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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음TV/주일예배설교

가상칠언(2)

2024. 3. 24.

성경본문 보기

요한복음 19장 28절 ~ 30절 [개역개정]

28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29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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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는 가상칠언 즉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남기신 일곱 말씀 가운데 세 가지를 시간 순서상으로 살펴봤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남은 네 가지 말씀을 상고해 보겠습니다.

가상칠언 중 네 번째 말씀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입니다(마 27:46). 이 말씀은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만 기록되어 있고, 두 복음서에 기록된 유일한 가상칠언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막 15:25). 그로부터 6시간이 흐른 오후 3시쯤에 큰 소리로 부르짖으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이는 시편 22편 1절의 인용으로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입니다(막 15:34).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고전 15:3). 죄의 대가는 죽음이고(롬 6:23),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우리가 지은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사 53:12) 십자가 위에서 피 흘려 돌아가신 것입니다(롬 4:25).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았습니다(사 59:2). 죄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고(롬 5:10) 그것은 곧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하셨습니다. 그것이 곧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십자가는 저주(갈 3:13)와 수치(히 12:)의 상징이지만 버림받음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십자가에 달린 사람은 하늘에 속하지도, 땅에 속하지도 않은 그 중간에 매달려 있는데, 이는 하나님과 사람 모두에게 버림받았음을 의미합니다(사 53:3). 예수님은 하나님께 버림받음의 고통이 어떠한지를 시편의 말씀을 빌려 표현하셨습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시 22:1) 예수님께서는 죄로 말미암아 버림받아야 할 우리를 대신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그로 인해 원수 되었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고(롬 5:10) 우리는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롬 5:1).

다음으로 가상칠언의 다섯 번째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가상칠언의 다섯 번째 말씀은 “내가 목마르다”입니다(요 19:28).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일을 이루시기 위함이었습니다(요 4:34 ; 17:4). 그리고 그 일은 이미 구약 성경에 예언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목마르다’라고 하신 것도 성경을 응하게 하려고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이 성경은 시편 69편 21절입니다. “그들이 쓸개를 나의 음식물로 주며 목마를 때에는 초를 마시게 하였사오니”

로마 군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기 전 쓸개 탄 포도주(몰약을 탄 포도주, 막 15:23)를 예수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했습니다(마 27:34). 이는 쓸개를 탄 포도주가 마취 성분이 있기 때문인데, 유대 전승에 따르면 십자가형을 받은 죄수가 고통을 덜 느끼게 하려고 제공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를 거절하셨습니다. 우리의 죄로 인해 당하는 고통을 어떤 도움 없이 있는 그대로 받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는 십자가의 죽음이 누구의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희생에 따른 것임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고통을 받음으로 죄인에게 구원의 길이 열리고 그들이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게 될 것을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셨고 그 고통을 감내하셨습니다(히 12:2).

예수님께서 ‘내가 목마르다’라고 하시자 거기 있던 사람 중 하나가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님의 입에 댔습니다(요 19:29). 해면(海綿)이란 갯솜이라고도 하는데, 바다에 서식하는 생물로 흡수력이 뛰어나고 부드러워서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목욕용품 등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리스어로는 ‘스퐁고스”(σπόγγος)라고 하며, 이 단어에서 영어 '스펀지(sponge)'가 유래했습니다. 그리고 신 포도주는 문자적으로 포도주가 발효되어 만들어진 '초(醋)'를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이것을 받으시므로 “목마를 때에는 초를 마시게 하였다”는 시편 말씀이 성취되었습니다. 그런데 마태나 마가는 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갈대에 꿰어 마시게 했다고 했는데(마 27:48 ; 막 15:36), 요한은 그것을 우슬초에 매었다고 했습니다. 우슬초는 유대인들의 정결 의식에 사용되는 식물(레 14:4, 6, 49, 51, 52 ; 민 19:6, 18)로 어린양의 피를 집 문설주와 인방에 뿌릴 때 사용한 도구였습니다(출 12:22). 그렇다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님의 입에 대었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유월절 어린양으로 희생되셨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고전 5:7).

