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한 목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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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0장 7절 ~ 18절 [개역개정]
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8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13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16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17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18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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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은 원래 유목민족이었습니다(창 46:32). 유목민족이란 일정한 거처 없이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목축을 업으로 하는 민족을 말합니다. 가나안에 정착한 후에는 농사가 주업이 되었으나 여전히 목축은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중요한 산업이었습니다. 소나 양, 염소 등은 식용으로 뿐만 아니라 제물로도 사용되는 등 그 수요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목축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 특히 양을 치는 사람을 목자라 부르는데, 예수님께서는 양과 목자의 비유를 통해서 자신이 누구인가를 설명하셨습니다.
1. 나는 양의 문이라
목자는 낮에 양을 데리고 들로 나가서 풀을 뜯어먹게 한 후 저녁이 되면 양들을 다시 우리에 가둡니다. 우리의 문은 하나밖에 없는데, 목자는 이 문을 통해서만 우리에 들어갑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바로 이 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0:7). 그리고 양은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키며,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합니다. 그 나라는 양들의 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요 14:6). 구약의 성막에 보면 문이 하나밖에 없습니다(출 27:13). 이는 구원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 문을 통하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리켜 절도요 강도라고 하셨습니다. 절도와 강도는 같은 의미를 지닌 단어입니다. 전자는 양을 몰래 훔치는 것이고 후자는 강제로 빼앗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이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첫째, 예수님보다 먼저 온 자들입니다(요 10:8). ‘예수님보다 먼저 온 자들’이란 예수님 이전에 있었던 거짓 메시아나 선지자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자신을 메시아 혹은 선지자로 속여 사람들을 유혹했습니다. 사도행전 5장에 나오는 드다가 그 대표적인 인물입니다(행 5:36). 드다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지만 스스로 자랑하며 선전했다는 것으로 보아 거짓 선지자임이 틀림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세에 이런 자들이 많이 출현하여 사람들을 미혹할 것이라고 하시며(마 24:5) 주의를 당부하셨습니다(마 24:25). 지금 그 말씀대로 자칭 메시아들이 활개를 치고 있고 많은 사람이 그들에게 미혹되어 멸망의 문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미혹되지 않도록 늘 깨어있어 기도하고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 신실하지 못한 종교 지도자들입니다. ‘절도요 강도’라는 표현은 현재형으로,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 곧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들은 양의 문 되신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즉 복음이 아닌 율법으로, 은혜가 아닌 행위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 한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은 단지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 줄 뿐 그것을 지키는 것으로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의롭다는 인정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롬 3:20). 그럼에도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율법을 지키므로 구원을 얻으려 했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강요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들은 사람들 앞에서 천국 문을 닫아 버리고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을 뿐 아니라 들어가려는 사람들도 들어가지 못하게 했습니다(마 23:15). 또 개종자를 얻기 위해 바다와 육지를 두루 돌아다니다가 한 사람이 생기면 그를 자신들보다 배나 더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마 23:15).
이처럼 예수님보다 먼저 온 자들이나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사람들을 속이거나 그들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도둑이요 강도였으며 사람들을 멸망의 길로 인도하는 거짓 그리스도요 거짓 선지자들이었습니다(요 10:10). 베드로는 그들을 가리켜 '거짓 선생들'이라 불렀습니다(벧후 2:1). 거짓 선생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미혹했던 거짓 선지자들처럼 교회 내에 이단 사상을 퍼트려 교인들을 미혹했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를 믿는 것만으로는 구원을 얻지 못하며 할례나 안식일 등을 준수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갈 5:2-4). 그러나 이것은 복음이 아닙니다(갈 1:7).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구원은 율법을 지킴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만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롬 1:17). 또 거짓 선생들 가운데는 영지주의 사상을 전파하는 자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정했습니다. 선하신 분이 악한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실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요한은 그런 자들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요이 1:7).
그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재림을 꾸며낸 이야기라고 주장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재림에 대한 구약의 예언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선지자 자신이 꿈이나 환상을 통하여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하며 사도들의 가르침 역시 다를 바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벧후 1:16). 베드로는 이러한 거짓 선생들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구약의 예언들은 사람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말씀을 받아 전한 것이기 때문에(벧후 1:21)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예언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며, 자신들의 가르침 역시 마찬가지라고 강조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직접 재림에 관해 언급하신 바가 있습니다(요 14:3 ; 16:22). 따라서 그리스도의 재림은 누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앞으로 이루어질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재림이 지어낸 이야기라거나 율법을 준수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은 복음의 진리를 무너뜨리는 것이요 죄인을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갈 2:21). 우리는 그러한 자들의 거짓된 사상에 미혹되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리고 깨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골 4:2 ; 벧전 4:7).
2. 나는 선한 목자라
유대인들은 보통 100마리 안팎의 양들을 목축했는데, 양이 300마리가 넘는 경우 사람을 따로 고용해서 양을 치게 했습니다. 이렇게 삯을 받고 양을 치는 품꾼의 경우 그들의 관심은 양들의 안전보다 자신이 일한 대가로 받는 돈에 있었습니다(요 10:13). 그들이 삯꾼인지 아닌지는 양 떼에 위험이 닥칠 때 확연히 드러납니다. 이스라엘 지역에는 사자나 곰, 늑대 등과 같은 맹수들과 강도들이 있었기 때문에 양 떼를 지키기 위해서는 그들과 싸워야만 했습니다(삼상 17:34). 미쉬나에 의하면 삯꾼의 책임은 늑대 한 마리의 공격으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즉 늑대 한 마리가 공격하면 목자는 양들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하지만 그 이상이 되면 자신의 안전을 위해 도망가도 책임 추궁을 받지 않는 것입니다.
