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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음TV/수요예배설교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2024.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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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장 1절 ~ 11절 [개역개정]

1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2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설교문 보기

오늘부터는 사도행전을 살펴보려고 하는데요, 먼저 사도행전이 어떤 책인지부터 간단하게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행전을 기록한 사람은 누가입니다. 전승에 의하면 그는 수리아의 안디옥에서 태어나 당시 학문의 중심지였던 길리기아의 다소에서 의학을 공부한 것으로 전해집니다(골 4:14). 다소는 사도 바울의 고향이기도 합니다(행 22:3). 누가는 이방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바울과 동행하며 선교 사역에 힘을 썼습니다(딤후 4:11). 그는 두 권의 책 곧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했는데, 모두 데오빌로라는 특정인에게 보낸 보고서 형식의 글이었습니다(눅 1:3 ; 행 1:1). 누가는 데오빌로를 ‘각하’라 칭했는데, 이는 당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을 부를 때 사용되는 칭호였습니다(행 23:26 ; 26:25). 이로 보건대 데오빌로는 기독교로 개종한 로마 정부의 고위 관료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면에 단지 그에 대한 예의를 표하기 위해 각하란 칭호를 사용한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그는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으나 아직 모르는 것이 많았습니다. 더욱이 당시는 유대교의 박해와 이단 사상들이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을 위협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누가는 데오빌라가 이미 배운 것들이 모두 틀림없는 사실임을 알게 하려고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하여 그에게 보낸 것입니다(눅 1:4). 그렇다고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이 데오빌로 한 사람만을 위해 기록된 것은 아닙니다. 신약의 다른 책들이 그러하듯 누가복음이나 사도행전은 모든 그리스도인을 위해 기록되었으며, 오늘날 우리를 위해 기록된 말씀이기도 합니다.

먼저 누가는 지난번에 쓴 글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합니다. 즉 누가복음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신 때부터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을 통하여 지시를 내리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들을 기록했습니다(행 1:1, 2). 그 후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시간 순서대로 기록한 것이 바로 사도행전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을 역사서로 분류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사십일 동안 자신이 살아 계심을 여러 가지 확실한 증거들로 사도들에게 보여 주셨고,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관한 일들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모였을 때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명령을 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듣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 1:4)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이란 보혜사 성령을 가리킵니다(요 14:6, 7). 그리고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신 이유는 몇 날이 못되어 제자들이 성령으로 세례를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일 후에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들이 있던 곳은 예루살렘 동편에 있는 감람원이라 하는 산이었습니다(행 1:12). 그때 제자들이 예수님께 여쭈었습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입니까”(행 1:8).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것’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이스라엘 나라가 회복될 것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줄곧 하나님 나라에 관한 일들을 말씀하셨기 때문에(행 1:3) 그들이 오해할 만도 합니다.

또 제자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스라엘의 독립과 회복을 통해서 실현될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회복되면 자신들이 권력의 자리에 앉게 될 것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과 더불어 산산이 부서졌던 그들의 정치적 욕망이 부활하신 주님을 보면서 다시금 되살아난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이스라엘의 정치적 회복으로 실현되는 것이 아닙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는 이스라엘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만물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행 3:21). 회복이란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을 말하는데(마 12:13), 하나님을 떠나 타락하고 부패한 이 세상이 지음을 받은 본래의 목적 곧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분의 영광을 나타내던 상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사 43:21).

하나님께서 처음 만드신 세상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창 1:31)라고 하셨을 정도로 완벽하고 아름다운 세상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인해 타락하고 부패한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이 함께 탄식하며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롬 8:22). 그들은 모든 만물이 회복되는 날 곧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습니다(롬 8:21).

사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도래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과의 논쟁에서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마 12:28). 그러나 아직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눅 21:31 ; 빌 1:6 ; 히 13:14).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고(요일 3:5) 동시에 마귀의 일을 멸하시기 위함입니다(요일 3:8). 마귀가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사람을 속이고(고후 11:14 ; 살후 2:10), 죄를 짓도록 유혹하며(요 13:2), 진리를 믿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사람의 몸에 들어가서 질병을 일으키기도 하고(마 9:32 ; 12:22 ; 막 9:25 ; 눅 4:40-41 ; 눅 13:11),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기도 합니다(막 5:5 ; 눅 8:2). 예수님께서는 이런 마귀의 일을 멸하시려 오셨습니다. 그런데 마귀는 여전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는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고(마 5:8),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을 동원해서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려 하고 있습니다(마 24:24). 이미 많은 사람이 그들에게 미혹되어 멸망의 길로 들어섰습니다(마 7:13).

