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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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4장 1절 ~ 15절 [개역개정]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4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5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7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8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11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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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내가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요 8:21).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세상의 구주로 믿지 않는 자들은 그들의 죄 가운데서 죽을 것이므로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에는 영원히 가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일찍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이르노라”(요 13:33). 말씀은 같은 것 같지만 의미하는 바는 전혀 다릅니다. 제자들은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이 남아 있기 때문에 지금은 갈 수 없다는 의미이며, 나중에는 예수님을 따라가게 될 것입니다(요 13:36).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떠난다고 하시는데 어디로 가시는지, 왜 지금은 예수님을 따라갈 수 없는지, 앞으로 자신들은 어떻게 되는지 모든 게 불투명했고 그래서 불안했습니다. 더욱이 자신들 가운데 한 명이 예수님을 팔아넘길 것이고(요 13:21), 베드로는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은 제자들을 몹시 당황케 했습니다. 그들 역시 베드로처럼 주를 위해서라면 자기 목숨도 내놓을 각오가 되어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막 14:31 ; 요 11:16). 제자들의 마음은 근심과 불안으로 크게 흔들렸습니다. 이를 아신 예수님께서는 몇 가지 말씀으로 그들을 위로하시고 격려하셨습니다.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사실 예수님을 믿는 것과 그를 보내신 하나님을 믿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입니다(요 5:24). 즉 하나님을 믿는 것이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고, 예수님을 믿는 것은 그를 보내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요 6:29 ; 12:44). 따라서 예수님을 믿지 않고 거부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굳게 믿고 의지하는 자들은 근심과 불안,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 자들에게 하나님께서(사 26:3) 그리고 예수님께서 평안을 넘치도록 부어주시기 때문입니다(요 14:27).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는 다릅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은 부나 권력, 명예나 지식 등 외형적이고 상대적이며 일시적입니다. 반면에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안은 외부적인 조건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심지어 고난 속에서도 얻을 수 있는 평안입니다. 이러한 참 평안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들만이 얻을 수 있습니다.
2.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하늘에 한 도시 곧 영원한 처소를 예비하셨습니다(마 25:34 ; 히 11:16). 그곳은 하나님의 집으로 거처할 곳이 많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곳에 제자들이 머물 처소를 마련하시기 위해 가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거처를 예비하면 다시 와서 제자들을 데려다가 그곳에 함께 있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은 예수님과의 이별로 인해 근심과 불안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큰 소망과 위로를 주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다시 오실 예수님을 소망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미래에 대한 근심과 불안을 떨쳐 버릴 수 있고 현세에 안주하고 싶은 유혹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소망하는 것이 이 세상의 삶뿐이라면 우리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고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고전 15:19). 지금까지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박해를 받았지만 그것을 참고 견디며 목숨까지 기꺼이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은 부활과 내세의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히 11:35). 그런데 이러한 소망이 없다면 그들의 수고는 헛된 것이 되고 맙니다. 그렇다면 기독교가 여느 종교와 다른 게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무엇 때문에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복음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언젠가 반드시 다시 오실 것이고 그날에 우리는 부활하여 예수님과 함께 영원한 처소에 머물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소망이 있기에 우리는 현실에서 겪는 어려움을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고, 세상의 유혹을 단호히 거절할 수 있는 것입니다.
3.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께서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안다”고 하시자 도마가 묻습니다.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요 14:5) 이럴 땐 보통 베드로가 나설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할 것이라’는 말씀에 의기소침해졌던 것 같습니다. 도마의 질문에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안다”고 하신 것은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라는 의미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그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도마가 예수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냐고 한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헬라어 원문에는 길, 진리, 생명 앞에 ‘그(ἡ)’라는 정관사 붙어 있습니다. 즉 ‘그 길이요 그 진리요 그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여러 길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유일한 길이시며, 진리의 말씀으로 죄인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세상에 보내신 유일한 분이십니다(행 4:12).
예수님께서는 죄인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즉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기를 대속물로 내어 주셨습니다(마 20:28 ; 딤전 2:6). 그로 말미암아 죄인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는데(엡 2:14, 16), 그 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길을 통하면 누구든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가 없고, 예수님을 믿지 않고서는 어떤 사람도 구원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미국의 한 도시에서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사람이 천국에 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그 질문에 어떤 사람들은 교회에 등록하고 예배에 빠짐없이 참석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대답했고, 선한 삶을 살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대답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의 노력으로 천국에 갈 수 있다거나 심지어는 무엇을 믿든 간에 자기가 믿는 것을 굳게 지킨다면 천국에 갈 것이라고 대답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사람이 천국에 갈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를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자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정죄를 받지 않으며(롬 8:1)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습니다(요 5:24). 그러므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영생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기쁨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요 14:13). 그리고 이어서 다시 한번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하심이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혹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실행됨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기도할 때 주의할 사항은 자기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범하기 쉬운 잘못 가운데 하나가 자기의 뜻을 구하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또 기도의 응답이 없을 때 그 원인이 자신에게 있음에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요한은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고 했습니다(요일 5:14).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과 일치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응답받지 못한 기도가 있다면 그 기도가 하나님의 뜻을 구한 것인지 아니면 자기의 뜻을 구한 것인지를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냐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을까요? 성경을 보면 알 수 있을까요? 물론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다 확실한 방법은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찰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고전 2:10). 또한 성령께서는 우리의 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알 수 없지만 성령께서 친히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여 주십니다(롬 8:26, 27).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성령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도 우리를 위해 간구하고 계십니다(롬 8:34).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시는 성령님과 예수님이 계시기에 우리는 어떤 어려움도 능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제자들의 곁을 떠나는 이유를 장차 그들이 거하게 될 거처를 예비하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후에 다시 이 땅에 오시어 믿는 사람들을 영접하시고 예수님이 계신 곳에 영원히 같이 있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장차 천국에 들어가 영원히 살 것을 생각하면 이 세상에서의 일에 대해 근심하지 않을 것이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제자들에게 이 땅에서의 모든 환난과 고통을 능히 이겨낼 수 있게 하는 큰 소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러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라는 소망,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천국에서 살게 될 것이라는 소망을 가질 때 이 세상에서의 근심과 염려, 불안과 두려움을 떨쳐 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