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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음TV/주일예배설교

그의 조상 다윗 같이

2023. 1. 29.
성경본문 보기

열왕기상 15장 9절 ~ 15절[개역개정]
9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왕 제이십년에 아사가 유다 왕이 되어
10 예루살렘에서 사십일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마아가라 아비살롬의 딸이더라
11 아사가 그의 조상 다윗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12 남색하는 자를 그 땅에서 쫓아내고 그의 조상들이 지은 모든 우상을 없애고
13 또 그의 어머니 마아가가 혐오스러운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므로 태후의 위를 폐하고 그 우상을 찍어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으나
14 다만 산당은 없애지 아니하니라 그러나 아사의 마음이 일평생 여호와 앞에 온전하였으며
15 그가 그의 아버지가 성별한 것과 자기가 성별한 것을 여호와의 성전에 받들어 드렸으니 곧 은과 금과 그릇들이더라

 

설교문 보기

이스라엘이 둘로 나뉜 이후 북이스라엘 왕국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을 시작으로 모두 19명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들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는데, 모두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는 것입니다. 남유다 왕국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을 시작으로 모두 20명의 왕들이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그중에서 8명은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았고, 세 번째로 왕위에 오른 아사도 그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러면 아사의 삶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해야 합니다.

성경은 이스라엘과 유다의 역대 왕들을 평가할 때 보통 두 사람을 기준으로 삼습니다. 남유다에서는 다윗이고, 북이스라엘에서는 여로보암입니다. 북이스라엘에는 여로보암이라는 이름을 가진 왕이 두 명입니다. 한 사람은 초대 왕이고 또 한 사람은 13대 왕입니다. 이 둘을 구분하기 위해 편의상 초대 왕을 여로보암 1세라 하고, 13대 왕을 여로보암 2세라고 합니다. 여로보암 1세는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백성들로 하여금 우상숭배의 죄를 짓게 했습니다(왕하 10:29). 반면에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행 13:22)으로 우리아(우리야, 마 1:6)의 일을 제외하고는 평생에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사람이었습니다(왕상 15:5).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다'는 말은 '하나님의 눈에 올바르게 혹은 옳은 일을 행했다'는 뜻입니다. 사람의 눈에는 옳은 것처럼 보이는 일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악한 것일 수 있습니다(잠 14:22 ; 16:25). 우리는 세상의 관점이 아닌 하나님의 관점에서 올바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의 지식이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삶의 지표로 삼아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른 삶인지를 가르쳐 주는 인생의 나침반과 같습니다(시 119:105).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삶고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르보호암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아비얌은 그의 아버지가 행한 모든 죄를 그대로 답습했고, 그의 마음이 자기 조상 다윗의 마음과는 달라서 하나님 앞에 온전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비얌의 뒤를 이어 유다의 왕이 된 아사는 아버지와는 달리 그의 조상 다윗 같이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습니다. 그렇다고 아사의 삶이 완전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언제나 부족하고 불완전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 다윗도 우리아의 일로 큰 죄를 범했고, 당대에 의인이요 완전한 자라 칭송을 받았던 노아는 술에 취해 벌거벗은 채로 잠이 드는 추태를 보이기도 했습니다(창 9:21).

아사는 왕이 된 후 종교개혁을 단행했습니다. 남색하는 자 곧 신전 남창들을 그 땅에서 쫓아냈고(왕상 15:12) 그의 조상들이 지은 모든 우상을 없앴으며 성전 제단을 보수했습니다(대하 15:8). 또 그의 어머니 마아가가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므로 그녀를 태후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고 그 우상을 찍어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이 있습니다. 아사의 어머니는 아비살롬의 딸 마아가입니다(왕상 15:10). 그런데 아사의 아버지 아비얌의 어머니도 마아가입니다(왕상 15:2). 아비얌과 아사의 어머니가 같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부 성경에서는 아사의 어머니를 할머니로 바꿨습니다(표준새번역, 공동번역, NIV). 아마도 아사의 어머니가 일찍 죽었거나 병에 걸렸거나 어떤 사정으로 태후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어서 할머니가 그 자리를 대신한 것으로 보입니다.

여하튼 아사는 우상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태후의 위를 폐할 만큼 하나님을 섬기는 데 열심이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 흠이 있다면 산당을 없애지 않았다는 것입니다(왕상 15:14). 그런데 같은 사건을 다루고 있는 역대하 14장에는 산당을 없애버린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대하 14:5). 이에 대해 예루살렘 근방의 산당들만 없앴고 멀리 지방에 있는 산당들은 그대로 놔두었다는 견해가 있고, 성전이 건축되기 전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던 산당은 남겨두고 우상을 숭배했던 산당들만 없앴다고 보기도 합니다. 산당은 가나안 사람들이 자신의 신을 숭배하던 장소였는데(왕상 11:7),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이런 산당을 다 헐어 버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민 33:52). 물론 성전이 없던 시기에는 이스라엘 백성도 산당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삼상 9:12 ; 왕상 3:2, 3). 하지만 예루살렘에 성전이 세워진 후로는 산당에서 제사를 드릴 필요도 없었고, 드려서도 안 되었습니다(신 12:13, 14). 그러므로 산당은 제거되어야 마땅했지만 대부분의 왕들이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 가운데는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왕하 12:3 ; 14:4 ; 15:35).

비록 아사는 산당을 없애지 못했고, 말년에는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의지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그의 마음이 일평생 하나님 앞에 온전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왕상 1:14). 그만큼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신실하게 살려고 노력했던 사람이 바로 아사였습니다.

