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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음TV/수요예배설교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삼으라

2023.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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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6장 1절 ~ 13절 [개역개정]

1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2 주인이 그를 불러 이르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3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4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5 주인에게 빚진 자를 일일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느냐
6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7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빚졌느냐 이르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8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10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11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12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13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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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일명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라고 합니다. '청지기'란 '주인의 소유를 관리하고 운영할 수 있는 권한을 위임받은 사람'을 말합니다(창 39:4 ; 눅 12:42).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었는데, 그가 주인의 재산을 낭비한다는 소문이 들렸습니다. '낭비하다'는 말은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둘째 아들에게도 사용되었습니다(13). 그는 허랑방탕에서 아버지의 재산을 낭비했고 청지기는 주인의 재산을 흥청망청 허비해 버렸습니다. 이에 주인은 그 청지기를 불러 "더 이상 청지기의 직무를 맡길 수 없으니 지금까지 하던 일을 청산하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청지기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여러 직업들을 고려해 봤지만 자신에게 맞는 직업은 없었습니다. 땅을 파는 일은 힘들어서 못할 것 같고, 구걸하는 일은 창피해서 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채무자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일이었습니다. 어느 주석가의 말처럼 채무를 감면해 주고 그들을 자신의 친구로 삼으려 한 것입니다. 그러면 청지기 일을 그만둘 때 자기를 그들의 집으로 맞아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청지기는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한 사람씩 불러들였습니다. 본문에는 두 명이 언급되었는데, 하나는 기름 백말을, 또 하나는 밀 백석을 빚진 자였습니다. 기름 백 말은 약 2,300 리터에 해당되는데, 올리브나무 한그루에서 얻을 수 기름은 평균 25리터라고 합니다. 돈으로 환산하면 기름 백말은 1000데나리온 정도가 됩니다. 그리고 밀 백석은 22톤 정도로 돈으로 환산하면 약 2,500데나리온에 해당합니다. 청지기는 그들에게 채무 증서를 주면서 각각 오십 말과 팔십 석으로 적으라고 했습니다. 기름 백 말을 빚진 자에게는 50%를, 밀 백석을 빚진 자에게는 20%를 감면해 준 것입니다. 이는 이자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는데, 율법에는 이자를 받지 못하도록 되어 있지만(출 22:25) 대부분은 이자를 받았다고 합니다. 청지기는 다른 채무자들에게도 이러한 수준에서 빚을 감면해 주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청지기는 자신이 실직한 후에 그들에게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주인의 입장에서 보면 청지기의 행동은 분명 옳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주인은 그의 행동을 칭찬해 주었습니다. 그의 행동이 옳았기 때문이 아니라 지혜로웠기 때문입니다. 말이 지혜이지 사실은 약삭빠르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 세대의 아들들 곧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의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 즉 하나님의 자녀들보다 더 현명하고 신중하게 행동합니다. 그들은 비록 세상에 없어질 것을 위해 일을 하지만 그것을 위해 열심히 그리고 신중하게, 서로 화합하며 살아갑니다. 그에 비해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내세를 소망하며 산다고 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세상 사람들보다 지혜롭지도 못하고 서로 화합하기보다는 시기하고 질투하며 또 안일하게 살아갑니다. 이 비유는 그런 자들을 위한 경고인 동시에 각성의 메시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마치시면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 할 처소로 영접하리라"(눅 16:9). '불의의 재물'이란 불의하게 얻은 재물이나 재물 자체가 불의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재물은 그 자체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한 것입니다. 재물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불의의 재물'이란 참된 재물(11) 곧 하늘의 보화와 대비되는 '세상의 재물'을 가리킵니다. 또 그것으로 '친구를 사귀라'‘는 것은 청지지가 채무자들에게 호의를 베푼 것처럼 가난한 자들, 어려움에 처한 자들을 도와주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곧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는 것'입니다(마 6:20; 눅 12:33). 청지기는 이 땅에서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은 영원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재물이 없어질 때 즉 죽음을 맞이할 때 그들이 영원한 처소로 그를 영접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눅 16:9). 그들에게 한 것이 곧 주님에게 한 것이고(마 25:40) 그것이 곧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마 7:21 ; 요일 2:4 ; 미 6:8).

