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응낙하심을 입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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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 8장 15절 - 23절 [개역개정]
15 내가 무리를 아하와로 흐르는 강 가에 모으고 거기서 삼 일 동안 장막에 머물며 백성과 제사장들을 살핀즉 그 중에 레위 자손이 한 사람도 없는지라
16 이에 모든 족장 곧 엘리에셀과 아리엘과 스마야와 엘라단과 야립과 엘라단과 나단과 스가랴와 므술람을 부르고 또 명철한 사람 요야립과 엘라단을 불러
17 가시뱌 지방으로 보내어 그 곳 족장 잇도에게 나아가게 하고 잇도와 그의 형제 곧 가시뱌 지방에 사는 느디님 사람들에게 할 말을 일러 주고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섬길 자를 데리고 오라 하였더니
18 우리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고 그들이 이스라엘의 손자 레위의 아들 말리의 자손 중에서 한 명철한 사람을 데려오고 또 세레뱌와 그의 아들들과 형제 십팔 명과
19 하사뱌와 므라리 자손 중 여사야와 그의 형제와 그의 아들들 이십 명을 데려오고
2 0다윗과 방백들이 레위 사람들을 섬기라고 준 느디님 사람 중 성전 일꾼은 이백이십 명이었는데 그들은 모두 지명 받은 이들이었더라
21 그 때에 내가 아하와 강 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우리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우리와 우리 어린 아이와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을 그에게 간구하였으니
22 이는 우리가 전에 왕에게 아뢰기를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는 권능과 진노를 내리신다 하였으므로 길에서 적군을 막고 우리를 도울 보병과 마병을 왕에게 구하기를 부끄러워 하였음이라
23 그러므로 우리가 이를 위하여 금식하며 우리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그의 응낙하심을 입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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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백성은 처음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지 7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이듬해부터 성전 건축을 시작해서 약 20년 만인 주전 516년에 완공하고 봉헌식을 거행했습니다. 주전 586년 솔로몬 성전이 파괴된 후 70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그로부터 60년쯤 되어 2차 포로 귀환이 이루어집니다. 주전 458년 에스라의 인솔로 1,700여 명(1,754명)이 유다로 돌아왔는데 그 명단이 8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때 바사의 왕은 아닥사스다였는데(스 7:1), 그는 에스더서에 나오는 아하수에로 왕의 셋째 아들입니다. 그는 한때 사마리아 사람들의 무고로 예루살렘 성읍과 성벽의 건축을 중단시켰으나(스 4:21), 후에 이를 허용하고 그에 필요한 자재를 지원하기도 했습니다(느 2:8). 그러면 2차 귀환의 인솔자인 에스라가 어떤 인물인지, 그리고 귀환 후 그가 한 일이 무엇인지 함께 살펴봄으로써 신앙의 교훈으로 삼고자 합니다.
1. 에스라는 제사장 겸 학자입니다.
에스라서는 일반적으로 에스라가 기록했다고 봅니다. 그는 자신을 가리켜 스라야의 아들이라고 했는데, 스라야는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 함락될 당시의 대제사장이었습니다(왕하 25:18). 그는 하맛 땅 립나(리블라, 렘 52:9)라는 곳에서 바벨론 왕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왕하 25:18 ; 렘 52:24). 그런데 역대상에는 스라야의 아들이 여호사닥(요사닥, 스 3:2)으로 되어 있습니다(대상 6:14). 그도 예루살렘이 멸망한 후 바벨론에 사로잡혀 갔지만 죽임을 당하지는 않았습니다(대상 6:15). 그의 아들 예수아(여호수아, 학 1:1)는 1차 귀환 때 예루살렘으로 올라왔고, 그로부터 80년 가까이 지난 뒤에 에스라가 2차로 귀환했습니다. 그러니까 예루살렘이 멸망한 후 2차 귀환 때까지 약 130년이 걸린 셈입니다. 만일 에스라가 스라야의 아들이라면 당시 나이가 최소 130년은 되어야 했습니다. 더욱이 에스라는 3차 포로 귀환 때인 주전 444년에도 생존해 있었습니다(느 8:9 ; 12:26). 이런 정황들로 보아 에스라는 스라야의 아들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스라야의 아들이라고 한 것은 에스라가 제사장의 혈통임을 강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즉 에스라는 제사장으로서 자신이 이스라엘 백성을 영적으로 인도할 자격과 책임이 있음을 강조하려 한 것입니다. 제사장의 책임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성전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과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기도하는 일이었습니다(욜 2:17).
