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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강해 :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예음TV/수요예배설교 2022.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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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6장 5절 ~ 12절[개역개정]
5 제자들이 건너편으로 갈새 떡 가져가기를 잊었더니
6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7 제자들이 서로 논의하여 이르되 우리가 떡을 가져오지 아니하였도다 하거늘
8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으므로 서로 논의하느냐
9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바구니며
10 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광주리였는지를 기억하지 못하느냐
11 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하느냐 오직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12 그제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을 깨달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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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마가단[달마누나, 막 8:10] 지방에 가셨을 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님을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했습니다.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이란 모세 때 하늘에서 내렸던 만나(출 16장 ; 요 6:31)나 엘리야 때에 하늘로부터 내려온 불(왕상 18:38), 혹은 여호수아 때 해와 달이 멈췄던 사건(수 10:12-14)과 같은 이적들을 말합니다(요 6:31). 그동안 예수님께서 행했던 기적들로는 부족하니 정말 메시아라면 더 큰 표적을 보여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이전에도 그들은 이런 요구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마 12:38).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을 비롯해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적들을 보면서도 그분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고 계속 표적을 구하며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할 뿐이었습니다(마 121:38). 만일 예수님께서 그들의 요구대로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보여주신다고 해도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동안 행하신 기적들만으로도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증명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는데 더 큰 표적을 보여준들 그들이 믿을 리는 없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시며(막 8:12) 이전과 똑같은 대답을 하셨습니다.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다"는 것입니다(마 12:39 ; 16:3). '요나의 표적'이란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표적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요나의 표적을 언급하신 이유는 그 표적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는 것이고, 부활은 예수님이 인류를 구원하실 메시아임을 확실하게 증거 해주는 표적이기 때문입니다(마 12:40).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은 성경에 이미 예언된 사건이지만 (사 53:8-10 ; 고전 15:3, 4) 바리새인들처럼 마음이 악한 자들은 이를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어떤 표적을 보여주신다 해도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랬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믿든 안 믿든 그리고 인정하든 안 하든 예수님의 부활은 틀림없는 사실이고 그분이 바로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하나님의 메시아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을 떠나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셨습니다. 가시는 도중 제자들에게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하셨습니다(마 16:6). 마가복음에는 사두개인들 대신 헤롯이라고 하셨습니다(막 8:15). 누룩은 빵을 만드는 효모로서 반죽을 부풀게 하고 부드럽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주식이 빵이었기 때문에 누룩은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식재료였습니다. 이 누룩을 넣은 빵을 유교병이라 하고 그렇지 않은 빵을 무교병이라 부릅니다.

구약의 제사 가운데 피 흘림이 없는 유일한 제사가 있는데 곡식을 제물로 드리는 소제입니다. 소제의 예물로는 드리는 형태에 따라 고운 가루에 기름이나 유향, 소금 등이 들어갔으며(레 2:1-10), 누룩과 꿀을 넣어서는 안 되었습니다(레 2:11). 다만, 화목제나(레 7:13), 맥추절[칠칠절, 오순절]에 드리는 소제에 유교병이 사용되었습니다(레 23:17). 소제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제사에서 유교병 사용이 금지되었는데, 그 이유는 누룩이 영적으로 죄와 부패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고전 5:6-8 ; 갈 5:9).

