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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음TV/주일예배설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2022. 8. 29.
성경본문 보기

사무엘하 16장 5절 ~ 14절 [개역개정]
5 다윗 왕이 바후림에 이르매 거기서 사울의 친족 한 사람이 나오니 게라의 아들이요 이름은 시므이라 그가 나오면서 계속하여 저주하고
6 또 다윗과 다윗 왕의 모든 신하들을 향하여 돌을 던지니 그 때에 모든 백성과 용사들은 다 왕의 좌우에 있었더라
7 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8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를 이어서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기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이므로 화를 자초하였느니라 하는지라
9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왕께 여짜오되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청하건대 내가 건너가서 그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 하니
10 왕이 이르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하고
11 또 다윗이 아비새와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
12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하고
13 다윗과 그의 추종자들이 길을 갈 때에 시므이는 산비탈로 따라가면서 저주하고 그를 향하여 돌을 던지며 먼지를 날리더라
14 왕과 그와 함께 있는 백성들이 다 피곤하여 한 곳에 이르러 거기서 쉬니라

설교문 보기

다윗 왕은 이스라엘의 성군으로 불립니다. 그만큼 다윗은 유대인들에게 추앙받는 최고의 왕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로마의 압제를 받고 있던 유대인들이 고대하던 메시아는 다윗 시대 이스라엘이 누렸던 번영과 영화를 재현해 줄 강력한 군주였습니다. 그런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르기까지의 여정은 참으로 험난했습니다.

이스라엘을 공포에 떨게 했던 블레셋 장군 골리앗을 물리치고 일약 스타가 되었던 다윗은 그를 시기한 사울 왕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어 오랫동안 조국과 타국을 넘나드는 유랑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끝내는 이스라엘의 원수인 블레셋의 가드로 망명하기에 이릅니다. 사울이 죽고 이스라엘로 돌아와 왕위에 올랐지만 유다 지파만을 다스리는 반쪽 짜리 왕이 되었습니다. 7년 반 동안 동족인 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여야 했고(삼하 3:1), 요압이 아브넬을 죽인 일로 또 한 번 위기를 겪을 뻔했습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다윗은 통합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 후 다윗은 승승장구했습니다(삼하 8:6). 그동안의 고생을 보상받기라도 하듯 주변 국가들을 굴복시키고 조공을 받기까지 했습니다(삼하 8:2, 6).

나라가 안정이 되자 신앙의 나태함이 찾아왔고 그 나태함은 다윗으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했습니다. 그로 인해 다윗의 가문에 비극이 찾아왔습니다. 밧세바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죽고, 장남 암몬이 누이 다말을 강간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암논이 다말의 오빠 압살롬에게 죽임을 당하고,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키자 다윗은 또다시 쫓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압살롬이 죽자 다윗은 마음이 찢어지는 아픔을 겪었습니다(삼하 18:33). 이어서 세바의 반역이 있었고(삼하 20:1, 2), 말년에 시행한 인구조사로 인해 또 한 번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삼하 24:1-17). 이처럼 고난을 당하고 아픔을 겪을 때 다윗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또 그 아픔을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통해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를 배우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다윗이 밧세바와 간음을 한 후 아이가 생겼습니다. 나단 선지자는 그 아이가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에 순종하므로 백성들의 모범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런 다윗이 말씀과 명령의 기본이 되는 십계명의 여러 계명들을 어긴 것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위였습니다(삼하 12:9, 10). 동시에 여호와의 원수들에게는 하나님을 경멸하고 모독할 기회를 주었습니다(삼하 12:14).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의 잘못된 행실이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입니다(롬 2:23). 비록 다윗은 회개하므로 죄를 용서받았지만(삼하 12:13) 그 죄에 대한 징계는 피할 수 없었습니다(출 34:7). 그것이 곧 하나님의 공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보내 다윗을 책망하신 때는 밧세바가 아이를 출산하기 직전이나 직후였던 것 같습니다. 다윗이 죄를 범한 후 근 1년의 시간이 흐른 뒤였습니다. 그동안 왜 하나님께서 다윗의 범죄에 대해 침묵하고 계셨는지 또 다윗은 그 시간들을 어떻게 보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가장 적절한 시점에 다윗을 책망하셨다는 것입니다.

나단이 돌아간 후에 하나님께서는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심한 병에 걸리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아이를 가리켜 '우리아의 아내가 다윗에게 낳은 아이'라고 했습니다(삼하 12:15). 다윗의 아들이기는 하지만 밧세바가 우리아의 처였을 때 생긴 아이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강조한 이유는 그 아이가 왜 죽어야 했는지를 보여주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죄는 다윗이 지었는데 왜 그 아들이 죽어야 하는가'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그 자식들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요 자식들은 그 아버지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니 각 사람은 자기 죄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신 24:16 말씀에 위배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반면에 출 20:5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겠다"는 말씀에는 부합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에 대한 여러 설명이 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는 하나님의 결정에 어떤 이의도 제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롬 9:20). 하나님의 결정은 항상 선하시며 그분의 판단은 언제나 옳으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지혜로 크신 하나님의 뜻을 헤아일 수는 없는 법입니다(욥 36:26).

