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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강해 :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예음TV/수요예배설교 2022. 11. 7.

 

성경본문 보기

마태복음 15장 21절 ~ 28절[개역개정]
21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23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2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25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26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27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설교문 보기

예수님께서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셨을 때 한 여인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가나안 여자로 수로보니게 사람이었습니다(막 7:26). '수로보니게'는 '수리아의 베니게‘라는 뜻으로, 시리아의 해안에 있는 지방이었습니다. 이 여인에게 한 어린 딸이 있었는데, 그 아이에게 귀신이 들렸습니다. '귀신 들림'이란 악한 영이 사람 안에 거하면서 그 사람의 마음이나 몸을 지배하는 것을 말하는데, 예수님 당시에는 귀신 들린 사람들과 그로 인한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습니다. 가나안 여자가 예수님을 찾아온 이유는 바로 이 귀신 들린 딸아이의 치료를 위해서입니다. 자기 딸에게서 귀신을 쫓아내 달라는 요청을 하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그 여인의 딸은 고침을 받았습니다. 이 사건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를 교훈해 주고 있습니다.

1. 예수님께 나와야 합니다.

가나안 여자는 자신의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다’고 했습니다. 이는 '위험할 만큼 해로운 귀신이 들렸다'는 의미로 딸의 상태가 어떤지를 보여줍니다. 성경에는 언급이 없지만 가나안 여인은 딸아이의 치료를 위해 사방팔방으로 노력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를 치료할 수 없었고, 그렇게 절망 가운데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는 즉시 예수님께 나아가 자신의 딸을 고쳐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사실 가나안 여인이 유대인인 예수님께 나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이방인과 만나는 것을 죄악시했을 뿐만 아니라(행 10:2), 그들이 만들어낸 물건이나 음식까지도 부정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심지어 그들의 음식을 돼지고기에 비길 정도였습니다. 더욱이 가나안은 옛날 이스라엘과 원수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민족적 반감이 있었습니다. 물론 가나안 여인도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딸의 치료를 위해 민족적 반감이나 개인적인 자존심을 모두 버리고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이처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예수님께 나와야 합니다. 이 말은 예수님께 기도하라는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마 7:;7). 기도는 문제 해결의 열쇠와 같은 것입니다.

2. 포기하지 말고 인내해야 합니다.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께 나와 자기 딸에게서 귀신을 쫓아주시기를 간구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럼에도 가나안 여인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예수님께 간구했습니다. 그녀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마지막 희망이었고 이 희망을 결코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렇듯 포기하지 않고 간구하는 가나안 여인의 모습은 예수님의 비유에 등장하는 한 과부를 연상케 합니다.

어떤 마을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들을 무시하는 재판관이 있었습니다. 그 마을에 사는 한 과부가 재판관을 찾아가서 자신의 원한을 갚아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하지만 그 재판관은 과부의 간청을 들어 주려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돈 때문이었습니다. 과부에게는 재판관에 줄 돈도 없었고 그를 도와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런 과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계속 재판관을 찾아가 간청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얼마 후에 이 재판관은 과부의 청을 들어주기로 했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간청하는 과부의 모습에 감동을 받은 게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계속 와서 자신을 괴롭힐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재판관은 매일 찾아오는 과부로 인해 정상적인 업무를 보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과부의 간청을 들어주려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은 제자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시기 위함이었습니다(눅 18:1). 불의한 재판관도 과부가 매일 찾아오는 것이 귀찮아서 그의 간청을 들어주었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간청을 들어주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기도하되 응답이 더디다고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의 비유에 나오는 과부처럼, 그리고 가나안 여인처럼 인내를 가지고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3. 끝까지 예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가나안 여인이 계속 소리를 지르자 오히려 제자들이 예수님께 간청을 했습니다.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셔서 돌려보내라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열 두제 자를 보내실 때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마 10:5, 6). 이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데도 순서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즉 유대인들에게 먼저 복음이 선포되고 그 후에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었고 또 오랫동안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먼저 이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어야 했습니다(롬 1:16 ; 2:9). 이처럼 복음에는 순서가 있지만 결코 차별은 없습니다. 처음 유대인에게 전해진 복음은 오늘날 땅끝까지 전파되었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그가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지 상관없이 모두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가나안 여인은 오히려 예수님께 나아와서 절하며 자신을 도와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다"고 하셨는데, 마가복음에는 이 앞에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여야 한다"는 말씀이 추가되었습니다(막 7:27). 예수님께서는 유대인을 자녀로, 이방인을 개로 비유하시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임에 있어서 유대인들에게 그 우선권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경에서 개는 썩은 고기나 시체 등 무엇이나 먹어치우는 탐욕스러운 짐승으로 또 자기가 토한 것을 도로 먹는 추저분한 동물로 묘사되었습니다(잠언 26:11 ; 벧후 2:22). 이런 습성들 때문에 개는 사람들에게 멸시되고, 상대를 경멸하는 표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방인들 역시 유대인들에게 개 취급을 당했는데(마 15:26) 선민사상이 강한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보면 당시 가증한 풍속(레 18:30)을 따르던 이방인들은 개와 다를 바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가나안 여자를 경멸하기 위해 '개들'이란 표현을 사용하신 것은 아닙니다. 단순히 유대인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한다면 이방인은 '개'라는 의미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듣는 입장에서는 굉장히 자존심이 상하는 표현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가나안 여인은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이 '개'임을 인정했습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가나안 여인은 자신이 개 취급을 받고 있음에도 모욕감을 느끼기는커녕 오히려 다행으로 여겼는지 모릅니다. 자신이 비록 유대인은 아니지만 개가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그런 은혜라도 주시지 않을까 하는 바람과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여인의 이런 믿음은 예수님을 감동케 했습니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가나안 여인의 믿음은 제자들의 믿음과는 대조적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믿음이 작다거나 믿음이 없다는 책망을 들었습니다(마 8:26 ; 14:31 ; 막 4:40). 그런데 가나안 여자는 이방 여자임에도 믿음이 크다는 칭찬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에게 "돌아가라 네 소원대로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다"고 말씀하셨고 그 말씀대로 여인의 딸에게서 귀신이 떠나갔습니다(마 15:28 ; 막 7:29). 이렇게 가나안 여인의 딸이 고침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이 여인에게 예수님을 감동케 할 만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기적을 낳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가나안 여인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마지막 희망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아니면 자신의 딸은 고침을 받을 수 없으며 귀신에게 시달리다가 그렇게 죽어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는 즉시 예수님께 나와 딸아이의 치료를 위해 간구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셔도 포기하지 않았고, 모욕감을 느낄 수 있는 말을 들어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딸아이만 고칠 수 있다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주인의 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먹는 개처럼 그런 부스러기 은혜라도 주시기를 원했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결국 예수님을 감동케 했으며 그녀는 자신의 소원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문제를 만났을 때 가나안 여인처럼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가야 합니다. 응답이 없다고 포기하거나 좌절해서는 안 됩니다. 인내를 가지고 간절한 마음으로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그럴 때 그 기도는 반드시 응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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