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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음TV/주일예배설교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2024.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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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장 1절 ~ 8절[개역개정]

1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2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설교문 보기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희생제물이 되신 예수님께서는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고전 15:20). 그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인 오순절에 성령께서 강림하셨는데, 이날을 기념하여 교회에서는 성령강림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행 1:4). 약속이란 보혜사 성령에 관한 것으로(요 14:16), 성령께서는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제자들에게 임하실 것입니다(요 16:7). 그리고 그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제자들은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행 1:5). 이에 대해서는 세례 요한도 예언한 바 있습니다(마 3:11).

그동안 제자들은 여느 유대인들처럼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시켜 주실 것으로 생각했습니다(눅 24:21). 그리고 그것이 곧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되는 것이라 여겼습니다. 아울러 그때 자신들도 권력의 자리에 오르게 될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눅 22:34). 누가 더 높은 자리에 앉게 될 것인가가 그들의 최대 관심사였고 이로 인해 서로 논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막9:34). 하지만 예수님의 죽음으로 그들의 꿈은 사라진 듯 보였습니다. 꿈은 고사하고 자신들도 고초를 겪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과 두려움에 숨죽이고 있었습니다(요 20:19). 그때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만난 후 접어두었던 이스라엘의 회복과 권력에 대한 기대를 다시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며칠 있으면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니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시자 제자들은 내심 불안했습니다. 성령이 오신다는 건 곧 예수님께서 떠나신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떠나시면 자신들의 기대가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제자들은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묻습니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입니까”(행 1:6)

어떤 사람들은 제자들이 이런 질문을 한 이유에 대해 예수님의 말씀을 오해했기 때문으로 보고 있습니다. 며칠 후에 성령으로 세례를 받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곧 이스라엘 나라가 회복될 것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여러 차례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에 관한 일들을 말씀하셨기 때문에(행 1:3) 그들이 오해할 만도 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질문했든 그들이 기대한 것은 이스라엘의 회복과 더불어 자신들이 얻게 될 권력이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잘못된 관심을 바로 잡아주시고 그들의 사명이 무엇인지 일깨워 주셨습니다.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하나님의 나라는 이스라엘의 정치적 회복이 아닌 만유(만물)의 회복을 의미합니다(행 3:21). 회복이란 본래의 상태로 돌이키거나 원래의 상태를 되찾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부패하게 된 이 세상이 하나님께서 지으신 본래의 목적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상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예수님의 초림 때 시작되었으며(마 12:28),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완성될 것입니다(28:10; 눅 21:27 ; 계 21:1-8). 그러나 그때가 언제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마 24:36). 그것은 하나님의 권한이며 그러기에 제자들은 그날을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으며 알려고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보다 제자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사명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 사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증인이란 헬라어로 ‘마르튀스’라고 하는데, 이는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법정에서 그대로 증언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행 22:15). 따라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그분에 관한 모든 걸 가감 없이 사실 그대로 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는 희생이 필요합니다. 당시에는 예수님을 믿는 것 자체가 고난을 각오한 일이었습니다. 출교는 물론이고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누누이 자신을 따르는 자들이 받을 고난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자기를 따르겠다고 한 서기관에게는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 8:20)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면 많은 희생이 따른다는 것을 암시하신 말씀입니다. 또 먼저 가서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한 후에 주를 따르겠다고 하는 사람에겐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눅 9:62)고 하셨습니다. 뒤를 돌아본다는 것은 세상 일에 관심을 가지거나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런 자들은 예수님을 온전히 따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눅 9:23). 예수님을 따르려면 자기의 모든 소유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도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눅 14:33). 하지만 제자들에게는 그런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 모두 도망쳤습니다(막 14:50). 특히 베드로는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면서 그 말이 거짓이라면 저주를 받겠다고 맹세까지 했습니다(마 26:74 ; 막 14:71). 자신들도 예수님처럼 죽임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으나 여전히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회복과 자신들이 얻게 될 권력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두려움이 사라진 건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두려움과 세상적인 욕망을 떨쳐 내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입니다. 성령 강림에 관한 약속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수백 년 전 이미 요엘 선지자를 통해 예언된 바 있습니다.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욜 2:28, 29) 베드로는 오순절 성령 강림 후 이 사건을 가리켜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행 2:16)이라고 함으로써 요엘의 예언이 이루어졌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러면, 제자들이 성령을 받기 위해 어떻게 준비했는지 그리고 성령을 받은 후 제자들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그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신앙의 교훈을 삼고자 합니다.

