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예음TV/주일예배설교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2024. 6. 9.
성경본문 보기

느헤미야 4장 1절 ~ 14절 [개역개정]

1 산발랏이 우리가 성을 건축한다 함을 듣고 크게 분노하여 유다 사람들을 비웃으며
2 자기 형제들과 사마리아 군대 앞에서 일러 말하되 이 미약한 유다 사람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스스로 견고하게 하려는가, 제사를 드리려는가, 하루에 일을 마치려는가 불탄 돌을 흙 무더기에서 다시 일으키려는가 하고
3 암몬 사람 도비야는 곁에 있다가 이르되 그들이 건축하는 돌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 하더라
4 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우리가 업신여김을 당하나이다 원하건대 그들이 욕하는 것을 자기들의 머리에 돌리사 노략거리가 되어 이방에 사로잡히게 하시고
5 주 앞에서 그들의 악을 덮어 두지 마시며 그들의 죄를 도말하지 마옵소서 그들이 건축하는 자 앞에서 주를 노하시게 하였음이니이다 하고
6 이에 우리가 성을 건축하여 전부가 연결되고 높이가 절반에 이르렀으니 이는 백성이 마음 들여 일을 하였음이니라
7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이 중수되어 그 허물어진 틈이 메꾸어져 간다 함을 듣고 심히 분노하여
8 다 함께 꾀하기를 예루살렘으로 가서 치고 그 곳을 요란하게 하자 하기로
9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들로 말미암아 파수꾼을 두어 주야로 방비하는데
10 유다 사람들은 이르기를 흙 무더기가 아직도 많거늘 짐을 나르는 자의 힘이 다 빠졌으니 우리가 성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하고
11 우리의 원수들은 이르기를 그들이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가 그들 가운데 달려 들어가서 살륙하여 역사를 그치게 하리라 하고
12 그 원수들의 근처에 거주하는 유다 사람들도 그 각처에서 와서 열 번이나 우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우리에게로 와야 하리라 하기로
13 내가 성벽 뒤의 낮고 넓은 곳에 백성이 그들의 종족을 따라 칼과 창과 활을 가지고 서 있게 하고
14 내가 돌아본 후에 일어나서 귀족들과 민장들과 남은 백성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 하였느니라

 

설교문 보기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간다는 것,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마귀가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훼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1차로 귀환한 유다 백성이 성전을 재건하는 데 20년이 걸렸습니다(스 3:8 ; 6:15). 사마리아 사람들의 반대에 부딪혀 16년 동안 성전 건축이 중단되었기 때문입니다(스 4:5, 24). 그로부터 70년이 지났으나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은 여전히 파괴된 채 남아 있었습니다. 그동안 여러 차례 성벽 재건을 시도했으나 그때마다 대적들의 방해로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그들의 방해는 3차로 귀환한 느헤미야에게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느헤미야는 모든 방해를 극복하고 성벽을 재건하는 데 성공합니다. 그가 어떻게 방해를 극복하고 성벽을 건축할 수 있었는지 그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신앙의 도움을 얻고자 합니다.

1. 신중하게 계획하고 지혜롭게 진행했습니다.

예루살렘에 도착한 느헤미야는 3일 동안 머물면서 그곳의 정황을 살폈고,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 기도로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자신이 왜 예루살렘에 왔는지에 대해서는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유다 사람들은 그가 예루살렘에 왔는지조차 몰랐을 수도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그곳에 머문 지 사흘 만에 밤에 일어나 몇 사람과 함께 예루살렘 외곽을 둘러보았습니다. 이렇게 아무한테도 알리지 않고 일을 준비한 것은 신중을 기하기 위해서입니다. 만일 성벽 재건의 계획이 대적들에게 알려지게 되면 시작도 하기 전에 심한 반대에 부딪힐 수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유대 사람들에게조차 알리지 않은 것은 그들 중 상당수가 산발랏과 도비야 등 대적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그들과 내통하는 자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느 6:18 ; 13:28).

후에 느헤미야는 자신의 계획을 유다의 방백들과 백성들에게 알렸습니다. 아울러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자신을 도우신 일과 왕이 이 일을 허락하고 필요한 재목을 지원해 줄 것을 약속했다는 사실(느 2:8)을 전해주었습니다(느 2:18). 느헤미야는 비록 성벽을 건축하는 것이 선한 일이고 그것을 위해 자신이 유다의 총독으로 부임했으나 백성들에게 그것을 강요하거나 명령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백성들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동참을 이끌어 내기 위함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느헤미야의 말에 백성들은 기꺼이 그 일에 협력하기로 하고 그 일을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일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진행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일일수록 더욱 신중하게 계획하고 지혜롭게 진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2. 하나님께 기도하고 담대하게 진행했습니다.

유다 백성이 예루살렘 성벽을 건축하려 한다는 말이 대적들 곧 호론 사람 산발랏과 모압 사람 도비야 등에게 전해졌습니다. 산발랏은 사마리아의 총독으로 알려져 있고, 도비야는 암몬 사람으로 산발랏의 부하였습니다. 그들은 느헤미야가 유다의 총독으로 부임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심히 근심하던 자들이었습니다(느 2:10). 느헤미야로 인해 유다가 번성하게 되면 상대적으로 자신들의 입지가 좁아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유다 백성이 예루살렘 성벽을 건축하려 한다는 말을 듣고는 업신여기며 비웃었습니다(느 2:19). 이에 느헤미야는 그들에게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리니 그의 종들인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 오직 너희에게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고 기억되는 바도 없다”고 했습니다(느 2:20). 느헤미야는 대적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을 지켜주셔서 성벽을 건축하는 일을 형통케 하실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하나님께서 그 일을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느 1:11 ; 2:12).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을 그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신 일은 그 누구도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은 그 누구도 막을 수는 없습니다.

