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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음TV/주일예배설교

바벨론 왕을 섬기라

2023. 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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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25장 22절 ~ 26절 [개역개정]

22 유다 땅에 머물러 있는 백성은 곧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남긴 자라 왕이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달리야가 관할하게 하였더라
23 모든 군대 지휘관과 그를 따르는 자가 바벨론 왕이 그달리야를 지도자로 삼았다 함을 듣고 이에 느다니야의 아들 이스마엘과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느도바 사람 단후멧의 아들 스라야와 마아가 사람의 아들 야아사니야와 그를 따르는 사람이 모두 미스바로 가서 그달리야에게 나아가매
24 그달리야가 그들과 그를 따르는 군사들에게 맹세하여 이르되 너희는 갈대아 인을 섬기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이 땅에 살며 바벨론 왕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가 평안하리라 하니라
25 칠월에 왕족 엘리사마의 손자 느다니야의 아들 이스마엘이 부하 열 명을 거느리고 와서 그달리야를 쳐서 죽이고 또 그와 함께 미스바에 있는 유다 사람과 갈대아 사람을 죽인지라
26 노소를 막론하고 백성과 군대 장관들이 다 일어나서 애굽으로 갔으니 이는 갈대아 사람을 두려워함이었더라

 

설교문 보기

남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기 전 이미 두 차례에 걸쳐 다수의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이를 '바벨론 유수'라고 하는데 유수(幽囚)란 '잡아 가둔다'는 뜻입니다. 1차는 여호야김 왕 재위 4년에 있었습니다(렘 25:1). 이때 다니엘을 비롯해 젊은 왕족과 귀족들이 사로잡혀 갔습니다(단 1:1-7). 여호야김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여호야긴은 즉위 3개월 여 만에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왕하 24:14-16 ; 겔 1:2-3, 5). 이때 에스겔 선지자를 비롯해서 1만여 명이 함께 사로잡혀 갔는데, 이것이 2차 바벨론 유수입니다. 그리고 기원전 586년 유다는 멸망합니다. 이때도 시드기야 왕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가거나 죽임을 당했습니다(왕하 25:21 ; 렘 39:9).

후에 유다의 상황이 어떠했는지에 대해서 열왕기 기자는 다섯 절(왕하 25:22-26)로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는데, 예레미야서에는 5장(40장-44장)에 걸쳐 상세하게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멸망 이후의 유다의 상황이 어떠했는지를 살펴보고 그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이 무엇인지 상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듣고 싶은 말만 듣거나 믿고 싶은 것만 믿어서는 안 됩니다.

바벨론 왕이 아히감의 아들 그달리야(그다랴, 렘 39:14)를 유다의 총독으로 삼고 바벨론에 사로잡혀 가지 않은 그 땅의 사람들을 그에게 맡겼습니다(렘 40;7). 이 소문을 듣고 여러 곳에 피신해 있던 사람들이 미스바에 있는 그달리야에게로 모여 들었습니다(렘 40:12). 그중에는 군대의 지휘관들도 있었습니다(렘 40:8). 그달리야는 그들에게 맹세하며 말했습니다. "너희는 갈대아 인을 섬기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이 땅에 살며 바벨론 왕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가 평안하리라"(왕하 25:24) 갈대아 사람들에게 대항하지 말고 바벨론 왕을 섬기면 안전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유다가 멸망하기 전 예레미야 선지자가 시드기야 왕과 백성에게 전한 말과 일맥상통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미 오래전부터 유다의 파멸을 예언해 왔습니다. 그리고 유다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의 즉위 초기에 다시 한번 유다의 멸망을 선포하며 바벨론 왕과 그의 백성을 섬길 것을 촉구했습니다(렘 27:12).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므로 그들에게 대항하지 말 것을 권고했습니다(렘 27:13). 아울러 거짓 선지자들의 예언을 믿지 말라고 경고했는데, 그들은 바벨론이 곧 망할 것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항복하지 말고 저항해야 한다고 했습니다(렘 27:9). 그러면서 이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말씀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거짓 선지자 하나냐는 하나님께서 바벨론 왕의 멍에를 꺾어 버렸으니 바벨론에 빼앗긴 성전의 기구들과 포로로 잡혀간 백성들이 2년 내에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예언을 했습니다(렘 28:2-3, 11). 예레미야는 그들이 거짓을 예언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그들의 말을 듣지 말고 바벨론 왕을 섬겨야 살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렘 27:17). 하지만 시드기야 왕과 유다의 지도자들은 예레미야의 말보다 거짓 선지자들의 말에 더 귀를 기울였습니다. 듣고 싶은 말만 들은 결과입니다. 한 나라의 왕으로서 다른 나라의 왕을 섬긴다는 것은 매우 치욕적인 일이지만 예레미야가 선지자가 그래야만 살 수 있다고 하니 굉장히 불안하고 불편했을 것입니다. 그러던 차에 거짓 선지자들이 바벨론은 곧 망할 것이니 그럴 필요 없다, 그들에게 항복하지 말고 저항해야 한다고 예언을 하니 그들의 말을 믿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벨론 왕을 배반하고(왕하 24:20) 애굽의 지원을 요청하는 등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을 강구했지만 그것으로 유다의 멸망을 결정하신 하나님의 뜻을 돌이킬 수는 없었습니다.

우리는 듣고 싶은 말만 들어서도 안 되고, 긍정적인 말만 들으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때론 책망도 들어야 되고, 듣기 싫은 말에도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성경에는 좋은 말이나 긍정적인 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심판과 저주의 경고도 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그리심 산에서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 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라고 했습니다(신 11:29). 그 명령에 따라 여호수아는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축복과 저주에 대한 말씀을 하나도 빠짐없이 낭독했습니다(수 8:34-35). 참된 신앙은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것이 아니라 비록 자신이 보기에 부당하거나 불합리하다고 생각되는 것일지라도 혹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일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 뜻에 순응하는 것입니다(마 26:39 ; 고전 9:27).