이처럼 평소 안전할 때는 삯꾼인지 아닌지 구분이 되지 않지만, 맹수의 공격과 같은 위험이 닥치게 되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런 의미에서 삯꾼은 목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요 10:12). 이들이 바로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입니다. 그들은 양들 곧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의 안전만을 도모했습니다. 또 백성의 영적 문제에는 신경 쓰지 않고 종교적 지식에만 몰두했습니다. 그들의 지식은 백성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한 도구가 아닌 그들 위에 군림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었습니다. 그들은 한 마디로 전형적인 삯꾼이었습니다. 반면에 선한 목자는 양들을 지키기 위하여 자기 목숨을 기꺼이 희생합니다(요 10:11). 예수님께서는 선한 목자로서 양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셨습니다(요 10:15).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스스로 그리고 기꺼이 희생양이 되신 것입니다(요 1:29). 그러나 그 목숨은 다시 얻게 될 것입니다(요 1:17). 왜냐하면 예수님께는 목숨을 버릴 권한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명령이자 약속이기도 합니다(요 10:18).
예수님의 이 말씀은 유대인들 사이에 또다시 논쟁을 일으켰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귀신이 들려 미친 사람으로 몰아붙였습니다(요 10:20).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요 10:6). 그들에게는 예수님의 말씀이 너무 어려웠습니다(요 6:60). 말씀 자체가 어려운 것보다는 말씀을 받아들일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요 8:37). 그들은 자신들의 무지와 어리석음을 예수님 탓으로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정작 귀신 들린 사람은 예수님이 아니라 예수님이 미쳤다고 하는 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은 귀신 들린 사람이 할 수 있는 그런 일들이 아니었습니다. 귀신 들린 사람이 어떻게 시각장애인의 눈을 뜨게 할 수 있겠습니까(10:21). 귀신 들린 사람이 어떻게 천병 곧 죄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이라 여기던 나병환자나 중풍병자를 고칠 수 있겠습니까. 그동안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일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 것을 귀신에게 사로잡힌 자들은 그런 생각조차도 거부합니다.
오늘날에도 예수님과 그를 믿는 사람들을 미쳤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심지어 사기꾼으로 보는 사람들까지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가 인류의 죄를 위해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다(딤전 2:6 ; 요일 2:2)는 것이 이해되지 않을 것입니다(고전 1:23). 어느 종교의 신이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다는 말입니까. 더욱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믿어야만 구원을 얻고 영원한 생명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니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기독교가 독선의 종교로 여겨지고 예수 믿는 자들이 미친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거기에 하나님을 이용해서 사람들을 속이는 사이비 종교들과 거짓 선생들 때문에 기독교 전체가 오명을 뒤집어쓰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진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세상에 오실 때 그들도 예수님이 세상의 구주였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계 1: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양이 우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양의 문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것처럼 죄인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양들의 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야만 합니다(요 10:9). 그렇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 들어가려고 하거나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자들은 모두 절도요 강도입니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바리새인이든 세리이든 그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도 없습니다(요 14:6). 이는 사람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하신 것입니다(행 4:12). 그런데 거짓의 아비 마귀(요 8:44)는 다른 길이 있다고 사람들을 속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길은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입니다(마 7:13).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많은 사람이 그리로 들어가고 있습니다(마 7:13). 반면에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작고 그 길이 매우 좁아 그곳을 찾는 사람들이 적습니다(마 7:14). 거짓 선지자들은 좁은 길을 가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넓은 길로 가라고 말합니다. 어느 길로 가든 도착하는 곳은 같으니 이왕이면 넓고 편한 길로 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말이 아닌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 전 세계적으로 거짓 선지자들이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그들은 사탄이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듯(고후 11:14) 양의 옷을 입고 활동하기 때문에 분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도 요한이 언급한 것처럼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해야 합니다(요일 4:1). 그들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과 부합하는지 성경을 상고하고 그 영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지 아닌지 분별할 수 있도록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그래야 거짓 선지자들에게 속지 않고 거짓 선생들에게 미혹되지 않습니다. 보이는 현상에 집착하지 말아야 하고, 자기가 하나님이니, 그리스도니, 성령이니 하는 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처음 세상에 오셨을 때는 그분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지만 다시 오실 때는 그분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누가 전해주고, 알려주고, 설명해 주어야만 인지할 수 있는 은밀하거나 애매한 형태가 아니라 번개가 동쪽에서 번쩍이면 서쪽까지 번쩍임 같이 누구나 분명하게 알고 볼 수 있도록 오십니다(계 1:7). 그리고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 직전에 많은 사람이 신앙을 저버리고 미혹의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를 것이며, 멸망의 아들이 출현할 것이라고 했는데(살후 2:3 ; 딤전 4:1), 이런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보다 먼저 왔다고 말하는 자들은 다 절도요 강도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