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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음TV/주일예배설교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에서

2022.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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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24장 18절 ~ 25절 [개역개정]
18 이 날에 갓이 다윗에게 이르러 그에게 아뢰되 올라가서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으소서 하매
19 다윗이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바 갓의 말대로 올라가니라
20 아라우나가 바라보다가 왕과 그의 부하들이 자기를 향하여 건너옴을 보고 나가서 왕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21 이르되 어찌하여 내 주 왕께서 종에게 임하시나이까 하니 다윗이 이르되 네게서 타작 마당을 사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아 백성에게 내리는 재앙을 그치게 하려 함이라 하는지라
22 아라우나가 다윗에게 아뢰되 원하건대 내 주 왕은 좋게 여기시는 대로 취하여 드리소서 번제에 대하여는 소가 있고 땔 나무에 대하여는 마당질 하는 도구와 소의 멍에가 있나이다
23 왕이여 아라우나가 이것을 다 왕께 드리나이다 하고 또 왕께 아뢰되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을 기쁘게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
24 왕이 아라우나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다 내가 값을 주고 네게서 사리라 값 없이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하리라 하고 다윗이 은 오십 세겔로 타작 마당과 소를 사고
25 그 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니 이에 여호와께서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매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재앙이 그쳤더라

설교문 보기

성경은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고 자기에게 명령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왕상 15:5). 하지만 이 사건이 다윗의 유일한 죄는 아닙니다. 자신이 고백한 대로 다윗은 여러 가지 죄를 범했습니다(시 18:4 ; 40:2). 본문은 그중에서 다윗이 말년에 범한 죄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1.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해야 합니다.

다윗은 밧세바의 일로 큰 곤혹을 치렀습니다. 그 후 태평한 세월을 지내다 또다시 죄를 범합니다. 자신의 업적을 과시하기 위한 인구 조사를 벌인 것입니다. 밧세바의 일이 육체와 안목의 정욕으로 인한 죄라면 인구조사는 이생의 자랑에 의한 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인구조사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두 번이나 인구 조사를 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민 1장 ; 26장). 인구조사는 어느 시대든지 과세나 징병 등 국가를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필요했습니다. 그럼에도 다윗의 인구 조사가 죄인 것은 그것이 불순한 의도에서 시도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더 큰 제국을 건설하여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교만이 인구조사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할 이스라엘의 왕이 오히려 인간의 힘인 군사력을 의지하려는 것이며,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야 할 하나님의 백성이 자신의 이름을 내세우려는 것이기에 명백한 죄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인구조사를 하게 된 이유가 사무엘서와 역대기서에 다르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인구조사를 지시하신 것으로 되어 있고 역대기서에는 사탄이 다윗을 부추긴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대상 21:1). 이는 욥의 경우처럼(욥 1:12 ; 2:6)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징계하시기 위해 사탄이 다윗을 부추기는 것을 허용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사고방식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허용하신 일도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으로 봅니다.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진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인구조사를 명하자 군사령관인 요압은 이를 반대했습니다. 그는 다윗이 인구조사를 하려는 의도가 무엇인지 알았고, 그것은 곧 하나님께 죄를 범하는 것이므로 이를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대상 21:3). 하지만 다윗은 요압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인구조사를 재촉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인구조사에 나선 요압은 약 10개월 만에 인구조사를 마치고 다윗에게 보고를 했습니다. 결과는 전쟁에 나갈 수 있는 사람이 이스라엘에는 80만, 유다에는 50만이었습니다. 역대기에는 조금 다르게 기록되어 있습니다(대상 21:5). 여기에는 레위지파와 베냐민 지파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인구조사에 불만을 품은 요압이 두 지파를 빼버린 것입니다(대상 21:6).

다윗은 인구조사를 하고 난 후 마음에 찔림을 받고 하나님께 자신이 큰 죄를 범했다고 하면서 용서를 구했습니다(삼하 24:8). 밧세바의 경우처럼 하나님께서는 그의 죄를 용서해 주셨지만 그에 대한 징계는 피할 수 없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갓을 다윗에게 보냈습니다. 갓은 다윗이 사울을 피해 모압 땅에 있을 때 유다 땅으로 돌아갈 것을 지시한 선지자입니다(삼상 22:5). 하나님께서는 갓 선지자를 통해 다윗에게 세 가지 재앙 곧 7년 기근, 3달의 도피생활, 3일간의 전염병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셨습니다. 역대기에는 기근이 3년으로 되어 있습니다(대상 21:12). 이에 다윗은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내가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께 직접 벌을 받겠다는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아침부터 정해진 날까지 이스라엘에 전역에 전염병을 내리셨습니다. 이로 인해 죽은 자가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7만 명이었습니다. 다윗은 백성들이 무엇을 잘못했느냐며 죄를 짓고 악을 행한 것은 자신이니 자기와 자기 집안을 치라고 하나님께 호소했습니다. 다윗의 항변처럼 죄는 다윗이 지었으니 그와 그의 집만 벌을 받는 것이 맞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의 발단은 이스라엘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전염병으로 죽은 7만 명은 다윗의 죄 때문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죄 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그들이 어떤 죄를 지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진노하실 만큼 큰 죄였음은 분명합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온갖 죄를 범했습니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으러 시내 산에 올라가 있을 때는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했습니다(출 32:1-6). 그 일로 죽임을 당한 사람이 3,000명이었습니다(출 32:28). 싯딤에 머물러 있을 때는 모압의 신들에게 절하고 모압 여인들과 음행을 하다가 24,000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민 25:1-9). 또 하나님을 시험하다가 뱀에 물려 많은 사람이 죽기도 했습니다(민 21:4-6).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이런 사건들을 언급하며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으니 그러므로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권면했습니다(고전 10:11, 12).

