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오벧에돔에게 복을 주셨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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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상 26장 1절 ~ 9절 [개역개정]
1 고라 사람들의 문지기 반들은 이러하니라 아삽의 가문 중 고레의 아들 므셀레먀라
2 므셀레먀의 아들들인 맏아들 스가랴와 둘째 여디야엘과 셋째 스바댜와 넷째 야드니엘과
3 다섯째 엘람과 여섯째 여호하난과 일곱째 엘여호에내이며
4 오벧에돔의 아들들은 맏아들 스마야와 둘째 여호사밧과 셋째 요아와 넷째 사갈과 다섯째 느다넬과
5 여섯째 암미엘과 일곱째 잇사갈과 여덟째 브울래대이니 이는 하나님이 오벧에돔에게 복을 주셨음이라
6 그의 아들 스마야도 두어 아들을 낳았으니 그들의 조상의 가문을 다스리는 자요 큰 용사라
7 스마야의 아들들은 오드니와 르바엘과 오벳과 엘사밧이며 엘사밧의 형제 엘리후와 스마갸는 능력이 있는 자이니
8 이는 다 오벧에돔의 자손이라 그들과 그의 아들들과 그의 형제들은 다 능력이 있어 그 직무를 잘하는 자이니 오벧에돔에게서 난 자가 육십이 명이며 ㅁ
9 또 므셀레먀의 아들과 형제 열여덟 명은 능력이 있는 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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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노예 생활을 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그 마지막은 사람이나 가축을 막론하고 애굽 땅에 있는 처음 난 것은 모두 죽음에 이르게 하는 재앙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재앙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그것은 어린양의 피를 집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는 것입니다(출 12:7). 이 방법을 통해 이스라엘은 마지막 재앙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출 12:13). 이렇게 살아남은 이스라엘의 장자는 모두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생명을 보존하셨기 때문입니다(민 3:13).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레위인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장자를 대신토록 하셨고(민 3:12) 그들에게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성막에서 봉사하는 일을 맡기셨습니다(민 8:19). 즉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는 제사장의 직분을, 다른 레위지파 사람들에게는 제사장을 도와 성막의 직무를 감당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모세와 아론에게 반기를 들었습니다. 이는 모세와 아론을 지도자로 세우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민 26:9). 반역의 주동자는 고핫의 손자 이스할의 아들 고라였습니다(민 16:1, 2). 모세와 아론은 이스할의 형제인 아므람의 아들들입니다. 그러니까 고라는 모세와 아론의 사촌입니다. 그가 불만을 품은 것은 아론에 대한 시기심 때문이었습니다(민 16:10). 고라는 자신이 맡은 직무보다 아론의 제사장 직분이 더 고상하고 우월하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민 16:3). 고라가 맡은 일은 성막 안에 있는 거룩한 물건들 곧 지성소에 있는 증거궤를 비롯하여 진설병을 올려놓는 상과 등잔대 그리고 분향단과 그 부속 기구들을 운반하는 일이었고, 그나마 직접 보거나 만질 수도 없었습니다. 반면에 사촌인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성막의 기구들을 직접 관리하고 제사를 주관하는 등 성막의 모든 일을 지휘하고 감독했습니다. 이에 고라가 샘이 났던 것입니다. 그에 동조한 사람들 역시 크고 작은 이유로 모세에게 불만을 품고 있었습니다.
