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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음TV/주일예배설교

이 사람은 평강이 될 것이라

2024. 1. 9.

성경본문 보기

미가 5장 2절 ~ 6절 [개역개정]

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3 그러므로 여인이 해산하기까지 그들을 붙여 두시겠고 그 후에는 그의 형제 가운데에 남은 자가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오리니
4 그가 여호와의 능력과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목축하니 그들이 거주할 것이라 이제 그가 창대하여 땅 끝까지 미치리라
5 이 사람은 평강이 될 것이라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궁들을 밟을 때에는 우리가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을 일으켜 그를 치리니
6 그들이 칼로 앗수르 땅을 황폐하게 하며 니므롯 땅 어귀를 황폐하게 하리라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지경을 밟을 때에는 그가 우리를 그에게서 건져내리라

 

설교문 보기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심은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구약의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서 예언된 사건입니다. 본문의 말씀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면 미가 선지자가 예언한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신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이스라엘의 목자

헤롯 왕 때에 동방으로부터 여러 명의 박사들이 예루살렘을 방문했습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을 찾은 목적은 유대인의 왕에게 경배하기 위함이었습니다(마 2:1, 2). 이 박사들은 별을 통해 인간의 중대사를 결정짓는 점성학자들 이었습니다. 그들은 자기 나라에서 별을 관찰하다가 예사롭지 않은 한 별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 별을 유대인의 왕이 태어날 징조로 여겼습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 이유가 어떻든지 박사들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를 찾기 위해 예루살렘을 방문했습니다. 왕이니까 당연히 왕궁이 있는 예루살렘에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도착한 박사들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고 물으면서 “그에게 경배하러 왔다”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헤롯 왕은 몹시 당황하면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불러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에서 태어날 것인지 물었습니다. 그들은 ‘유대 베들레헴이라’고 하면서 그 근거로 본문 2절의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 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마 2:5, 6) 그런데 본문하고는 조금 다릅니다.

미가는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에브라다‘는 ’에브랏‘이라고도 하는데, ’베들레헴‘의 옛 이름입니다(창 48:7 ; 룻 4:11). 그런데, 왜 미가는 베들레헴에 옛 이름을 덧붙였을까요? 그것은 구약 당시에 베들레헴이란 이름을 가진 성읍이 두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의 베들레헴과 갈릴리의 베들레헴입니다(수 19:15). 미가 선지자는 이를 구분하기 위해 베들레헴의 옛 이름을 덧붙여서 유대의 베들레헴이 메시아와 관련이 있음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이 베들레헴은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라는 표현처럼 아주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베들레헴을 선택하셨고 그곳에서 인류를 구원하실 메시야가 탄생하셨습니다.

그런데,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언급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라는 부분은 미가서에는 없고 사무엘하 5장 2절(대상 11:2)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전에 곧 사울이 우리의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려 출입하게 하신 분은 왕이시었고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네가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그렇다고 미가서에 목자에 대한 이야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4절에 “그가 여호와의 능력과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목축하니 그들이 거주할 것이라”고 했는데, 이는 메시야의 목자로서의 사역을 예언한 것입니다.

대세자상들과 서기관들이 미가서 5장 2절에 사무엘하 5장 2절의 말씀을 추가한 것인지 아니면 미가서 5장 2절을 의역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이시며 ‘다윗에게 주어진 언약을 성취하는 자’ 곧 메시아이심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가리켜 ‘선한 목자’라고 하셨습니다. 선한 목자의 특징은 양들을 돌볼 뿐만 아니라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는 것입니다(요 10:11, 15). 예수님께서는 영적 이스라엘 백성인 성도를 돌보실 뿐만 아니라 그들을 위해 목숨까지 버리신 선한 목자이십니다. 우리가 참 목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를 때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지켜주시고 위로해 주시며 의의 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시 23:3).

