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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강해 :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2023. 1. 18.
성경본문 보기

마태복음 20장 11절 ~ 16절[개역개정]
1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2 그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3 또 제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4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그들이 가고
5 제육시와 제구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6 제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7 이르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8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9 제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10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11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이르되
12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13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14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15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16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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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복음서 가운데 마태복음에만 기록되어 있는 일명 '포도원 품꾼의 비유'입니다. 이 비유는 19장 30절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는 말씀과 연결됩니다. 한글성경에는 번역되지 않았지만 헬라어 원문에는 20장 1절에 '왜냐하면'이란 뜻의 접속사 '가르(γάρ)'가 있어 본문이 앞의 내용과 연결됨을 보여줍니다.

영생을 얻는 방법을 알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온 부자 관리는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외면했습니다. 반면에 제자들은 자신들의 모든 소유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비록 그들이 부자는 아니었기에 예수님을 위해 버린 것이 크지는 않을지라도 그것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전부였으며 그들에게는 소중한 것들이었습니다. 베드로는 부자 관리와 비교하면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라고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이를 베드로가 어떤 보상을 바라고 한 질문으로 보기도 하는데, 그보다는 부자 관리와 달리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자신들은 영생을 얻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의미의 질문으로 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은 한 마디로 '그렇다'입니다.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마 19:29). 이어서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마 19:30).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포도원 품꾼의 비유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 비유는 천국 곧 하늘나라에 관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먼저 비유의 내용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어떤 포도원 주인이 아침 일찍 품꾼을 구하기 위해 인력시장으로 나갔습니다. 포도나무는 무화과나무와 감람이라 불리는 올리브나무 와 함께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과실수입니다(신 8:8). 특히 포도나무는 거의 전 지역에서 재배되었는데, 이스라엘의 기후가 포도 재배에 최적이었기 때문입니다. 포도 수확은 보통 9월 말경이었는데 이때는 우기가 시작되기 직전이라 비가 오기 전에 빨리 수확을 끝내지 않으면 농사를 망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품꾼을 구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장터에 나갔습니다. 그곳에는 여러 명의 노동자들이 자기를 고용해 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당시 인력시장에 나오는 사람들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사람들로 종종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생활이 불안정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것이 무엇보다 절실한 과제였습니다. 포도원 주인은 그들 가운데 몇을 고용하기로 하고 품삯으로 하루 한 데나리온씩 주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그리고 9시쯤 되어 다시 나가 보니 그때까지 일거리가 없어 놀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그들에게 적당한 품삯을 주겠다고 하고 포도원으로 보냈습니다. 12시와 오후 3시에도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오후 5시에 또 나가 보았는데, 여전히 일거리가 없어 놀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그들에게도 포도원에 가서 일하도록 했습니다.

날이 저물자 포도원 주인은 관리인에게 일꾼들을 불러 나중 온 사람부터 차례로 품삯을 주라고 했습니다. 오후 5시에 온 사람들이 먼저 품삯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았기 때문에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 데나리온을 받았습니다. 이를 보고 먼저 온 사람들은 좀 더 많이 받을 줄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들 역시 한 데나리온밖에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주인에게 불만을 털어놓습니다.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오전 9시와 12시, 오후 3시에 온 사람은 5시에 온 사람이 한 데나리온 받은 것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그들 역시 일한 것보다 많이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불평보다는 감사의 마음을 가졌을 것입니다. 오직 한 부류 이른 아침부터 날이 저물 때까지 일한 사람들만 불만을 품었습니다. 그들은 포도원 주인의 처사가 불공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도 그들의 입장이었다면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하루 종일 뙤약볕에서 고생한 사람들과 해가 질 무렵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는 사람이 같은 품삯을 받는다면 누가 공평하다고 생각하겠습니까? 포도원 주인은 불평하는 품꾼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마 20:13-15).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마치시면서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고 하신 19장 30절의 말씀과 순서가 바뀌었지만 의미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통해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포도원 주인은 품꾼을 구하기 위해 이른 아침 장터로 나갔습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몇을 고용해서 포도원으로 들여보냈습니다. 또 오전 9시와 12시 그리고 오후 3시와 5시에도 그렇게 했습니다. 한 번에 필요한 만큼의 품꾼을 고용하면 될 텐데 왜 포도원 주인은 5번이나 구했던 것일까요? 필요한 품꾼의 수를 잘못 계산했기 때문일까요? 일을 하다 보니 처음 고용한 일꾼들로는 부족해서 품꾼을 더 구했던 것일까요? 한 번이야 그럴 수 있지만 5번이나 그랬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왜 포도원 주인은 5번이나 품꾼을 구하러 장터에 갔을까요? 인력시장에 나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생계가 막막한 사람들입니다. 그중에는 젊고 건강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늙고 몸이 불편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고용주 입장에서는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하기 때문에 젊고 건강한 사람들이 우선으로 채용됩니다. 반면에 몸이 불편하고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일자리를 얻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그냥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는 사람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그들이 바로 오전 9시와 12시 그리고 오후 3시와 5시에 장터에 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하는 일 없이 장터에 있었던 이유는 일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자신을 품꾼으로 고용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마 20:7). 포도원 주인은 그들이 안쓰러웠습니다. 처음 품꾼을 고용했을 때 남아있던 사람들이 눈에 밟혔습니다. 그래서 9시에 다시 장터로 나가 몇 명을 더 고용했습니다. 그리고 12시와 오후 3시, 5시에도 그렇게 했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고용해서 가난으로 고통받고 있는 그들을 도와주고 싶은 것이 포도원 주인의 마음이었습니다.

