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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음TV/주일예배설교

아론 자손에게 도피성을 주었으니

2023.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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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상 6장 54절 ~ 60절 [개역개정]

54 그들의 거주한 곳은 사방 지계 안에 있으니 그들의 마을은 아래와 같으니라 아론 자손 곧 그핫 종족이 먼저 제비 뽑았으므로
55 그들에게 유다 땅의 헤브론과 그 사방 초원을 주었고
56 그러나 그 성의 밭과 마을은 여분네의 아들 갈렙에게 주었으며
57 아론 자손에게 도피성을 주었으니 헤브론과 립나와 그 초원과 얏딜과 에스드모아와 그 초원과
58 힐렌과 그 초원과 드빌과 그 초원과
59 아산과 그 초원과 벧세메스와 그 초원이며
60 또 베냐민 지파 중에서는 게바와 그 초원과 알레멧과 그 초원과 아나돗과 그 초원을 주었으니 그들의 종족이 얻은 성이 모두 열셋이었더라

 

설교문 보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은 가나안이었습니다(창 17:8 ; 출 6:4). 가나안은 요단 강 서편의 땅으로 지금의 이스라엘 지역입니다. 그런데 요단 강 동편 지금의 요르단과 골란 지역에도 일부 이스라엘 사람들이 거주하게 됩니다. 그들은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요단 동편에서 땅을 기업으로 받았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아홉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는 요단 서편에서 기업을 분배받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성전에서 봉사하는 직무를 맡은 레위 지파 사람들에게는 생업을 위한 토지가 별도로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가 그들의 기업이었기 때문입니다(민 18:20 ; 수 13:14). 즉 레위지파 사람들은 다른 지파 사람들처럼 생계 보장을 위해 땅을 기업으로 받는 대신 하나님께 드려진 제물 가운데 일부(민 18:8-14, 19)와 십일조(민 18:21) 등을 분깃으로 받았습니다. 하지만 레위지파 사람들도 그들이 거주할 수 있는 최소한의 처소와 생활 터전이 필요했습니다. 아울러 가축과 짐승들을 키울 수 있는 목초지가 필요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마흔여덟 성읍을 주도록 하셨습니다(민 35:7).

그중에는 여섯 개의 도피성이 포함되었습니다(민 35:6). 이 도피성은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가 거하는 요단 강 동편에 세 성읍이 배정되었고, 나머지 세 성읍은 요단 강 서편에 배정되었습니다(민 35:14). 이렇게 하나님께서 도피성을 만들도록 지시하신 이유는 부지중에 살인한 자를 보호하기 위함이었습니다(신 4:42 ; 수 20:3). 즉 고의가 아닌 실수로 살인한 경우, 예를 들어 벌목을 하는데 도끼가 자루에서 빠져 다른 사람을 맞춰 죽게 했을 경우(신 19:5) 또 우연히 누군가를 밀치거나 무엇을 던져서 사람을 죽게 했다면(민 35:22-23) 이는 고의도 아니고 악의적이지도 아닌 과실이었기에 그를 죽이는 것은 합당하지 않지만 피를 보복하는 자 곧 피살자의 가족이나 친척이 복수심에 불타 그를 죽일 수 있기 때문에 그들로부터 그를 보호하기 위해 도피성을 만들도록 하신 것입니다. 부지중에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는 도피성으로 가서 그 성읍의 장로들에게 사건의 경위를 설명합니다. 그러면 장로들은 그에게 성읍의 일정한 장소를 제공하고 그가 판결을 받기까지 그의 신변을 보호해 주어야 했습니다(민 35:12). 그리고 재판을 통해 실수나 부주의로 인한 살인으로 판명되면, 그는 도피성에 머물러 있다가 대제사장이 죽은 후에야 비로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민 35:28). 하지만 고의적인 살인으로 판결되면 보복자의 손에 넘겨져 처형되어야만 했습니다(민 35:16-21).

또 부지중에 살인자가 그 피하였던 도피성 밖으로 나가게 되면 복수할 자가 그를 죽여도 죄가 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살인자가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그 도피성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규례를 어겼기 때문입니다(민 35:26-28). 이러한 도피성에 관한 규례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첫째, 도피성은 하나님의 긍휼 하심을 보여줍니다.

사람은 누구나 완전하지 못하므로 실수를 범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의 실수에 대해 관용하시고 회개하는 자를 용서해 주십니다. 도피성 역시 연약한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반영한 규례였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은 도피성을 정함에 있어서도 나타납니다. 도피성은 총 여섯 성읍으로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가 거하는 요단 강 동편에 세 성읍이 배정되었고, 나머지 세 성읍은 요단 강 서편에 배정되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요단 동편의 도피성은 각 지파에 하나씩 있었고, 요단 서편의 도피성은 가나안 땅 전체를 평균하여 세 구획으로 나눈 후 각 구획의 중심부에 설치했습니다(신 19:3). 그래야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어느 곳에 있든지 보복자로부터 쉽게 따라 잡히지 않고, 가장 가까운 곳의 도피성으로 도망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 성읍의 위치는 도망자가 그중 어느 도피성에든 하룻길에 도달할 수 있도록 배치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배정된 도피성은 요단 동편에 르우벤 지파의 베셀과 갓 지파의 길르앗 라못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의 바산 골란이었고(수 20:8) 요단 서편에는 납달리 지파의 갈릴리 게데스와 에브라임 지파의 세겜 그리고 유다 지파의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이 배정되었습니다(수 20:7).