2. 사람을 지나치게 신뢰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달리야가 유다의 총독이 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그에게로 온 사람들 가운데 느다니야(느다냐, 렘 40:8)의 아들 이스마엘이 있었습니다. 그는 왕족이면서 왕의 신하이기도 했는데(렘 41:1) 암몬 왕이 그를 부추겨 그달리야를 죽이도록 했습니다(렘 40:14). 이를 알게 된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이 그 사실을 그달리야에게 알리면서 자신이 이스마엘을 조용히 제거하도록 허락해 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달리야는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말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렘 40:16). 그는 요하난이 잘못 알고 있거나 혹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어쩌면 왕족인 이스마엘을 신뢰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달리야는 자신에게 온 이스마엘과 그의 일행을 경계하지 않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다가 살해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때가 일곱째 달인데(렘 41:1) 유대인들이 일곱째 달에 금식을 하는 것은(슥7:5 ; 8:19) 그달리야의 죽음을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웃을 믿지 말며 친구를 의지하지 말라"고 했습니다(미 7:5). 다윗은 "내가 신뢰하여 내 떡을 나눠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다"고 고백했습니다(시 41:9). 사람을 너무 의심하는 것도 문제지만 지나치게 신뢰하는 것은 더 큰 문제입니다. 가장 친했던 친구가 원수가 되기도 하고,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결코 변함이 없으십니다(히 13:8).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만을 신뢰하고 의지해야 합니다(시 118:9). 그러면 배신을 당할 염려도 없고 실망하지도 않아도 됩니다. 사람은 사랑의 대상이지 신뢰의 대상이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3. 신앙 밖으로 나가지 말아야 합니다.

이스마엘에 의해 총독인 그달리야가 살해를 당하고 나머지 백성들은 암몬으로 끌려갈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에 요하난과 그와 함께 있던 지휘관들이 이스마엘의 손에서 백성들을 구하여 애굽으로 내려가려고 했습니다(렘 41:17). 그들은 애굽으로 가기 전에 먼저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갔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묻기 위해서였습니다. 즉 유다에 남아야 할지 아니면 애굽으로 가야 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예레미야를 찾아온 것입니다. 이에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나님께서는 애굽으로 들어가지 말라는 응답을 주셨습니다. 왜 애굽으로 가지 말라고 하신 걸까요?

애굽은 이스라엘 백성이 400여 년간(출 12:40) 노예생활을 하던 곳으로 우상숭배가 만연해 있었고, 이스라엘 백성 역시 이방 신들을 섬겼습니다(수 24:14 ; 겔 23:3). 하나님께서는 모세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게 하셨습니다. 가는 도중에 홍해를 만나게 되었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무사히 건널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이스라엘의 홍해 도하를 세례에 비유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고전 10:2). 또 스데반은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생활을 교회에 비유했습니다.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행 7:38) 그리고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가나안을 하늘나라에 비유를 했습니다. "또 하나님이 사십 년 동안 누구에게 노하셨느냐…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에게가 아니냐 이로 보건대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히 3:17-19) 안식은 출애굽 한 백성들에게 있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했습니다(신 3:18-20). 즉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안식은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상속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신약시대에는 안식이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즉 신약시대의 성도들에게 있어서 안식은 하늘나라를 기업으로 상속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히 4:1)

이처럼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의 여정은 마치 세상에서 살다가 예수님을 믿고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가기까지의 여정과 매우 흡사합니다. 이로 볼 때 애굽은 영적으로 죄악 된 세상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으로 간다는 것은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신앙을 포기하고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유다에 남아 있는 백성들에게 애굽으로 가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유다 땅에 남는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안전하게 지키시고 보호해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렘 42:10). 그들이 유다 땅에 남는다는 것은 그들이 신앙 안에 머문다는 뜻이고 이는 곧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의미이므로 그렇게 할 경우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들의 삶을 책임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그들을 바벨론 왕의 손에서 구원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렘 42:11).

이제 유다 백성들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고 유다에 남을 것인가 아니면 애굽으로 갈 것인가를 말입니다. 그런데 요하난을 비롯한 백성들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애굽으로 가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사실 그들은 처음부터 애굽으로 가려고 했습니다(렘 42:20). 그럼에도 하나님의 뜻을 물은 것은 자신들의 결정에 동의를 얻고자 하는 마음에서였고 그들이 애굽으로 가기로 결정한 이유는 하나님보다 애굽 곧 세상을 더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애굽 땅으로 들어가면 전쟁도 겪지 않고 굶주림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렘 42:14). 당시 애굽은 바벨론과 맞설 수 있는 강대국이었고, 식량이 풍부하고 평화로운 곳으로 여겨졌습니다. 따라서 유다 백성은 애굽으로 가면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인 그리스도인들은 어려운 때를 만날수록 세상보다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며, 사람이나 재물보다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아야 합니다(시 73:28). 그럴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로하시고 환란에서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신뢰하지 아니하고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의지하는 사람들은 그로 인하여 큰 낭패를 보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어떤 어려움이 온다고 할지라도 끝까지 인내하며 신앙을 간직하는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으로 갚아 주시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불의를 따라 세상으로 가는 사람들에게는 분노와 형벌로 갚으실 것입니다(롬 2:7, 8).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 밖으로 세상으로 가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과 교회를 떠나 일, 신앙 밖으로 가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