다음으로 살펴볼 가상칠언의 여섯 번째 말씀은 “다 이루었다”입니다(요 19:30). 예수님께서는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을 모두 그리고 완전히 이루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무엇일까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이렇게 밝히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 ; 막 10:45) '대속물'이란 포로나 노예를 해방시켜 주는 대가로 지불하는 돈 곧 속전(贖錢)을 의미합니다(출 30:12 ; 고전 6:20). 구약시대에는 죄를 지은 사람을 대신해서 짐승이 대속물로 희생되었습니다. 이때 제사장은 그 짐승의 피를 가져다가 제단에 뿌려야 했는데, 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그 피가 죄를 대속하기 때문입니다(레 17:11). 즉 피 흘림이 없으면 죄 사함도 없는 것입니다(히 9:22).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돌아가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요 19:34). 사람은 모두 죄인이기 때문에(롬 3:23) 스스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지만(히 4:15), 우리 인간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마 1:21). 즉 예수님께서는 죄의 노예가 되어 영원한 죽음의 형벌 아래 놓여 있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을 대속물로 내어주신 것입니다(히 9:15, 28).

둘째, 마귀의 일을 멸하시기 위함입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요일 3:8). 마귀는 악한 영들 곧 귀신들의 우두머리인 사탄을 가리킵니다(마 12:24-26 ; 계 12:9 ; 20:2). 마귀가 하는 일은 실로 다양한데, 한마디로 요약하면 사람들을 유혹하여 하나님을 거역하고 죄를 짓게 만드는 일입니다. 마귀의 별명 가운데 하나가 '거짓말쟁이' 혹은 '거짓의 아비'입니다(요 8:44). 마귀는 사람들에게 거짓된 교훈을 가르쳐 미혹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예수님의 성육신 곧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을 부인하도록 만드는 일입니다. 초대교회 당시에 많은 사람이 이 교훈에 미혹되었고 지금도 미혹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 사람의 몸 곧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요 1:14). 이를 부인하는 자들은 거짓 영의 지배를 받는 자들입니다(요일 4:3). 또 마귀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길이 여러 가지가 있다고 미혹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스스로 노력해서 구원의 경지에 오를 수 있고, 다른 종교를 통해서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정말 그렇다면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아예 천국이나 지옥이 없다고 가르치기도 합니다. 죽으면 모든 게 끝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으로 모든 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 후에는 심판이 기다리고 있고(히 9:27), 그에 따라 영원한 형벌에 처하게 되느냐 아니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느냐가 결정됩니다(마 25:46).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이러한 마귀의 일들을 멸하시기 위함입니다. 비록 지금도 마귀는 사람들을 미혹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장차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영원한 불 못에 던져짐으로써 완전히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계 20:10).

마지막으로 가상칠언의 일곱 번째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가상칠언의 일곱 번째 말씀은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입니다(눅 23:46)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다 이루신 예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시고 숨을 거두셨습니다. 바로 그때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지는 일이 발생했습니다(마 27:51). 이 휘장은 예수님의 육체를 상징하는 것으로, 휘장이 찢어졌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위해 흘리신 피를 힘입어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살 길이 열렸음을 의미합니다(히 10:20).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법궤가 모셔져 있는 지성소는 오직 한 사람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하루 속죄일에 짐승의 피를 가지고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만일 이러한 규례를 어기면 대제사장이라고 할지라도 죽임을 당했는데(레 16:2), 이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자유롭지 못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있는 휘장이 찢어짐으로 새로운 살길이 열리게 되었고,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어 누구든지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히 10:19, 20). 이는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지 않고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으며(요 14:6),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는 그 누구도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행 4:1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부터 숨을 거두실 때까지의 모든 과정을 지켜보던 백부장은 예수님을 가리켜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라고 고백했습니다(마 27:54). 누가복음에는 백부장이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라고 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눅 23:47). 그는 사형 집행을 지휘했던 로마의 백부장으로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이 하신 일곱 말씀을 들었고, 가장 밝은 시간인 정오부터 3시까지 어둠이 임한 일과 예수님께서 숨을 거두실 때 지진이 일어난 일 등을 보며 예수님이 의인이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 백부장은 후에 회개하고 그리스도인이 되어 이방 기독교의 중요한 인물이 되었고 끝내 순교했다고 전해집니다. 백부장의 고백처럼 예수님은 실로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고 구주로 영접하는 자는 그가 누구든 또 어떤 죄를 지었든 용서함을 받고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성도로서 우리를 위해 기꺼이 대속물이 되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하는 독생자를 아낌없이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늘 그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