1. 성령을 받기 위해 예루살렘에 머물렀습니다.

예루살렘은 제자들에게 안전한 곳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제자들은 성령이 강림하시기까지 그곳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그런데 왜 예루살렘일까요? 예루살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 곧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의 모형입니다(히 12:22).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장소로(대하 6:6) 그곳에 성전이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참 성전 이신 그리스도(요 2:21)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장소이기도 합니다. 구약의 예언에 의하면 하나님의 말씀 곧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나올 것입니다(미 4:2, 사 2:3). 예수님께서도 성령이 임하시면 예루살렘을 기점으로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행 1:8). 이처럼 예루살렘은 구속사적인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장소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왜 예루살렘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이 성에 머물라하시니 머물렀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하시니 기다린 것뿐입니다. 비록 예루살렘이 위험한 장소이긴 했으나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그들의 사명이었고 오늘 우리의 사명이기도 합니다.

2. 성령을 받기 위해 기도했습니다.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제자들은 예루살렘 성안에 있는 한 다락방에 모였습니다. 그곳은 마가의 다락방으로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먹은 곳으로 추정됩니다(막 14:5).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가룟 유다를 제외한 열한 사도와 예수님의 어머니 그리고 예수님의 형제 등 120명 정도였습니다. 그들은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받기 위해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에 힘썼습니다(행 1:14). 

제자들은 성령께서 언제 강림하실지 몰랐고 그러기에 언제까지 기도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다만 그날을 기다리며 기도할 뿐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기도만 한 것은 아닙니다. 날마다 성전에 올라가 하나님을 찬송하기도 했습니다(눅 24:53).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실의와 두려움에 빠져 있던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승천하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큰 기쁨과 용기를 얻었습니다(눅 24:52). 그래서 더 이상 두려워 숨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찬송하며 기도에 힘쓰기를 10일, 기다리던 성령께서 강림하셨습니다. 이날은 보리 수확의 첫 열매를 드리는 초실절로부터(레 23:15) 50일째 되는 날인 오순절이었습니다(행 2:1). 이는 창세 전 이미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때를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언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응답이 더디다고 조급해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인내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신앙은 기다림의 연속이므로 인내가 필요합니다(약 5:11).

3. 성령을 받은 후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제자들의 가장 큰 사명은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성령의 권능이 필요했고 그래서 제자들은 위로부터 오는 능력을 입을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어야 했습니다. 권능이란 헬라어로 ‘뒤나미스’라고 하며, ‘강한 능력’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다이너마이트’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성령께서 강림하신 후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권능을 받아 병자를 고치고(행 3:1-10), 귀신을 내쫓으며(행 8:7 ; 16:18), 죽은 자를 살리는(행 9:36-42) 등 많은 표적과 기적을 행했습니다(행 5:12). 이런 것들을 가리켜 성령의 은사라고 하는데(고전 12:4), 성령께서 각 사람에게 은사를 주시는 것은 맡은 바 사명을 감당하며 이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골 1:24)가 바르고 건강하게 세워지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벧전 4:10).

당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순교를 각오해야 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증인과 순교자는 같은 말입니다. 그만큼 힘들고 어려운 것이 증인의 삶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권능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할 수 없지만 우리에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우리는 모든 걸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빌 4:1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행 2:4) 베드로가 유대인들을 향해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행 2:36)고 하자 사람들은 마음에 찔려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말합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행 2:38, 39) 성령의 선물이란 성령의 은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 자체를 말합니다. 즉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면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약속은 유대인들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사람에게 주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진심으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고 시인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몸은 성령께서 내주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고전 3:16 ; 6:19 ; 엡 2:22). 그러므로 성도는 자기의 몸을 불의를 행하는 도구로 죄에 내주지 말고, 의를 행하는 도구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롬 6:13). 이것이 곧 성령의 충만입니다. 성령의 충만이란 공간적으로 성령이 채워지거나 다시 들어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내주하신 성령(롬 8:9 ; 고전 12:3)의 지배와 인도함을 받는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충만해져서 육신이 아닌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몸을 불의를 행하는 도구가 아닌 의를 행하는 도구로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아울러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성령의 은사를 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몸 된 교회가 진리의 터 위에 건강하고 아름답게 세워지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