본문에서 예수님은 누룩을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에 빗대어 사용하셨습니다(마 16:12). 눅 12장에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누룩을 외식이라고 하셨습니다(눅 12:1). 외식이란 위선이라고도 하는데, 남에게 보이려고 자신을 거짓으로 꾸미는 것을 말합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사람의 계명 곧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려고 정작 지켜야 할 하나님의 계명은 저버렸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은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또 장로들의 전통을 하나님의 계명인 것처럼 사람들에게 가르치며 강요했습니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져 있으니 이는 결국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마 15:9). 사두개인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부활을 믿지 않았고 현세에서의 부유와 평안만을 누리고자 했던 사람들입니다. 결국 그들의 교훈은 잘못된 가르침으로 듣는 자들의 삶에 악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주의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교훈에 미혹되어 신앙의 곁길로 갔고 지금도 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올바른 길로 가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하나님의 뜻과는 정반대로 살아가면서도 정작 자신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고 있다고,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처음엔 그랬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믿음이 없다고(막 4:40), 혹은 믿음이 작다고(마 8:26), 또 깨달음이 없다고(마 15:16) 책망을 들었습니다. 본문에서도 예수님은 제자들을 책망하셨습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제자들은 빵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들은 빵을 가져가는 것을 잊었고 지금 그들에게는 빵 한 개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빵이 없어서 그러시는가 보다'라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막 8:16). 이에 예수님께서는 조금 심하다 싶을 정도로 제자들을 책망하셨습니다.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또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막 8:17-21 ; 마 16:8-11)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남자만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또 작은 물고기 몇 마리와 빵 일곱 개로 남자만 사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이 사건들을 하나의 동일한 사건으로 보기도 하지만 이 둘은 엄연히 다른 사건입니다. 이 두 사건의 가장 큰 차이점은 기적이 베풀어진 대상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두로 지방에서 수로보니게 여인의 귀신 들린 딸을 고치시고 시돈으로 가셨다가 데가볼리 지역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셨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온갖 병자들을 고쳐주셨고, 그것을 본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마 15:31). 그 무렵에 다시 큰 무리가 모여 있었는데, 그들 중에는 멀리서 온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과 함께 지낸 지가 사흘이 되었는데,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냥 집으로 돌려보내기가 안쓰러우셨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불러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 지났으나 먹을 것이 없도다 만일 내가 그들을 굶겨 집으로 보내면 길에서 기진하리라 그중에는 멀리서 온 사람들도 있느니라"(막 8:2, 3). 이에 제자들은 '이 빈 들에서 어떻게 이 사람들을 배불리 먹일 빵을 구할 수 있겠느냐'며 하소연했습니다. 제자들은 이미 예수님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보았음에도 그때와 똑같은 질문을 했습니다(막 6:37). 그들은 오병이어의 기적 외에도 예수님께서 행하신 수많은 기적들 심지어 죽은 자를 살리시고(마 9:25) 자연까지도 예수님께 복종한 사건(마 8:27)을 체험했지만 아직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제대로 깨닫지 못했습니다(막 6:52).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가지고 있던 빵 일곱 개와 몇 마리의 물고기로 남자만 사천 명을 먹이시는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이 기적이 일어난 장소는 데가볼리(Δεκάπολις, 10개의 도시)로 이방인 지역입니다. 반면에 오병이어의 기적은 갈릴리 벳새다에서 행해졌습니다. 그리고 오병이어 기적 때는 남은 조각을 열 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다고 했는데(마 14:20). 사천 명을 먹이실 때는 남은 조각을 일곱 광주리에 차게 거두었습니다(마 15:37). 바구니와 광주리는 다른 것으로 바구니(σπυρίς)는 주로 이방인이 사용하는 것이고(행 9:25) 광주리(κόφινος)는 유대인들이 사용했습니다. 이처럼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남자만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은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행해진 사건이고, 빵 일곱 개와 작은 물고기 몇 마리로 남자만 사 천 명을 먹이신 기적은 이방인을 대상으로 베풀어진 사건으로 둘은 엄연히 다른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분명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이라고 하셨음에도 제자들이 그것을 단순히 빵의 누룩으로 이해했다는 것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그냥 누룩이라고 하신 것도 아니고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이라고 하셨는데 말입니다. 더욱이 예수님께서 적은 빵으로 많은 사람들을 먹이신 사건이 불과 얼마 전에 일어났습니다. 그럼에도 빵이 없음으로 걱정했다는 것은 결국 그들의 믿음이 적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책망을 들은 후에 비로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이 빵이 아니라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마 16:1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에도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처럼 잘못된 교훈들이 교회에 침투해 있습니다. 사람의 계명을 마치 하나님의 말씀인양 가르치며 지키도록 강요합니다. 잘 분별하지 못하면 그들의 교훈에 미혹되어 신앙의 곁길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자신은 올바른 길로 가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신앙과는 정반대의 길로 가고 있음에도 정작 자신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고 있다고,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오해하는 것이 걱정되고 한편으로는 무섭기까지 합니다. 우리는 잘못된 교훈들에 미혹되지 않도록 항상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벧전 4:7). 만물의 마지막이 점점 가까워지는 이 시기에 신앙의 경계를 늦추지 말고 더욱 정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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