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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음TV/주일예배설교

사울이 죽은 것은

2023. 11. 26.

성경본문 보기

역대상 10장 7절 ~ 14절 [개역개정]

7 골짜기에 있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그들의 도망한 것과 사울과 그의 아들들이 다 죽은 것을 보고 그 성읍들을 버리고 도망하매 블레셋 사람들이 와서 거기에 거주하니라
8 이튿날에 블레셋 사람들이 와서 죽임을 당한 자의 옷을 벗기다가 사울과 그의 아들들이 길보아 산에 엎드러졌음을 보고
9 곧 사울의 옷을 벗기고 그의 머리와 갑옷을 가져다가 사람을 블레셋 땅 사방에 보내 모든 이방 신전과 그 백성에게 소식을 전하고
10 사울의 갑옷을 그들의 신전에 두고 그의 머리를 다곤의 신전에 단지라
11 길르앗야베스 모든 사람이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에게 행한 모든 일을 듣고
12 용사들이 다 일어나서 사울의 시체와 그의 아들들의 시체를 거두어 야베스로 가져다가 그 곳 상수리나무 아래에 그 해골을 장사하고 칠 일간 금식하였더라
13 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라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14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겨 주셨더라

 

설교문 보기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사망을 합니다. 그에게 네 아들이 있었는데(대상 8:33) 그중의 세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이스위, 삼상 14:49)과 말기수아도 전사를 합니다(삼상 31:12). 역대기 상에 의하면 사울 왕이 죽은 이유는 그가 여호와께 범죄 하였기 때문입니다(대상 10:13). 사울이 하나님께 어떤 죄를 지었는지 살펴봄으로써 신앙의 거울로 삼고자 합니다.

1.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사울이 왕위에 올라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2년이 됐을 때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려고 믹마스라는 곳에 진을 쳤습니다. 블레셋 군대는 병거가 3만 대였고, 기마병이 육천 명, 보병은 해변의 모래 같이 많았습니다. 블레셋과 맞서기 위해 길갈에 모였던 이스라엘 백성은 블레셋 군대를 보고 기가 질려 전의를 상실하고 도망하기에 급급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굴에 숨었고, 수풀이나 바위틈 혹은 웅덩이에 숨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요단 동편으로 도망가는 백성도 있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사울은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그래서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가져오게 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것입니다. 사울은 블레셋 대군이 믹마스에 진을 치자 사무엘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사무엘은 일주일 후에 가겠다고 했습니다(삼상 13:8). 하지만 일주일이 다 되도록 사무엘이 오지 않자 남아있던 사람들마저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사울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림으로써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기원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제사를 사울이 직접 드렸는지 아니면 당시 대제사장이었던 아히야(삼상 14:3)의 집례로 시행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사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삼상 13:13). 비록 사울이 본인의 해명대로 급박한 상황에서 부득이하게 행한 것이라 할지라도 이는 어리석은 행동이었습니다. 지금 그가 해야 할 일은 제사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삼상 13:12).