느헤미야는 사람들에게 각 구역을 정해주고 자신이 맡은 곳의 성벽과 성문을 쌓도록 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 성문은 양문을 비롯해 어문, 분문, 마문 등 10개였습니다. 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3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성벽이 건축되고 있는 소식을 들은 산발랏과 도비야는 크게 분노했습니다. 그들은 동료들과 사마리아 군인들을 대동하고 와서 유다 사람들을 비웃으며 말했습니다. “이 미약한 유다 사람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스스로 견고하게 하려는가, 제사를 드리려는가, 하루에 일을 마치려는가, 불탄 돌을 흙 무더기에서 다시 일으키려는가... 그들이 건축하는 돌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느 4:2, 3) 대적들의 눈에는 정말 유다 백성들과 그들이 하는 일이 어리석게 보였을 수도 있습니다. 파괴된 성벽의 잔해들은 흙 무더기처럼 쌓여 있었고(느 4:10), 성벽 건축에 동원된 인원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느 4:19).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이 큰 공사를 할 수 있겠냐며 대적들은 비웃으며 조롱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간과한 것이 있습니다. 유다 사람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분은 약할 때 강함이 되시고,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시는 분이십니다(롬 4:17).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과 함께하시는 한 성벽 건축은 완성될 것입니다. 이를 잘 알고 또 믿고 있었던 느헤미야는 대적들의 비난에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대꾸해 봤자 소용없을뿐더러 자칫하면 상황이 안 좋은 방향으로 흐를 수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비난하고 조롱하는 자들에게 일일이 대꾸할 필요도 없고 그들처럼 같이 비난해서도 안 됩니다. 그럴 때 우리가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일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우리가 업신여김을 당하나이다 원하건대 그들이 욕하는 것을 자기들의 머리에 돌리사 노략거리가 되어 이방에 사로잡히게 하시고 주 앞에서 그들의 악을 덮어 두지 마시며 그들의 죄를 도말하지 마옵소서 그들이 건축하는 자 앞에서 주를 노하시게 하였음이니이다”(느 4:4)

여러 가지 정황으로 산발랏과 도비야는 사마리아 사람들처럼 하나님을 섬겼던 것으로 보입니다. 비록 하나님을 유일신이 아닌 여러 신들 가운데 하나로 섬기고 있었지만 말입니다. 그렇다면 산발랏과 도비야는 예루살렘의 성벽을 건축하는 일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 일을 멸시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조롱한 것은 결국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모독하는 행위나 다름이 없습니다. 따라서 그들에 대한 느헤미야의 기도는 정당했습니다.

산발랏과 도비야는 자신들의 조롱과 비난에도 불구하고 성벽 재건이 순조롭게 진행되자 또다시 분노했습니다. 이번엔 예루살렘을 직접 공격하여 그 일을 방해하기로 했습니다(느 4:8). 이 소식을 들은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동시에 파수꾼을 두어 주야로 방비했습니다(느 4:9). 하지만 백성들은 더 이상 성벽을 건축하지 못할 것이라며 낙심했습니다(느 4:10). 여러분, 마귀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려고 하면 할수록 더 심한 방법으로 우리를 공격해 올 것입니다(딤후 3:12). 마치 우는 사자가 두루 다니며 먹을 것을 찾듯 대적들은 끊임없이 우리를 공격합니다(벧전 5:8). 그래서 두렵게 만들고 낙심하게 만들고 포기하게 만듭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믿음을 굳건히 해야 합니다.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백성들에게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라고 했습니다(느 4:14).

느헤미야는 동생으로부터 예루살렘이 참담한 상황에 직면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수일 동안 금식하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는 기도 중에 하나님을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으로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느 1:5) 하나님께서는 그 어떤 자들보다 크고 두려우신 분이십니다.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며(삼상 2:6, 7), 영혼까지도 지옥에 던져서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마 10:28). 그러므로 몸은 죽일지라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이들 곧 마귀나 그의 추종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하나님보다 사람들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의 일보다 사람의 일에 더 우선입니다. 또 세상과 쉽게 타협해 버리기도 하는데, 그럴수록 신앙은 퇴보할 뿐입니다. 우리는 사람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해야 합니다. 대적들이 어떤 위협을 가한다고 할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담대히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민 14:9 ; 신 1:29, 30 ; 삼하 10:1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느헤미야는 대적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52일 만에 성벽 재건을 완수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각자에게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하기를 원합니다. 그 일이 힘들고 어렵다고 낙심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원래 신앙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조롱과 비웃음을 당하기도 하고 업신여김을 받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같이 비난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됩니다. 그러면 그들과 똑같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때론 억울한 일로 고난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요셉이 그랬습니다. 그는 형들의 시기로 애굽의 노예로 팔려 갔고,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한 번도 불평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럴수록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었습니다.

베드로는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운 일이라”고 했습니다(벧전 2:19). 비록 억울하게 고난을 당하더라도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그 고난을 참는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다운 일이며 그것이 곧 은혜입니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것은 이를 위함입니다(벧전 2:21). 예수님께서도 우리를 위해 고난을 받으심으로 우리가 따라야 할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분은 죄를 지으신 일이 없고, 거짓을 말한 적도 없으셨지만, 모욕과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모욕을 모욕으로 갚지 않으시고, 고난을 받으실 때도 위협하지 않으셨으며 모든 걸 공정하게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맡기셨습니다(벧전 2:23). 우리도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 모든 걸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는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어떤 고난과 어려움도 그리고 대적들의 비난과 조롱과 위협을 믿음으로 잘 이겨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