이는 죄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영혼들을 안타깝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여(벧후 3:9)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딤전 2:4).

2. 구원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날이 저물자 포도원 주인은 관리인에게 일꾼들을 불러 나중 온 사람부터 차례로 품삯을 주라고 했습니다. 오후 5시에 온 사람들이 먼저 품삯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일한 시간이 한 시간밖에 안 됐기 때문에 많이 받아야 두 앗사리온 정도 예상했을 것입니다. 한 앗사리온은 데나리온의 16분의 1로 당시 참새 두 마리를 살 수 있는 돈이었습니다(마 10:29 ; 눅 12:6). 그런데 그들이 받은 품삯은 하루 일당인 한 데나리온이었습니다.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았는데 하루 일당을 받았으니 기쁘기도 하고 고마운 마음에 어쩔 줄 몰라했을 것입니다. 오후 3시, 12시, 오전 9시에 온 사람들도 한 데나리온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5시에 온 사람들이 한 데나리온 받은 것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그들 역시 일한 것보다 많이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불평보다는 오히려 감사의 마음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른 아침부터 종일 일한 사람들은 한 데나리온을 받자 불평했습니다.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은 사람들과 자신들을 똑같이 취급했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그들은 포도원 주인의 처사가 불공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포도원 주인은 정당했습니다. 계약한 대로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그날 지불했습니다. 그들은 포도원 주인을 악한 사람으로 보았지만 오히려 그는 가난한 자들에게 자비를 베푼 선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비유에서 먼저 온 품꾼들을 다른 민족보다 먼저 복음을 들은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기도 하고(마 15:24), 다른 사람보다 먼저 예수님의 믿은 자들로 보기도 합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특권의식을 가지고 다른 민족 사람들을 이방인이라 부르며 천시하고 멸시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해서 구원을 받고, 그렇지 못한 민족이라고 해서 멸망을 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복음에는 순서가 있지만 결코 차별은 없습니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상관없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모두 구원을 받습니다(롬 3:22). 또 구원은 예수님을  얼마나 믿었는지 믿은 시간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오래 예수님을 믿은 사람이나 십자가의 강도처럼 죽기 직전에 예수님을 믿은 사람이나 모두 구원을 받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3.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있습니다.

품꾼이 포도원에 들어가게 된 것은 그들의 선택에 의해서가 아닙니다. 그들이 포도원에서 일하고 싶다고 해서 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포도원 주인이 그들을 품꾼으로 고용해야만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먼저 온 품꾼들은 나중에 온 품꾼들이 자신들과 같은 대우를 받는 것에 불평할게 아니라 오히려 자신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준 포도원 주인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했습니다. 품삯을 받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받고 싶다고 더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더 많이 했다고 더 달라고 요구할 수도 없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주인의 소관이기 때문입니다(마 20:15). 이는 구원이 사람의 어떤 선행이나 노력에 의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임을 보여줍니다. 구원은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받는 하나님의 선물이지(엡 2:8) 행위에 의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구원받은 것에 대해 자랑할 수도 없고 자랑해서도 안됩니다(엡 2:9). 그들에게는 오직 감사만 있을 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예수님을 따른 사람들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자들 사이에서도 '서로 누가 크냐'는 서열에 관한 논쟁을 벌였습니다(막 9:34). 이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막 10:43, 44).

다른 사람들 보다 먼저 예수님을 믿었다고 어떤 특별한 권리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먼저 믿었다고 나중에 믿은 사람보다 더 큰 상급을 받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고, 제자로 부르심을 받은 것도 전적으로 예수님의 선택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어떤 공로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믿었다고 자랑할 필요도 없고 교만해서도 안 되며, 다른 사람들보다 으뜸이 되고자 해서도 안됩니다. 다만 품꾼으로 사용하시는 포도원 주인에 감사하며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그러면 나중 된 자라도 먼저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먼저 된 자라도 나중이 될 수 있습니다.