이런 일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계속되었습니다. 하루는 사무엘이 사울에게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전했습니다(삼상 15:3). 아말렉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 그 길을 막고 대적한 민족입니다(출 17:8). 이스라엘이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후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출 17:14). 아말렉을 전멸시켜 그들에 대한 기억조차 세상에서 없어지도록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아말렉을 쳤습니다. 하지만 아말렉 왕과 가축 중에서 좋은 것과 기름진 것은 남기고 가치 없고 하찮은 것만 멸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또다시 어긴 것입니다. 사울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면서까지 이렇게 행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교만과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사울은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후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웠습니다(삼상 15:12).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놓고 싶어서였습니다. 아말렉의 왕 아각을 죽이지 않고 사로잡은 것 역시 같은 이유에서 입니다. 그는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후 자신을 위해 기념비를 세웠던 것처럼 아각을 포로로 잡아감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사람들에게 알리려 했던 것입니다. 스스로를 작게 여겼던 사울이 하나님의 영광보다 자신의 영예를 더 생각할 정도로 교만해졌습니다(삼상 15:17). 잠언 기자의 말처럼 멸망의 길에 들어선 것입니다(잠 18:2).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이 받으셔야 할 영광을 가로채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교만은 우상과 진배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들을 미워하시고(잠 6:17 ; 16:5) 물리친다고 하셨습니다(잠 3:34). 겸손했던 사울이 불행하게도 그중의 한 명이 되었습니다. 사울뿐만 아니라 교만한 자들이 다 그와 같은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또 가축 중에서 좋은 것과 기름진 것들을 남겨둔 이유에 대해 사울은 ‘백성이 하나님께 제사하기 위함’이라고 변명했습니다(삼상 15:15, 21). 전투에 참여했던 군인들이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려고 가축 중에서 가장 좋은 것들을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 해도 그것은 옳은 일도, 칭찬받을 일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은 것이기 때문입니다(삼상 15:19). 사울이 백성들의 요청을 들어준 것은 그들의 말이 옳다고 여겨서가 아니라 그들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삼상 15:24). 백성들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삼상 15:30). 사울은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했고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기보다 사람의 말에 더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것도 생명의 위협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인정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사울은 하나님보다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을 더 좋아했으며, 하나님께 버림을 받는 것보다 백성들 앞에서 자신의 권위가 떨어지는 것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사울의 변명을 들은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제사가 아니라 그분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삼상 15:22, 23) 하나님께서 제사보다 더 기쁘게 여기시는 것은 그분의 말씀에 청종하는 것이며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우상숭배와 같은 죄를 짓는 것과 같다는 말입니다.

전도서 기자도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너는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가까이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이 제물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그들은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니라”(전 5:1)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 중에는 악을 행하면서도 제물만 바치면 되는 줄 아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제사도 제물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려는 마음이 없다면 제물을 바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듣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듣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솨마’(명령형 쉐마)는 ‘듣다’ 외에도 ‘순종하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말 성경에는 이 단어를 두 가지 의미로 번역을 하거나 두 단어를 합쳐서 ‘이르는 대로 잘 듣고 따른다.’라는 뜻의 청종(聽從)이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할 뿐만 아니라 그 말씀에 순종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야고보서 기자는 말씀을 듣고 행치 않는 자는 거울로 자기 얼굴을 들여다보고도 일어나면 금방 자신의 얼굴이 어떠했는지 잊어버리는 사람과 같다고 했습니다(약 1:23). 당시의 거울은 대개 놋쇠로 만들었기 때문에(출 38:8)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봐도 희미하게 보일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거울을 보고 일어나면 자신의 얼굴이 어떠했는지 금방 잊어버립니다. 그처럼 열심히 그리고 주의 깊게 말씀을 들었다 해도 행하지 않으면 말씀의 참된 의미를 깨달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을 곧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말씀을 듣고서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라 그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어야 합니다(약 1:25). 그래야 어떤 환경에서도 신앙이 흔들리지 않습니다(마 7:24-25). 비록 말씀대로 온전히 살지는 못하더라도 그렇게 살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취해야 할 최소한의 자세입니다.

2.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했습니다.

사무엘이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위해 수넴에 진을 쳤습니다. 그를 본 사울은 두려워서 마음이 몹시 떨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하나님께 물었으나 아무 응답이 없었습니다(삼상 28:6). 이사야 선지자의 말처럼 만날 수 있을 때에 하나님을 찾고 그분이 가까이 계실 때에 불러야 했었는데(사 55:6) 너무 늦었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셨기 때문입니다(15:26 ; 16:14). 그러자 사울은 신접한 여인을 찾았습니다.

전에 그들을 이스라엘 땅에서 쫓아냈던 사울이(삼상 28:3) 일이 다급해 지자 도로 찾게 된 것입니다. 신접한 여인이란 죽은 자의 혼령을 통해 미래의 일을 물어보는 영매입니다(신 18:11). 이들은 귀신의 힘을 빌려 인간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자들로서 그들을 따르는 것은 곧 귀신을 따르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를 엄히 금하셨습니다(레 19:31 ; 20:6). 사실 귀신은 과거의 일에 대해서는 귀신같이 알 수 있지만 장래 일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합니다.