2. 영원하신 하나님

미가 선지자는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의 근본이 ‘상고에, 영원에 있다’고 했습니다. 이는 메시야의 기원이 ‘아주 오랜 옛날, 영원부터 있었다.’는 뜻으로 메시야 이신 예수님께서 세상이 창조되기 전부터 계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예수님이 ‘태초에 계신 말씀’으로 ’그 말씀은 곧 하나님이셨다’라고 했습니다(요 1:1).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같은 의미로 바울은 예수님을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라’고 했습니다(빌 2:6).예수님은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신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도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요 10:36)이요, ‘나와 아버지는 하나’(요 10:30)라고 하심으로써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셨습니다(요 5:18 ; 10:33). 그런데 이 말을 들은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돌로 치려고 했습니다. 사람이면서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했다는 이유에서입니다(요 10:33). 그동안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일들은 창세 이후로 보지도 못했고 들어본 적도 없다고 할 정도로 기이한 일들이었습니다(마 9:33 ; 요 9:32). 그리고 이러한 일들은 어느 한 구석에서 행해진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공개적인 장소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를 본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이적들이라고 생각했고(요 3:2)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믿었습니다(요 2:23). 하지만 그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은 것은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 정도로 이해했을 뿐입니다(마 16:14 ; 요 3:2). 그러한 믿음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단지 선지자 중의 한 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눅 19:20). 사도 요한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이고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자가 적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요일 2:22). 예수님께서 이 땅에 성육신하신 그리스도 곧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부인하는 자들이 적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요이 1:7).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단지 위대한 선지자나 성인(聖人)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체로서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며 세상을 구원할 유일한 구세주가 되십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결코 의심하거나 잊어서는 안 됩니다.

3. 평강의 왕

5절에 ‘이 사람은 우리의 평강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5절). 평강은 히브리어로 ‘샬롬’이며 이는 화평과 같은 의미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예언하면서 그분의 이름은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 9:6)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을 화평케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까지 인류에게 있어서 가장 큰 슬픔은 하나님과의 '원수 됨'(롬 5:10)이었습니다. 아담이 범죄 한 후로 인류는 하나님과 관계가 멀어졌는데, 인류의 불행과 비극은 바로 하나님과의 멀어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화목 제물'(롬 3:25; 요일 4:10)이 되심으로 원수 되었던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는 완전히 청산되었습니다(엡 2:16). 그러므로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롬 5:1 ; 골 1:20). 이는 반대로 이방인이든 유대인이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과의 화평은 오직 그리스도의 피로만 가능합니다. 그리스도의 피 없이는 죄 사함도 없고(히 9:22), 죄 사함이 없으면 하나님과의 화평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화목을 가능케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 예루살렘 성전은 오직 유대인만 들어갈 수 있는 장소와 이방인들이 들어갈 수 있는 장소가 담으로 구분 지어져 있었습니다. 그것을 ‘막힌 담’이라고 합니다. ‘막힌 담’은 영적으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를 구별하는 율법을 의미합니다(엡 2:15).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그 막힌 담을 허셨고,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구별이 없게 만드셨습니다(엡 2:14). 그래서 이제 이방인들도 더 이상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들이 아닙니다(엡 2:19).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모두 성도들이며 하나님의 권속들입니다(엡 2:19).

그리고 6절에 “그들이 칼로 앗수르 땅을 황폐하게 하며 니므롯 땅 어귀를 황폐하게 하리라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지경을 밟을 때에는 그가 우리를 그에게서 건져내리라”고 했는데, 이는 메시아 이신 예수님께서 대적들을 물리치시고 그들로부터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들을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평강이 되실 수 있는 이유는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입니다(요 16:3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여인이 해산하기까지 그들을 붙여 두겠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메시아가 오실 때까지 이스라엘이 많은 고난과 시련을 겪게 될 것임을 암시합니다. 메시아의 탄생에 대한 약속은 그 예언이 있은 후로 이루어지기 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습니다. 그때까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필요한 것은 인내였고 소망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 제자들에게 다시 오마 약속하셨고(요 14:3) 사도 요한에게는 “내가 반드시 속히 오리라”고 하셨습니다(계 22:7, 12, 20). 그로부터 2000천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 예수님께서는 오지 않으셨습니다. 이에 대해 베드로는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벧전 3:8)고 하면서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벧전 3:9)고 했습니다. 주께서 다시 오신다고 하신 약속은 어떤 이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더딘 것이 아니라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참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그 날이 언제까지 계속 될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날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하지 않으시는 예수 그리스도(히 13:8)께서 하신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경건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메시아가 오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날을 인내하며 기다렸습니다. 시므온이 그랬고(눅 2:25) 안나가 그랬습니다(눅 2:36).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우리 역시 그 날을 소망하며 신앙으로 인한 어떤 고난이나 시련도 잘 참고 인내해야 할 것입니다. 주의 재림을 소망하며 준비하는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있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