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희망이 없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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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상 29장 10절 ~ 19절 [개역개정]
10 다윗이 온 회중 앞에서 여호와를 송축하여 이르되 우리 조상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을 받으시옵소서
11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12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13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14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15 우리는 우리 조상들과 같이 주님 앞에서 이방 나그네와 거류민들이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희망이 없나이다
16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가 주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려고 미리 저축한 이 모든 물건이 다 주의 손에서 왔사오니 다 주의 것이니이다
17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줄을 내가 아나이다 내가 정직한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즐거이 드렸사오며 이제 내가 또 여기 있는 주의 백성이 주께 자원하여 드리는 것을 보오니 심히 기쁘도소이다
18 우리 조상들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것을 주의 백성의 심중에 영원히 두어 생각하게 하시고 그 마음을 준비하여 주께로 돌아오게 하시오며
19 또 내 아들 솔로몬에게 정성된 마음을 주사 주의 계명과 권면과 율례를 지켜 이 모든 일을 행하게 하시고 내가 위하여 준비한 것으로 성전을 건축하게 하옵소서 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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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민족의 실질적인 조상인 야곱은 147세에 삶을 마감했습니다. 가나안에서 130년, 애굽에서 17년을 보냈습니다(창 47:28). 그가 130살에 애굽 왕 바로 앞에 섰을 때, 이런 고백을 합니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창 47:9) 한 마디로 괴로운 인생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가 험악한 세월을 보낸 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세상 사람처럼 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장자의 명분을 얻기 위해 아버지를 속이고, 안일한 삶에 취해 벧엘의 서원을 잊어버리기도 했습니다.
다윗은 야곱의 연수에 반도 안 되는 70년의 생을 살았으나 그 삶은 야곱 못지않게 파란만장했습니다. 그는 위기에 처할 때마다 하나님을 의지했고 하나님을 자기의 도우심으로 삼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다윗을 모든 환란에서 구원해 주시고 사울을 대신하여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셨습니다.
왕위에 오른 다윗은 수십 년 동안 방치되었던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그 궤를 모실 성전을 건축하려는 마음을 먹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를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다윗이 전쟁에서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입니다(대상 22:8 ; 28:3). 성전은 하나님과 사람이 만나는 곳으로 평화를 상징하는데, 전쟁을 통해 많은 피를 흘린 다윗에게는 성전 건축이 맞지 않았던 것입니다. 대신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그 일을 맡기셨습니다(대상 22:10). 솔로몬은 ‘평화’라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입니다(대상 22:9). 다윗은 비록 성전을 지을 수 없었지만 그의 아들이 성전을 건축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습니다(대상 29:2). 국가적인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다윗 개인이 소유하고 있던 금과 은도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 바쳤습니다. 백성들 역시 자원하는 마음으로 정성껏 예물을 바쳤습니다. 이에 백성들도 기뻐하고 다윗 왕도 무척 기뻐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온 회중 앞에서 하나님을 찬양했는데, 그 내용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 몇 가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1.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입니다.
11절 말씀입니다.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라는 우리 속담이 있습니다. 굴뚝에 연기가 나는 것은 아궁이에 불을 지폈기 때문입니다. 불을 때지도 않았는데 연기가 날 수는 없습니다. 이처럼 원인이 없으면 결과가 있을 수 없고, 결과가 있다는 것은 그 결과를 낳게 하는 원인이 반드시 있는 법입니다. 성경에도 이와 비슷한 말이 있습니다. '집마다 지은 이가 있(다)'(히 3:4) 집이 저절로 생겨나지는 않습니다. 어느 집이든 그것을 지은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만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만물을 지으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라는 말로 시작합니다(창 1:1). 이는 성경에서 가장 핵심적이며 기초가 되는 말씀으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단적으로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다스리시는 주권자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늘과 땅에 있는 것이 다 하나님의 소유입니다(시 50:12). 부와 명예도 하나님에게서 나오고 사람이 높아지거나 강하게 되는 것도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대상 29:12). 하나님께서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 분이십니다(삼상 2:6-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가진 것은 다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우리의 생명도,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은 모두 하나님께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것을 필요로 하실 때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돌려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2.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희망이 없습니다.
