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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음TV/수요예배설교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2023. 12. 14.

성경본문 보기

요한복음 2장 1절 ~ 11절 [개역개정]

1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3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5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6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11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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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행하신 첫 번째 표적은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사건으로 요한복음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갈릴리 가나에서 벌어진 한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아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유대의 혼인 잔치는 일반적으로 신랑 측에서 베풀었으며 일주일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그 잔치에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도 있었는데, 맡은 역할로 보아 신랑 측과 매우 가까운 사이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잔치가 다 끝나기도 전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넉넉하게 준비한다고 했겠지만 예상을 벗어났습니다. 결혼 잔치에서 중요한 음식인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혼주에게 커다란 수치였고 그로 인해 즐거워야 할 잔치 분위기가 경직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에 마리아가 예수님께 이 사실을 알립니다. 마리아는 천사 가브리엘의 수태고지를 비롯해 목자들 그리고 시므온과 안나 등 여러 사람들로부터 예수님에 관한 얘기를 들었고 그 말들을 마음에 간직하고 있었습니다(눅 2:19, 51). 따라서 그녀가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있었는지는 몰라도 예수님으로부터 신적인 능력을 기대하고 있었음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하인들에게 “그분께서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에게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니 어머니에게 ‘여자여’라니 어찌 그리 말씀하실 수 있을까 의아해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자여(γύναι)’라는 표현은 여성을 부르는 일반적인 호칭으로(마 15:28 ; 눅 22:47 ; 요 8:10) 무례한 말이 아닙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어머니를 여자라고 부르는 것은 뭔가 어색합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에게 어머니가 아닌 여자라는 호칭을 사용하신 걸까요? 그 이유를 마태복음 12장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계실 때 그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찾아왔습니다(막 3:20, 21). 어떤 사람이 이를 알리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냐...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마 12:50). 이는 가족을 외면하신 말씀이 아니라 혈연관계보다 신앙관계가 더 중요함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아무리 혈육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하나님의 가족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혈통은 달라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요 영적으로 한 가족입니다(요 1:12, 13). 예수님께서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는 마리아를 어머니로 모시며 그에게 순종하셨습니다(눅 2:51). 하지만 공생애를 시작하신 후에는 마리아의 아들이 아닌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삶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마리아는 더 이상 예수님의 어머니가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처럼 예수님을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요 20:28)으로 고백해야 할 한 여자에 불과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마리아가 예수님을 자신의 아들로만 생각하고 있다면 오히려 그는 예수님과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단지 예수님을 낳았다고 해서 그것으로 영적인 가족의 관계가 성립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요 1:12 ; 6:40)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참된 가족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눅 8:21). 그런 의미에서 마리아가 비록 육신의 어머니라 할지라도 다른 사람 이상의 어떤 특별한 존재는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여자로 호칭하신 것도 같은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고 하셨는데, 이에 대해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지시를 거부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마리아의 아들이 아닌 하나님의 아들로서 오직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정해진 때에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마리아가 비록 육신의 어머니라고 할지라도 예수님께 무엇을 지시할 권한은 없습니다. 아마도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의 의미를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예수님께서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을 기대했습니다. 예수님에게는 그럴 능력이 있으시며 이 문제를 외면하지는 않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인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잔치가 벌어지고 있는 장소에는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여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외출에서 돌아오거나 식사전후에 손이나 발을 씻어 자신을 정결하게 했습니다(마 15:2). 특히 연회 때는 많은 사람들이 오기 때문에 그만큼 많은 양의 물이 필요했습니다. ‘두세통 드는 돌항아리’의 용량은 약 일백 리터 정도 됩니다. 그런 항아리가 여섯 개니까 육백 리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인들에게 그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하셨습니다. 항아리에 물이 얼마나 남아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인들은 예수님의 지시에 따라 물을 항아리에 가득 채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고 하시자 그들은 그대로 했습니다. 여기서 하인들의 순종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를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연회장에게 가지고 간 것은 포도주가 아니라 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물 떠온 하인들’이라고 표현했습니다(2:9). 즉 하인들은 항아리에서 떠간 것이 물인 줄을 알면서도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것을 연회장에 갖다 주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처음에 의아해했을 것입니다. 포도주가 떨어졌는데 왜 물을 갖다 주라고 하시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아람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면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될 것이라'는 엘리사의 말을 전해 듣고는 몹시 화를 냈습니다. 그는 엘리사가 직접 나와서 자신을 맞이하고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환부에 손을 얹어 나병을 고쳐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직접 나오기는커녕 사환을 보내한다는 말이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면 된다'라고 하니 어이도 없고 화도 났던 것입니다. 그는 '나병이 물로 씻어 나을 것 같으면 굳이 요단 강처럼 더러운 물보다는 차라리 자신의 나라에 있는 깨끗한 강에서 몸을 씻으면 되지 않겠냐'며 일행을 데리고 아람으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의 종들이 나아만을 만류하며 선지자의 말대로 행할 것을 종용했습니다(왕하 5:13). 사실 요단 강에 몸을 씻는 일은 간단하고 쉬운 일이었습니다. 오히려 그것이 나아만으로 하여금 선지자의 말을 의심케 했는지도 모릅니다. 차라리 큰 일을 행하라고 했다면 수긍했을지 모릅니다. 나아만이 종들의 말을 듣고 마음을 돌려 엘리사가 말한 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담금자 나병이 깨끗이 치료되었습니다. 물론 요단 강물 자체에 치유의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순종의 결과였습니다(왕하 5:14). 만일 나아만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엘리사의 말을 끝까지 불신했다면 그는 평생 나병으로 고통받으며 살아야 했을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에게 이해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단지 순종만을 원할 뿐입니다. 하인들은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하는데 왜 물을 갖다 주라고 하시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러니 대단한 믿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 연회장에게 갖다 준 물은 어느새 포도주로 변해 있었습니다. 가는 도중에 물이 포도주로 변했는지 아니면 연회장이 맛을 볼 때에 변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인들이 연회장에게 갖다 준 물이 그 어떤 것보다 질이 좋은 포도주로 변했다는 사실입니다. 연회장의 말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2:10) 연회장은 잔치가 시작될 때부터 끝날 때까지 모든 것을 관리 감독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포도주를 비롯하여 잔치에 소요되는 모든 음식을 점검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물로 된 포도주’ 정확히는 ‘포도주가 된 물’을 맛보고도 그것이 어디에서 났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분명 자신이 점검했을 때는 그런 포도주가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연회장에게 포도주의 출처는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그 포도주로 인해 자신이 관리하는 잔치가 더 흥겨워졌고 아무 불상사 없이 끝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신랑을 불러 다른 사람들과 달리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남겨 놓았다’고 칭찬만 했지 그 포도주가 어디서 났는지 묻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물을 떠 온 하인들은 그 포도주의 출처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셨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확실하게 증언해 줄 증인들이었습니다.

