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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는 나의 반석

예음TV/주일예배설교 2022.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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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22장 1절 ~ 7절 [개역개정]
1 여호와께서 다윗을 모든 원수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그 날에 다윗이 이 노래의 말씀으로 여호와께 아뢰어
2 이르되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위하여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3 내가 피할 나의 반석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높은 망대시요 그에게 피할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구원자시라 나를 폭력에서 구원하셨도다
4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받으리로다
5 사망의 물결이 나를 에우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6 스올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7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아뢰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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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도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던 다윗은 그의 삶을 통해 경험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며 노래를 지어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이 노래가 삼하 22장의 내용인데, 후에 약간 수정이 되어 시편 18편에 수록되었습니다. 그러면 다윗이 경험한 하나님은 어떠 분이신지 살펴봄으로써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은 우리의 반석과 요새가 되십니다.

2절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라고 고백했습니다. 반석은 바위라고도 하며, 부피가 매우 큰 돌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에는 이런 바위가 많았는데, 주로 짐승들의 거처로 이용되었고(삼상 24:2 ; 시 104:18) 사람들에게는 쉴 그늘이나(사 32:2) 피난처로 활용되기도 했습니다(삼상 13:6 ; 욥 30:6 ; 시 71:3 ; 렘 4:29). 또 요새는 적의 공격을 막기 위해 높이 쌓은 방벽이고, 3절에서 언급한 망대는 방벽 위에 세워진 탑입니다(삿 8:9). 이 망대와 요새 그리고 반석은 강하고 견고하며 안전을 상징했는데(잠 18:10),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을 반석과 요새 그리고 망대에 비유를 했습니다(신 32:4, 8; 시 18:2; 71:3; 합 1:12).

다윗은 환란을 당할 때 반석과 요새이신 하나님을 의지했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다윗을 모든 원수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다윗처럼 어려움을 당할 때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고(시 146:3) 힘과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을 도움으로 삼으며 그분에게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그런 자가 복있는 사람입니다(시 146:5).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신 반석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환란 가운데서 건져주실 주실 것입니다

신약에서는 반석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습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생활 동안 먹은 것은 신령한 양식인 만나였습니다. 그리고 신령한 반석에서 나오는 음료를 마셨는데, 바울은 이 반석을 예수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고전 10:4).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고 하셨습니다(사 55:1). '목마른 자들'이란 무엇을 간절히 소원하는, 특히 영적 구원을 갈망하는 자들을 가리킵니다(시 42:2 ; 63:1). 목마른 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물인 것처럼 구원을 갈망하는 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구원 곧 영원한 생명입니다.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요 3:16). 따라서 '물로 나아오라'는 말씀은 생명이신 예수님께로 나아오라는 의미입니다(요 7:37).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요 4:14)을 얻는 데 있어서 돈은 필요 없습니다(계 21:6 ; 22:17). 이는 구원이 사람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구원은 사람의 어떤 행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를 믿는 자들에게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요 은혜입니다(엡 2:8).

또 신약에서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시자 베드로가 "주님은 그리스도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바요나[요나(요한)의 아들, 요 21:15]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7, 18). 이 말씀에서 반석을 베드로와 동일시하는 견해가 있습니다. 베드로 위에 교회가 세워졌고 그래서 베드로가 교회의 기초요 머리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성경과 배치됩니다.

안드레가 자기 형제 시몬을 데리고 왔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를 보시고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게바(케파)는 아람어로 반석을 뜻하며, 이를 헬라어로 옮긴 것인 베드로입니다(요 1:42). 원래 반석을 뜻하는 헬라어는 페트라입니다. 이는 여성형이기 때문에 남성형인 페트로스로 번역한 것입니다. 아람어로는 구분 없이 모두 게바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반석을 아람어로 바꾸면 '너는 게바라 내가 이 게바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게바가 곧 베드로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만일 교회가 베드로라고 하는 한 개인 위에 세워졌다면 그 교회는 불완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리스도로 고백되어진 때부터 비로소 자기가 반드시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해야 하며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예수님을 붙잡고 항변하다가 '사탄'이라는 책망을 들어야 했습니다(마 16:22, 23). 게바에서 졸지에 사탄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시면 '누가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인가' 하는 문제로 동료 제자들과 다투기도 했습니다(막 9:34 ; 눅 9:46 ; 눅 22:24). 더욱이 예수님을 저주하며 부인한 사람이 베드로입니다(마 26:74). 그런 갈대와 같이 연약한 베드로 위에 예수님의 교회가 세워졌고 그래서 베드로가 교회의 기초요 머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가당치 않습니다.