1차 포로 귀환 때 다수의 제사장이 유다로 돌아와서(스 2:36-39) 성전을 건축하는 데 앞장섰을 뿐만 아니라 예배의 회복과 이스라엘의 신앙을 위해 나름 노력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전 건축 후 6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그들과 당시의 지도자들 대부분이 죽었을 것이고, 그 후손들의 신앙은 점점 퇴락했습니다. 그래서 조금 과장하면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전 상태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스 9:14). 심지어 이스라엘의 신앙을 책임져야 할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까지도 가증한 일에 동참을 했습니다(스 9:1).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스라엘의 신앙을 회복시키고 그들을 영적으로 인도할 지도자가 필요했습니다. 이에 적합한 사람이 바로 제사장 겸 율법에 정통한 학자인 에스라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유다로 보내 이스라엘의 신앙을 회복시킬 수 있도록 바사 왕 아닥사스다의 마음을 움직이셨습니다(스 7:14). 그래서 아닥사스다 왕은 에스라에게 조서를 내려 바사 제국의 영토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뜻이 있는 자들을 모아 함께 가도록 했습니다(스 7:13). 이에 에스라는 아하와 강가로 사람들을 모으고 거기서 3일 동안 진을 치며 귀환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들 가운데 제사장은 여럿 있었으나 다른 레위 지파 자손이 한 사람도 없었던 것입니다(스 8:15). 하나님의 성전에서는 제사장의 직무 못지않게 레위 사람들의 역할도 중요했습니다. 더욱이 이스라엘의 신앙 개혁을 위해서는 이들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그들의 역할 중 하나가 율법과 규례를 가르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에스라는 가시뱌 지방으로 사람들을 보내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섬길 자를 데려오도록 했습니다. 이에 레위인 40여 명과 그들을 도와 성전 일을 하는 느디님 사람 220명을 데려왔는데, 여기에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습니다(스 8:18). 우리가 무슨 일을 계획하든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할 수가 없습니다(잠 16:9). 그러므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그 일을 해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왜 레위 사람들은 한 명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않으려 했던 것일까요? 이에 대해 자신들이 맡은 임무가 너무 과중해서 꺼렸을 것이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이 너무 힘들어서 가지 않으려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유야 어떻든 사명을 회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맡기지 않으십니다. 설사 맡기신다 해도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각자에게 주어진 일을 피하지 말고 기쁨으로 그 일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2. 에스라는 신앙의 사람입니다.
에스라는 유다로 귀환하기에 앞서 백성에게 금식을 선포했습니다. 유다까지 안전하게 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보살펴 주시기를 간구하기 위함이었습니다(스 8:21). 바벨론에서 유다까지 가는 데 4개월이 걸렸으니(스 7:9), 거리는 족히 1,000km는 되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대부분 광야 길이었고, 도적들도 많았기 때문에 노약자들과 가축들 그리고 금은 등의 예물을 가지고 안전하게 여행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에스라는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아닥사스다 왕에게 자신들을 호위할 병사들을 요청할 수도 있었습니다(스 8:22). 느헤미야는 유다로 귀환할 때 그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습니다(느 2:9). 하지만 에스라는 그런 요청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이유가 본문 22절에 나와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전에 왕에게 아뢰기를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는 권능과 진노를 내리신다 하였으므로 길에서 적군을 막고 우리를 도울 보병과 마병을 왕에게 구하기를 부끄러워 하였음이라” 에스라는 왕에게 "우리 하나님은 자기를 신뢰하는 사람은 잘되도록 보살펴 주십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저버리는 자는 하나님의 큰 노여움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확신에 차서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자신들을 보호할 군대를 보내달라고 요청하면 왕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그래서 차마 그런 부탁을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대신 에스라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기로 결심하고 이를 위하여 금식하며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응낙하심을 입어 무사히 예루살렘으로 귀환할 수 있었습니다(스 8:23, 31). 이처럼 우리도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해야 합니다(신 10:20).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시는 방법은 실로 다양합니다. 느헤미야는 왕이 보낸 호위병들의 도움을 받아 유다로 귀환했습니다(느 2:9). 그가 믿음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닙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 데 효과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로마 시민으로서 그의 권리를 사용하기도 했습니다(행 22:25). 