그리고 도피성은 레위의 세 아들 곧 게르손과 그핫과 므라리(대상 6:1, 16)의 자손에게 각각 두 성읍씩 배정되었습니다. 게르손 자손에게는 요단 서편의 바산 골란(수 21:27)과 요단 동편 갈릴리 게데스(수 21:32)가 배분되었고, 그핫 자손에게는 세겜(수 21:20)과 헤브론(수 21:13) 두 성읍이 배정되었습니다. 이 중에서 헤브론은 아론 자손에게 주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므라리 자손에게는 요단 동편의 베셀(수 21;36)과 길르앗 라못(수 21:38)이 배분되었습니다. 유대 전승에 따르면, 도피성 주위에는 높은 성벽과 같은 장애물이 없었다고 합니다. 또 이 성읍들에는 생필품들이 갖춰져 있어서 생활하는데 큰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도피성으로 가는 길을 닦으라고 하셨는데(신 19:3), 이 역시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도피성으로 쉽게 도망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이 길은 넓고 평탄하게 잘 닦여져 있었고 큰 글자로 '미크라트'(מִקְלָט , 도피처)라고 써 놓은 표지판이 있어 누구나 볼 수 있게 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도피성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 도피성은 피난처 되시는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셨는데, 그 방법은 도피성 안으로 피하는 것입니다. 이는 영적으로 죄를 범한 인간이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고, 누구든지 그를 믿는 사람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요 3:16). 누구든지 라고 하는 것은 한 사람도 예외가 없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도피성을 ‘이스라엘 자손과 타국인과 이스라엘 중에 우거하는 자의 도피성'이라고 하셨는데(민 35:15) 이는 구원의 길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그가 누구이든지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법이며, 이 외에 죄인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행 4:12).

또 도피성으로 피한 자는 대제사장이 죽기 전에는 속전을 받고 돌려보내서는 안 되었습니다(민 35:32). 속전이란 죄를 사함 받기 위해 지불되는 돈으로(출 21:30 ; 30:12 ; 민 35:31) 여기서는 피해자 가족에 대한 보상금을 말합니다. 도피성에 피한 자를 대제사장이 죽기 전에 밖으로 내보내서는 안 되는 이유는 피 흘림을 받은 땅은 그 피를 흘리게 한 자의 피가 아니면 속함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민 35:33). 비록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피해자 가족에게 보상금을 주고 자신을 죽이지 않기로 합의를 봤다고 하더라도 대제사장이 죽기 전에 자신이 거주하던 땅으로 돌아가게 되면 그 땅을 더럽히게 되는 것이며, 그 땅이 속함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의 피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므로 도피성에 피한 자는 어떠한 경우라도 대제사장이 죽기 전에는 도피성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외에 그 어떤 것으로도 죄를 사함 받을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엡 1:7).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살기 위해서는 도피성 안으로 피해야 하듯 죄인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나와야 합니다(요 14:6). 그런 자들은 누구든지 구원을 받을 수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그 누구도 구원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셋째, 도피성은 그리스도의 교회를 상징합니다.

대제사장의 주된 임무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중재 혹은 중보 하는 역할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가교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장을 라틴어로 ‘다리를 놓는 사람’이란 뜻의 '폰티펙스(pontifex)'라고 합니다. 본래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는 중보자가 필요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죄를 범하므로 하나님께서 부여해 주신 거룩한 성품을 잃어버리면서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는 단절되었고 중재 없이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 중재의 역할을 구약시대에는 제사장들이 감당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규례를 따라 사람들을 위해 예물과 속죄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그들 역시 다른 사람들과 같은 죄인이기 때문에 그들이 백성의 죄를 속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들을 위한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만 했습니다. 이처럼 구약의 제사장들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로서 온전한 자격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제사장이 필요했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을 가리켜 큰 대제사장이라고 했습니다(히 4:14). '큰 대제사장'이란 아론 계통의 제사장들보다 그리스도가 더 우월하신 분임을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는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과는 달리 죄와 흠이 없는 완전하신 분으로서 친히 자신의 몸을 희생 제물로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죄를 제거하셨습니다(히 9:26).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히 7:25). 이제 더 이상 사람의 중보는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누구든지 그리고 언제든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마 27:51).

그런데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가 되십니다(골 1:18). 누차 말씀 드리지만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교회는 복음에 의해 세상으로부터 하나님께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 곧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의 공동체를 말합니다(고전 1:2 ; 살전 1:1 ; 고후 11:8). 성도는 그 공동체의 일원으로 교회의 몸을 이루는 지체들이며(고전 6:15) 예수 그리스도는 그런 교회의 머리가 되십니다. 따라서 교회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곧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의미이고 그런 교회를 떠난다는 것은 결국 도피성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 밖에서는 구원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살 수 있는 방법이 도피성 밖에 없듯 죄인이 살 길은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 외에 그 어떤 도피성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부지중에 살인자가 대제사장이 죽기 전에 그 피하였던 도피성 밖에 나가면 죽임을 당하는 것처럼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를 떠난 자들은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도피성 되신 예수님을 결코 떠나서는 안 됩니다.

아울러 하나님께서 실수를 범한 자에게 관용하시고 긍휼을 베풀어 주신 것처럼 우리도 우리에게 잘못한 자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용서하며 살아야 합니다. 사람은 완전하지 못하므로 누구나 실수를 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실수에 대해 관용을 베푸시고 회개하는 자를 용서해 주십니다. 부지중에 살인한 자를 위한 도피성도 이런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보여 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자신에게 잘못을 한 사람에게 분노하고 복수하려는 것은 옳지 않은 태도입니다. 우리는 과거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용서해 주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며 우리에게 잘못한 자들을 용서하고 그들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어야 할 것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가 긍휼히 여김을 받지만(마 5:7) 긍휼을 베풀지 않는 사람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만이 있을 뿐입니다(약 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