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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음TV/수요예배설교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않겠느냐

2024. 5. 15.

성경본문 보기

요한복음 18장 1절 ~ 11절 [개역개정]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건너편으로 나가시니 그 곳에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니라
2 그 곳은 가끔 예수께서 제자들과 모이시는 곳이므로 예수를 파는 유다도 그 곳을 알더라
3 유다가 군대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얻은 아랫사람들을 데리고 등과 횃불과 무기를 가지고 그리로 오는지라
4 예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나아가 이르시되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5 대답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하시니라 그를 파는 유다도 그들과 함께 섰더라
6 예수께서 그들에게 내가 그니라 하실 때에 그들이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지는지라
7 이에 다시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신대 그들이 말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8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에게 내가 그니라 하였으니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이 가는 것은 용납하라 하시니
9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10 이에 시몬 베드로가 칼을 가졌는데 그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
11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설교문 보기

최후의 만찬이 끝난 후 예수님과 제자들은 기드론 시내 건너편에 있는 감람산으로 가셨습니다(마 26:30). 그 산 서편 기슭에 겟세마네 동산이 있습니다(마 26:36). 겟세마네란 ‘기름 짜는 틀’이란 뜻으로, 그곳에 감람유(눅 7:46) 즉 올리브기름을 짜는 틀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곳은 예수님께서 자주 제자들과 함께 가시던 곳이어서(눅 22:39) 가룟 유다도 알고 있었습니다(요 18:2).

겟세마네에 이르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시험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는 그들을 떠나 돌을 던져 닿을 만한 거리만큼 가셔서 무릎을 꿇으시고 얼굴을 당에 대시고 엎드려(마 26:39) 땀이 핏방울같이 될 정도로 간절히 힘써 기도하셨습니다(눅 22:44).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 ; 막 14:36 ; 눅 22:42)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고통을 잘 알고 계셨기에 할 수만 있다면 이 시간이 자신에게서 지나가기를 원하셨습니다(막 14:35).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자신이 감당해야 할 일임을 잘 알고 계셨던 예수님께서는(요 3:14 ; 12:32, 33) 자기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원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셨습니다.