2.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아사는 왕위에 오른 후 그의 조상들이 만든 모든 우상을 없애 버렸고, 이방 풍습들을 제거했으며, 성전 제단을 고치는 등 하나님만을 찾았고 하나님만을 의지했습니다. 그가 얼마나 하나님을 의지했는지를 보여주는 한 사건이 있습니다. 구스 사람 세라가 유다를 치기 위해 군사 100만과 병거 300대를 거느리고 오자 아사는 이웃 나라에 도움을 구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만을 구했습니다. "여호와여 힘이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하건대 사람이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대하 14:11).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에(삼상 17:47) 하나님의 함께 하심의 여부에 따라 승패가 갈립니다. 아무리 많은 군사와 좋은 무기를 가지고, 좋은 전술을 세웠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시면 전쟁에서 패할 수밖에 없습니다(시 127:1). 반면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불가능하게 보이는 전쟁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를 잘 알고 있었던 아사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유다가 구스를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진심으로 찾는 사람 의지하는 사람들에게 능력을 주시고 그들을 힘있게 하십니다(대하 16:9). 그러므로 어려움을 당할 때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고(시 146:3) 힘과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을 우리의 도움으로 삼아야 합니다(시 146:5).

3. 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열심으로 섬기며 그분만을 의지했던 아사는 말년에 이르러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의지하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아사 왕 36년에 북이스라엘 왕 바아사가 유다를 치러 올라와서 라마에 요새를 건축하려고 했습니다(대하 16:1). 아사 왕이 41년 동안 유다를 다스렸으니(왕상 15:10) 그가 죽기 5, 6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바아사가 라마에 요새를 건축하려고 했던 것은 북이스라엘 사람들이 유다로 건너가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습니다. 유다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평안을 누린다는 소문이 전해지자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다수가 아사 왕에게로 모여들었습니다(대하 15:9). 이에 이스라엘 왕 바아사는 유다로 통하는 길목인 라마에 요새를 건축하여 백성들이 유다로 가는 것을 막으려 한 것입니다(대하 16:1). 아울러 라마를 유다 정복을 위한 전초 기지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사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지 않고 아람 왕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대신 사람의 도움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 것입니다. 그것도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성물을 바치면서까지 말이죠(왕상 15:15 ; 16:2). 하나님을 의지했고 그 결과가 어떤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아사가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랫동안 평안한 삶을 살다 보니 그의 신앙이 나태해진 것은 아닐까요? 한 가지 분명한 건 그가 교만해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일로 선지자 하나니가 와서 아사 왕을 책망했습니다. "왕이 아람 왕을 의지하고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아람 왕의 군대가 왕의 손에서 벗어났나이다 구스 사람과 룹 사람의 군대가 크지 아니하며 말과 병거가 심히 많지 아니하더이까 그러나 왕이 여호와를 의지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의 손에 넘기셨나이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 일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이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대하 16:7-9).

다윗은 우리아의 일로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받자 자신의 죄를 인정했습니다(삼하 12:13). 그런데 아사는 오히려 화를 내며 선지자를 옥에 가두었습니다. 이는 교만한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특징 가운데 하나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지적받았을 때 그것을 인정하고 회개하기보다는 도리어 화를 내고 심지어 해를 가하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찾아볼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서도 이런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교만했던 아사는 자신을 책망하는 선지자를 옥에 가두었을 뿐만 아니라 백성 중에서 몇 사람을 학대했습니다(대하 16:10). 또 발에 병이 나서 위독하게 되었을 때도 하나님께 구하지 않고 의원들을 찾았습니다(대하 16:12). 병이 났을 때 의원을 찾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지만 하나님보다 의원을 먼저 찾고 또 의원을 하나님보다 더 의지했다는 것은 분명 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신다고 했습니다(벧전 5:5).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그래야 분수에 지나치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겸손은 우리를 존귀하게 하지만 교만은 우리를 멸망에 이르게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잠 18:1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사는 왕위에 오른 후 35년 동안은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하나님만 섬기고 그분을 의지하며 유다를 잘 다스렸습니다. 백성들 역시 아사 왕을 따라 하나님을 찾았습니다(대하 15:10-14). 이렇게 아사와 백성들이 하나님을 찾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만나 주시고 그들 사방에 평안을 주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대하 15:15). 하지만 아사 왕 마지막 5, 6년은 불신의 삶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아사의 마음이 일평생 여호와 앞에 온전하였다(왕상 15:14)고 평가한 것은 유다에 만연해 있던 우상들을 없애고 이방 풍습들을 제거하는 등 여호와 신앙을 회복하는데 큰 공헌을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아사뿐만 아니라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았던 왕들도 마지막이 그리 좋지는 않았습니다. 신앙의 나태와 안일 그리고 교만으로 인해 죄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한 결과입니다.

우리가 변치 않은 믿음을 가지고 일평생 하나님만을 섬기기 위해서는 겸손해야 합니다(골 3:12 ; 벧전 3:8 ; 5:5). 겸손한 사람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그분의 도우심을 간구합니다. 또 겸손한 사람은 아무리 많은 정의와 사랑을 베풀고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남겼다고 할지라도 그 속에 자신을 나타내고자 하는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영광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생각하고 그것을 자랑거리가 아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마땅한 삶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겸손한 사람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잘못을 책망하는 나단 선지자의 말을 듣고 회개했지만 교만했던 아사는 오히려 화를 냈습니다. 겸손한 자는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만 교만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해 버립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잠 3:34).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일평생 겸손한 마음으로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이 아닌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섬기는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