예수님께서는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눅 16:10-12)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가지고 있는 것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주인이신 하나님의 소유이며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재산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일시적으로 맡은 청지기에 불과합니다. 청지기가 할 일은 맡은 재산을 주인의 뜻에 따라 사용하는 것입니다. 불의한 제물 곧 세상 재물은 참된 재물인 하늘의 보화에 비하면 지극히 작은 것이지만 그 일에 충실한 자들에게는 내세에서 참되고 영원한 것을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에 대한 결론으로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눅 16:13) 재물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이지만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보다 우선일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재물은 우상숭배가 됩니다. 재물뿐만 아니라 그 어떤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하는 것이 바로 그런 이유에서 입니다. 우리가 재물을 신뢰하고 의지하면 할수록 그것은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결국은 한편을 미워하고 다른 편을 사랑하든지 아니면 한편에게는 충성을 다하고 다른 편은 무시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그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모든 말씀을 듣고서 예수님을 비웃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로(눅 16:14)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의로운 자들이라 여겼고,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구제를 하고(마 6:1) 금식을 하며 십일조를 드렸습니다(눅 18:12). 또 스스로를 백성의 종교지도자로 자처하며 사람들에게 존경과 높임 받기를 원했고,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기 원했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부유하게 살았는데, 그 이유를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보답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행위는 가증스러운 위선에 불과했습니다. 그들이 부유하게 된 것은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아서가 아니라 율법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사람들 특히 과부들의 재산을 착복한 결과입니다(눅 20:47).

오늘날에도 그런 자들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2장(3)에 보면 '그들이 탐심으로써 지어낸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득을 삼는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는 거짓 선생들이 자신들의 가르침에 미혹된 사람들을 이용하여 경제적인 이익을 얻으려 한다는 의미입니다(딛 1:11 ; 딤전 6:6 ; 유 1:16). 또 미가 3장(5)에 의하면 거짓 선지자들은 "이에 물것이 있으면 평강을 외치나 그 입에 무엇을 채워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전쟁을 준비한다"고 했습니다. 그들에게 재물을 주는 자들에게는 평안을 말해 주고 재물을 주지 않는 자들에게는 좋지 못한 말로 위협한다는 것입니다. 본래 선지자란 하나님의 대변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사람들에게 전달해 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과의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선포했기 때문에 종종 이를 못 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로부터 핍박을 받았습니다(마 23:34, 35). 반면에 거짓 선지자들은 매우 안정적인 생활을 누렸습니다. 그들은 자신에게 재물을 주는 사람에게는 평안을 이야기했고 재물을 주지 않는 사람에게는 화를 예언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은 재산을 모으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거짓 선생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먹이며 사람들을 속여서 많은 재물을 축적하고 호화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이런 자들이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벧후 2:3).

또 바리새인들이 존경을 받고 높임을 받는 것 역시 그들이 강요한 결과이지 백성들의 자발적인 존경이 아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누구보다 하나님을 잘 섬긴다, 율법을 잘 지킨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말씀보다 전통을 더 중요시했고,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섬긴 사람들이었습니다. 또 겉으로는 경건한 척 행동하고 아름답게 보이도록 꾸미지만 그 속에는 탐욕과 악독과 위선과 불법 등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마 23:25-28). 겉모습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중심 곧 마음입니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 행실도 바른 법입니다(마 23:1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불의한 청지기가 해고를 당한 것처럼 우리도 언젠 가는 청지기의 직분을 내려놓을 때가 올 것입니다. 그날이 곧 우리의 생을 마감하는 날입니다. 우리가 언제 청지기 직 해고 통보를 받게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 후에 우리는 주인이신 하나님과 청지기 직무에 대한 셈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가 진실한 청지기였는지(눅 12:42) 아니면 불의한 청지기였는지가 판명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들을 최선을 다해 수행하고 감당할 수 있는 성실하고 진실하며 지혜로운 청지기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