기도는 자기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요일 5:14). 반대로, 구하여도 받지 못하는 것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약 4:3).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자신의 유익만을 위해서 쓰려고 구하기 때문에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열심히 기도해도 응답이 없다면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기도를 하고 있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도를 마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돌아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마 26:45). 여기서 죄인은 복수형으로 예수님께서 죄인들의 손에 넘겨진다는 말씀입니다. 이들은 산헤드린 공회의 의원들 곧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가리키는 것으로(마 16:21 ; 20:18)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인 로마 사람들에게 넘겨주어 십자가에 못 박게 했습니다(마 20:19).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사 53:4-6). 그러므로 예수님을 판 가룟 유다나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넘겨준 산헤드린 공회 의원들 그리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로마 사람들은 우리 자신이나 다름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팔았고 십자가에 못 박도록 넘겨주었으며 십자가에 못 박은 바로 그 죄인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고 계실 때 유다가 로마 군인들과 산헤드린 공회에서 보낸 사람들을 데리고 그곳에 왔습니다(요 18:3). 마태가 이들을 가리켜 ‘큰 무리’(마 26:47)라고 한 것으로 보아 족히 수백 명은 되었을 것입니다(요 18:12). 그들은 등불과 횃불과 무기를 들고 있었습니다. 어떻게든 예수님을 잡으려는 속셈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닥칠 모든 일을 아시고 앞으로 나서시며 그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요 18:4) 공관복음서에는 유다가 예수님께 먼저 접근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는 함께 온 자들과 미리 신호를 정해두었는데, 그것은 “내가 입 맞추는 자가 그 사람이니 그를 단단히 붙잡으라”는 것입니다(마 26:48 ; 막 14:44). 이를 모르실 리 없는 예수님께서 유다에게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라고 하시자(눅 22:48) 그는 무리 가운데로 물러섰습니다. 그리고 신호에 따라 무리가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는데 오히려 예수님께서 그들 앞으로 나서시며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동안 예수님께서는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기 때문에 위험을 피해 숨기도 하셨습니다(요 8:59 ; 10:39 ; 11:54). 그러나 이제 그때가 이르렀으므로(요 17:1) 더 이상 피하지 않으시고 담대히 그리고 당당하게 고난을 맞이하셨습니다.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그들은 “나사렛 예수라”고 대답했습니다(요 18:5). 예수님께서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으나 유아기 때부터 사역을 시작하실 때까지 줄곧 나사렛에서 사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나사렛 예수'라고 불렀으며(마 21:11 ; 26:71 ; 요 18:5 등), 이로써 선지자들을 통해 “그는 나사렛 사람이라 불릴 것이라”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습니다(마 2:23). 그런데 구약에서는 이 말씀의 근거가 되는 구절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선지자들이 직접 했다기보다는 메시아가 멸시와 천대를 받게 될 것이라고 한 예언을 마태가 그렇게 표현한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나사렛은 구약성경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지명으로 같은 갈릴리 사람조차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요 1:46)고 할 정도로 천대받는 곳이었습니다. 더욱이 예수님은 목수의 아들이었고(마 13:55), 그 역시 목수였습니다(막 6:3). 사람들은 그런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도, 인정하지도 않았습니다(요 7:41, 42). 따라서 예수라는 이름 앞에 그의 출신인 나사렛을 붙인 것은 멸시와 조롱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렛 예수”라고 대답하는 그들에게 “내가 그 사람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뒤로 물러나 땅에 엎드러졌습니다(요 18:6). 예수님의 신적인 권위에 압도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일이 두 번 연속으로 벌어졌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자신이 누구인가를 그들에게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잡으러 온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로마 군인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누구인지 몰랐고 관심도 없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에서 보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려주는 동시에 제자들에게는 용기를 주시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는 것이 결코 무기력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른 자발적인 순종임을 보여주시려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맞서 능히 이기실 수 있습니다. 아버지께 구하여 열두 군단이 넘는 천사들을 보내시게 할 수도 있고(마 26:53) 하늘에서 불을 내려 순식간에 그들을 멸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의 길을 택하셨습니다. 하지만 이를 알지 못했던 제자들은 무력으로 그들을 제지하려고 했습니다. 특히 베드로는 칼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칼을 뽑아 대제사장의 종인 말고라 하는 사람의 오른편 귀를 베어버렸습니다. 십여 명의 인원으로 수백 명의 사람들을 상대로 싸우려고 한 용기는 가상하나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한다고 하는 일들이 오히려 하나님의 뜻에 반대되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바울도 예수님을 알기 전에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것이 하나님을 위한 일인 줄 알았습니다(딤전 1:13).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잘 분별해야 합니다. 물론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모든 걸 통찰하시는 분이기에(고전 2:10)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며 그 뜻에 따라 살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8:11). 여기서 잔은 예수님께서 겪으셔야 할 고난을 상징합니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주신 것으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마셔야 하는 잔이었습니다(마 26:39). 예수님께서는 이 잔을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억지로 받지도 않으셨습니다. 기꺼이 그 잔을 마시기로 결심했고 또 실행에 옮기셨습니다. 우리에게도 마셔야 할 고난의 잔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믿고 따르는 자들이 받아야 할 고난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마 5:11).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이루 말할 수 없는 박해를 받았습니다. 이것이 두려워 신앙을 포기하는 자들도 있었으나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그 고난의 잔을 기꺼이 마시는 사람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를 믿기로 작정한 사람들은 이런 고난을 각오해야만 합니다(딤후 3:12).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고난을 피할 방법을 알려주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고난을 받을 때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늘에서 그들의 상이 크기 때문입니다(마 5:12).


믿음의 선진들이 상 주심을 바라보며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고난의 잔을 기꺼이 받은 것처럼, 우리도 고난의 잔을 피하지 말고 기꺼이 마실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세상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하시고, 보혜사 성령께서 언제나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니 우리는 어떤 어려움과 고난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