죽음은 어떻습니까? 예수님께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셨음에도 그 결과인 죽음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임했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가 완전히 도래하면 그때 이 모든 것은 다시 있지 않을 것입니다(계 21:4). 그런데 우리는 그날을 알 수가 없습니다. 때와 시기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기 때문입니다(행 1:7). 그러기에 제자들은 그날이 언제인지 알 필요도 없고 알려고 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그보다도 제자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사명 곧 복음 전파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이 말씀을 마치시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축복하신 후(눅 24:51) 그들이 보는 가운데 하늘로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했습니다(행 1:9).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상징합니다(왕상 8:11 ; 시 97:2 ; 마 16:5).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실 때 제자들이 계속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흰 옷 입은 두 사람 곧 천사가 그들 곁에 섰습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고 했습니다(행 1:11).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을 때도 흰옷 입은 두 천사가 나타나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 했는데(눅 24:4 ; 요 20:11), 둘은 무엇을 증명하거나 확증하기 위한 최소한의 수입니다(신 19:15 ; 마 18:16). 두 천사가 예수님께서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고 한 것은 예수님의 부활이 틀림없는 사실이듯 재림 또한 반드시 이루어질 사건임을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어떤 모습으로 다시 오시는지 그리고 왜 오시는지를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1. 재림의 형태

두 천사는 예수님께서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실 것이라’고 했습니다(행 1:11). 이는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는 것을 직접 보았듯이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도 사람들이 직접 눈으로 보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세상에 오셨을 때 그분의 오심을 안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메시아요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분이 베들레헴의 한 외양간에서 태어나리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를 통해 그 장소가 특정되긴 했으나(미 5:2), 시기에 대해서는 불투명했습니다(단 9:24). 부활하신 예수님을 본 사람도 많지 않았고(고전 15:5-8), 그 가운데 일부만이 승천하시는 예수님을 목격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는 그분의 재림을 모르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번개가 동쪽에서 치면 서쪽까지 번쩍이듯이 예수님께서는 모든 민족이 다 볼 수 있게 임하시기 때문입니다(마 24:27 ; 계 1:7).

또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는 모든 사람 심지어 죽은 자들까지도 들을 수 있도록 주의 호령(요 5:25)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가 울릴 것이기 때문에(살전 4:16) 주의 재림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누가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아야 합니다(마 24:23). 그들은 모두 거짓 그리스도입니다(마 24:5, 24).

2. 재림의 목적

예수님께서 이 땅에 처음 오셨을 때는 세상의 심판이 아닌 구원이 목적이었습니다(요 12:47). 그러나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목적은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기 위해서입니다(딤후 4:1). 다시 오시는 예수님께서는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시며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공평하게 심판하실 것입니다. (사 11:3, 4). 즉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선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불의를 행하는 자는 영벌을 받게 하실 것입니다(롬 2:6-1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초대교회는 재림의 시기를 놓고 큰 갈등과 혼란을 겪었습니다. 당시 교인들 가운데는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박해를 당하면서도 예수님의 재림을 소망하며 참고 견뎠습니다. 그런데 일부 교인들은 주의 재림이 가까웠다고 해서 일상적인 일을 소홀히 하고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기도 했습니다(살전 4:11). 하지만 그들의 생각과는 달리 예수님의 재림이 지연되자 신앙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재림을 의심하거나(벧후 3:4),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미루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벧후 3:9). 그뿐 아니라 주의 재림을 보기 전에 죽은 사람들은 영영 천국에 못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기도 했습니다(살전 4:13).

이에 대해 바울은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 즉 예수님을 믿고 죽은 자들은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부활하여 살아있는 자들과 함께 주님을 영접하게 될 것이며, 영원토록 예수님과 함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살전 4:14-17). 또 주의 재림이 가까웠다고 해서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소란을 피우는 자들에 대해서는 조용히 자기 일을 하라고 말합니다(살전 4:11).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말고 자기 일에 열심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미루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베드로가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이라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악인이 자신의 모든 길에서 돌이켜서 사는 것을 참으로 기뻐하십니다(겔 18:23).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든 사람이 구원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고 계십니다(딤전 2:4). 하나님께서는 결코 죄인들이 심판을 받아 멸망에 이르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사랑하는 독생자까지 보내주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아직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해야 합니다(벧후 3:15). 그래야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시는 날에 멸망하지 않고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아울러 우리는 주의 재림을 소망하며 그날을 잘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언제 올지 모르는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 슬기로운 다섯 처녀가 기름을 넉넉히 준비했던 것처럼(마 25:4) 언제 다시 오실지 모르는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우리는 늘 준비하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께서는 늘 깨어 있으라고 하셨고(마 24:42), 베드로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했습니다(벧전 4:7). ‘정신을 차리라’는 말은 ‘올바른 마음을 가지라’는 것이고, ‘근신하라’는 것은 ‘말과 행동을 조심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마지막이 가까울수록 삼가 마음과 행실을 바르게 하고 무절제한 생활을 버려야 하며 그렇게 살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재림을 잘 준비하여 기쁨으로 주님을 맞이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