다윗은 골방에 들어가 금식하며 울면서 앓고 있는 아이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혹시 하나님께서 자신을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삼하 12:22). '불쌍히 여기다'는 '은혜를 베풀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다윗은 곤경에 처할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습니다(시 4:1). 자신의 잘못으로 징계를 받을 때에도 하나님의 긍휼 하심에 호소를 했습니다(시 6:2). 자신을 버리지 마시고 멀리하지도 마시며 속히 도와주시기를 간구한 것입니다(시 38:21, 22). 하바국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진노하실 때라도 긍휼을 잊지 마시기를 기도했습니다(합 3:2).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해야 하는 것은 원망과 불평이 아니라 다윗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자신을 긍휼히 여겨주시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자비롭고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선하심에 맡겨야 합니다.

다윗이 압살롬을 피해 도망갈 때 제사장 사독과 그와 함께 한 레위인들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가지고 다윗을 따라가려고 했습니다. 이에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다시 성 안으로 메어 가라고 하면서 만일 자신이 하나님께 은혜를 입으면 그 궤가 있는 곳을 다시 보게 될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싫다고 하시면 그분이 보시기에 좋으실 대로 자신에게 행하시기를 바랄 뿐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처분을 내리시든지 그대로 받겠다는 것입니다(삼하 15:26).

다윗 일행이 바후림에 이르렀을 때는 사울 왕의 친척 중 한 사람인 시므이가 나와서 계속 저주를 퍼부며 돌을 던졌습니다. 그는 평소 사울을 대신하여 왕이 된 다윗을 증오하고 있었는데, 압살롬을 피해 도망가는 다윗을 보고는 온갖 욕설과 저주를 퍼부은 것입니다. 이에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그의 목을 베려하자 다윗이 말리면서 하는 말이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고 했습니다(삼하 16:11, 12). 다윗은 압살롬의 반역은 물론 시므이의 저주까지 모든 것을 자신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로 받아들였습니다. 사실 시므이의 저주는 다윗의 입장에선 다소 억울한 면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다윗이 왕위에 오른 것은 자신이 원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이었습니다. 사울 왕의 가문이 몰락한 것 역시 다윗의 잘못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시므이는 이 모든 책임이 다윗에게 있고 하나님께서 그 책임을 물어 벌을 주신 것이라며 저주를 했습니다.

이에 대해 다윗은 아무런 변명도,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선하심에 맡길 뿐이었습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주실 것이고 언젠가는 이 고난에서도 벗어나게 해 주실 것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모든 상황을 하나님의 선하심에 맡겨야 합니다. 그리고 너무 조급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조급하면 죄를 범할 수 있습니다. 경솔히 행동하지 말고 조용히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면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가장 적당한 때에 좋은 것으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3.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시 3편은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을 피할 때에 지은 시입니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켰을 때 그의 편에 선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다윗에 대하여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라고 했지만 그럼에도 하나님께 대한 다윗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하나님의 징계로 압살롬을 피해 도망하고 있지만 다윗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여전히 방패시요 영광이시며, 머리를 들게 하시는 분이셨습니다(시 3:3). 이런 확신은 다윗에게 큰 용기를 주었습니다(시 3:6). 그래서 두려움이 몰려올 때마다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과 기도로 이를 극복했으며 소망 중에서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바라보았습니다(시 3:8).

시 146편 기자는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고(시 146:3),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하나님께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시 146:5). 그러므로 우리는 어려움을 당할 때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고 천지 만물을 지으시고 영원히 진실함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 하나님께 우리의 도움이 있고 소망이 있습니다.

4.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가장 긴 장은 시 119편입니다. 모두 176절로 되어 있습니다. 흔히 '말씀장'이라고 하는데, 주로 하나님의 말씀과 관련된 내용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는 누가 지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다윗이 고난을 당할 때 지은 시라고 보기도 하고, 말씀에 정통했던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의 시라고 보기도 합니다.

이 시편에는 고난에 관해 언급한 몇 구절이 있습니다.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내게 소망을 가지게 하셨나이다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 (시 119:49, 50). 하나님의 말씀이 고난 중에 있는 자신에게 위로와 소망이 되었다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환난 중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위로와 소망이 될 뿐만 아니라 백성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71절에서는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고 했습니다. 그 고난 때문에, 주님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고난을 당하기 전에는 세상의 것으로 마음이 둔하여졌고(70) 그래서 그릇 행했지만(67) 고난을 통해 천금보다 귀한 하나님의 말씀(72)을 배우게 하시니(시 11:69 ; 시 94:12) 결과적으로 고난이 유익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결심합니다.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지 않고 그대로 지키겠다고(시 119:115).

사실 우리가 어려움에 처하게 되면 말씀을 멀리하기 쉽습니다. 신앙보다 현실에 대한 걱정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더욱 말씀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시편 기자가 고백한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입니다(시 119:105). 어두운 길을 갈 때 '등'이 없으면 길을 못 찾아 헤매거나 엉뚱한 길로 갈 수도 있고, 또 넘어져 다칠 수도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우리는 암흑과 같은 세상에서 참된 인생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인생의 등과 빛이 되어 앞길을 밝혀 줌으로써 항상 우리에게 올바른 방향을 선택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삶의 지표로 삼고 믿음으로 전진할 때 우리는 고난과 역경을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받는 고난은 잘못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일 수도 있고, 그리스도를 위한 헌신의 결과일 수도 있으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연단하시기 시험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고난이든 결국은 우리에게 유익이 됩니다(시 119:71). 그러므로 고난을 당할 때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에 모든 걸 맡기고 고난의 때가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고난을 통해 욥의 고백(욥 23:10)처럼 정금같이 단련될 것이고 더욱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