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육신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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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장 1절 ~ 8절 [개역개정]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6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7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8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5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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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각 책마다 기록한 목적이 있습니다. 요한복음을 기록한 사도 요한은 그 목적을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20:31) 여기서 '생명'은 영원한 생명 즉 영생을 의미합니다. 이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그 이름’ 곧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기 위해서는 그분이 누구인가를 알아야 합니다(요 17:3). 그래야 영생이 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고 또 믿을 수 있습니다.
1.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여기서 ‘말씀’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로고스’인데, 이 단어는 ‘말[言]’을 의미하는 일반적인 용어입니다. 그런데 요한은 이 단어를 예수님을 가리키는 데 사용했습니다. 그 이유는 당시 헬라철학에서 이 로고스라는 단어가 만물의 근원이란 개념으로 이해되었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이런 개념을 이용해서 당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께서 만물의 근원이 되심을 설명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겁니다.
바울도 빌립보서 2장(6)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본체시(니)'라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계셨다'는 뜻으로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심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도 예수님을 가리켜 '이는(이 아들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고 했습니다(히 1:3).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빛이시며 하나님의 본성을 그대로 보여 주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다”고 했습니다(요 1:18). 예수님께서도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고 하심으로써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증거하셨습니다(요 10:30, 33).
그런데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사람을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으로 율법에는 그런 자를 돌로 쳐 죽이도록 되어 있습니다(레 24:16). 그래서 예수님이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고 말씀하셨을 때 유대인들은 '사람이면서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했다'는 이유로 예수님을 돌로 치려고 했습니다(요 10:33). 이에 예수님께서는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고 하셨습니다(요 10:37, 38).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은 사람으로는 할 수 없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보고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막 2:12)라고 하거나 ‘우리가 놀라운 일을 보았다’(눅 5:26)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눅 7:16). 또 예수님께서 바다를 잔잔케 하신 것 본 제자들은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마 8:27) 하며 놀라워했습니다. 하지만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처럼 대부분의 종교지도자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직접 본 사람들이라고 해서 다 예수님을 믿은 것도 아닙니다(요 6:36). 단지 예수님을 선지자 중의 한 분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마 16:14).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습니다. 요한이 이 복음서를 쓴 이유는 그런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입니다.
2. 예수님은 사람의 아들이십니다.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성육신(成肉身)을 말합니다. 즉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음을 의미합니다(롬 8:3 ; 딤전 3:16). 요한은 성육신 하신 그리스도에 대해서 이렇게 기술했습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요일 1:1-2) 요한뿐만 아니라 많은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고 눈으로 자세히 보았고 손으로 직접 만졌고 그래서 증언하고 선포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셨음이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부인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당시에 활동했던 영지주의자들이었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육체(물질)는 악하고 영혼(정신)은 선하다‘는 이원론적 사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들이 성육신을 부인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선하신 분이 악한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환영 즉 실재의 인물이 아니라 가상의 인물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육체로 오신 것이 아니라 유령처럼(마 14:26) 그렇게 보였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들 중에는 성자 하나님께서 예수라는 사람의 몸을 빌린 것이라고 주장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성자 하나님과 예수가 같은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한은 그들을 가리켜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요이 1:7) 혹은 ’적그리스도의 영‘이라고 했습니다(요일 4:3). 요한이 말하는 적그리스도(ἀντίχριστος)란 어떤 특정한 인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영지주의자들처럼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자들‘을 의미합니다(요이 1:7).
적그리스도의 가장 큰 특징은 거짓을 말한다는 것입니다(요일 2:22). 거짓은 마귀의 본성입니다. 그래서 마귀를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라고 합니다(요 8:44).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반대하는 자들은 마귀에게서 났기 때문에 마귀의 본성을 따릅니다. 그래서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고(롬 1:25), 거짓을 진리인 것처럼 꾸밉니다. 그러면서도 마치 자신들이 그리스도의 사도인 양 행세하며 자신들이 진리를 말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따르기만 하면 영생을 얻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그 결과는 영원한 생명이 아니라 영원한 파멸입니다.
