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아들은 여호수아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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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상 7장 20절 ~ 27절 [개역개정]
20 에브라임의 아들은 수델라요 그의 아들은 베렛이요 그의 아들은 다핫이요 그의 아들은 엘르아다요 그의 아들은 다핫이요
21 그의 아들은 사밧이요 그의 아들은 수델라며 그가 또 에셀과 엘르앗을 낳았으나 그들이 가드 원주민에게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내려가서 가드 사람의 짐승을 빼앗고자 하였음이라
22 그의 아버지 에브라임이 여러 날 슬퍼하므로 그의 형제가 가서 위로하였더라
23 그리고 에브라임이 그의 아내와 동침하매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 집이 재앙을 받았으므로 그의 이름을 브리아라 하였더라
24 에브라임의 딸은 세에라이니 그가 아래 윗 성 벧호론과 우센세에라를 건설하였더라
25 브리아의 아들들은 레바와 레셉이요 레셉의 아들은 델라요 그의 아들은 다한이요
26 그의 아들은 라단이요 그의 아들은 암미훗이요 그의 아들은 엘리사마요
27 그의 아들은 눈이요 그의 아들은 여호수아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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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자신의 아들로 삼아(창 48:5) 다른 아들들처럼 가나안 땅을 분배받도록 했습니다. 야곱의 맏아들 르우벤 대신 장자의 명분을 갖게 된 요셉(대상 5;1)이 두 몫의 지분을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의 자손이 므낫세와 에브라임 두 지파를 차지하게 되었고 대신 레위 지파가 열두 지파에서 제외되었습니다(수 14:3-4).
오늘 본문은 에브라임 지파의 후손에 대한 기록으로 에브라임부터 시작을 해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로 끝납니다. 여호수아는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여로보암과 더불어 에브라임 지파를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둘은 극과 극의 사람이었습니다. 여로보암은 불신앙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사람이고 여호수아는 신앙의 모범이 되는 사람입니다.
여호수아의 본 이름은 '구원'이란 뜻의 호세아였습니다(민 13:8). 그런데 모세가 그의 이름을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을 가진 여호수아로 불렀습니다(민 13:16). 이에 대해 매튜 헨리는 "호세아란 '그대여 구원하소서'라는 뜻으로 구원을 위한 기도의 의미가 있으며, 여호수아란 그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그가 구원하시리라'는 구원의 약속을 나타낸다."고 했습니다. 그의 주석대로라면 모세가 호세아의 이름을 여호수아로 바꾼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나안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겠다'(출 6:8)고 하신 약속을 수행할 인물이 모세가 아닌 여호수아임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애굽에서 고통 받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내어 가나안 땅으로 인도할 사명을 받은 사람은 모세였습니다(출 3:10). 하지만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기는 했으나 가나안에 들어가지는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신 32:51). 그런데 여기에는 또 다른 영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율법을 수여받은 사람이고 그것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포한 자로서 '모세의 율법'(단 9:13 ; 눅 24:44 ; 행 15:5)이라고 할 정도로 율법을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그런 모세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은 율법으로는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 누구도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단지 율법은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 줄뿐입니다(롬 3:20).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롬 3:28).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의롭다 하심을 얻고 영원한 생명과 구원의 약속에 참여하게 됩니다(롬 5:18 ; 엡 3:6).
모세가 호세아의 이름을 여호수아로 바꾸고 그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한 영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여호수아는 헬라어로 ’예수(Ἰησοῦς)‘입니다(마 1:21 ; 행 7:45). 율법을 상징하는 인물인 모세가 아니라 예수와 같은 뜻의 이름을 가진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을 천국으로 상징되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했다는 것은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구원은 율법의 행위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얻을 수 있고(갈 2:16) 천국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다(요 14:6)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여호수아는 그리스도의 예표가 됩니다.
모세가 언제부터 그의 이름을 바꿔 불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성경에는 그의 본 이름인 호세아보다 바뀐 이름인 여호수아가 먼저 등장합니다. 여호수아의 이름이 처음 등장하는 곳은 출 17장(9)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나와 르비딤이란 곳에 이르렀을 대 아말렉이 그들을 공격했습니다(출 17:8). 아말렉은 야곱의 형 에서의 후손들로 이스라엘이 싸웠던 최초의 민족이었습니다(민 24:20). 사실 그들은 이스라엘과 싸울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을 공격했으며, 그것도 비겁하게 뒤에 처져 있던 약한 자들을 쳤습니다(신 25:18). 그들은 분명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 애굽에 행하신 일들을 들었을 것이고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을 공격했다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에 모세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거든 아말렉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리라고 했습니다(신 25:19). 이는 '아말렉 족속을 전멸시켜 그들에 대한 기억조차 세상에서 없어지도록 하라'는 의미입니다. 이 명령은 후에 사울 왕과 시므온 자손에 의해(삼상 15장 ; 대상 4:42-43), 그리고 에스더 당시 유대인들에 의해(에 7:10 ; 8:11-13) 시행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며 그런 자들은 결국 멸망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삼상 2:10 ; 시 71:13).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선봉에 선 사람은 여호수아였습니다. 이는 모세의 지시에 위한 것으로 모세가 여호수아를 선봉에 세운 것은 그가 하나님을 향한 신실한 믿음을 가진 용맹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얼마나 신실한 믿음을 소유했었는지를 가나안 정탐 사건에서 잘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데스 바네아라는 곳에 도착을 하자 모세는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각 지파에서 한 명씩 열 두명을 선발하여 가나안 땅에 정탐꾼을 보내게 됩니다(민 13:2). 그런데 가나안 정탐은 백성들의 요청에 의한 것입니다(신 1:22). 모세는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시키면서 가나안에 올라가 그 땅을 차지하도록 했지만(신 1:21) 백성들은 그 땅을 먼저 정탐하기를 원했습니다. 이에 모세는 그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하나님께 여쭈었고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도록 명령하셨던 것입니다(신 1:23).