고라 일당은 모세와 아론에게 분수에 지나친 행동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습니다(민 16:3). ‘분수에 지나치다’는 말은 ‘너무 많이 소유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모세 역시 고라 일당에게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민 16:7). 정말 분수에 지나친 행동을 하는 자들은 모세와 아론이 아니라 바로 고라 일당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각자 자기 신분에 맞는 한계가 있습니다. 믿음도 그렇고, 재능도 그렇습니다. 문제는 이 한계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고 했습니다(롬 12:3). 한 마디로 자기 분수에 맞게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고라 일당은 분수에 지나친 행동을 하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특히 주동자였던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은 자신뿐만 아니라 그에 속한 사람들까지 산 채로 땅에 삼킨 바 되는 끔찍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민 16:32). 이에 대해 아버지의 죄로 그 가족까지 심지어 어린아이까지(민 16:27) 처벌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처사가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전에 연좌제(緣坐制)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뿐만 아니라 그와 일정한 친족 관계가 있는 사람들에게 연대적으로 형사책임을 지우는 제도입니다. 그래서 고대나 중세시대에는 반역죄와 같은 큰 죄를 범했을 경우 삼족을 멸하는 형벌을 내렸습니다. 심지어 구족까지 멸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조선시대까지는 연좌제가 시행되다가 근대에 이르러 폐지되었습니다. 고라와 그 일당이 지은 죄는 분명 반역죄였습니다. 그래서 당시의 관례인 연좌제에 따라 그 처자까지 처벌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경은 연좌제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그 자식들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지 아니할 것이요 자식은 그 아버지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니 각 사람은 자기 죄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신 24:16) 당시의 이방 민족들 사이에서는 연좌제가 보편적이었지만(에 9:13, 14), 성경은 이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자녀가 잘 못했을 때 부모는 그에 대한 도덕적 혹은 도의적인 책임은 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경우는 어떻게 봐야 할까요? 민 26장(11)에 보면 고라의 아들들은 죽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단과 아비람만 그들의 처자와 유아들에 대한 언급이 있을 뿐 고라에 대해서는 단지 ‘그에게 속한 모든 사람’이라고만 되어 있습니다(민 16:32). 그리고 모세는 분명 회중에게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장막 사방에서 떠나라’고 경고했습니다(민 16:26). 그럼에도 끝까지 그들과 함께 있었다는 것은 결국 그들에게 동조했다는 것이므로 그들과 함께 죽은 자들은 다른 사람의 죄 때문이 아닌 스스로의 죄 때문에 죽임을 당한 것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에스겔이 선지자로 활동하던 당시 이스라엘에는 신 포도에 관한 속담이 만연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그의 아들의 이가 시다’는 속담이었습니다(겔 18:2). 당시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던 사람들은 출 20:5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한다”는 말씀을 근거로 자신들이 바벨론의 포로가 된 것은 조상들의 죄에 대한 징계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다시는 이 속담을 쓰지 못하게 되리라”고 하셨습니다(겔 18:3). 이 말씀은 조상의 죄로 인하여 그 자손을 벌하신다는 의미가 아니라 죄의 영향력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부모의 죄가 자녀에게 영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사로 잡혀 간 것은 누구의 죄도 아닌 바로 자신들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을 숭배하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정의와 긍휼은 버리고 온갖 불의를 일삼은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버지의 영혼이 내게 속함 같이 그의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 하는 그 영혼은 죽으리라'고 하셨습니다(겔 18:4). 부모의 죄는 부모에게 묻고 자식의 죄는 자식에게 물으시겠다는 것입니다. 각 사람이 심판을 받는 것은 각자의 죄 때문입니다. 각 사람은 그 행한 대로 보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롬 2:6 ; 고후 5:10).
그러면, 고라 자손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는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로 그리고 선지자로 이스라엘의 영적 부흥을 위해 헌신했으며 신앙적으로나 생활면에서 귀감이 되는 인물입니다. 바로 사무엘입니다(대상 6:34-37). 한 가지 흠이 있다면 자녀 교육에 있어서는 실패를 했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않고 돈을 탐하여 뇌물을 받고 재판 업무를 공정하게 처리하지 않았습니다(삼상 8:3). 비록 사무엘이 자녀들의 바른 교육을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고 해도 아들들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일말의 책임은 있는 것입니다. 사실 자녀를 바르게 교육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다윗에 비견될 만큼 위대한 왕이었던 히스기야(왕하 18:5)의 아들 므낫세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악한 왕이 되었습니다(왕하 21:9). 그가 자녀에 대한 신앙 교육을 소홀히 했는지, 아니면 나름 최선을 다했는데 결과가 그렇게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어찌 됐든 자녀 교육에는 실패했습니다. 반면에 므낫세처럼 악한 왕이었던 아몬(왕하 21:20)에게서 요시야 같은 성군이 나오기도 합니다(왕하 22:2).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 아몬이 자녀 교육을 올바로 했을 리 만무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시야는 다윗이나 히스기야에 버금가는 위대한 왕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가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단지 우리는 자녀를 바르게 양육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우리가 자녀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자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기도입니다.