또 적그리스도는 영지주의자들처럼 예수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요이 1:7).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가리켜 '인자'라고 하셨고(마 8:20 등), 요한도 예수님을 인자로 표현했습니다(계 1:13, 14:14). ’인자(人子)’란 ‘사람의 아들’이란 뜻으로 구약성경에서는 여러 의미로 쓰였으나 신약에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만 사용되었고 대부분 예수님께서 자신을 가리켜 사용하신 칭호였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이 칭호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람이 된 메시아 곧 그리스도'(단 7:13)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눅 22:69, 70 ; 요 12:34). 따라서 예수님을 인자라고 한 것은 그분이 곧 하나님이면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메시아,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빌 2:6, 7). 한 마디로 예수님의 인성(人性)을 강조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자들은 이것을 부인합니다. 그들은 예수가 단지 사람일 뿐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즉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또 영지주의자들처럼 예수가 실존인물이 아닌 환영에 불과하다고 하면서 아예 그분의 인성을 부인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런 자들은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아버지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요 12:44 ; 요일 2:22).
우리는 저들의 미혹에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도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단지 선지자의 중의 한 분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고백한 것처럼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마 16:16). 예수님은 완전하신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완전하신 사람이십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결코 의심하거나 잊어서는 안 됩니다.
3. 예수님은 유일한 중보자이십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죄와 관련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9장(22)에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다'고 했습니다. '피 흘리는 일이 없이는 죄를 용서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피 흘림'으로써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함입니다(마 20:28 ; 막 10:45 ; 벧전 1:19).
구약시대에는 사람이 지은 죄를 대신하여 짐승을 희생 제물로 드렸습니다. 제물을 드리는 자는 짐승의 머리에 안수를 했는데(레 1:4), 이는 자신의 죄를 짐승에게 전가시키기 위함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제물을 드리는 자와 그 제물은 하나가 됩니다. 그래서 자신이 직접 피를 흘리지 않고도 자신과 하나 된 제물의 피 흘림을 통하여 자신의 죄를 씻음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물은 그것을 드리는 사람이 직접 잡았습니다. 그러면 제사장들은 제물의 피를 받아 제단에 뿌렸습니다(레 1:5). 이러한 행위는 피 흘림과 더불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피는 희생 곧 죽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제사장이 그 피를 제단에 뿌리는 것은 제물의 생명이 하나님께 드려짐을 의미합니다(레 17:11).
이처럼 죄를 속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피흘림이 있어야 했는데, 그 이유는 죄의 결과가 죽음이기 때문입니다(롬 6:23). 그런데 짐승의 피는 일시적이며 제한적이어서 죄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줄 수는 없습니다. 사람의 죄는 사람의 생명으로 갚아야지 짐승으로 대신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히 10:4). 하지만 이 세상에는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할 사람이 없습니다. 모두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롬 3:23). 죄인이 죄인을 대신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셔야만 했습니다(요 1:29). 그 외에 죄인을 구원할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히 4:15 ; 7:26 ; 벧전 2:22)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자신의 피 곧 생명을 드림으로써 완전하고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히 9:12).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의 피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히 10:19). 더 이상 짐승의 피도, 제사장의 중보도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요 14:6), 그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유일한 중보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딤전 2:5). 우리가 기도할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 입니다(요 14:14 ; 요 15:1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 외에는 다른 어느 누구에게서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온 세상에 우리가 구원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행 4:12). 따라서 죄인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외에 죄인이 구원 얻을 다른 방법이 있었다면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필요도 없었고, 그분을 구주로 믿는 사람들이 핍박받을 이유도 없습니다. 죄인을 구원할 다른 방법이 없기에 하나님께서 직접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죄인을 대신해피를 흘리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에게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요 3:16).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은 그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모두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요 1:12)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며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롬 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