누리면 되지 않느냐'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모르는 일입니다. 여러분이 남겨 두고 간 재산이 예수님께 유산의 분배를 요청했던 사람의 가정처럼 형제 사이를 멀어지게 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 재산 상속 문제로 형제자매끼리 싸우고 소송을 벌이는 경우가 흔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남기고 간 재산이 자녀에게 유익이 될지 해가 될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가 이 세상을 떠날 것이고 그때 모든 것을 남겨두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가지려는 탐심이나 더 크게 되려는 욕망을 버려야 합니다. 그것은 영적인 측면에서는 물론이고 세상적으로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해가 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 대신 이 세상에 더 집착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탐심을 가지게 되면 하나님보다는 세상적인 이익이나 물질을 추구하게 되므로 결국 하나님을 떠나게 되고 신앙과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셨고(마 6:24), 바울은 탐심을 '우상숭배'라고 했습니다(골 3:5).

만일 우리가 이 세상의 일에 너무 집착하게 되면 그 보다 더 중요한 문제를 놓치게 됩니다. 그것은 영적인 것 곧 신앙의 문제입니다. 재물 자체는 결코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이고 또 그것을 많이 소유했다고 해서 불의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재물이라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예수님의 비유에 나오는 부자는 불의한 사람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것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사용하지 않고 자신을 위해서만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자들을 '자기를 위해 재물을 쌓아 두면서도 하나님께 대하여는 부요하지 못한 자'라고 하셨습니다(눅 12:21).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예수님께서는 재물에 대하여 소유가 아닌 나눔을 강조하셨습니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눅 12:33) 이것이 곧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는 것이고(마 6:20) 그런 사람이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입니다.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라'는 것은 이 세상에 있는 것들처럼 언젠가는 없어질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에 가치를 두라는 의미입니다. 영원한 것이란 하나님께서 선하게 여기시는 것,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들을 말합니다(요 8:29 ; 롬 12:2 ; 요일 2:17). 예를 들어,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받는 것(롬 5:12)이나 남을 용서해 주는 일(14, 15), 가난한 이웃을 돕거나(19:21 ; 눅 12:33) 남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10:42 ; 25:40) 등을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탐심을 물리쳐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바울처럼 자족하는 마음을 배워야 합니다(빌 4:11 ; 딤전 6:6). 스스로 넉넉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재물에 대해 탐욕을 품지 않습니다. 그는 재물이 결코 영혼을 만족시켜 줄 수가 없으며 진정한 행복은 재물의 많음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적은 것에도 감사할 수 있으며, 작은 일에도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