신앙에 있어서 아무런 흠이 없고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실수했고(창 12:13 ; 20:11)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행 13:22),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다윗도 넘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서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교만한 자는 반드시 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잠 16:18).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아 돌아다니는 마귀가 그냥 지나칠 리 없습니다. 마귀의 먹잇감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교만을 버리고 이생의 자랑을 멀리해야 합니다. 사탄에게 조금의 틈을 주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리고 신앙의 경계심을 늦추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는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않으십니다.

다윗의 범죄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전 지역에 전염병을 내리셨습니다. 이 전염병은 예정대로라면 3일 동안 계속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간구에 마음을 돌이키시고 예루살렘을 치려는 천사에게 "그만하면 됐으니 손을 거두라"고 하셨습니다. 재앙의 기간을 단축시키신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직접 벌을 받겠다고 한 것이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을 것입니다(삼하 21:13).

하박국 선지자는 유다 백성이 하나님의 진노하심으로 바벨론에 의해 징계를 받을 때 긍휼을 베풀어 주셔서 멸망하지 않고 다시금 회복시켜 주실 것을 간구했습니다(합 3:2).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해 무섭게 징계하시지만 그 가운데서도 긍휼을 베풀어 주시는 은혜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올 때 우리는 다윗과 하박국처럼 하나님의 긍휼 하심에 의지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자비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고 우리를 회복시켜 주실 것이며, 고난을 통해 우리는 겸손히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게 될 것입니다. 결국 고난은 다윗의 고백처럼 우리에게 유익이 됩니다(시 119:71).

3.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예루살렘을 멸하려고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천사는 아라우나의 타작마당 곁에서 칼을 빼어 예루살렘을 겨누었습니다. 이를 본 다윗은 장로들과 함께 굵은 베 옷을 입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며 주의 백성에게서 재앙을 거두어 주시기를 간구했습니다(삼하 24:17). 이에 하나님께서는 재앙을 멈추게 하시고 갓 선지자를 통해 다윗에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 제단을 쌓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대상 21:18). 역대기에는 아라우나가 오르난으로 되어 있는데(대상 21:15), 오르난은 히브리식 발음이고 아라우나는 여부스식 발음으로 둘은 같은 인물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지시대로 아라우나(오르난)의 타작마당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아라우나에게 충분한 값을 지불하고 그곳에 제단을 쌓아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제단 위에 불을 내려 응답하셨고 이스라엘에 내렸던 재앙을 완전히 거두셨습니다(삼하 24:25 ; 대상 21:27). 이후로 다윗은 계속 그곳에서 제사를 드렸고(대상 21:28), 그곳을 성전 부지로 결정을 했습니다(대상 22:1 ; 대하 3:1).

사실 오르난의 타작마당이었던 이곳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장소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100세에 낳은 이삭을 번제로 드리기 위해 간 곳이 바로 이 타작마당이 있는 산이었습니다. 이 산을 보통 모리아 산이라고 하는데 정확히 말하면 모리아 땅에 있는 한 산입니다(창 22:2).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기 위해 이 산으로 간 것은 하나님의 지시에 의한 것입니다. 그곳에서 아브라함은 이삭 대신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양을 잡아 번제로 드렸습니다(창 22:13). 이 양은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히브리서 기자에 의하면 아브라함이 외아들인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 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삭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히 11:19). 하나님께서 그에게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을 것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창 21:12). 말하자면 아브라함은 이삭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다시 받은 셈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합니다.

아브라함이 거주하던 브엘세바(창 21:32-34)에서 모리아 산까지는 3일 길이었습니다(제삼일에, 창 22:4). 이는 예수님께서 장사된 기간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제삼일에, 마 16:21 ; 17:23).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이삭은 브엘세바를 출발할 때부터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삭은 자신을 태울 번제 나무를 메고 모리아 산에 올랐는데(창 22:6), 이는 자신이 못 박힐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신 예수님을 연상케 합니다(요 19:17).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은 아브라함이 외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 했던 그 장소에서 우리의 죄를 위한 대속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마 20:28).

또 모리아 산은 멜기세덱이 제사장 직분을 감당한 장소로 추정되기도 합니다(창 14:17-20). 멜기세덱은 살렘 왕으로 하나님의 제사장직을 겸했습니다(창 14:18 ; 히 7:1). 살렘은 '평화'란 뜻이고(히 7:2), 예루살렘과 동일시되고 있습니다(시 76:2). 따라서 모리아 산에 있는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성전이 세워졌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구조사를 통해 죄를 지은 다윗이 회개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린 그곳을 성전 부지로 삼으셨습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는 표현처럼(롬 5:20) 하나님의 은혜는 재앙을 복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결국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 것입니다(롬 8:2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초심을 지킨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다윗은 연약할 때 하나님을 의지했고 고난 중에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한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시 20:7).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라고 한 사람이 바로 다윗입니다(시 시 146:3, 5). 그랬던 그가 나라가 강성해 지고 태평한 세월을 보내자 교만에 빠져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는 죄를 범했습니다. 교만은 우리를 넘어지게 합니다(잠 16:18). 그러므로 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지지 않도록 늘 조심해야 합니다. 언제나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신앙의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도 교회도 아닌 예수님만을 자랑해야 합니다(고전 1: 31 ; 3:21 ; 갈 6:14).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처럼(약 4:14),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 같은 인생(시 103:5)이 자랑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내가 나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한 바울처럼(고전 15:10)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고 언제나 변함없는 마음으로 늘 겸손히 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딤전 1:1)만을 바라보는 삶이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