갈릴리 가나에서 일어난 이 사건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신 후 행하신 첫 번째 이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이 사건을 ‘첫 번째 표적’이라고 했습니다. 표적이란 어떤 일을 증명하기 위해 행해진 기적이나 이적을 말하는데,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들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메시아 곧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실히 증명해 주고 있다는 점에서 표적이라고 한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알고 이미 알고 있었지만(요 1:35-51) 이 표적을 통해 확신을 갖게 되었고(2:11) 물을 떠 온 하인들 역시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혼인은 인륜지대사라고 할 만큼 사람이 살아가면서 치러야 할 크고 아주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런 혼인 잔치가 포도주 때문에 큰 위기에 처했습니다. 다행히도 그 자리에는 만물의 근원이신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모든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지음 받았으며 그분 없이 창조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요 1:3).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분이 물이 포도주가 되게 하시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하고자 하시면 못 하실 일이 없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어떤 처지에 있든지 예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누구보다 먼저 예수님을 찾아야 합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그분의 도우심을 기대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결코 우리의 요청을 외면치 않으시고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여기에 개인의 지식이나 경험은 전혀 필요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할 수 있을까. 사람의 지식이나 그 어떤 경험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시라면 가능합니다. 그래서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그러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한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결코 외면치 않으시고 좋은 것으로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마 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