백성들이 정탐을 요청했던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셨음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모세는 백성들에게 두려워하지도 말고 주저하지도 말고 올라가서 그 땅을 차지하라고 했지만 백성들은 그 땅이 어떤지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올라간다는 것이 몹시 두려웠습니다. 이는 백성들이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직접 경험했고 지금도 불과 구름기둥을 통해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심을 눈으로 보고 있으며서도(출 13:22 ; 민 14:14) 여전히 하나님을 불신했습니다. 그들의 불신앙은 정탐에서도 여실히 드러납니다.
40여 일 동안 가나안 전역을 살피고 돌아온 열 두 명의 정탐꾼들은 모세와 백성에게 보고를 했습니다. 그들의 보고에 의하면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풍요롭고 기름진 땅이었습니다(민 13:27). 그 증거로 에스골 골짜기에서 포도 한 송이와 석류 그리고 무화과도 가져왔습니다. 포도송이가 얼마나 크고 무거운지 두 사라이 막대기에 메고 올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보고는 백성들을 낙담케 했습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들이 거하는 성읍은 견고했습니다. 특히 헤브론에는 아낙 자손이 있었는데, 그들은 신체가 크고 강한 민족이었습니다. 정탐꾼들은 이러한 사실을 열거하면서 비록 가나안 땅이 살기 좋은 풍요로운 땅이기는 하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강하기 때문에 도저히 이길 수 없다고 보고합니다.
반면에 에브라임 지파의 여호수아와 유다 지파의 갈렙은 다른 의견을 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니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민 14:9). 당시 이스라엘은 노예의 신분에서 벗어난 지 얼마 안 된 상태였기 때문에 철기로 무장한 가나안 원주민들을 상대할 수 없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게는 전증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셨습니다(민 13:30). 그런데 믿음이 없는 열 명의 정탐꾼들의 눈에는 자신들의 연약함과 상태의 강함만 보일 뿐 그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면서도 하나님을 신뢰하지도 않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정탐꾼들의 말만 듣고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을 포기한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과 달리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에 비록 가나안 민족이 크고 강할지라도 능히 이길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민 14:8-9).
이렇듯 하나님을 향한 신실한 믿음과 용기를 지녔던 여호수아였지만 모세를 이어 가나안 정복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되었을 때는 그도 두려웠을 것입니다. 모세가 살아있을 때는 그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었지만 이제는 자신이 백성을 이끌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로 여호수아에게 용기를 복돋아주셨습니다.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수 1:5-9)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는 말씀을 무려 세 번이나 하셨습니다. 그만큼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은 여호수아에게 큰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란데 이러한 약속은 비단 여호수아에게만 주어진 것은 아닙니다.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들 바로 우리에게 주신 약속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신 약속(마 28:20) 역시 지금 우리에게도 유효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당신의 백성을 홀로 놔두지 않으시고 항상 그들과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강하고 담대하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나아갈 때 여호수아처럼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롬 8:31) 라고 했습니다. 비록 나 자신은 약하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시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을 때 우리는 담대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복이라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온전히 수행한 후 그의 나이 110세에 죽음을 맞이합니다(수 24:29). 죽기 전에 그는 백성을 세겜에 소집하여 고별연설을 했습니다. 세겜은 그리심 산과 에발 산 사이에 있는 장소로 이곳에서 여호수아는 모세의 명령대로(신 11:29)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책에 기록된 축복과 저주의 말씀을 낭독했고(수 8:34-35) 백성들은 그 말씀에 아멘으로 응답했습니다(신 27:15-26). 이곳에서 여호수아는 죽음을 앞두고 백성들에게 다시금 결단을 촉구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든지 아니면 이방신들을 섬기든지 둘 중의 하나를 택하라'는 것이었습니다(수 24:15) 그러면서 자신은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길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신앙의 결단을 촉구한 것은 그들이 여전히 이방신들을 섬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는 '우리가 결단코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지 않겠다'(수 24:16)고 약속하는 이스라엘 배성에게 '그러면 이제 너희 중에 있는 이방신들을 치워 버히고 너희의 마음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향하라'(수 24:23)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기 위해서는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해야 합니다. 즈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삼상 7:3). 여호수아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언제나 신앙의 편에 섰고, 일평생 하나님의 영과을 우해 산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도 여호수아처럼 신앙의 사람, 우리 가정도 여호수아의 가정처럼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는 신앙의 가정이 되길를 소원합니다. 이것보다 더 중요하고 급한 것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