귀신은 사탄과 함께 타락한 천사로(마 25:41, 벧후 2:4, 1:6) 사람보다 지혜롭고 힘이 있지만 하나님처럼 전능하거나 전지 하지는 않기 때문에 장래의 일을 알지도 못하고 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없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을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을 더럽히지 않도록 신접한 자들을 찾아다니거나 그런 자들을 의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레 19:31). 오직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알고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사 45:5).

3. 여호와께 묻지 않았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뜻을 여쭙고 그 뜻을 따라 행동하기보다는 스스로 판단하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움직였습니다. 역대기 기자는 이것이 사울의 죄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 묻지 않는 것이 죄라는 것입니다. 사무엘도 기도하지 않는 것을 죄라고 했습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삼상 12:23) 기도하지 않는 것이 죄인 이유는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기 뜻대로, 자기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기도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도 스스로의 힘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이기에 죄입니다.

사울에게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의 아들 요나단과 그의 무기든 자가 믹마스에 진 치고 있던 블레셋 군대를 치자 블레셋 진영의 모든 사람들이 공포에 떨었고 땅도 크게 흔들렸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사울은 제사장 히야에게 하나님의 궤를 가져오라고 명합니다. 블레셋과 싸워야 할지의 여부를 하나님께 묻기 위해서였습니다(삼상 14:18). 그런데 이스라엘의 전세가 유리해지는 것을 보고는 이를 곧 취소시켰습니다(삼상 14:19). 하나님께 묻지 않아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도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의 삶 속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렵고 힘들 때는 하나님을 찾다가도 일이 잘 풀리면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어도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집니다. 그래서 기도하지 않습니다. 여호수아도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고 일을 진행하다가 큰 낭패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여리고와 아이 성을 차례로 점령하자 가나안의 여러 왕들이 연합군을 결성하여 이스라엘과 맞서 싸우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기브온 주민들은 이스라엘과의 화친을 원했습니다. 그들은 비록 연합군을 조직해서 이스라엘과 싸운다고 하더라도 승산이 전혀 없다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기브온 주민들이 화친을 요청해 오자 여호수아는 ‘어떻게 할지를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수 9:14) 그들과 평화 조약을 맺었습니다. 이로 인해 가나안 땅에 거주하는 모든 족속들을 진멸하고 그들과는 어떤 조약도 맺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신 7:2)을 이행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울도 하나님께 묻지 않았고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했으며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이다가 결국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습니다(삼상 15:23 ; 삼하 6:21). 우리는 이러한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늘 주의를 기울이고 조심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울은 왕위에 오르기 전 스스로를 하찮은 존재로 여길 정도로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삼상 15:17).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불신앙의 사람으로 변해갔고, 끝내는 하나님에게서 완전히 돌아서게 됩니다. 회개의 기회도 있었지만 살리지 못하고 결국 하나님께 버림을 받습니다(삼상 15:23).

사울은 블레셋과의 길보아 전투에서 전사를 하게 되는데, 그가 죽은 이유는 여호와께 범죄 하였기 때문입니다(대상 10:13).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고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했으며 여호와께 묻지 않은 죄를 범했습니다. 사울은 하나님께 여쭙고 그 뜻에 순종하기보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기보다 사람의 말에 더 귀를 기울였습니다. 또 그는 하나님께 인정받기보다 사람에게 인기 얻는 것을 더 좋아했고 하나님께 버림받는 것보다 사람에게 외면당하는 것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우리는 사울과 같은 잘못을 범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인기를 끌지 못해도 하나님께 인정받으면 그것이 행복이고 사람에게는 잊혀져도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인기를 끌려고 애쓸 필요도 없고 사람에게 외면당하거나 잊히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모든 일에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그 뜻대로 살 수 있도록 힘쓸 뿐입니다. 우리의 삶이 사울과 같은 불순종의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순종의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