15절 말씀입니다. “우리는 우리 조상들과 같이 주님 앞에서 이방 나그네와 거류민들이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희망이 없나이다” 나그네는 ‘자기 고장을 떠나 다른 곳에 잠시 머물거나 떠도는 사람’을 말하고, 거류민은 ‘남의 나라에 머물러 사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어서 이 세상은 나그네와 거류민처럼 잠시 머물다 떠나야 하는 곳에 불과합니다(벧전 2:11). 우리가 이 세상에 있는 날은 마치 해가 지면 사라지는 그림자나(전 8:13) 안개처럼(약 4:14) 잠시 잠깐입니다. 그게 인생이고 그래서 희망이 없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마치 날아가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시 90:10). 매우 빠르다는 말을 흔히 '쏜살같다'라고 표현합니다. ‘쏜살’이란 ‘쏜 화살’을 말합니다. 세월은 마치 쏜 화살이 날아가는 것처럼 빠르게 지나갑니다. 그리고 그 끝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죽음은 결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림자처럼 항상 우리 곁에 있습니다. 언제든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우리는 모든 것을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나야만 합니다. 그것이 우리네 인생입니다. 그럼에도 이 세상에 영원히 거주할 것처럼 살아가는 것은 사람이 아닌 사람의 그림자를 단장시키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이 세상의 삶을 마치고 돌아갈 고향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곳을 ‘본향’이라고 했습니다(히 11:14-16). 그리스도인에게 본향은 하늘나라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고 했습니다(빌 3:20).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생애 동안 잠시 이 땅에 머물다가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날에 즉시 돌아가야 할 인생은 실로 나그네의 삶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이 아니라 본향인 하늘나라를 소망하며 살아야 합니다.
3.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한 마음을 기뻐하십니다.
17절 말씀입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줄을 내가 아나이다 내가 정직한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즐거이 드렸사오며 이제 내가 또 여기 있는 주의 백성이 주께 자원하여 드리는 것을 보오니 심히 기쁘도소이다” 하나님께서는 외모가 아니라 중심을 보신다고 하셨습니다(삼상 16:17). 중심은 마음을 가리킵니다. 사람은 겉모습을 보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살펴보시는 분이십니다(렘 11:20 ; 살전 2:4). 예배나 예물을 드릴 때 어떤 마음으로 드리는지, 그 마음이 진실한지 혹은 바른 지, 아니면 가식적인지 또는 마지못해 드리거나 억지로 하는 것은 아닌지 그 마음을 감찰하신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성전 건축을 위해 예물을 드릴 때 거짓이 없는 정직한 마음으로 즐거이 드렸고, 백성들 역시 마지못해 억지로 한 것이 아니라 진실한 마음으로 기쁘게 드렸습니다(대상 29:9).
사실 하나님께서는 드리는 예물의 많고 적음에는 관심이 없으십니다. 세상에 있는 것이 모두 다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예물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그것을 드리는 사람의 마음입니다(시 50:14). 하나님께서는 시간이든 물질이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진실하게 그리고 즐거이 드리는 자를 기뻐하십니다(고후 9:7). 또 다윗은 예물을 드릴 때 자기의 소유를 드린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것을 다시 하나님께 드린다는 심정으로 예물을 드렸습니다(대상 29:14, 16). 욥이 재산과 자식을 모두 잃어버린 상황에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었던 것도 다윗과 같은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 1:21) 하나님께서 욥에게 물질적인 복을 주신 것처럼 그것을 거두어 가실 권한도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하나님께서 임시로 우리에게 맡겨 주신 것에 불과합니다.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용하는 것이 우리의 의미이자 책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대 애굽 사람들은 잔치를 열 때마다 식탁에 사람의 해골을 올려놓았다고 합니다. 그들이 먹고 마시는 동안에도 죽음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을 경고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전도서 기자는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다“고 했습니다(전 3:1). 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도 있는 것입니다(전 3:2). 인생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은 우리가 거처할 영원한 처소가 아니라 나그네와 거류민들처럼 잠깐 머물다 가는 장소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나 영원한 본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이곳에 영원히 거주할 것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현세를 마음껏 즐기고 내일은 생각하지 말자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모든 걸 내려놓고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든 세상을 떠날 때를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세상 사람들처럼 현실의 삶에 안주하지 말고 미래에 있을 영원한 삶을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