정작 베드로 자신은 예수님을 보배로운 산 돌이요(벧전 2:4) 모퉁잇돌이라고 했습니다(벧전 2:6). 모퉁잇돌이란 건축물의 벽과 벽 사이를 잇는 건물의 기초요 중심이 되는 돌로서 유대인의 건축 양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 돌이 이사야 선지자가 말한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입니다(사 28:16). 예수님께서는 건물의 모퉁잇돌처럼 교회를 견고하게 지탱시켜 주는 교회의 중심이요 기초가 되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머리는 베드로가 아니라 예수님입니다(엡 1:22 ; 5:23 ; 골 1:18).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신 것은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가 한 고백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고백(혹은 그렇게 고백되어진 예수님)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고백이 있는 곳에 예수님의 교회가 세워지고 존재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고백처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믿는 사람들에게는 보배로운 산 돌이요 반석이 되지만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반석]가 됩니다. 그들이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예수님을 거부하기 때문에 결국은 파멸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벧전 2:8).

2. 하나님은 우리의 방패와 구원의 뿔이 되십니다.

다윗은 3절에서 하나님을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라고 했습니다. 방패는 고대 전쟁에서 적의 칼이나 화살 등을 막는 데 사용하는 방어 무기이고, 뿔은 공격 무기이면서 힘과 구원을 상징합니다(창 15:1 : 시 89:17). 다윗이 하나님을 방패와 뿔에 비유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적으로부터 보호해 주시고, 환난에서 건져주실 구원자가 되신다는 고백입니다.

신약에서는 방패가 믿음에 비유되었습니다. 바울은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고 했는데, 이는 하나님의 무기들로 완전무장을 하라는 것입니다(엡 6:11). 그중의 하나가 믿음의 방패입니다(엡 6:16). 방패가 전신을 보호하듯이 성도에게 있어서 믿음은 악한 영들의 모든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장비입니다. 또한 믿음의 방패는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 곧 세상의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믿음이라고 했습니다(요일 5:14). 이 믿음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요일 5:5). 이 믿음으로 우리는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계신 분이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시기 때문입니다(요일 4:4).

3. 하나님은 우리의 등불이 되십니다.

29절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나의 등불'이라고 했습니다. 등불의 역할은 어둠을 밝히는 것으로 생명이나 희망, 보호, 인도 등을 상징합니다(욥 29:3 ; 시 18:28). 하나님께서는 흑암의 고통 속에 있는 다윗에게 등불이 되시어 그의 생명을 보호하시고 인도해 주셨습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등불이요 빛이라고 했습니다(시 119:105). 베드로도 예언의 말씀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다고 했습니다(벧후 1:19). 등불이 없으면 어둠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인생의 등불인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암흑과 같은 세상에서 참된 인생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인생의 등불이 되어 앞길을 밝혀 줌으로써 항상 우리에게 올바른 방향을 선택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는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고 그것을 삶의 지표로 삼아야 합니다. 사실 우리가 어려움에 처하게 되면 말씀을 멀리하기 쉽습니다. 현실에 대한 걱정과 근심이 영원한 세계에 대한 관심을 가로막기 때문입니다(마 13:22). 그럴 때일수록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귀는 계속해서 현실에 대해 염려하고 근심하도록 만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약에서는 세례 요한이 '켜서 비취는 등불'(요 5:35)에 비유되었습니다. 하지만 요한은 빛 자체가 아니라 빛이신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선구자로서 비추는 등불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빛으로서(요 9:5) 그 빛을 따르는 자는 생명을 얻게 되고(요 8:12) 그 사람 역시 세상의 빛으로 살아가게 됩니다(마 5:14). 우리는 빛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빛의 자녀들로서(엡 5:8) 착하고 의롭고 진실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엡 5:9). 만일 그리스도인이 빛 된 삶을 살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뿐만 아니라 복음을 전파하는 데도 방해가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윗은 원수들의 위협 앞에서 죽음의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습니다(삼하 22:5, 6). 하지만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을 의지하지 않고 반석이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보호해 주셨고 사망의 위기에서 건져주셨습니다(삼하 21:7). 우리도 다윗처럼 환난의 날을 만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때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그분의 도우심을 바라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고 그들에게 힘을 주시어 환난을 견디어 내도록 하십니다. 그리고 적당한 때에 환난에서 건져주실 것입니다. 매일의 삶 속에서 우리를 지켜주시고 인도하시는 그 크신 은혜에 감사하며 날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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