만일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었다면 느헤미야나 바울은 결코 그런 일을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에스라처럼 도와주실 수도 있고 느헤미야같이 도우실 수도 있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도우실지는 알 수 없으나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함께 하셔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3. 에스라는 기도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무사히 예루살렘에 도착한 에스라 일행은 거기서 3일 동안 머문 후 나흘째 되는 날 성전에 올라가 은과 금과 기구들을 달아 제사장에게 넘겨주고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습니다(스 8:33-35). 이러한 일들이 있고 난 후 백성의 지도자들이 에스라를 찾아와 이스라엘의 상황이 어떤지를 보고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에서는 가증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그 주된 원인이 이방인과의 혼인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스 9:2). 더욱이 이 일에 지도자들과 관리들이 앞장서고 있었습니다. 백성의 본을 보여야 할 지도자들이 오히려 가증한 일을 행하는데 앞장을 서고 있으니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가 어떤지를 짐작게 합니다. 이 말은 들은 에스라는 너무 기가 막혀 겉옷과 속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쥐어뜯으며 앉아 있었습니다. 유다는 하나님께 죄를 범하므로 멸망하고 바벨론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유다를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사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짓게 하시고 폐허가 된 유다와 예루살렘을 다시 세워 그곳에 살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또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하나님께서 금하신 가증한 일들을 행하는 유다 백성을 보니 너무 화가 나고 슬퍼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겉옷과 속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쥐어뜯으며 앉아 있다가 저녁 제사를 드릴 때에 일어나서 무릎을 꿇고 두 팔을 들고서 하나님께 이스라엘의 죄를 자복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신실한 사랑과 은혜에 근거하여 이스라엘에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를 간구했습니다. 이렇게 에스라가 하나님의 성전 앞에 엎드려 울면서 기도하고 죄를 자백하자 큰 무리가 에스라 주변에 모여 함께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에스라의 간절한 기도가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여 그들로 하여금 죄를 자복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회개에는 그에 합당한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마 3:8). 이스라엘 백성은 다시는 이방 여인과 결혼하지 않을 것임은 물론이고, 이미 결혼한 자도 이방인 아내와 그들의 소생을 내보내기로 약속하며 맹세했습니다(스 10:5). 비록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이미 결혼한 사람과 헤어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더구나 자녀를 낳은 자들도 있었습니다(스 10:44). 하지만 신앙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일이었습니다. 만일 이런 일을 그대로 내버려 둔다면 이스라엘은 또다시 하나님을 떠나 멸망의 길로 갈 것입니다. 예외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미 결혼해서 아이까지 있으니 그런 자들은 예외로 하자고 한다면 적은 누룩이 온 반죽 덩어리를 부풀게 하는 것처럼(고전 5:6) 그 역시 신앙에 큰 걸림돌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을 방해하는 것이 있다면 비록 그것이 작은 것이라도 단호히 물리쳐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에스라는 바사 왕에게 신임을 얻고 있는 사람으로 굳이 유다로 돌아가지 않아도 나름 평안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안일을 도모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해 바벨론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특권을 포기하고 유다로 귀환했습니다. 그는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다”고 고백한 시편 기자와 같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시 84:10). 바울도 그랬습니다. 그는 세상적으로 볼 때 내세울 것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빌 3:4). 바울은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행 26:24)고 할 정도로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그에게는 로마의 시민권이 있었습니다. 이 시민권을 가지고 있으면 로마가 지배하고 있는 곳 어디서나 신분을 보장받을 수 있고, 더불어 상당한 명예와 권리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행 16:37 ; 22:25). 그러나 바울은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모든 걸 포기했습니다. 그에게는 로마의 시민권보다 더 큰 천국의 시민권이 있었고(빌 3:20), 세상의 지식보다 고상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빌 3:8).
우리도 에스라처럼 그리고 바울처럼 세상의 영광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그 말씀대로 살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늘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세상의 정욕이 아닌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기 위해 몸부림쳐야 합니다. 그럴 때만이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들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