사무엘만큼은 아니지만 고라 자손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오벧에돔입니다. 그의 이름이 처음 등장하는 곳은 삼하 6장으로 여호와의 언약궤와 관련이 있습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으로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이 언약궤를 엘리가 제사장으로 있을 때 블레셋에게 빼앗긴 적이 있었습니다. 수개월 후에 되돌려 받기는 했지만 기럇여아림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으로 옮긴 후 수십 년 동안 방치되어 있었습니다(삼상 7:1, 2). 사람들은 언약궤가 방치되어 있음에도 별 관심이 없었고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조차도 하나님의 언약궤에 대해서는 무관심했습니다. 그러나 다윗만은 예외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방치되어 있음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사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후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첫 시도는 실패했습니다. 잘못된 방법으로 궤를 옮기다가 사람이 죽는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궤를 운반함에 있어서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결과였습니다. 그로 인해 마음이 상한 다윗은 언약궤를 자기가 있는 다윗 성이 아닌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옮기도록 했습니다(삼하 6:10). 여기서 가드는 블레셋의 가드가 아니라 단 지파에 속한 레위인의 성읍 가드 림몬을 가리킵니다(수 21:24). 오벧에돔은 그곳 출신의 레위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벧에돔을 가드 사람이란 부른 것은 사무엘의 아버지 엘가나를 에브라임 사람이라고 칭한 것과 같은 경우입니다(삼상 1:1). 엘가나는 레위 지파 고라의 후손이지만 그를 에브라임 사람이라 칭한 것은 그 지역에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대상 6:66). 당시 레위 지파는 일정한 기업이 없이 이스라엘 전역에 흩어져 살고 있었습니다(민 35:1-8). 여호와의 궤를 옮길 때 오벧에돔이 다른 레위지파 사람들과 함께 악사(樂士)로 참여했다는 점(대상 15:18, 21)에서 가드 사람 오벧에돔은 본문에 나오는 고라 자손 오벧에돔과 동일한 인물입니다.
여호와의 언약궤는 오벧에돔의 집에서 석 달을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언약궤로 말미암아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습니다(삼하 6:11 ; 대상 13:14). 본문 5절에 ‘하나님이 오벧에돔에게 복을 주셨다’고 한 것은 아마 이와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석 달 동안 하나님께서 오벧에돔에게 어떤 복을 주셨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오벧에돔이 가난한 사람이었는데 부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어쩌면 미래에 있을 복에 관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역대기 기자는 오벧에돔의 아들들에 대해 열거하면서 갑자기 ‘이는 하나님이 오벧에돔에게 복을 주셨음이라’고 했습니다. 요세푸스의 말처럼 오벧에돔이 부자가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그가 자손의 복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오벧에돔의 자손은 62명이었고 모두 능력이 있어 그 맡은 직무를 잘 수행하는 자들이었습니다(대상 26: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라는 이스라엘 사람에게 반역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사람입니다(민 27:3 ; 유 1:11). 하지만 그의 자손 중에는 이스라엘의 영적 부흥을 가져온 위대한 선지자요 사사였던 사무엘이 있었고 오벧에돔처럼 복을 받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의 죄를 자녀에게 묻지 않으시고 자식의 죄를 부모에게 묻지 않으시며 각 사람이 행한 대로 보응하십니다. 참고 선을 행하면서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할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으로 갚으시고 이기심에 사로 잡혀 진리에 순종하지 않고 불의를 따르는 자들에게는 진노와 분노를 쏟으실 것입니다(롬 2:7-10).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맡겨주신 일은 그것이 무엇이든 소중하고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 일에 우열은 없고 상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일을 탐하거나 그 일을 맡은 사람에 대해 시기하지 말고 자신에게 주어진 믿음의 분량대로 분수에 맞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오벧에돔처럼 하나님께 복을 받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